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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세칸으로 지어진 사랑채와 중문
▲ 사랑채 세칸으로 지어진 사랑채와 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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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도로변에 자리한 괴헌 고택. 현재 중요민속자료 제262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설 연휴 전인 1월 29일에 찾아간 괴헌 고택. 구제역으로 인해 영주의 여기저기 도로가 막혀 있다. 특히 이산면 방향은 축산농가가 많아서 그런지 중간 중간 도로를 폐쇄한 곳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다행히 괴헌 고택까지는 도로폐쇄가 되지 않았다.   

영주 괴헌 고택은 연안 김씨 영주 입향조인 김세형의 8세손인 덕산공 김경집(1715~1794)이 정조 3년인 1779년에 지은 집이다. 이 집은 낮은 비탈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넓은 평지가 조성되었다. 괴헌 고택은 외풍을 막아주고, 바람이 불면 낙엽을 쓸어 모아 준다는 '소쿠리형', '삼태기형'의 명당 터라는 것이다. 김경집은 아들 김영(1789~1868)이 분가할 때 이 집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대문채 경북 영주에 있는 중요민속자료 제262호 괴헌고택의 대문채
▲ 대문채 경북 영주에 있는 중요민속자료 제262호 괴헌고택의 대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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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중문 위에는 괴헌고택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 중문 중문 위에는 괴헌고택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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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가 많아 당호를 '괴헌'으로 짓다

김영은 이 집에 '괴헌'이란 당호를 붙였다. 그것은 집 주위에 회화나무가 많아서였다고 한다. 현재 이 괴헌 고택은 고종 8년인 1871년 선생의 증손인 김복연이 일부를 중수하였다고 하는데, 그 당시 가옥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가 ㅁ 자 형으로 집이 구성되어 있다. 뒤편에는 동편 높은 곳에 사당이 자리한다.

괴헌 고택의 특징은 사랑마당과 안마당, 그리고 사당으로 들어가는 일각문을 사랑채 우측에 두었다는 점이다. 또한 많은 수납공간과 쪽마루, 그리고 고방 등을 여기저기 펼쳐놓아 집안에 많은 기물들을 정리하도록 하였다. 원래 정침의 앞에는 '월은정'이라는 정자와 행랑채가 있었다고 하는데, 1972년 수해시에 유실이 되었다고 한다.

사랑채 사랑채는 툇마루를 내고, 난간을 둘러놓았다. 팔작지붕의 처마가 날아갈 듯하다,
▲ 사랑채 사랑채는 툇마루를 내고, 난간을 둘러놓았다. 팔작지붕의 처마가 날아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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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 툇마루는 기둥 밖으로 내엇으나 난간을 둘렀다
▲ 툇마루 툇마루는 기둥 밖으로 내엇으나 난간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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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갈 듯한 사랑채의 처마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앞으로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막돌로 쌓은 축대위에 사랑채가 자리한다. 사랑채는 모두 세 칸으로 지었으며, 동편 한 칸은 마루방으로 꾸몄다. 문간채는 바깥담을 판자벽으로 둘러놓아, 전체적인 집안 분위기를 대문간부터 부드럽게 했다. 사랑채는 툇마루 앞에 난간을 둘러놓았는데, 툇마루는 사랑 동편까지 이어진다.

팔작지붕으로 꾸민 사랑채는 집 전체가 날아갈 듯하다. 그만큼 사랑채를 꾸미는데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사랑채를 바라보면서 좌측에는 중문이 나 있다. 중문 위에는 '괴헌고택'이란 편액이 걸려있으며, 안으로는 사랑에 불을 때는 아궁이와 고방을 마련했다. 중문 앞에 쌓여있는 장작더미가 정겹다. 사랑채의 처마에는 '관수정'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곳간채 안채와 사랑채와 연결이 된 중문채와 곳간채
▲ 곳간채 안채와 사랑채와 연결이 된 중문채와 곳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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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안채는 두단의 단을 쌓고 그 위에 지었다
▲ 안채 안채는 두단의 단을 쌓고 그 위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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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으로는 광채가 자리하고, 맞은편에 안채가 조금 높게 막돌로 쌓은 축대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안채는 앞으로 툇마루를 놓아 공간을 이용하고 있으며, 사랑채 뒤편으로는 쪽마루를 놓고 바람벽으로 막았다. 이 쪽마루를 이용해 중문을 통하지 않고도 바로 안채로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쪽마루의 출입처는 사랑채 동편에 붙은 날개채에도 나 있다. 괴헌 고택에는 안방에 피난다락과 사랑방의 뒷벽에 은신처가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쪽마루가 그런 대피수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쪽마루 괴헌고택에는 이러한 쪽마루의 활용이 돋보인다.
▲ 쪽마루 괴헌고택에는 이러한 쪽마루의 활용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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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 집의 뒤편으로는 경사진 비탈에 담장을 둘렀다. 담장에는 쪽문이 나 있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집안에 있는 대피다락이나 사랑채에 있는 피난처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 뒷담 집의 뒤편으로는 경사진 비탈에 담장을 둘렀다. 담장에는 쪽문이 나 있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집안에 있는 대피다락이나 사랑채에 있는 피난처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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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안되는 문화재청 자료

답사를 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대개는 그 지역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문화관광 편을 찾아보거나, 문화재청의 문화재 설명을 참고한다. 그런데 괴헌 고택의 자료를 찾다가 보니, 영주시청 홈페이지에는 괴헌 고택이 중요민속자료 제262호로 나와 있다. 2009년 10월 30일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재청의 자료에는 괴헌 고택이 중요민속자료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5호 두 곳에 소개가 되어있다. 처음에는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5호였다가, 2009년 10월 30일자로 중요민속자료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벌써 2년이나 중요민속자료로 승급이 된 괴헌 고택이, 문화재청 자료에는 아직도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소개가 된 것이 남아있어 혼란을 야기한다.

문화재청 자료 문화재청 문화재 소개에는 중요민속자료와 지방 민속자료 두 곳에 괴헌고택이 중복 소개가 되어있다. 2009년 10월 30일에 지방 민속자료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승급이 되었는데도 삭제하지 않은 자료가 남아있다.
▲ 문화재청 자료 문화재청 문화재 소개에는 중요민속자료와 지방 민속자료 두 곳에 괴헌고택이 중복 소개가 되어있다. 2009년 10월 30일에 지방 민속자료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승급이 되었는데도 삭제하지 않은 자료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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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화재를 총괄하고 있는 문화재청에서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는 것인지. 이런 것 하나 제대로 관리가 안되는 문화재청에서, 과연 우리 문화재를 올바로 관리를 할 수가 있을는지. 그저 문화재를 사랑하고 찾아다니는 사람으로서 답답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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