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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국제팀 김덕련 기자를 이집트 현지에 파견했습니다. 지난 11일 카이로에 도착한 김 기자는 무바라크 30년 철권통치를 끝낸 이집트의 분위기와 혁명 이후 새롭고 민주화된 미래를 준비하는 이집트 사람들의 열정을 생생하게 전해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11일(현지 시각) 오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
 11일(현지 시각) 오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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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걸 봐라. 이집트 국민은 위대하다."

11일(현지 시각) 오후 4시 무렵,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만난 마흐무드가 제 팔을 잡아끌며 한 말입니다. 마흐무드는 "오늘 500만 명이 모였다"며 "great people(위대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거듭했습니다.

500만 명은 좀 과장된 수치로 보였습니다만, 광장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는 보도가 있군요). 전 여러 차례 왼쪽 어깨를 앞으로 내밀고 오른쪽 어깨를 뒤로 빼는 식으로 몸을 돌려 마치 게처럼 한 걸음씩 전진해야 했습니다. 주변 사람과 몸이 하도 많이 닿아서, 나중에는 "Excuse me(실례합니다)"라는 말도 나오지 않더군요. 일행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앞사람 어깨에 두 손을 올린 기차놀이 자세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이들도 여럿 봤습니다.

1월 25일 시작돼 18일째이던 이날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이토록 많은 이들이 광장을 찾은 건 30년 독재자 무바라크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새로운 이집트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전날(10일, 현지 시각) 무바라크가 '9월 대선 때까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시민들은 다시 한 번 크게 분노했고, 그러한 분노가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게처럼 걷고 기차놀이 자세로 움직이고...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11일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반정부 시위대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사퇴 소식에 기뻐하고 있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해 온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발표했다.
 11일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반정부 시위대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사퇴 소식에 기뻐하고 있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해 온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발표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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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광장에 들어서기 위해 전 신분증(여권과 기자증)을 네 번 제시해야 했고 몸수색도 당했습니다. 절 몸수색한 이들은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광장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부 시위대였습니다. 이들은 신분을 확인한 후 "Sorry. Welcome.(미안하다. 환영한다.)"이라며 최소한의 질서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음을 이해해달라는 취지로 말하더군요.

이곳에 오긴 전, 질서 유지대에게 신분증을 요구받기 전에 군인들에게 먼저 검문을 당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전 이날 군인들에게는 제지당하지 않았습니다. 광장 주변에 배치된 탱크 주변에 군인들이 있긴 했지만, 이들은 광장으로 들어가는 이들을 내버려뒀습니다.

'해방'이라는 뜻의 타흐리르 광장은 연설, 노래, 춤, 구호가 어우러져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아랍어로 진행되는 연설과 구호들을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늙은 독재자를 향한 분노와 조롱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NO MUBARAK, NO CRY'(무바라크가 없으면 울 일도 없다) 같은 피켓과 곳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포스터에서도 이는 충분히 드러났고요.

그렇지만 광장에 소란만 넘쳐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건함, 숙연함도 함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번 시위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모습 앞에서 고개 숙였습니다.

타흐리르 광장에는 중산층 옷차림을 한 사람부터 실업자로 보이는 이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성인 남성 뿐만 아니라 조막손으로 국기를 흔드는 꼬마, 전통 복장을 하고 얼굴만 살짝 드러낸 여성, 현장 사진을 찍으려 제가 카메라를 들자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려 보이며 미소를 보내는 여성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구별 없이 새로운 이집트에 대한 열망으로 모여 있었습니다. 또한 노숙농성을 하며 광장을 지켜온 이들의 천막들이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뜨거운 현장을 보고 있던 제 머릿속에 '무바라크, 정말 며칠 못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타흐리르 광장의 이러한 분위기는 카이로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만 내려놓고 바로 그곳으로 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늙은 독재자에 대한 분노와 새로운 이집트에 대한 열망

 11일 이집크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퇴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11일 이집크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퇴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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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한국 시각으로 10일 밤늦게 카이로로 출발했습니다. 14시간여 동안(경유지였던 두바이에서 대기한 시간 제외) 거의 10000킬로미터를 날아 11일 낮 카이로에 도착했지요. 전 외신기자들이 주로 모여 있는 타흐리르 광장 주변의 호텔 대신 타흐리르 광장 남쪽의 마아디 지역(차로 20~30분 거리)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마아디에서 타흐리르 광장까지 이동하는 동안 카이로의 다른 분위기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시내 중심부에서 꽤 떨어진 마아디에도 탱크가 배치돼 있긴 했지만, 대체로 평온한 분위기였습니다. 타흐리르 광장 부근의 역에서 내려 광장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시위가 고조된 후 광장과 가장 가까운 사다트역에는 열차가 서지 않고 있습니다), 카이로를 처음 찾은 이방인인 제가 위협감을 느낄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카이로에 오기 전 교민들로부터 들었던 '광장 주변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래도 일상생활이 많이 복구됐다'는 이야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광장 이외 지역에서도 무바라크 문제가 적잖은 논란이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광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제 뒤에 있던 아저씨 세 분이 논쟁하는 듯한 모습에서도 이 점이 느껴졌지요. 세 분은 지하철이 떠나갈 정도로, 즉 거의 고함에 가깝게 목청을 높이며 몇 분 동안 아랍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그중 반복해서 여러 차례 나온 한 단어는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무바라크였습니다.

무바라크 사임 소식에 축제 분위기로 변한 카이로

 11일(현지 시각) 오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
 11일(현지 시각) 오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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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현지 시각) 오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
 11일(현지 시각) 오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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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6시에 조금 못 미쳐, 전 광장 주변 상황을 돌아보기 위해 인근 지역을 한동안 걸어 다니며 살폈습니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고 오후 7시가 가까워지면서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도로의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습니다. "띠띠 띠띠띠 띠띠띠띠 띠띠" 식으로 일정한 박자에 맞춰 경적을 울리는 차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와 함께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이집트 국기를 흔드는 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광장 주변뿐만 아니라 제 숙소가 있는 마아디 지역에서도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띠띠 띠띠띠 띠띠띠띠 띠띠" 경적 소리가 거리를 뒤덮었고, 국기를 흔들며 달리는 차도 아주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늘었습니다. 이와 함께 폭죽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집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도 거리로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한 차선을 뒤덮을 만큼 커다란 국기를 들고 차도로 뛰어들어, 춤을 추고 흥겹게 노래했습니다. 이들이 차도로 뛰어들어 지나던 차를 막아섰지만 말싸움도, 몸싸움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대형 국기를 들고 자기 차를 막아선 이들의 박자에 맞춰 차 안에서 손뼉을 치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통 복장 차림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인들이 이런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거리응원을 연상시키는 이런 모습을 연출한 건 바로 무바라크가 결국 사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녁 뉴스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승리감에 젖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축제를 벌인 것이지요.

이렇게 이집트 시민들은 이웃나라 튀니지 시민들에 이어 큰일을 해냈습니다. 이집트인들이 이룬 성취는 주변 국가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11일(현지 시각) 오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다 희생된 이들의 사진 앞에 앉아 있다.
 11일(현지 시각) 오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다 희생된 이들의 사진 앞에 앉아 있다.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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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추 꿴 이집트 시민혁명, 문제는 '무바라크 이후'

그렇지만 이집트가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전 이곳에 오기 전 이집트 시민혁명이 3가지 문제로 귀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세 가지는 ▲'무바라크 사임'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무바라크 이후'에 어떤 세력이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무바라크 이후'에 어떤 이집트를(누구를 위한 이집트를) 만들 것인가입니다.

11일 이뤄진 건 그중 첫 번째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이집트 시민들에게는 의미가 큰 승리이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단추를 잘 꿰어야 진정 새로운 이집트가 될 수 있겠지요.

11일 자정을 넘어선 지금까지도 카이로에서는 "띠띠 띠띠띠 띠띠띠띠 띠띠" 소리가 때때로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집트 시민들이 승리의 경적을 계속 울릴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입니다.

 11일(현지 시각) 오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시민들이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한 여성이 카메라 앞에서 승리의 브이(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그 너머로 광장을 둘러싼 탱크가 보인다.
 11일(현지 시각) 오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시민들이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한 여성이 카메라 앞에서 승리의 브이(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그 너머로 광장을 둘러싼 탱크가 보인다.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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