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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 정원의 눈이 거반 녹았습니다. 여전히 한겨울에 몸을 부풀리는 목련의 성급함을  측언하게 여겼던 저보다 그 목련의 봄 준비가 옳았던 것입니다.
 입춘, 정원의 눈이 거반 녹았습니다. 여전히 한겨울에 몸을 부풀리는 목련의 성급함을 측언하게 여겼던 저보다 그 목련의 봄 준비가 옳았던 것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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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산 보현사

구랍 27일, 처와 함께 보현산 보현사에 올랐습니다.

헤이리에서 지척인데다가 108고지의 낮은 산인데도 불구하고 그 산머리 바로 아랫부분에 자리 잡은 보현사의 절 마당에서 내려 보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탁 트인 풍경이 좋습니다.

멀리 일산과 금촌의 아파트촌이 석등 아래로 펼쳐지고, 월롱산의 정상이 눈높이로 다가옵니다.

눈길에 인적 끊긴 요사채의 뜰을 쓸고 계시던 인수스님이 저를 보고 반갑게 허리를 폈습니다. 몇 번 방문하던 때에 서로 눈을 맞추고 말을 섞어서 이미 구면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소박한 보현사는 신라 때 것으로 파악되는 주춧돌과 기와장이 발굴된 자리에 파주 적성면의 감악산 범륜사梵輪寺에 계시던 인수스님이 불기2544년(2000년)에 현재의 본전을 완공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한 여승이 현재의 자리에 불당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으며 한국전쟁이후 군주둔지로 변하여 한 동안 출입이 금지되었던 곳에 인근 마을 사람들이 초가를 짓고 검단선사의 조각이라고 전하는 본존을 모셨던 곳입니다.

스님이 짚신은 아니라도 네발로 다니서야

 저는 요즘 한밤중에도 항상 염불을 외고 있습니다. 옆에서 코고는 소리를 염불소리로 바꾸어 듣고 있으니까요.
 저는 요즘 한밤중에도 항상 염불을 외고 있습니다. 옆에서 코고는 소리를 염불소리로 바꾸어 듣고 있으니까요.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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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계속된 탓에 옥샘의 옥천수玉泉水도 꽁꽁 얼고, 요사채 뒤뜰 처마에는 고드름이 발처럼 드리워졌습니다.

하지만 엄동의 한가운데에서도 봄 준비를 멈추지 않은 목련새순이 석양에 탱탱한 생명의 기운을 머금고 있습니다. 정말 경외스러운 생명입니다.

본당과 산신각을 돌아 다시 절 마당으로 다시 내려오니 인수스님이 언 손 녹이고 가라시며 찻물을 끓여놓았다고 했습니다.

승방에서 차 한 잔 받으니 손뿐만 아니라 가슴속도 다시 온기로 번집니다.

땔나무로 덥힌 방입니다. 거사께서 장작을 아궁이에 넣고 계신 방이었습니다. 방 구들장 밑으로 흐르는 불길이 엉덩이에서 느껴졌습니다.

"저는 요즘 한밤중에도 항상 염불을 외고 있습니다. 연료도 아낄 겸 이 절에서 함께 지내는 보살님과 한 방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보살님의 코골이 소리가 보통이 아니에요. 잠이 들 만하면 '드르렁'소리에 정신이 버쩍 들고 다시 선잠이 들면 이 강아지가 또다시 코고는 소리를 냅니다. 사람과 개의 코고는 소리에 날밤을 새우는 날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코고는 소리를 염불소리로 바꾸어 듣고 있습니다. 보살님이 '드르렁'하면 '관세음'으로 여기고 개가 '크르릉'하면 '보살'로 듣습니다."

스님이 강정을 한 봉지 내오셨습니다.

"겨울에 먹고 설에 오가시는 분들 드리려고 쌀과 보리강정을 만들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모양이 없어요. 어디 모양 보고 먹습니까, 좀 드셔보세요."

섣달 대목에 쌀 튀밥으로 강정을 만들던 옛 추억만으로도 스님이 직접 만든 강정에 자꾸 손이 갔습니다.

"올해는 눈이 잦아서 산 아래까지 눈을 쓰느라 팔이 쉴 틈이 없었어요. 요즘은 산에 오는 것도 모두 차로 옵니다. 옛 스님들은 일부러 올을 성기게 꼬아 만든 짚신을 신었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물이 혹 발밑에 밟히더라도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그런데 이즘은 스님들조차 네발로 다니니……."

시리던 손도 녹고 마음도 포근해져서 스님 방을 나오니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보현사의 목련은 엄동에 봄기운을 어떻게 알았을까

오늘(2월 4일)이 입춘입니다. 오늘 아침은 옷을 여며도 찬 기운이 몸속으로 밀어닥치던 보현사의 저녁공기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새벽에 서재 밖을 나가도 살을 에는 듯한 한기는 걷혔습니다. 정원을 덮고 있던 눈은 어느새 반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다시 봄을 볼 수 있을까싶던 엄동에 꽃을 터트릴 준비로 여념이 없던 보현사 마당가 목련은 이 포근한 기운이 바로 산 너머에 있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여전히 한겨울에 몸을 부풀리는 목련의 성급함을  측언하게 여겼던 저보다 그 목련의 봄 준비가 옳았던 것입니다.

벌써 부터 곧 제 곁을 떠날 겨울이 아쉽습니다. 가는 것은 모두 서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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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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