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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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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하 10도, 춘천 영하 15도. 지난 1월 29일, 아침 기온이다. 으, 추워라. 이런 날은 따뜻한 집에 콕 박혀 있는 게 제일인데, 하면서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상봉역에서 경춘선 복선전철을 탔다. 9시에 출발하는 급행열차. 목적지는 강촌역. 춘천 봄내길을 걸을 예정이다.

용산에서 탄 중앙선 전철을 상봉역에서 갈아탔는데, 상봉역 안은 등산복에 배낭을 짊어진 사람 일색이었다. 사람들도 어찌나 많은지, 경춘선 복선전철의 개통으로 춘천의 물리적 거리와 더불어 심리적 거리가 한층 가까워져 경춘선 열차가 다닐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춘천행 전철을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경춘선 열차보다 전철이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낳고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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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봄내길이 열린 것은 지난 가을이라고 했다. 봄내길은 춘천시에서 조성한 도보여행 코스로 현재 4개 구간이 열려 있다. 1구간은 김유정 역 부근인데 전체 길이는 8km. 2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2구간은 강촌역을 출발지로 해서 문배마을을 돌아 구곡폭포로 해서 다시 강촌역으로 돌아오는 길인데 전체 길이는 13.7km. 도보 예상시간은 3시간 반.

3구간은 당림리 예현병원에서 시작돼 석파령 고개를 넘어 신숭겸 묘역을 지나 박사마을까지 이어지는 길로 길이는 21km. 6시간 정도 걸린다. 4코스는 박사마을에서 시작해 소양강을 따라 송암리까지 이어지는데 전체 길이는 15km.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날 내가 걸은 길은 4개의 구간 가운데 가장 길이가 긴 3구간 '석파령 너미길'. 예전에 석파령은 좁고 가파르면서 험한 고개로 유명했다고 한다. 말이 넘을 수 없어 꼭 걸어서만 넘어야했다니, 좁은 산길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도 길이 험해 사고를 많이 당해, 조선 중기에 춘천 부사가 나서서 길을 정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단다. 이날, 남편과 함께 길을 나섰다.

하긴, 산적도 한때는 선량한 백성이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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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역에서 '석파령 너미길' 출발지인 당림리 예현병원까지는 직접 가는 버스가 없어 택시를 타고 가야한다. 택시비는 1만 원. 택시미터기는 꺾지 않는다. 에이, 누가 여기서 미터기대로 가나요. 그러면 아무도 안 갈 걸요. 택시기사의 말이었다.

병원 입구에서 내리니 봄내길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등산복을 차림을 한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여자 하나에 남자가 넷이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면서 물었다. 봄내길 걸으러 오셨어요? 맞단다.

길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눈길을 보면서 아이젠을 꺼내야할 지 말아야할 지 잠시 망설였다. 오르막 눈길은 그래도 걸을만하지. 얼어붙은 것도 아니고. 그냥 걷다가 빙판이라도 만나면 그 때 아이젠을 꺼내기로 했다.

석파령은 험하기로 유명한 고개라고 하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오르막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길은 좁지 않았다. 임도는 차가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차 한 대가 넉넉히 지날 수 있는 길이 조성되어 있고, 눈길 위에는 자동차 바퀴자국이 깊게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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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 푹 파묻힌 봄내길 이정표를 보니 기분이 참으로 이상하다. 이정표에서는 봄내가 물씬 풍기는데, 길은 겨울 풍경을 착실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춘천(春川)이라는 지명을 풀면 봄내가 나온다. 춘천의 하천에서는 겨울에도 봄이 흐르나? 봄내길 이정표를 보면서 봄에 이 길에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는 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옛날 옛적에 이 길을 걸어 넘은 사람들은 겨울에 얼마나 추웠을까? 나는 겨울용 방한 등산화를 신었고, 바람막이 점퍼까지 챙겨 입었지만 옛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이 있었을 리야 없다. 기껏해야 솜을 두둑하게 넣은 옷이 전부였을 터. 그나마 눈이라도 펄펄 쏟아지면 솜옷은 푹 젖어 묵직해지지 않았을까? 신발은 또 어땠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 지나온 길을 바라보니 제법 경사가 심하다. 올라올 때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묵묵히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디뎠는데 저렇게 가파른 길이었나, 싶어진다. 길은 구불거리면서 산허리를 돌면서 이어진다. 이따금 바람소리가 귀를 울리더니 어디선가 가냘픈 새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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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오르막길을 걷는 건 에너지를 과하게 소비하는 행동임이 분명하다. 땀이 난다. 등산복 웃옷에 바람막이 점퍼밖에 안 입었는데도 땀은 소리 없이 피부를 뚫고 샘처럼 퐁퐁 솟아난다. 털모자를 벗고, 손등으로 이마를 적시는 땀을 털어낸다.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길옆을 돌아보니 저 멀리 능선이 겹쳐지고 겹쳐진 풍경이 시야를 가로 막는다. 첩첩산중이라더니 내가 서 있는 길이 바로 그렇다. 산지사방으로 길이 뚫린 지금도 깊은 산속이라는 느낌이 팍팍 드는데, 자동차가 없던 옛날에는 오죽 했을까, 싶다. 산적이 출몰하기 딱 좋은 길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긴 산적도 한때는 선량한 백성이었다지. 먹고살기가 팍팍하니 산으로 올라가 지나는 나그네들의 주머니를 털다가 그예 자리를 잡아 버린 것이라지.

석파령이 엄청나게 험한 고개라 해서 해발이 상당히 높은 줄 알았더니 고작 350미터란다. 정상까지 올라왔으니 이제 내려가야지. 길이나 인생이나 올라가기보다는 내려가기가 더 어려운 법. 자칫하다가는 곧장 미끄러져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 올라갈 때보다 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어야 한다.

그예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덜 닿았는지 눈길은 다져지지 않고 푸석거리고 있었지만 그 길에서도 용케 미끄러운 부분을 골라 밟아서 쭈욱 미끄러졌던 것이다. 에고고, 산이 울렸겠다. 앞서 걸어가던 남편이 뒤를 돌아보더니 사진기부터 들이민다.

석파령에서 내려오니 덕두원 마을이다. 마을길을 지나 수레너미 고개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이 길은 덕두원에서 방동리를 이어주는 길로 예전에 춘천유수가 수레를 타고 이 길을 넘어 부임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레너미라는 이름이 붙었는가 보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은 옛사람들의 삶이 깃들어 있었을 터. 이 길을 넘던 옛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수레너미 길 입구에서 예현병원 앞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갓 끓인 라면에서는 더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그들을 지나쳤다. 거참, 라면이 땡기네.

걷다보면 역사 속 인물을 뜻하지 않게 만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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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너미 길도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겨울엔 어딜 가나 눈이다. 특히 강원도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눈이 밟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고개를 올라갔다 내려가는 길에 쉼터를 보았다. 사각형 정자 모양의 그곳에는 탁자와 의자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라면을 끓여 먹기 딱 좋은 곳이다.

나 혼자라면 그냥 간단하게 간식을 먹으면서 내처 걸었을 것을 남편이 있으니 걸음을 멈추고 라면을 끓인다. 날씨 탓인지 물은 쉬이 끓지 않았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가스버너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발이 시리다. 오후가 되면서 기온이 뚝 떨어지기 시작한 때문이다. 발만 시리나, 손도 시리다. 날이 춥긴 춥다. 내일은 더 춥다니 기온은 계속해서 더 떨어지겠지?

라면을 끓이고 앉아 있으려니 아까 우리가 지나쳤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우리를 지나쳐 간다. 두어 번 엇갈리면서 만난 탓인지 이제는 제법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게 된다. 맛있게 드세요. 네,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지나쳐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인연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만났다가 기약 없이 물 흐르듯이 헤어지는 것, 그것이 인연이 아닐지. 이러다가 도 통하겠다, 싶어진다.

 한백록 충신정문
 한백록 충신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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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라면 국물로 추위를 흔들어 쫓은 뒤, 다시 걷는다. 방동리 마을회관을 지나고 충장공 한백록 충신정문(忠臣旌門) 앞을 지나니 너른 자동차 도로가 나타난다. 어, 어느 방향으로 가야지? 지금까지 봄내길 이정표는 잊을 만하면 나타나 길을 알려주었는데 정작 중요한 갈림길에 이정표가 없다. 난감하네.

다음은 신숭겸 장군 묘역이니 왼쪽으로 가면 되겠다, 싶어 길을 잡았다. 전신주가 길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인도건 차도건 죄다 눈으로 덮여 있다.

고려 개국공신인 신숭겸 장군 동상이 멀리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길을 걷다보면 이렇게 다양한 역사 속의 인물을 뜻하지 않게 만나기도 한다. 신숭겸 장군이 뉘기여, 하면서 기억의 갈피를 들추게 되는 것이다. 춘천출신인 신숭겸 장군은 견훤의 군대에게 포위된 왕건을 구하고 전사하였다. 그리고 역사 속의 인물이 되었다.

 신숭겸 장군 동상
 신숭겸 장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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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묘역을 둘러본 것까지는 좋았는데, 여기서 길을 잃었다. 봄내길 표시는 장군 묘역 입구에서 리본 하나만 펄럭이고 있을 뿐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가라는 표지판은 없었다. 길 위에서 길을 잃었으니, 이 일을 어쩐다.

이 길로 가보고, 저 길로 가 봐도 길 표시는 없다. 이곳에서 양지말 쉼터를 지나 박사마을 선양탑까지 가야하는데, 난생 처음 오는 길이니 알 수가 있나. 트럭을 타고 지나는 사람이 있어 양지말 쉼터를 물어보니 모른단다. 봄내길은 더더욱 모르고.

아이폰을 꺼내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길을 찾는데, 아뿔싸. 갑자기 먹통이 된다. 아무리 눌러대도 화면은 켜지지 않고 전화까지 사망했다. 봄내길 정보까지 저장되어 있는데 먹통이 되었으니, 어쩌란 말인고. 이제 그만 걸으라는 얘기인가 보다, 결론을 내린다. 나중에 보니 아이폰은 고장이 난 것도 아니고 배터리가 방전된 것도 아니었다. 이 녀석이 따뜻한 곳으로 가니 사망한 적이 없다는 듯 살아났으니 말이다.

춘천까지 왔으니 유명하다는 닭갈비는 먹고 가야

 방동리 장승들
 방동리 장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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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반 경 당림리 예현병원을 출발해 오후 4시반 경까지 걸었으니 6시간 가량 길 위에 있었다. 대략 20km 정도는 걸은 것 같다. 이 정도면 충분히 걸었다, 싶어진다.

방동리 버스정류장에서 도로를 따라 터덜거리면서 걷는데 버스가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방동리 안으로 들어갔다가 돌아나오는 버스를 세워서 올라탔다. 춘천까지 왔으니 유명하다는 닭갈비는 먹고 가야 한다는 남편의 말대로 춘천시내 명동에서 내려 닭갈비 골목을 찾아갔다.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닭갈비집이 유명한 집이라 해서 갔더니, 빈자리가 없어 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춘천 닭갈비
 춘천 닭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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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막국수
 춘천 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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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와 더불어 막국수도 한 그릇 주문했는데, 닭갈비는 괜찮았는데 막국수 맛은 그저 그랬다.

돌아올 때는 춘천역에서 급행전철을 탔다. 상봉역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5분. 춘천이 확실히 가까워지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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