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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감사원 건물.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감사원 건물.
ⓒ 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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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히고 또 묵히며 무려 1년 동안 감사원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잠들어 있던 4대강 사업 감사결과가 발표됐다. 하지만 너무 오래돼 변질된 걸까? 감사결과가 아닌 정부의 홍보자료를 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지난 27일 감사원이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 세부계획 수립 및 이행실태'라는 감사결과는 그동안 논란이 된 핵심 사안을 모두 비켜갔다. 대형 보를 건설하면 수질이 악화되고 지천에서 더 큰 홍수 위험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과 대규모 준설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환경영향평가도 부실했다는 환경단체의 항의는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공사로 인한 문화재 훼손과 업체 간 담합의혹이 제긴 된 '턴키 발주'도 언급되지 않았다.

감사 착수 당시 제시했던 "대형 국책사업에서 빚어질 수 있는 부실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감사 목적은 완전히 유실됐고, 내용도 '4대강 사업이 타당하다'는 것에 집중됐다.

감사원은 스스로 "홍수 및 가뭄 극복 등을 위한 사업의 적정성 및 공사발주·준설계획의 타당성을 중점 점검"한다고 했지만, 감사결과에서는 무엇이 '적정성'이고 '타당성'인지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퇴적토 준설 등으로 과거보다 홍수에 더 안전하게 하천이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그저 정부의 주장에 입을 맞출 뿐이다.

주요 감사결과로 내세운 것은 22조 원이나 쏟아 붓는 사업에 5000억 원 가량의 부실예산을 적발하고, 국토해양부(국토부)가 이미 시정한 영주댐 공기단축 문제를 지적한 게 전부였다.

발표 과정도 석연치 않다. 과거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사안은 사전에 예고를 하고 발표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아무 예고도 없이 출입기자단에게만 자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대상을 축소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를 생각해 보면 감사원의 행동은 분명 이전과 다르다. 이날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대법원 판결 등 굵직한 뉴스가 홍수를 이루는 틈에 서둘러 발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4대강 사업 감사가 1년이나 걸린 이유

경남 창녕군 길곡면 오호리에서 건설중인 '4대강 사업' 함안보 공사 현장.
 경남 창녕군 길곡면 오호리에서 건설중인 '4대강 사업' 함안보 공사 현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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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감사원 발표를 정말 목 빠지게 기다렸던 사람들이 있다. 바로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야당 의원들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내내 야당 의원들은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결과를 정말 애타게 기다렸다.

지난해 1월 25일 시작된 감사는 2월 23일에 끝났다. 이후 실무진의 감사결과가 6월에 마무리돼 주심위원에게 넘어갔지만, 그때부터 오랜 정체가 시작됐다. 주심을 맡은 은진수 감사위원이 감사위원회 회부 결정을 계속 미룬 것이다. 감사위원회는 감사 결과를 심의·의결을 하는 감사의 최종 단계다. 은 위원은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경선캠프 법률지원단장을 맡아 'BBK 의혹' 대응을 주도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던 은 위원은 국정감사를 한 달 앞둔 지난해 9월, 국토부에서 "일부 기술적 쟁점사항에 대해 이견을 제시(9월 3일)함에 따라" 기술용역을 의뢰하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발표를 미루는 결론을 내린다. 당시는 두 차례 결방을 딛고 방송된 MBC <PD수첩> '수심 6m의 비밀'편으로 4대강 사업의 '대운하' 의혹이 다시 불거진 때이기도 하다.

결국 감사결과 발표가 미뤄진 상태로 국정감사가 시작됐고, 의원들은 이미 감사가 끝난 사안을 전혀 다룰 수가 없었다. '4대강 국감'이라고 불릴 정도로 4대강 사업은 지난해 국감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였지만 감사원의 발표 연기는 거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야당 의원들은 은 위원을 증인으로라도 출석시켜 감사 결과에 대해 질의하려 했지만 수가 많은 여당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당시 김진애 민주당 의원은 "4대강 사업 감사와 같은 감사원의 특정감사는 감사원 규정에 의해 120일 동안 하게 돼 있고 평균적으로 140일 내에 처리됐다"며 감사원이 "4대강 공사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될 때까지 시간을 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의 말처럼 그동안 감사원의 특정감사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해임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KBS 감사'는 55일 만에, 천안함 침몰 사건 감사의 중간발표는 38일 만에 이뤄졌다.

감사원이 시간 끄는 사이, 보 공정률 70% 육박

그렇다면 감사원이 밝힌 감사결과 발표를 미룬 이유인 '기술적 쟁점사항'은 무엇일까?

하나는 낙동강 하구둑의 운영수위에 관한 것으로, 국토부는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호우가 잦아져 운영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기술용역 결과, 안전성을 고려해 낙동강 하구둑부터 함안보 사이 준설깊이를 1.01m에서 0.76m로 해야 한다고 나왔고 감사원이 이를 수용했다. 25cm를 덜 파내는 문제가 전체 감사결과 발표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안동댐과 임하댐을 연계운영 할 것인가, 아니면 연결운영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감사원은 연계운영만으로도 2700만 톤의 용수를 확보할 수 있어 연결운영이 효과가 낮은 것으로 분석했지만 기술용역에서는 연계운영시 4400만 톤, 연결운영시 6200만 톤의 추가 용수확보가 가능하다고 제시했다. 이 역시 감사원이 중점적으로 감사했다던 '홍수 및 가뭄 극복 등을 위한 사업의 적정성'과는 거리가 먼 사안이다.

감사원은 이 같은 결과발표 지연에 "감사결과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며 "대상기관의 감사결과에 대한 수용성 확보 및 실효성을 제고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대상기관은 국토부로, 피감사기관이 수용할 수 있고 실현할 수 있는 부분을 감사원이 고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와 준설은 진행되면 될수록 돌이키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핵심 사안이 아닌 이유로 감사결과 발표를 지연시킨 것은 정부에 공사를 진척시킬 시간을 벌어줬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4대강 공사의 공정률은 지난 20일 기준으로 48.8%에 달하며 이는 목표치의 104.1%에 해당한다. 핵심 사업인 대형 보 공사는 공정률이 70%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독립적 헌법기관인 감사원, 4대강 사업에 훈수까지

원주시 부론면 섬강살리기 사업 13공구에 단양쑥부쟁이 군락지가 훼손돼 있다. 법정 보호종을 알리는 푯말과 펜스가 쳐져 있지만 아무 소용없이 공사가 진행됐다.
 원주시 부론면 섬강살리기 사업 13공구에 단양쑥부쟁이 군락지가 훼손돼 있다. 법정 보호종을 알리는 푯말과 펜스가 쳐져 있지만 아무 소용없이 공사가 진행됐다.
ⓒ 4대강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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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의 감사결과에서 지적받은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은 대부분 공사비용에 관한 것이었다. 감사원은 사업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아 추가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 2532억 원과, 공사방법을 개선해 절감할 수 있는 비용 2587억 원 등 총 5119억 원의 부실 예산을 지적했다.

준설토를 제방 쌓는데 쓰지 않고 외부에 사토하면서 비용이 발생하지만, 제방 경사를 완만하게 조절하면 약 1178억 원의 사업비를 아낄 수 있다거나, 사업에서 제외된 낙동강 61개 지구의 제방공사에 추가적인 사업비로 약 550억 원이 더 들어간다는 식이다.

영주댐 공사의 안정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애초 안정성을 고려해 2012년 말까지로 충분한 기간의 공기를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이는 감사원 결과발표 전 이미 국토부가 더 연장해 놓았다.

사업 시행 절차에는 완벽한 '면죄부'를 줬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예비타당성조사, 환경영향평가, 문화재조사 등에서 부실함이 지적됐지만, 감사원은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국가재정법시행령' 제 13조 등의 규정에 따라 면제된 재해예방 사업을 제외하고 모두 이행(12건)했다"고 평가했다. 환경영향평가는 총 82건 모두를 이행했고, 문화재 조사는 총 167건 가운데 148건(18건 조사 중, 1건 착수예정)을 완료한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정부의 환경영향평가는 '졸속'이라는 비판에 휩싸여 왔다. 남한강의 환경영향평가 구간은 206km에 달하지만, 정부는 20여일 만에 전 구간을 완료했다. 그 후 단양쑥부쟁이 같은 멸종위기 법정 보호종들이 무더기로 발견되고, 역시 꾸구리 등 멸종위기종을 비롯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문화재조사 또한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낙동강에서 마애보살좌상에 구멍이 뚫리는 일이 발생하는가 하면, 금강 구간 공사 백제유적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평가와 조사를 진행한 것만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감사원은 "하천기본계획에서 제방 등의 보강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한 구간이 사업에서 제외돼, 일부 하천은 추가적인 치수안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국토부가 미처 챙기지 못한 공사까지 훈수를 두고 나섰다. 감사원은 낙동강 사상제 등 61개 지구 제방공사와 25개 지구 저수호안 설치공사가 4대강 사업에서 제외돼 추후에도 홍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대책을 주문했다.

"4대강 사업의 필요성, 타당성 인정하고 시작한 감사"

도하훈련 중인 고무보트가 이포보에 걸려 뒤집히면서 군인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의식불명에 빠진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여주군 4대강사업 남한강 구간 이포보 공사현장에서 지난해 11월 18일 오전 군인들이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사고지점인 이포보 부근에 설치된 공사용 철교에는 현장의 위험을 알리는 '이포대교 하류에 와류가 발생하여 선박 접근 및 운행을 금지합니다' '선박접근금지'가 적힌 경고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도하훈련 중인 고무보트가 이포보에 걸려 뒤집히면서 군인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의식불명에 빠진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여주군 4대강사업 남한강 구간 이포보 공사현장에서 지난해 11월 18일 오전 군인들이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사고지점인 이포보 부근에 설치된 공사용 철교에는 현장의 위험을 알리는 '이포대교 하류에 와류가 발생하여 선박 접근 및 운행을 금지합니다' '선박접근금지'가 적힌 경고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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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감사결과에 야당과 시민사회, 환경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미경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감사결과라기보다 국토해양부 해명자료라고 봐야 한다"며 "자신들 입으로 4대강 사업의 적정성과 타당성을 감사했다고 해놓고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료에 '연평균 수해피해액은 2.7조 원'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는 전체 수해피해액이지 4대강 자료가 아니다, 4대강 지역의 피해액은 1.4조 원"이라며 "1년을 썩히다 나온 자료에 틀린 부분이 있다는 것은 감사 자체가 얼마나 졸속으로 진행됐나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도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문제를 지적하고 시정이나 처분요구를 하던 기존 감사의 틀을 벗어던지고 감사기간 중 '협의'를 통해 지적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중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며 "차라리 이런 '4대강 감사'는 영원히 발표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위안을 주었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인 '4대강사업저지범국민대책위'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감사는 4대강 사업의 필요성, 타당성은 이미 인정한 이후에 효율적 계획과 집행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했다"며 "4대강 사업의 '면죄부'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라고 평가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성명을 통해 "4대강 사업 감사 결과는 감사원의 MB 충성 선언"이라며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의 주장을 감사원의 입을 통해 되풀이 한 것뿐"이라며 "4대강 사업 '맞춤형 감사'이자 '마사지 감사'이며 '면죄부 감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4대강 사업에 충실하게 복무한 공직자, 전문가 등의 리스트를 조만간 작성해 역사의 무서운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태그:#4대강 감사, #4대강사업, #감사원, #4대강 예산,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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