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정치권에 복지국가 논쟁이 한창이다. 무상급식 파문의 후폭풍이자, 향후 총선과 대선을 향한 정책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민주당이 무상복지 시리즈를 들고 나왔고 한나라당은 '세금폭탄론'으로 맞불을 놨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도 '한국형 복지' 행보를 시작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맞춤형 복지'를 주장하며 논쟁에 가세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정치권과 시민사회 진영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복지 이슈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들어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말]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역사를 보면 복지는 특정 이념에서 나온 게 아니다. 보수정권이 체제방어를 위해 복지 정책을 내놓은 게 시작이었다."

한국에서 복지문제를 논의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김종인(71) 전 의원이다. 그는 1977년 박정희 정부시절 노동자 대상 의료보험 제도 도입의 산파였고, 도시지역 의료보험 실시로 전국민 의료보험이 된 1989년에 보건사회부장관을 맡아 의료보험이 뿌리내는 데도 기여했다. 1960년대말 70년대초에 독일(뮌스터대)에서 재정학과 분배론을 공부한 것이 의료보험 도입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 배경이었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자신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김 전 의원은 전 세계적으로 본격적인 복지제도의 효시는 1881년 독일(프러시아) 비스마르크의 의료보험제도였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당시 의료보험 도입배경을 "비스마르크는 극도로 보수적인 사람이었지만,  맑시즘 선풍이 불면서 사회주의 정당의 정계 진출 조짐이 보이자 근로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국가의 상징어를 낳은 영국의 '베버리지 플랜'에 대해서도 그는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인 처칠 수상이 2차 세계대전 중(1942년)에 전쟁후 사회안정을 위해 만들고, 전후에 집권한 노동당이 이 계획을 실행했다"고 덧붙였다. 복지는 자비 개념이 아니라 사회의 내적 안보를 위해 보수파가 사회정책차원에서 도입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박정희 정부가 의료보험이나 연금제도(1973년 법제정, 시행은 1988년)를 만든 것에 대해 "성장하는 근로자들의 불만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역사적으로 복지는 보수의 어젠다였다'는 인식은 현재의 복지확대 흐름을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는 "복지 과잉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복지 때문에 망한 나라는 없다"며 "강자만 살아남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재분배는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역할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가 불안해진다"고 강조했다.

"재벌 손자손녀는 오히려 공짜밥에 화 낼 것"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세금은 부자들에게도 모두 자녀공제를 하고 있는데 이건 왜 선별해서 하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공짜 치즈는 쥐덫 위에만 있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해서도 "양극화와 저출산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있고 국민들의 요구가 있는데 이걸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상식 이하"이라며 "젊은 정치인의 수준이 왜 그런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무상' 표현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든 사회보험료를 내든 혜택 받는 사람이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무상복지는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정치적 용어"라고 지적했다. 표현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는 강조다.

"부유세 너무 나가... 세 신설보다 누진세율 높이는 게 낫다"

복지논쟁을 뒤이은 증세논쟁에 대해서는 "건국 이후 지금까지 정부재정 운영 스타일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며 "제대로 된 복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대 변화에 맞게 정부 재정기능을 확 바꿔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19.3%(2009년 기준)이고 독일은 22.9%"라며 "근소한 차이가 있는데 독일은 그 조세부담률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공짜로 가르치는데, 우리는 그게 안 된다는 것은 재정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동영 민주당 의원의 부유세 신설주장에 대해서는 "너무 나갔는데, 정치인이 말을 뱉은 이상 후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고 비판하면서 "10조 원 정도가 목적이라면 새로운 세금을 신설하기보다 누진세율을 더 높이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인세와 소득세 감세를 없애고 비과세 감면을 줄이면 상당한 재원 충당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문답전문.

- '복지는 보수의 어젠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의미인가.
"복지의 효시는 1881년 독일(프러시아)의 비스마르크가 시작한 의료보험이다. 비스마르크는 극도로 보수적인 사람이었지만, 맑시즘(Marxism) 선풍이 불고 사회주의 정당의 정계 진출 조짐이 보이자 근로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변화하는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체제방어 차원에서 의료보험과 연금제도 등을 도입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처칠이 전쟁 후 사회 안정을 위한 사회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만든 게 '베버리지 플랜'이라는 사회보장 정책이었다. 그런데 처칠이 종전 후 선거에서 노동당에 패배해 실행 주체가 노동당이 됐을 뿐이다. 처칠이 선거에서 패하고 난 후 '영국 국민은 위대하다'고 했다. 자신이 베버리지 플랜을 시행하려고 했다면 보수당으로서의 한계가 있었을 텐데 노동당을 뽑아서 제대로 관철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뒤 처칠이 재집권해서 이를 이어갔다.

역사를 보면 복지라는 게 특정 이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보수 정권이 체제 안정을 위해 복지 정책을 내놓은 게 시작이었다. '소셜 시큐리티'라는 말이 처칠과 루즈벨트가 대서양의 선상에서 발표한 헌장에 등장한다. '시큐리티'가 안보라는 말이다. 앞으로 공산주의와 싸워야 하는데 평상시의 적은 국민 개인이 겪을 질병, 실업, 노령화다, 그래서 국민들이 이 문제로 생계 위협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게 기본 인식이었다. 결국 사회의 내적 안보를 위해 복지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지 자비 개념에서 시작한 게 아니다."

- 우리도 박정희 정권 때 의료보험 제도가 도입됐는데.
"당시 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진행되던 때였다. 당시 경제 개발로 근로자수가 400만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창 성장하는 이들의 불만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이 병에 걸리면 소득이 없어지고 한 가정이 생존의 위협에 처하게 되니 먼저 '근로자 의료보험'을 도입하자고 한 것이다. 그 때도 경제 관료들은 경제 성장에 반대된다고 모두 반대했다. 그때 못했으면 미국처럼 지금까지도 건강보험 제도가 도입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본질적으로 의료보험이나 연금 제도 등이 보수 정권 때 만들었다. 사실 진보정권들은 이미 만들어 놓은 틀을 변경하는 것 외에 새롭게 한 게 별로 없다."

"복지가 포퓰리즘? 한나라당 정치적 감각 없다"

-한나라당은 복지확대 주장에 대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고 비판한다.
"정치적으로 감각이 없다. 흔히 복지 과잉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실제 복지 때문에 망한 나라는 없다. 강자만 살아남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재분배는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역할이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가 불안정해진다. 포퓰리즘도 민주적 선거를 치르는 나라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것을 완전히 부정하면 어떻게 선거를 치를 수 있나. 선거는 돈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한 표씩 주어진다. 그런데 돈 없는 사람들 숫자가 항상 많다. 정치세력은 그들에게 혜택이 가는 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사회정책, 재분배 정책이다. 각 정당들은 유치한 논쟁 말고 각자 내놓을 상품을 만드는 데 신경 써야 한다. 유권자들이 보고 누가 나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는지 판단할 것이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은 쥐덫 위에 놓인 공짜 치즈'라고 비판했는데.
"젊은 정치인의 수준이 왜 그 정도 밖에 안 되는지 안타깝다. 선진국 중에서 복지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독일만 봐도 안다. 금융위기 이후 성장이 가장 잘되고 있다. 실업률 증가는 7.4%로 가장 낮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 핑계를 대는데 그리스는 유로 단일통화권에 들어가기 위해 통계를 조작하는 등 속임수를 쓴 게 나중에 문제를 일으킨 것이고, 스페인, 아일랜드는 부동산 거품 때문에 위기를 겪은 것이다. 정치라는 게 국민이 뭘 필요로 하는지 마음을 잘 읽어야 한다. 양극화와 저출산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있고 국민들의 요구가 있는데 이걸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상식 이하다."

- 복지 확대가 시대적 과제가 된 이유는 뭐라고 보나.
"우리 사회가 경험한 몇 십 년 동안 고도의 압축성장 속에는 엄청난 모순이 들어 있다. 그런데 한 번도 시정해 본 적이 없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두 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하는 등 민주주의도 발전하고 있지만 사회가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양극화가 극도로 심화되고 출산율이 낮아서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추락하고 있다. 정치인이라면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경제적인 '파이'가 크다고 해서 일류국가가 되는 게 아니다.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이 역동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두 개를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1968년, 독일 유학 시절에 유럽에서 학생 소요를 직접 체험했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대학에서 3000명 정도가 시위를 시작한 후 열흘 만에 시내가 완전히 마비됐다. 그동안 불만이 쌓여 있었던 노동조합과 소상공인이 합세한 탓이었다. 하지만 독일은 달랐다. 엄청난 인원이 참여한 가운데 학생 시위가 지속돼도 정치사회적 안정이 하나도 깨지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1949년 서독 연방공화국이 시작된 후 사회 안정과 경제성장의 역동적 균형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한 번은 술집에 갔더니 근로자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학생들에게 '우리가 낸 세금으로 공짜로 공부하면서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고 야단치더라. 그게 차이다."

"파이 크다고 일류국가 아냐...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이 균형 이뤄야"

- 우리가 어떤 복지국가 모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양극화와 저출산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양극화 심해지면 남북 문제 해결도 힘들어진다. 남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당장 국민들이 우리도 제대로 못 먹이면서 뭐하느냐는 불만을 쏟아낼 것이다.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통일을 생각하면 한국 사회가 조화를 이뤄서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북한 동포들도 이 사회에 대한 그리움을 가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안정과 경제성장이 역동적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독일은 1949년부터 시장 경제를 철저하게 했다. 어쩌면 그 때부터 신자유주의였다. 하지만 정부의 힘은 강했다. 신자유주의를 하더라도 정부의 힘은 강해야 한다. 정부가 경제 권력이나 이익집단 위에 있어야 시장을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조정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일본 자민당 정권 50년 동안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 전경련이 한통속이 돼 정부의 힘이란 게 거의 없었다. 우리도 일본처럼 되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 우리 현실에서 가장 시급한 복지 정책은 뭐라고 생각하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수준의 나라다. 경제 잠재성장률에 치명타다. 인구 3000만 명 가지고 한국 경제가 돌아갈 수 있겠나. 연금에도 큰 문제가 생긴다. 일하는 세대가 노령 세대를 먹여 살리는 구조가 무리 없이 돌아가려면 일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 인구구조가 안정적인 삼각형이 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항아리 모양이고 앞으로 역삼각형이 될 우려가 있다. 때문에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육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특히 보육은 사회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으로 다뤄야 한다. 보육 예산은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늘리기 위한 투자로 봐야지 비용으로 봐서는 안 된다."

- 독일, 스웨덴의 모델을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화 시킬 전략이 있다면.
"독일식, 스웨덴식 다 정답이 아니다. 그대로 모방할 수는 없다. 국내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아 정책 조합을 만들어 내는 게 정치인의 임무다. 또 신자유주의 안에서도 필요한 정책이라면 취하고 진보 쪽에서도 필요한 것을 찾아서 조합해야 한다."

- 민주당 무상 복지 시리즈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실제로 무상복지는 있을 수 없다. '무상'은 정치적 용어다. 세금을 내든 사회보험료를 내든 혜택 받는 사람이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다. 무상의료만 봐도 결국 건강보험 재정을 늘리는 문제로 직결된다. 보험료를 올리든지 국가가 세금을 더 투입해야 한다.

지금 건강보험 재정도 김대중 정권 때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을 합치면서 엉망이 됐다. 지역의료보험 재정의 문제를 3조 원 정도의 흑자를 내던 직장의료보험을 통해 해결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민주당은 무상의료를 이야기하기 전에 망가진 건강보험 재정을 어떻게 원활하게 확보할 것인지 그 방법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 이명박 대통령은 재벌 손자까지 공짜로 밥을 먹일 필요가 있느냐며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고 있다.
"뚱딴지 같은 소리다.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부유층 자녀들은 보육원에 가지 않는다. 심지어 공립학교에도 안 간다. 공짜로 밥을 줄래야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현실을 왜곡해 논리를 만들어 내면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다. 한나라당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했다면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세금 공제의 경우 부자들에게도 모두 자녀 공제를 해주고 있다. 이건 왜 선별해서 하지 않나. 그리고 건강보험과 연금도 이미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의무교육도 헌법상 보장이 된 것이다. 의무교육을 하면 급식 문제도 국가가 책임지고 제대로 해줘야지 부자와 빈자를 나눠 차별하면 안 된다."

"조세부담률 기껏 늘려봐야 2%p 정도일 것"

- 복지를 확대하려면 증세가 필요하다고 보나.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결정적 조치를 취해야 할 부분이 사실 조세제도다. 근데 그게 쉽지 않은 문제다. 1977년 부가세 도입 이후 공화당이 혼이 난 후 정치권에서는 아무 것도 안하려는 상황이다. 부가가치세를 도입할 때 세율을 13%로 하려고 했지만 반대 때문에 결국 10%로 했는데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수준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을 기껏 늘려봐야 2%p 정도가 최대치일 것이다. 조세부담률이 25%가 넘어가면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때문에 다양한 방식을 고려해 봐야 한다. 재원조달을 반드시 세금으로만 하라는 법은 없다. 사회보험 방식도 있다. 세금은 내는 입장에서는 어디에 쓰일지 몰라 저항이 많지만 사회보험료는 징수 목적도 분명하고 혜택으로 돌아오니까 저항이 적은 점도 고려해볼 만하다."

- 민주당에서는 복지 재원조달 방안으로 재정지출 구조 개혁을 언급하고 있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 정부재정 운영 스타일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 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19.3%(2009년 기준)이고 독일은 22.9%다. 차이가 크지 않은데 독일은 그 조세부담률을 가지고도 아이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공짜로 가르친다. 우리는 그게 안 되고 있는데 재정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제대로 된 복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대 변화에 맞게 정부 재정기능을 확 바꿔야 한다."

- 증세 외에 복지에 들어갈 재원을 마련할 대안이 있나.
"시급한 보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가 보육시설을 늘리려고만 해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 것이다. 앞으로 국민연금 적립금이 2000조까지 쌓일 텐데 주로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앞으로 연금을 납부할 사람을 키우는 데 투자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보육 등 복지에 직접 투자가 법적으로 안 된다면 정부가 연금기금에서 차입해 쓰는 방식도 있다."

-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주장하고 있는 부유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너무 나갔다. 정치인이 말을 뱉은 이상 후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감세를 철회하는 게 먼저다. 이명박 정권도 그렇지만 감세 기조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계속돼 왔다. 소득 분배를 이렇게 더 악화시키는 좌파 정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부유세 부과한다고 돈이 얼마나 들어오겠나. 10조 원을 걷겠다고 하는데, 그 정도면 새로운 세금을 신설하기보다 차라리 누진세율을 더 높이는 게 낫다. 법인세와 소득세 감세를 없애고 비과세 감면 줄이면 상당한 재원 충당이 가능하다."

"박근혜 전 대표 상당히 유연해, 다행스럽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내놓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박 전 대표와는 몇 번 만났는데, 사고가 상당히 유연하다. 2007년 대선 준비할 때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 공약을 냈던 것은 주변에 미국에서 시장만 공부하고 온 학자들의 조언에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생각이 바뀐 것 같다. 승승장구해 오던 미국 자본주의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무분별한 규제 철폐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또 양극화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이 생기니까 정책적 대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지도자가 갖춰야할 자질 중 하나가 시대변화에 제 때 적응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다행스럽다."

- 박 전 대표의 복지 정책에 대해서도 재원 마련 계획이 없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누구는 재원계획 내놨나? 박 전 대표가 아직 구체적인 정책을 발표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앞으로 정책을 발표하면서 함께 나오지 않겠나.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 본인이 박 전 대표의 '가정교사'라는 평에 대해 동의하나.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웃음) 시대감각이 있고 제대로 된 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에서는 도울 것이다.

- 마지막으로 복지 논쟁을 벌이고 있는 정치권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해 달라.
"대한민국은 노동조합의 힘이 약한 상태라 분배구조가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될 수가 없는 나라다. 분배 구조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 1988년만 해도 우리나라 가계 저축률이 20% 정도로 가장 높았는데 지금은 3% 정도 밖에 안 된다. 가계 빚만 늘어나고 있는 이런 현실을 바로 잡지 않으면 경제가 잘 될 수 없다. 국민들도 어느 한계까지는 참지만 선을 넘으면 터지게 돼 있다. 지난 해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등 복지로 야당이 큰 관심을 받았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정치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지금은 말싸움 할 때가 아니라 각 당이 합리적 안을 제대로 만들 때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