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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 천리안? PC통신이란 새로운 세상에 어떤 길로 들어설까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지하철 선반 위에 붙어있는 '카피' 하나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 너, 우리가 함께 만드는 새로운 세상'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나우누리와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그러니 이왕이면 다홍치마였다. 순우리말로 나우누리에 접속하고 싶었다. 며칠 동안 우리말 책을 뒤지다가 마침내 눈에 콱 박힌 말이 바로 '방짜'였다. 그때부터 나의 아이디(ID)가 된 방짜, 나우누리를 각별하게 떠올리는 것도 그래서다.

따지고 보면, 기자라는 길에 들어서게 한 것도 나우누리였다. 직장 생활로는 풀 수 없는 분노를, 주장을, 나우누리 '게시판'에 토해냈으니까. 그러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들고야 말았으니까. 이게 내가 갈 길 아닐까? 그리고 나는 '슬로 스타터'가 됐다.

실질적인 대표이사에서 '똥고집 차장'으로 좌천

 꾸준함을 이길 그 어떤 재주도 없다
 꾸준함을 이길 그 어떤 재주도 없다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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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용식 나우콤 대표도 '슬로 스타터'인 줄은 몰랐다. 1980년대 운동권 핵심으로 활동하다가 나이 서른둘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고만 해서가 아니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책 <꾸준함을 이길 그 어떤 재주도 없다>를 읽고 보니 정말 그랬다. 그야말로 철저한 '슬로 스타터로서의 삶'을 산 장본인이었다.

그는 나우콤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한국출판정보통신(BNK)의 실질적인 대표이사였다고 했다. 그러다 하이텔 핵심멤버들을 주축으로 나우콤이 만들어지면서 직급이 부장으로 떨어졌단다. 그조차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차장으로 다시 '강등'. 사실상 회사에서 나가라는 신호였던 셈이다.

'문제'는 당사자인 문 대표가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 경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는 식으로 "곧이곧대로 결정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런 탓에 솔직히 스트레스는 많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나는 책에 이렇게 메모할 수밖에 없었다. '졌다(^^;)'….

문 대표는 스스로를 무능한데다 '골치덩어리'였다고 표현했다. 당시 "(PC통신) 업계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사업의 기본 메커니즘 자체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했다고 하니, "똥고집, 돌쇠, 무대뽀, 트러블 메이커"로 찍힐 수밖에.

인간 '문용식'의 생존방식 그리고 '사장님'으로의 성장 동력

 뜨거운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이른바 '한밤의 트위터 대전'
 뜨거운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이른바 '한밤의 트위터 대전'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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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의 생존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했다. 묻고 또 물었다고 한다. 문 대표는 "자신이 선택한 분야가 변화가 많고 그래서 배울 점이 많은 업종이었기에,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알기 위해 동료나 후배 가리지 않고 개인 교습을 청했다"고 회고한다.

허나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에서 멈췄다면, 그가 사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책에서 읽히는 성장 동력은 2가지다. 하나는 "무슨 일이든 한 분야에서 10년은 해야 전문가가 된다"는 그의 믿음, 또 하나는 "나우콤이 문제가 많은 회사라고 여겼다"는 대목에서 엿보이는 조직에 대한 그의 '진심' 또는 책임감이었다.

이런 문 대표이니 '한직은 없었다'. 전화로 민원을 처리하는, 그의 표현처럼 "다른 부서에서 저지른 일의 뒤처리를 하는 부서"였던 고객지원실 실장으로 일하면서 오히려 역전이 시작된다. 다른 이동통신회사를 찾아가 또 묻고 물어 노하우를 배워왔고, 이를 벤치마킹해 전화시스템, 상담원 근무환경, 인사시스템, 인력 구성 등을 개선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니 회사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눈엣가시'가 아니라 나우콤에 꼭 필요한 간부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나는 부서장 시절을 통틀어 고객지원실에서 일한 1년 6개월이 가장 보람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 부류의 직원들은 정말 싫다"

 2008년 저작권법 위반으로 구속됐던 당시 문용식 대표가 회사 임직원과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 문 대표는 책에서 일상적으로 직원 부모님 생신 때마다 '축하 카드'를 직접 써 보낸다고 소개했다
 2008년 저작권법 위반으로 구속됐던 당시 문용식 대표가 회사 임직원과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 문 대표는 책에서 일상적으로 직원 부모님 생신 때마다 '축하 카드'를 직접 써 보낸다고 소개했다
ⓒ 다음 카페 '철창에 갇힌 촛불 문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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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승진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1999년 부장을 단 지 1년 만에 본부장으로, 다시 1년 후 이사로, 또 1년 후에 대표이사로 취임했다고 한다. 양주잔에, 때로는 재떨이가 날아오는 수모를 참아 넘기며 일군 성과였다. "회사를 살리는 길이란 생각에 재떨이를 맞더라도 할 일은 해야 했다", '진심'이 가는대로 움직이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렇게 대표이사로 취임해 아프리카TV 성공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읽으면서 증폭되는 궁금증은 단 하나였다. 이런 문 대표의 인재상은 무엇일까. '슬로 스타터'가 어떤 인물을 선호할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가 싫어하는 직원은 어떤 유형일지 궁금했다.

우선 문 대표는 '슬로건주의자'라고 지칭했다. "항상 옳은 이야기만 하지만, 실행 엔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말만 번지르르할 뿐 디테일을 챙길 줄 모르는" 부류의 직원은 "회사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문 대표가 "정말 싫다"는 또 한 부류는 시니컬리스트.

문 대표는 "일을 시키면 하기 힘든 이유만 열 가지 이상 댄다,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는 귀신이나 문제를 찾아 개선하려는 긍정적인 노력은 결코 기울이지 않는다"며 "회사가 작은 위기라도 맞으면 (이런 부류들이) 사내에 패배의식을 급속도로 전염시킨다"고 설명한다.

문 대표의 DNA가 나우콤의 DNA?

 문용식 나우콤 대표
 문용식 나우콤 대표
ⓒ 다음 카페 '철창에 갇힌 촛불 문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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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많은 사람. 문 대표가 싫어하는 인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러하다. 그의 표현처럼 "승진이란 관점에서만 본다면 거꾸로 가는 인생"을 살고 있을 때 '시니컬'하기만 했다면? 또는 무책임하게 '슬로건'만 내걸었다면? 아마 그로서는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나우콤이 걸어온 길 또한 그러하다. 경영적으로는 "대주주였던 모기업이 연속해서 세 번씩 부도나거나 법정관리당하면서 사라졌어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회사가 나우콤이다. "PC통신 시절부터 인터넷 시대와 모바일 시대까지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통신회사"가 또 나우콤이다.

문 대표는 "한 가지는 확언할 수 있다, 나우콤은 위기상황에서 가장 강한 기업"이라면서 "나우콤 안에는 생존과 혁신의 DNA가 흐르고 있다"고 단언한다. 확실히 한국 기업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극히 드문 경우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누고 싶은 말이 참 많았던 모양이다. 문 대표는 책에서 4부에 걸쳐 모두 47개나 되는 이야기를 쏟아낸다. 프롤로그를 통해 다섯 차례나 밝히는 저작 목적 또한 각각 다르니 그럴 만도 하다. 다만 그렇다 보니 한 번에 읽기에는 다소 부담이 된다.

언젠가부터 '슬로우' 스텝만 밟고 있는 나에게

그래도 사장님들에게 읽히고 싶은 글들이 있다. 사장님, 문 대표는 "CEO의 'C'를 커뮤니케이션의 'C'라고 생각한대요", "시간을 바친 직원이 돈을 낸 주주보다 훨씬 소중하다"고도 하더군요. 특히 "직원들 근무시간 통제는 관리자의 자기만족일 가능성이 많다, 실제 생산성과는 관련 없다"에 '흐흐- 공감 만빵'입니다.

물론 문 대표와 '한 밤의 트위터 대전'을 펼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귀 기울일 가능성은 별로 없을 듯하다. 하지만 타율보다는 자율의 효율성을 믿고 싶은 CEO 또는 중간관리자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한 마디.

"나중에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보니까 비슷한 얘기가 나왔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10000시간 이상 투자했다'고 말했다. 하루 3시간씩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내 생각을 뒷받침하는 글이었다."

그 생각은 무엇인가.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된다고 보고 하니 결국 되었다, 이게 세상살이의 단순한 진리"란 말로 요약된다. '슬로 스타터'임을 핑계 삼아 언젠가부터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 나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그 어떤 재주'도 믿지 말라, 무엇보다 꾸준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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