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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총기 난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
 애리조나 총기 난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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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애리조나의 투싼에서 제러드 리 러프너라는 사람이 총을 난사하여 여섯 명이 죽고 여러 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러프너가 이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언론은 대개 그의 좋지 못한 정신건강을 거론합니다. 그가 정신적으로 심하게 불안정했고, 친구가 거의 없었으며, "오랫동안 이상한 이야기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한 행동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기사는 러프너가 평소에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분석하기까지 했습니다.

2007년에 클리블랜드의 한 고등학교에서 에이사 쿤이란 학생이 교사와 학생 4명에게 총을 쏘아 중경상을 입힌 후 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일어났는데 저는 거기에 대한 기사를 쓴 일이 있습니다. (관련 기사 : 미국 교사는 무기를 들고 학교 가야 한다?)

당시에도 에이사 쿤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어떤 기사는 에이사 쿤을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했고 다른 것은 "사회"의 문제로 돌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총이 문제라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부모의 책임이라고 했습니다. 학교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었고 요즘 애들이 큰일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에이사 쿤 사건 때 나온 말, 의견, 이론, 분석은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 그 외 셀 수 없이 많은 비슷한 총격사건 때마다 똑같이 재탕이 되었습니다.

이제 또 총격 사건이 벌어졌고 또다시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언론과 시민들은 아직도 본질적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개인적인 비극과 영웅담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감동적인" 연설이 보도의 중심이 되고 있는데 이 역시 "영웅담" 스타일의 한 변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에서 허구한 날 일어나는 총격 사건에 대한 거시적이고 주의 깊은 분석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개인의 정신병력으로 미국의 총격 사건들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총으로 인한 살인율이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미국에서 월등히 높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 사이에 정신병이 월등히 많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참고로 미국의 의원들 중에서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1831년 이후 지금까지 14명에 이릅니다.

미국 의료체제의 문제와 총기 난사 사건 

한꺼번에 6명이나 살인을 한 사람이 정상적일 수가 없음에도 러프너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계속해서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것은 좀 우스운 데가 있습니다. 아마 그보다 신경을 써야 할 점은 러프너처럼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도 최근 애리조나주의 예산 삭감으로 인해 더 이상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애리조나는 주택거품의 붕괴와 경제침체로 인해 주정부의 수입이 크게 줄었고 재정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2010년 대규모 예산 삭감을 단행했습니다. 정신건강 예산은 무려 37퍼센트에 달하는 3600만 달러를 삭감당해 행동치료 같은 서비스가 대폭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민주당 의원 가브리엘 기퍼즈와 19명이 총상을 입은 애리조나의 피마 카운티에서는 지방정부 지원을 받아온 정신질환 환자들 중 45%가 지원대상에서 밀려났고, 행동장애 환자들에 대한 보조금이 거의 전부 삭감되었으며 약값에 대한 보험 지원도 많이 줄었습니다.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들이 카운슬링과 정신과 치료, 그룹 치료 등의 지속적인 지원과 관리를 받지 못하면 난폭한 행동을 하기 쉬운 위험한 단계에 이를 수도 있게 됩니다.

애리조나의 공공의료 예산 삭감은 이윤 추구를 허용하는 미국 의료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한 단면에 불과합니다. 갈수록 치솟는 비용과 이익을 증대하려는 속성 때문에 기본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미국인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실패한 미국 모델을 따라 슬금슬금 의료 민영화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는 것은 걱정스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민영화 모델 도입은 건강관리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러프너는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면서 다니던 대학에서 정학을 당했고 정신감정을 받지 않으면 복학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러프너는 정신감정을 받으러 가지 않았고 3개월 후에는 총격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애리조나의 반이민법에 대한 반대 시위 모습. 애리조나는 2010년 4월 불법이민자를 기소하고 강제로 출국시키는, 미국에서 가장 가혹한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애리조나의 반이민법에 대한 반대 시위 모습. 애리조나는 2010년 4월 불법이민자를 기소하고 강제로 출국시키는, 미국에서 가장 가혹한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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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이 문제이면 총을 더 사는 것이 해법이라는 미국인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점점 더 빨리 달려야만 제자리에 머물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애리조나주의 총격 사건 대응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합니다.

최근 소집된 애리조나 주의회에서는 총기 관련 법안 두 가지가 상정되었습니다. 그 중 한 법안(H2001)은 대학교수들이 총을 (드러나지 않게) 소지하고 학교에 오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입니다. 또 다른 법안(H2004)은 총기 휴대 허가서를 가진 사람이 교육기관 내에 무기를 반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입니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황당한 이야기이겠지만 애리조나는 2009년에 이미 술집이나 술을 파는 식당에 무기를 눈에 띄지 않게 소지하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가 있습니다.

희한한 일은 미국인들 중 많은 이들이 총이 많이 돌아다닐수록 안전하다는 궤변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연방경찰의 보고에 따르면 기퍼즈 등의 피격 사건이 벌어진 이틀 후인 1월 10일(현지 시각), 애리조나주의 하루 권총 판매량은 60퍼센트나 증가했고, 오하이오주에서는 65퍼센트, 일리노이주에서는 38퍼센트, 뉴욕주에서는 33퍼센트 증가했습니다.

러프너가 사용한 총은 투싼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한 글락 반자동 피스톨이었습니다. 애리조나 의회가 반자동 피스톨을 합법화한 것은 물론 "사람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참고로 글락 반자동 피스톨은 1994년 브루클린 브리지의 총격 사건, 2007년 버지니아 공대의 총격 사건 등에 사용된 무기입니다.

애리조나주는 미국에서도 총기 관련 규제가 가장 느슨한 주 중의 하나이지만 다른 주에서도 총격 사건은 많이 일어나니 규제의 정도로만 총격 사건의 발생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미시건주의 한 무장집단의 모습.
 미시건주의 한 무장집단의 모습.
ⓒ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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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어오르는 증오, 쇠퇴하는 제국

애리조나에서 벌어진 살육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한 가지 맥락을 고려해야 합니다. 폭력을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정치적인 연설이 점점 확대되어 가는 분위기와, 총을 숭배하며 총 소지권을 보호·확대하는 데 주력하는 강력한 조직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국총기협회(NRA) 등의 단체들은 하원의원들에게 매년 1000만 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내며, 여론을 특정한 형태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전국총기협회장인 웨인 라피에어는 2009년 3월 추종자들에게 "총을 가진 자가 규칙을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점차 실제로 폭력을 부추기는 언설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오바마의 의료개혁안이 통과된 2010년 3월 무장단체 지도자인 마이크 밴더버그는 블로그에다 "자유의 아들들이여... 저들의 유리창을 깨버려라. 지금 당장!"이라고 선동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밖에 "총으로 투표하자(Trigger the vote)",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지금은 피를 줄 때," "투표로 못 이루는 것은 총알로 하자"는 등의 반민주적인 구호들도 덩달아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폭력과 선동의 언어는, 실은 제국으로서 미국이 서서히 몰락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작은 증상에 불과합니다.

1959년의 가정용 냉동고 광고. 꽉꽉 채워진 냉동고가 풍요로움을 말해줍니다.
 1959년의 가정용 냉동고 광고. 꽉꽉 채워진 냉동고가 풍요로움을 말해줍니다.
ⓒ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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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의 젊은 세대는 대부분 자신의 부모나 조부모만큼 잘 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약 30년 동안 미국인들은 인류 역사에 유례가 없는 부유하고 풍요롭고 안전하며 계속 발전하는 세상을 만들고 이끌어나가며 자손대대로 물려줄 것이라고 진정으로 믿었습니다. 미래는 크나큰 약속으로 가득했고 대다수 미국인들은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미국의 앞날이 그리 밝지 못하다는 냉혹한 자각이 희망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팰로우즈는 미국인들은 모든 게 잘되고 있을 때는 인심 좋고 너그러운 사람들일지 몰라도,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화를 잘 내고 쩨쩨하고 인색한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살림살이가 빡빡해질수록 무례하게 행동하고 남을 원망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의 전반적인 험악한 기분은 정치인들이나 일반인들 사이에서 예의범절이 후퇴하고 있는 것과 분노, 공포, 신랄함이 난무하는 언론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폭스뉴스>로 대표되는 저질 언론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공격하며, 아무런 근거 없는 주장과 왜곡된 보도를 일삼아 대중의 분노와 두려움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폭스뉴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진짜 미국인이 아니라는 둥(미국 출생증명서가 없다는 주장이지요), 근본주의 이슬람교도·공산주의자·나치주의자라는 둥, 의료개혁은 재앙이라는 둥 날마다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조중동이 만들 종합편성 채널은 <폭스뉴스>의 한국판이 될 것이 뻔합니다.)

<폭스뉴스> 등에서 보는 미국인들의 언행이 실망스럽다고 느끼신다면 미 제국체제의 약소 멤버인 한국은 어떻게 대할지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핵연료로 달리는 자동차 '뉴클리언'의 개념도. 1950년대 미국인들의 지나친 낙관을 잘 보여주는 예. 미국인들 사이엔 기술(technology)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핵연료로 달리는 자동차 '뉴클리언'의 개념도. 1950년대 미국인들의 지나친 낙관을 잘 보여주는 예. 미국인들 사이엔 기술(technology)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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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융자금을 갚지 못해 차압당한 집. 집을 뺏기는 것보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실을 더 적절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은행융자금을 갚지 못해 차압당한 집. 집을 뺏기는 것보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실을 더 적절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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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애리조나 총격 사건으로 되돌아갑니다. 정신병력 하나만으로 이 총격 사건과 앞으로도 분명 계속해서 일어날 총격 사건들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의료체제의 문제, 총기에 대한 집착, 미국 정치에서 서서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증오의 문화, 제국의 쇠퇴 징후들 등 더 체계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애리조나의 총격 사건이 마지막 총격 살인 사건이 아닐 것이란 사실보다 더욱 서글픈 것은 미국인들이 계속 일어나는 비극을 보고 배우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바마의 의료개혁은 절실히 필요한 근본적 개혁과는 거리가 먼 것임에도 계속해서 크나큰 저항에 부딪히고 있고, 총기 규제도 근본적인 변화는 아주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애리조나의 총격 사건이 마치 장기적으로 큰 사회적·정치적 영향을 끼칠 역사적 사건인 듯 다루는 논평들이나 오바마의 지지도와 연관시키는 언론 보도도 있지만, 저는 이 사건도 결국 곧 잊힐 것으로 전망합니다. 다음 대선에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든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다른 누가 등장하든지 간에, 미국 정부는 여전히 시장의 자유를 인간의 자유 위에 놓는 자본주의 정책을 고수할 것이며, 거대한 군사 산업에 안보의 기초를 두고, 한미 FTA와 같이 미국의 이익을 보장하는 자유무역을 밀어붙이는 대외정책을 추구하는 큰 틀 안에서 별 변화 없는 정책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더욱 열심히 일하라. 수백만의 복지대상자들이 당신에게 기대고 있다." 복지대상자들을 조롱하는 증오 문구 범퍼 스티커. 불황 속에서 야비한 미국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더욱 열심히 일하라. 수백만의 복지대상자들이 당신에게 기대고 있다." 복지대상자들을 조롱하는 증오 문구 범퍼 스티커. 불황 속에서 야비한 미국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데니스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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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퇴란 이웃집 사람이 실직하는 것, 불황이란 내가 실직하는 것, 경기 회복이란 오바마가 실직하는 것." 어느 티셔츠의 디자인. 많은 미국인들은 지속적인 정책보다는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으로 모든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경기 후퇴란 이웃집 사람이 실직하는 것, 불황이란 내가 실직하는 것, 경기 회복이란 오바마가 실직하는 것." 어느 티셔츠의 디자인. 많은 미국인들은 지속적인 정책보다는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으로 모든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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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한 문헌은 다음과 같습니다.

James Fallows, More like us. Mariner Books. 1990.

Amy Goodman and H. Clark Romans, Jared Loughner, Mental Illness and How Budget Cuts Have Slashed Behavioral Health Services in Arizona. (Interview at Democracy Now) January 11, 2011.
http://www.commondreams.org/headline/2011/01/11-5

Jeff Biggers, Now Arizona Wants to Allow Concealed Guns on Campuses, Comondreams.org, January 10, 2011.
http://www.commondreams.org/headline/2011/01/10-3

Josh Horwitz, In the NRA's America, Comondreams.org, January 10, 2011.
http://www.commondreams.org/further/2011/01/10-1

Bill Quigley, Serious Guns and White Terrorism: Two Unasked Questions in Tucson Mass Murder, Comondreams.org, January 10, 2011.
http://www.commondreams.org/view/2011/01/10

Brett Michael Dykes, A new forum for culture war debate, Jared Loughner’s musical taste, Yahoo.com, January 10, 2011.
http://news.yahoo.com/s/yblog_thelookout/20110111/ts_yblog_thelookout/a-new-forum-for-culture-war-debate-jared-loughners-musical-taste

Christine Vestal, As economy takes toll, mental health budgets shrink, Stateline, July 19, 2010.
http://www.stateline.org/live/details/story?contentId=499181

John Hudson, Loughner's Descent Into Madness, Atlantic Wire, January 13, 2011.
http://www.theatlanticwire.com/opinions/view/opinion/Loughners-Descent-Into-Madness-6553

Gillian Flaccus, Shooting suspect fell through mental health cracks, The Washington Post, January 12, 2011.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11/01/12/AR2011011204068.html



태그:#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 #총기, #의료 민영화, #폭스뉴스,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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