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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와 '블랙리스트' 공방을 벌였던 방송인 김미화씨는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과 트위터 팔로워들의 도움으로 더 당당하게 싸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KBS와 '블랙리스트' 공방을 벌였던 방송인 김미화씨는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과 트위터 팔로워들의 도움으로 더 당당하게 싸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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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만 하면 늘 OK였다. 별스럽게 가리지 않았고, 얄밉게 재지도 않았다. 자신이 필요한 자리라면 선뜻 '좋아요!' 했다. 인터넷방송이지만 양머리 패션을 한 채로 <찜질방 토크>에 참여해 주었고, 인터뷰는 마다한 적이 없었다. 유명 연예인인 코미디언 김미화(47)는 이웃집 언니처럼 편안하게 늘 가까이 서 있었다.

지난해 7월 19일 KBS가 소위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그를 고소한 뒤로 전화가 끊겼다. 잘 받지 않았고, 간단한 문자메시지 정도만 응했다. 참 오랫동안 기다렸다. 여름 지나 가을, 가을 지나 겨울, 그리고 해를 넘겨서야 그를 겨우 만날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KBS는 고소를 취하했고, 보수 인터넷 매체와의 명예훼손소송에서도 일부 승소했다.

지난 18일 김미화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편집국에 나타나자 기자들은 스마트폰부터 꺼내들었다. 인증샷을 위한 것이다. 기꺼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최대한 밝게 웃었고 재밌는 표정을 잡아주었다. 천상 코미디언이었다.

어쩌면 그에겐 60년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는 지난 6개월, 코미디언을 슬프게 했던 슬픈 한국사회. 세월이 흘러 먼 훗날, '그땐 그랬지' 하고 얘기할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꾹 참기로 했다. 다 풀어헤치기에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관용이 부족한 듯해서 '오프 더 레코드'로 갈음한다.

그 엄중한 경찰조사 상황에서도 희극적인 '개그소재'가 떠올랐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대한민국은 이토록 뛰어난 코미디언을 '그냥 코미디언'으로 살도록 하지 못하는 것일까. 가슴이 먹먹해졌다.

6개월간 묻어두었던 이러저러한 김미화의 에피소드를 듣다보면 한숨도 터져 나오고 동공에 이슬도 맺히지만, 종국엔 꼭 웃게 된다. 8년째 시사프로를 진행하면서 나름 '김석희(김미화+손석희)'의 꿈도 꾼다지만 아무리 봐도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광대'다. 남을 웃길 때, 남과 함께 박장대소할 때, 남들이 그의 말을 듣다 배꼽을 쥘 때, 그는 가장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잘못 살아왔나 자괴감 들기도... '친정' KBS 안 밉다

- 지난 한 해 정말 구설에 많이 시달리셨는데, 돌이켜보면 어떤 것이 가장 힘들었나요?
"큰 싸움을 하면서 제 인생을 돌이켜 보게 되었죠. 무엇보다도 인간관계 맺는 것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구나 싶었어요. 좋으면 그냥 친구가 되고, 바로 말도 트면서 살았는데, 아, 내가 너무 격식을 무시하고 거리감 없이 살았나, 사람에 따라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살 필요도 있구나 하는 반성을 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사실, 커다란 권력 KBS와 싸울 때는, 내가 살아왔던 길 자체가 잘못된 건가,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기지? 하는 자괴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허허 웃어넘길 수 있는 남편과 주변분들, 트위터 팔로어들이 큰 위안을 주셔서 그나마 덜 상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힘에 겨울 때도 많이 있었지만, 그런 보이지 않는 힘들이 저의 뒤에서 든든하게 버텨주었기 때문에 언론에 비춰지는 저의 모습보다는 실제로 훨씬 더 당당하게 싸울 수 있었어요. 아!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편안함, 스스로 저를 믿었던 힘,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절대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 나는 정정당당하다, 이런 마음이 있었으니까요."

- 연예인 입장에서 KBS라는 거대 방송사와 맞붙어 싸운다는 것이 두렵지는 않으셨나요?
"굉장히 두려웠지요. 이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이런 심정이었어요. 전 KBS PD들과 20년 넘게 함께 일했고 방송현장에서 일하는 그들을 사랑해요. 그리고 현장 PD들은 저의 진정성을 믿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맨 위에 계신 간부들과 생각이 달라 부딪친 거라고 생각해요. 오랜 세월 가족같이 지냈기 때문에 KBS를 '친정'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사람들이 밉겠어요? 지금도 안 미워요."

- KBS가 법무팀의 소송과는 별도로 계속 사태를 풀려는 노력을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예능국장이 몇 차례 찾아와 만나기도 하셨다면서요.
"예, 제가 트위터에 그 글을 올리던 첫날, 예능국장님이나 예능부장께 사정했어요. KBS에서 20년 넘게 봉사했고, 그 어느 방송국보다 KBS에 애정이 많았던 사람이다, KBS에 해를 끼치려고 한 의도가 아니라며 7~8번을 고소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드렸지요.

제가 트위터에 올린 글의 취지는 나조차도 본 적 없는 블랙리스트라는 게 정말 있는 것이냐, 제 트윗을 팔로잉하는 수많은 작가와 PD들에게 젊은 당신들은 바른 눈으로 바라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절 법적으로 조치해서 KBS가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아니 그야말로 일개 코미디언일 뿐인데 거대 방송국이 나한테 왜 이러나 정말 속상했지요."

- 결국 이 사건의 발단은 KBS노조가 4월에 폭로한 '임원회의 결정사항'인 건가요?
"작년 4월 KBS노조가 '김미화도 블랙리스트인가' 노보를 낸 뒤로 많은 신문에 기사화가 됐고 여러 기자들로부터 어찌 된 일이냐고 전화도 받았습니다. 깜짝 놀랐죠. 연예인이기 때문에 'KBS 블랙리스트' 이렇게 딱 찍히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있잖아요. 하하.

그래서 제가 작년 4월 KBS 간부 한 분을 찾아가 부탁을 드렸어요. '논란의 대상이 된 연예인'이라니요, 제가 어떻게 논란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입니까? 이러면 누가 절 써주겠습니까, 오해가 없도록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간곡하게 부탁드렸지요. 그런데 그로부터 4, 5, 6, 7 넉 달이 지나서 또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저로서는 이게 뭐냐 싶어서 트위터에 올린 건대,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 날 따라 시간이 남아가지고, 왜 한가해서 그걸 트위터에 올렸나 싶기도 합니다. (웃음)"

- 동료들은 주로 뭐라고 조언을 하던가요?
"그래봐야 혼자만 다친다, 많이들 그러셨지요. 트위터에도 썼지만, 마치 거대한 벽 앞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제가 기자회견 할 때 '여러분 저를 잃지 마십시오'라고 했잖아요. 어느 분은 그 말이 되게 건방진 말로 들렸다고 그러시더군요. 그러나 그건 제 마음 속에 있는, 코미디언으로 살고 싶은 절절한 호소였습니다. 그 말의 진심을 모른다면, 지가 뭐라고 저를 잃지 말래? 이럴 수 있지만, 제 진심은 정말 웃기는 코미디언으로 살다가 죽는고 싶다는 것이거든요."

- 후배들이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끝까지 싸울 거라고 하셨어요. 후배들 반응은 어땠나요.
"솔직히 우리 대중연예인들은 이 편 저 편이 아니라 다 우리 편이어야 돼요. 하하하. 무슨 소리냐면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게 가장 좋은 것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날마다 딱딱한 이미지로 TV 앞에 섰으니, 이게 얼마나 큰 손해야~.

그리고 방송국은 갑이고, 저는 을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갑한테 감히? 이게 쉽지 않지요. 무엇보다 코미디언은 늘 즐겁게 웃어야 하는데, 또 저 스스로 사회적으로 해를 끼친 일이 없는데 '논란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 이게 좋을 리 있겠어요.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논란의 복판에 섰을까, 그렇지만 이런 게 시정되지 않은 채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연예인의 몫이거든요. 그래서 생각했지요. 아, 내가 찍소리라도 해야 되는 거다.

물론 제가 후배들을 위해서 뭔가 해주려고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이런 게 계속 되풀이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면 후배들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겠지 그런 생각은 했었지요."

- <중앙일보>는 <승승장구>에 김제동 나오고 <스케치북>에 윤도현 나왔으니 블랙리스트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주장을 한 적 있어요. KBS에서 섭외가 오긴 했나요?
"에이~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고정코너도 아니고 그저 한번 출연한 건대.... 글쎄요. KBS가 저한테도 섭외요청은 했었어요. 그렇지만 KBS와 날마다 싸우면서 TV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그건 좀 이상한 거 아닌가요?

싸움이 끝난 뒤에도 두 번정도 섭외요청이 있었는데, 물론 이건 윗분들의 의지는 아닐테고 담당PD 의지였던 것 같은데, 제가 아직 마음정리가 안 돼서 정중하게 사양했습니다. 그렇게 된 뒤에 KBS 프로그램에 제가 딱 나가면 마치 제가 KBS에 출연하기 위해 모든 일을 벌인 것 같잖아요? 하하."

똑같은 질문-답변 7시간씩... 화장실 가는 것도 창피했다 

 "스스로 저를 믿었던 힘,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절대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 있었으니까요"
 "스스로 저를 믿었던 힘,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절대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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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문제로 4개월간 경찰조사를 받으신 뒤 앞으로는 법에 관련된 개그 아이디어를 무수히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건지 여쭤도 될까요.
"담당 경찰 분들은 잘해주셨어요. 그런데 정말 힘들었던 건 매번 똑같은 질문과 답변을 그것도 7~8시간씩 반복했다는 겁니다. 제가 모두 4번 출두했는데 똑같은 얘기를 매번 반복했어요. 간첩심문은 안 받아봤지만, 계속 똑같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덜컥 실수하기를 기다리는 뭐 그런 수사기법이 있나? 싶은 정도였어요. 전 거짓말 한 게 없기 때문에 실수할 것도 없었지만 뭐랄까 포인트가 빗나간 대화였다고 할까요? 7~8시간씩 평행선을 달려야 하니,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어요."

-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을 것 같은데.
"조사 첫날이 마침 경찰의 날인가 그랬어요. 아, 그래서 '꽁(공짜)'으로 삼계탕을 얻어먹었네. 두 번은 된장찌개 시켜먹고 그랬는데. 이게요, 기자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으니까 밥 먹으러 나가기도 참 그렇고, 화장실 갈 때도 복도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이 카메라 켜고 마구 찍어서 정말 창피했다니까요.

'저 지금 화장실 가는 거예요'하면 우~ 카메라 들고 모였던 기자들이 카메라 내리고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가고. 기자 분들께 미안했어요. 긴장하니까 삼십분 간격으로 소변이 마려운 거라요. 하하... 갈 때마다 기자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는데, 경찰서 출두모습은 뉴스에서나 봤지 내가 그런 모습으로 카메라에 찍힐 줄이야.

아, 또, 오늘은 뭘 입고 가나, 가방은 또 뭘 드나, 화장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얼굴을 너무 숙이면 죄인 같은 사진만 나올 것 같고, 그래서 또 일부러 턱을 들고 당당하게 서 있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었다구요.

제가 매니저 없이 일하잖아요. 기사도 없고. 그러니까 제가 조사 받으러 가면서 운전까지 하니까 이게 영 폼이 안 나는 거 있죠. (웃음) 경찰서 딱 도착했는데, 아, 글쎄 차 댈 데가 없네? 와, 이거 정말 난감하더라구요. 그래서 차를 뒤로 후진해서 핸들을 막 돌리는데, 그럼 기자들이 파바박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요. 그럼 쓱 차문을 내리고, 있다가 포즈 취할 테니까 이런 건 찍지 마세요! 하고 또 주차를 하고 그랬다니까요. 하하하하.

하여간 코디가 제일 힘들었어요! 경찰조사 받으러 가면서 아줌마 가방 같은 걸 들면 좀 이상할 것 같아서, 가장 '서류 가방스러운' 노트북컴퓨터 가방을 찾아 들고 간 거예요. 흐흐.

그런데 제 눈에 비친 경찰서 풍경이 참 재미있었어요. 의경들과 삼계탕 먹으면서 농담도 하고 위로도 해주고. 형사들은 권총 차고 밥을 드시데요? 코미디 할 때 이런 풍경을 써먹을 수 있겠다, 생각했지요."

- KBS와 싸울 때 트위터 팔로어 수가 급증했다면서요. 최첨단 SNS에서 아날로그를 느낀다고도 하셨습니다. 일상사 소소한 일들도 많이 올리시던데요.
"KBS 사태까지만 해도 제 팔로워가 2만5000명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9만 명 넘었으니까 어마어마한 거죠. 사실 저는 트위터가 절 키웠다고도 생각할 정도예요. KBS와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면 시골 사는 소소한 이야기나 올렸을 텐데.

하여간 트위터의 힘은 정말 놀라워요. 얼마전 트위터에서 만나는 미국에 사는 한 친구가 코스타리카 인근 커피농장에서 자원봉사 해서 커피 따고 볶아서 보내준다 해서 감사하다고 했더니, 진짜로 몇 달 동안 코스타리카 커피농장에 가서 이분이 커피콩을 직접 따서, 볶아서, DHL로 보냈네. 와, 우리가 지금 이런 세상에 살아요. 우리 라디오 방송팀들이 요즘 럭셔리하게 코스타리카 커피를 먹고 있다니까요. 하하하."

- 연극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부터 여성단체까지 여러 곳에서 후원을 해줬지요?
"미국에 계신 알지도 못하는 변호사님이 제 트위터에 들어오셔서 커다란 권력과 싸울 때는 시간과 돈 싸움이다, 이러시면서 내가 미국에 있어서 변호사로서는 도와줄 수 없으니 변호사 비용을 보내시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너무 감사한 마음이라 뿌리칠 수 없어서 제가 여성단체연합에 부탁해서 통장 좀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그분이 주신 돈은 소중한 곳에 써야 할 것 같아서요.

또 제가 보수 인터넷 매체의 왜곡보도에 맞서 일부 승소했잖아요. (웃음) 그 승소비용에 미국에서 교민 여러분들이 십시일반 보내주신 돈, <아큐> 연극에서 모아 주신 돈 모두 합치면 돈이 꽤 될 거예요. 저처럼 왜곡보도로 힘들었던 사람들이나 바른 언론을 위해 애쓰는 언론사를 후원하는 데 쓸 생각입니다."

- 보수 인터넷 매체들이 왜 그렇게 친노좌파라고 낙인찍으려 드는 걸까요?
"제가 1983년부터 방송했습니다. 열 아홉살 때인데, 그때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지요. 가장 인기 있던 프로 <쓰리랑부부>에서 순악질 여사 하던 때예요. 청와대 행사 그때부터 했어요. 제가 청와대 많이 들락거린 연예인입니다. 하하. 노무현 대통령 때만 행사한 게 아니에요.

저는 제가 우리 시대의 광대라고 생각해요. 이걸 천직으로 알고 살기 때문에 나랏님이 원하면 어디든 가서 돕는다, 그게 좌든 우든, 대중연예인에게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사실 제가 대통령 만난 횟수로 따진다면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님 순이에요."

"청와대에 올 때 야한 옷 입지 말라"

- 1983년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청와대 분위기는 어땠나요?
"대통령 행사는 언제나 다 비슷해요. 경직돼 있고, 리허설도 많이 해야 하고, 대통령과 악수하는 것까지 동선 다 맞춰보고 그러지요. 그런데 옛날에는 옷을 야하게 입지 말라는 주문이 많았어요. 여자 연예인에게는 늘 지침사항이 옷을 야하게 입지 말라, 그런 거였던 게 생각이 납니다. 의전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지요."

- 시사프로를 8년째 진행하고 계신데요. 처음과 비교하면 뭐가 가장 많이 달라졌나요.
"달라진 건 없어요. 늘 긴장되고 힘들지요. 생방송에서 실수하면 큰일 나니까. 끝나고 나면 홀가분하지만 하는 동안엔 엄청 힘든 작업이 생방송이에요. 엄청난 긴장감 속에서 뇌세포를 갉아먹고 있다는 느낌?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의 고단수들과 대화하는 것이니 쉽지 않죠."

- <손석희의 시선집중> 10주년 기념특집 공개녹음방송에 출연해서 '김석희가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손석희 교수의 어떤 점이 가장 부러우세요?
"손석희 교수님은 카리스마가 있으시잖아. 하하하. 전 카리스마가 늘 부족한 것 같아요. 저는 코미디언이라 그런지 늘 저 사람을 아프게 하면 안 된다, 꼬집으면 안 된다 이래서 끊고 맺는 게 분명하지 않아요. 그게 우리 프로의 장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끊지를 못해서 힘들 때가 많거든요. 그 분의 냉철함? 배우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우리 팀에게 이런 걸 주문하지요. 손 교수님이 가는 음식점이 어디냐? 점심을 먹어도, 그분의 길을 따라 가자, (웃음) 그래서들 많이 웃고 그러지요. 늘 새벽에 나오시잖아요. 그렇게 오래 하셨으면서도 딱 2번 지각하셨다는데 정말 대단한 것 아닌가요? 그 성실함. 그리고 벌써 외모가? 반듯하잖아요? 하하하."

- 약이나 계란을 선물 받기도 하셨다는데 요즘도 청취자들로부터 선물을 많이 받으시나요?
"트위터에 감기 걸렸다고 올렸더니 어떤 친구가 빨간약을 바르세요, 이러더라구요. 그래서 그럼 빨간약을 보내주던가, 했더니, 아, 글쎄 홍삼을 보낸 거 있죠? 으하하하하. 아, 나 미안해 죽는 줄 알았네? 크크. 집에서 양배추나 양파를 갖고 청을 낸다는 친구는 그걸 보내주고. 가족보다 더 챙겨주시고 그러지요."

"저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적극적으로 채우려는 성격이 있어요. 그냥 있으면 본전치기는 하고 살 수 있는데, 뭐랄까 그건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저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적극적으로 채우려는 성격이 있어요. 그냥 있으면 본전치기는 하고 살 수 있는데, 뭐랄까 그건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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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기사에게 평생 정치하지 않겠다는 약속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정치 안 하실 건가요?
"정치는 하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왜 나는 정치 안 한다고 하는데도 자꾸 사람들이 정치할 것 같은 사람으로 볼까 전 그게 참 이상해요. 아마 안 한다고 해놓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못 믿는 것 같아요. 그게 우리나라의 현주소인 거지요.

본인이 한 번 안 한다, 그럼 정치를 끝까지 안 하다 죽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자꾸 의심을 받는 것 같아요. 그러니 죽고 나서야 판명 받으려나? (웃음) 피카소가 죽은 뒤에 그림 값을 인정받았듯이 나도 그래야 되나? (웃음)

제가 국회의원, 정당 최고위원이나 대표 되시는 분들에 비해 적은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이 오십에 초선? 요즘 트렌드 아니죠. 사실은 제가 정치하고 싶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할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결코 정치 안 하겠다는 겁니다. 정말로. 이렇게 얘기해도 많은 분들이 못 믿으시는 걸 보면 우리 사회 인사들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씁쓸하기만 하지요."

돈보다 중요한 건 성취감... 지금은 코미디 안 봐요

- 중학교 때부터 교내 오락사회는 독차지하셨다면서요. 학교 때 직접 명함을 파서 친구들에게 돌리기도 하셔서 그 또래 친구들에게는 꽤 인상적이셨던 모양이던데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 집이 참 가난했어요. 길음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아버지 없다고 놀리는 애들을 제가 때렸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너 얘를 왜 때렸어? 아버지가 없다고 친구를 놀리는 건 잘못된 거야. 화해해. 이랬다면 제가 그 학교를 계속 다녔을 텐데, 때렸다는 것만 가지고 의자 들고 서 있어! 이런 거예요. 왜 때렸냐고 묻기만 했어도 좋았을 텐데, 그 뒤로 학교 안 가고 만화방 다니고 길음시장 돌아다녔지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시부책을 하나 사주고 학교 가서 날마다 선생님 사인을 받아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사인이 너무 쉬운 거야. 그래서 선생님 사인 흉내 내고 학교 안 가고, 시장통 돌아다니면서 구경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얘를 이렇게 놔두면 망치겠다 싶으셨던지 이사를 가서 5학년 때 우이초등학교로 전학을 하게 됐어요. 학교에서 시무룩하게 있으니까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게 표시 났구나 싶어 제가 성격개조를 했지요.

가수 흉내, 선생님 흉내 엄청 잘 내고, 까불대고 했더니 선생님께서 제 재능을 알아보시고 정말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심 봉사 연기를 했는데 굉장히 사랑해 주셨지요. 그땐 가난한 아이들에게 옥수수 빵과 우유를 나눠줬는데 아이들 눈치 채지 못하게 슬쩍 주시곤 했고.

아, 그런데, 제가 소풍 날 오락대회에 나가기로 했는데 형편이 안 좋아 김밥을 싸갈 수가 없었어요. 오락대회에서 1등 하면 상품을 주는데, 그건 받아야겠는데, 아 김밥을 못 싸 소풍을 갈 수가 없네? 고민하다 선생님댁에 찾아갔어요. 내일 소풍 못 가요. 왜? 김밥을 못 싸가요. 그랬더니 너는 맨몸으로 와라. 김밥은 선생님이 싸간다 하시는 거예요.

그 선생님께는 정말 창피한 것도 없고 그랬어요. 왜 김혜자 선생님이 아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그러셨잫아요. 어린 시절 아이의 기를 살려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공부를 참 못했지만 그 선생님은 절 엄청 예뻐해 주셨어요. 소풍에서 미화가 빠지면 재미가 없어. 꼭 가야 돼. 이렇게 기정사실화 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기가 살았던 거예요."

-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장한 어머니 상도 받으셨다면서요.
"우이초등학교 다니던 때 우리 엄마가 해장국집을 했어요. 그래봐야 2평 남짓? 엄청나게 작은 집인데 그런 가게에 붙은 작은 방, 그저 해장국집 주인 몸 녹일 정도의 조그만 방이었지요. 살림살이를 놓지 못할 정도니까 굉장히 작은 방이었는데 거기마저 손님들이 차지하고 막걸리를 마시는 날이면 동생과 전 갈 곳이 없어서 밖에 나가 동생 앉혀놓고 가수 흉내 내고 온갖 쇼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 뭐 학교 숙제를 해갈 수도 없고 예습 복습도 못하고, 그저 가방 하나 들고 왔다갔다 할 가정형편인데도 제가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선생님 손목을 붙들고 해장국을 대접해드리고 그랬어요. 우리 엄마가 이렇게 일해서 우리를 돌봐주시고 키워 주세요 했던 거지요. 거기에 감동 받은 선생님이 우리 엄마를 추천하셔서 장한 어머니 상을 받으셨지요."

- 최근 홍대 청소노동자 사태와 관련해 내 어머니도 청소노동자였다고 트위터에 올려 화제가 됐잖아요. 그분들도 큰 위로를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우리 엄마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냥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엄마이고 누군가의 아내이며, 딸이고, 아들이고, 동생이고 언니고 그런 것 아닌가. 사회 어느 계층에 있든 무엇을 하든 따뜻한 마음 하나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지요. 우리 엄마가 어느 회사 건물의 청소를 하실 때 직원들로부터 인사를 받았다면 얼마나 더 흥이 나서 일할 수 있었을까. 비누 하나를 놓더라도 반듯하고 바르게 놓고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요."

- 정혜신 박사가 언젠가는 '공부'라는 화두로 김미화론을 쓰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꾸준히 사회적 학습을 통해 삶을 진화해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겁니까.
"운명이다? 하하하하. 저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적극적으로 채우려는 성격이 있어요. 그냥 있으면 본전치기는 하고 살 수 있는데, 뭐랄까 그건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저는 고인 물이 싫어요. 가만히 고여 있는 게 싫더라구요. 뭔가 절벽을 향해 내지르는 폭포 같은? 내달리는 데서 얻는 쾌감?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개그콘서트> <코미디 세상만사> 등등의 프로도 가만히 고여 있고 안주해도 될 때 뛰어들어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 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나이든 코미디언도 새 틀에 넣으면 새롭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코미디의 새 틀을 요구받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 후배들이 잘해주고 있으니까요.  어찌됐든 저는 안주하면서 사느냐, 아니면 나이를 잊고 도전해서 성취하느냐. 늘 좇는 건 성취감이에요. 이 일이 내게 성취감이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한 잣대인 거죠. 돈이 얼마나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더군요."

- 사람인데 정말 돈 욕심이 없으세요?
"남편도 벌고 저도 벌잖아요. 경제활동 안 하면 모르는데, 뭐. 조금 벌면 조금 먹고 조금 싸면 되지 않을까요? 뭐랄까 삶에서 제가 억척스럽게 욕심내고 그런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정말 김미화가 억척스럽게 욕심 내는 게 있다면 그건 성취감인 것 같아요. 코미디를 이렇게 만들면 엄청 재밌겠는데? 그러면 거기에 몰입하는 스타일? 제 단점 중 하나가 어디 집중하면 딴 걸 못해요. 코미디다, 그럼 오로지 코미디에만 집중하는 성격이지요."

- 코미디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요. <개그콘서트>는 보시나요?
"소는 누가 키워? 하하하. <두분토론> 남하당 여당당. 재밌게 봐요. 그리고 제가 코미디를 안 할 때는 스스로 멀리해야 새로운 기획이 나온다고 생각해서 잘 안 봐요. 딱 끊고 단절했다가 새로 시작할 때 요즘은 뭐지? 주류가 어떻게 되나? 그때 살펴보지요. 요샌 영화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고 그렇습니다."


태그:#소셜테이너, #김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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