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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상대방 패를 알려주는 수법으로 이른바 '사기도박'을 했다면, '사기죄'로만 처벌할 수 있을 뿐 '도박죄'는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K(38)씨는 수회에 걸친 도박으로 수백만 원을 잃게 되자 지난해 2월 L(50)씨에게 "사기도박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하고, L씨는 사기도박 전문가에게 "사기도박을 할 수 있도록 장비를 설치해 달라"고 부탁하며 사기도박을 공모했다.

며칠 뒤 사기도박 전문가는 충남 보령시 명천동의 한 모텔방 천장의 화재감지기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모텔 맞은편에 있는 다른 모텔방에 모니터를 설치한 뒤, K씨는 수신기를 건네받아 속옷 속에 넣어 테이프로 붙이고, 무선이어폰을 건네받아 귀에 꽂고 도박장소로 갔다.

그런 다음 이들은 처음에는 피해자들과 정상적인 도박을 하다가 40분 뒤 표시가 된 화투를 바꾸어 도박을 시작했고, 다른 모텔방에서 몰래카메라를 통해 수신된 모니터 화면을 통해 피해자들의 화투 패를 보고 K씨가 착용하고 있는 무선이어폰을 통해 알려 주는 방법으로 735만원 상당을 땄다.

결국 K씨 등은 사기와 도박 혐의로 기소됐고, 1심과 항소심은 "피고인들은 전문적인 장비를 이용해 계획적으로 사기도박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사기와 도박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K씨에게 징역 4월과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쉽게 말하면 속임수를 쓰지 않은 40분은 도박죄, 이후는 사기죄가 적용된 셈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K씨의 사기와 도박 혐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기죄만 성립한다"며 도박죄는 무죄 취지 판단해 사건을 대전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도박은 우연한 승패에 의해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이므로, 이른바 '사기도박'처럼 도박 당사자 일방이 사기의 수단으로써 승패를 지배하는 경우에는 도박에 있어서의 우연성이 결여돼 사기죄만 성립하고, 도박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사기도박도 사기적인 방법으로 도박자금을 가로채려는 자가 상대방에게 도박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는 등 사기죄와 마찬가지로 기망행위를 개시한 때에 범행에 착수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 등은 사기도박에 필요한 준비를 갖추고 피해자들에게 도박에 참가하도록 권유한 때 또는 늦어도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도박에 참가한 때에 이미 사기죄의 실행에 착수한 것이므로, 피고인 등이 사기도박을 숨기기 위해 얼마간 정상적인 도박을 했더라도 피해자들에 대한 사기죄만이 성립하고 도박죄는 따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원심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기죄 외에 도박죄가 별도로 성립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유죄로 인정했으니, 원심 판결은 사기도박에 있어서의 실행의 착수시기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피고인 등이 피해자들을 유인해 사기도박을 해 금품을 편취한 행위는 사회관념상 1개의 행위로 평가함이 상당하므로, 피해자들에 대한 각 사기죄는 상상적 경합의 관계에 있다"며 "그럼에도 원심은 각 죄가 실체적 경합의 관계가 있다는 것으로 판단해 형법에 의해 경합범 가중을 했으니 이는 사기죄의 죄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사기죄, #도박죄, #사기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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