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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위 '신군부가 재산강탈'... 법원 '증여취소 청구했어야'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1945년 설립하고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합판회사였던 동명목재의 전 재산을 헌납형식으로 위장해 강탈했다. 그 충격 때문인지 동명목재 창업자 강석진 회장은 1984년 10월 29일 사망한다. 고 강석진 회장 유가족은 지난 1998년, 전두환 신군부가 강탈한 부산 일대 부동산과 공장건물 등 토지 317만3천45㎡, 부산투자금융㈜와 부산은행의 주식 약 700만주, 사주 일가의 은행 예금액 16억여 원, 동명산업 등 계열사들의 재산에 대해 국가소유권말소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1심에서 승소하지만 대법원 확정판결에서 패소한다.

이에 고 강회장 유가족은 진실화해위원회(진실위)에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신청하고 진실위에서는 2008년 10월 '동명목재 사건'이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행위라고 규명했다(관련기사: "신군부가 동명목재 강제해산 뒤 재산 빼앗아").

진실위는 진실규명결정서를 통해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 수사관들은... 사주 일가와 회사 임원들을 연행해 15일 내지 2개월간 불법구금하고, 수사과정에서 폭행·전기고문 위협 등 가혹행위를 가하고, 동명목재 사주들에게는 재산포기 위임각서 작성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진실위의 진실규명 결과를 근거로 피해자인 유족 측은 2010년 2월 일부 재산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국가에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 1월 13일 법원은 원고인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동명목재의 창업주 고 강석진 회장과 강정남 동명문화학원 이사장이 1980년 보안사 부산지부에서 서명한 위임각서
 동명목재의 창업주 고 강석진 회장과 강정남 동명문화학원 이사장이 1980년 보안사 부산지부에서 서명한 위임각서
재판부는 "원고 측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강박을 당한 끝에 재산을 국가에 증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강박의 정도가 의사결정의 자유를 박탈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고 보이지는 않아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기보다 취소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비상계엄 해제로 헌정질서가 회복된 1981년 1월 21일 이후에는 원고 측이 강박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그로부터 증여취소를 청구할 수 있는 시효(3년)가 소멸했다"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 논리대로라면 유족들은 1981년 광주민중항쟁을 총칼로 제압하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신군부 체제하에서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법원의 판결에 대해 현재 유족들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

다음은 그동안 진실위에서 '동명목재 사건'의 조사를 책임졌던 전 우필호 조사팀장과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이메일로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기업인 협박·길들이기 목적에서 강탈"

우필호 조사팀장
 우필호 조사팀장
- 전두환 정권은 80년대 국제상사도 공중분해시킨 바 있는데 동명목재의 재산을 강탈한 배경을 설명하면.
"당시 전두환 정권이 발간한 <국보위 백서>에 "국보위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산다'는 식의 기업풍토를 쇄신하기 위하여 동명목재와 그 계열회사의 대주주(강석진, 강정남 및 고고화)의 재산을 조사하고… 동명목재는 기업으로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정리, 청산토록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동명목재 사주를 부정축재를 일삼는 반사회적 '악덕기업인'으로 몰아 사회정화의 대상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것이 국가자료에서 확인된 공식적인 재산 강탈의 배경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진실위 조사결과 당시 동명목재와 그 사주들을 직접 조사하고 재산 강탈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보안사 수사관들조차 동명목재는 '흑자도산'을 했으며, 이들 사주가 "존경받는 기업인들"이었던 것으로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당시 동명목재의 재무구조는 자기자본이 부채총액을 상회하고 있었고, 이들이 '악덕기업인'임을 입증할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에 이와 반대되는 증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물론 당시 동명목재가 70년대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인한 경영난과 일부 노사분규가 있었던 점은 사실로 확인된다. 그러나 이를 타개하려는 자구노력과 노사합의가 진행 중이었음도 역시 함께 확인되었다.

결국 아무 물증 없이 상부의 지시에 의해 수사에 착수했으며, 외환거래법 위반혐의 등 가능성 있는 범죄분야에 대해 조사했지만 아무런 범죄혐의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어느 보안사 수사관의 하소연처럼, 당시 신군부 세력들이 공식적으로 내세운 강탈 배경은 진실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동명목재의 강탈이 기업인들에 대한 협박, 길들이기와 같은 정치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견해들에 공감이 간다."

- 동명목재 사건 조사를 책임졌던 조사팀장의 입장에서 이번 동명목재 사건의 소송을 기각시킨 법원의 판결을 어떻게 생각하나.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있고,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전향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많은 사건이라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국가의 분명한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이로 인한 피해의 책임은 피해자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

"신군부 상대로 소송제기할 수 있었겠나? 법의 판단이 참 편리하다"

동명목재 재산 환수 관련 보도를 한 당시 기사
 동명목재 재산 환수 관련 보도를 한 당시 기사
- 상식적으로 봐도 1981년 사회공포가 만연한 전두환 군사정권하에서 국가를 상대로 개인이 소송을 제기할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라고 판단되는데 법원이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보나.
"1981년 전두환 신군부는 국내 주요 대기업의 사주를 아무런 범죄증거 없이 불법으로 잡아다 감금하고 위협하면서 먼지털이식 범죄수사를 했다. 그래도 아무 것도 안 나오니까, 석방을 조건으로 재산의 강제 헌납을 강박했다. 이러한 강박의 실질주체는 무소불위의 권력 그 자체였다. 누가 이러한 권력 그 자체에 정면으로 대항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겠나. 법의 판단이 참으로 편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 유족들이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를 검토하고 있는데 담당 조사팀장으로서 법원에 건의하고 싶은 것이 있나.
"이 사건은 진실위가 진실규명을 한 사건이다. 법원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의 입법취지를 살펴주시고, 법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숙고해 주시기를 바란다."

- 동명목재 사건을 조사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애로사항은.
"진실위 위원들 내부에서도 굳이 재산과 관련된 사건까지 우리 위원회가 조사할 필요가 있는 것이냐 또는 인권침해와 관련이 적은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의견들이 일부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재산사건을 다루는 것 자체가 일선 조사팀장과 조사관에게는 조심스럽고 주눅이 드는 일이었다. 또한 다른 사건들도 마찬가지지만 조사대상자들을 강제할 힘이 없어 이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 이번에 조봉암 선생도 진실위 조사 결과를 근거로 법원에서 52년 만에 간첩혐의에 대한 무죄판결을 받았다. 지난 5년간 진실위 활동을 통해 특별히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해 나누고 싶은 감회가 있다면.
"과거사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하지 않는 국가는 밝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법부 또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본다.

진실위가 해 온 인권침해 사건의 조사활동은 피해자들의 신청 사건을 중심으로 국가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위법 또는 부당한 인권침해가 있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조봉암 사건'이나 '긴급조치 사건'과 같이 현대사의 한 획을 그었던 여러 사건들과 관련하여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건의 피해자들이 우리 위원회에 대해 잘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1년으로 제한된 진실규명 신청 접수 기간을 몰라 사건을 신청접수하지 못한 사례들이 많았다. 결국 진실위의 조사활동이 일부 제한적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반쪽짜리 '과거사정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기에 국가가 국민을 향해 자행한 인권침해사건에 대해 역사적으로 진실을 규명하고,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여 국민통합을 이루어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는 것은 우리 시대의 중대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특히 이러한 인권침해 사건의 진실규명은 그 가해 주체가 국가 공권력이라는 점에서 조사 진행과정에서 국가기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관련 국가기관이 협조를 지연하거나 실질적인 협조를 거부하는 사례가 많았다. 소위 '공안사건'들의 경우에는 '공작사건'이 많아 이와 관련된 문서 확보가 문제해결의 주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관련 기관들이 이러한 자료가 공식문서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점을 이용해 "관련 자료를 발견할 수 없다"거나, "확인할 수 없다"는 등 비협조를 하였다.

또 과거 국가 정보기관에 근무했던 조사대상자들이 조사에 일체 불응하거나 허위 진술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진실위는 이를 강제하거나 처벌할 권한이 없었다. 그나마 조사 불응 시 행사할 수 있는 '동행명령권'마저 위헌성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진실위에 신청된 인권침해 사건 중에는 법원의 확정 판결이 있는 신청사건이 많았다. 그러나 진실위 기본법은 이들을 조사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다만 민형사소송법상 재심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조사를 허용하고 있다.

우필호 조사팀장 약력
성균관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진실위 조사활동을 하면서 법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졸업.

1997. 10 - 1999. 3. 동양일보 기자
1999. 4. - 2001. 12.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 담당 간사
2003. 6. - 2004. 7. 대통령소속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2006. 4. - 2010. 12. 진실화해위원회 인권침해조사국 조사2팀장 등
사건의 실체적 내용과 관계없이 재심사유가 없거나 발견되지 않는 경우 사건을 조사해보지도 못하고 신청사건을 각하시켜야 하는 황당한 경우가 많았다. 또 재심사유가 있어도 진실위에 주어진 조사기간과 제한된 인력운영 등으로 재심사유의 존재 여부에 초점을 맞춘 협소한 조사가 진행될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진실위 조사활동은 일부 극우 세력들이 이야기하듯 지난 과거를 들춰 분란을 일으키자는 취지가 결코 아니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 성찰하고 반성하면서 국민적 화해와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실질적인 디딤돌을 놓자는 것이다. 국민들이 지난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손을 내밀면 봄비가 되어 이들의 얼어붙은 시간과 한을 녹일 수 있고, 그 속에서 새로운 새싹을 틔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태그:#동명목재, #전두환 강탈, #우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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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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