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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竹山)은 쭉쭉 뻗은 대나무 숲을 말한다. 예부터 사람의 지조와 기개를 일컬을 때 대나무에 비유하곤 했다. 일제시대 땐 독립 운동가였고 해방 이후엔 진보적 정치인이었던 조봉암에 어울리는 아호이다.

그가 사법살인의 희생자가 된 지 52년 만에 무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어 왔듯이, 법이 불의한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서 뛰어난 한 정치 지도자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대표적인 예가 조봉암 사건이었다.

조봉암이란 이름을 언제 쯤 듣고 알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에 대해 사실에 입각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들은 것은 고등학교 때가 아니었나 한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분이 윤리 선생님으로 부임해 왔다.

그는 윤리 시간을 통해서 교과서 외적 지식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곤 했다. 잘못된 교육이 사람을 그릇되이 옥죌 수 있다는 사실도 그 선생님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독립운동의 여러 갈래며 해방 이후 보혁의 갈등, 그리고 이승만 정권의 반민중성 나아가 4.19혁명에 대해 사자후(獅子吼)를 토한 기억이 아직도 의식에 또렷이 자리잡고 있다.

그 때 죽산 조봉암 선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희생당한 정치인이라고 했다. 권력이 국민을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수단시할 때 나올 수 있는 것이 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현대사에서 드물지 않게 접할 수 있었던 사건으로 우리에게 자리하고 있다. 일제가 지배하고 있던 시대는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해방 이후 진보당 사건을 필두로 인혁당 남민전 그리고 민청학련 사건에 이르기까지 아까운 생명들이 법의 이름으로 사라지거나 사라질 뻔 했다.

이 사건의 주체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국가와 민족 그리고 민중을 위해서 삶을 불태우다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소의(少義)가 아니라 대의(大義)를 위해 길지 않은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이다. 대의가 가치롭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진리에 가깝다. '진리에 가깝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동의하지 않는 극소수의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수를 법의 이름으로 지배하고 있던 소수의 권력자들임을 말할 필요도 없다.

죽산 조봉암은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다. 동족상잔인 6.25전쟁은 이데올로기가 낳은 산물이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 거기에는 중간 지대가 있을 수 없었다. 양 이데올로기의 장점을 취합해서 사회에 적용하려다가 정적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대표적인 사람이 남쪽의 조봉암, 북의 박헌영이었다. 조봉암은 북의 공산주의자들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박헌영은 미국의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었다는 죄목으로 죽어간 것이다.

진리는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어 있다. 시간의 장단(長短)이 문제이지 반드시 밝혀지게 되어 있다. 조봉암 사건이 그가 죽은 지 52 년 만에 대법원 무죄 판결로 결론 난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인가? 역사 앞에는 만인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진리는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것이다. 이승만 정권의 짜맞추기 식 불법 수사에 사법부가 동참해서 법을 왜곡한 부끄러운 판결이 조봉암 사형 사건이었다. 이번 대법원의 조봉암 무죄 판결은 늦었지만 진리를 바로 잡는 것이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여기에서 현재 우리의 법조계를 다시 생각해 본다. 아직도 법의 이름으로 인권을 탄압하는 일은 없는가? 권력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법관과 검사들은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정의와 진리 앞에 추호도 타협함이 없이 법을 적용 집행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자리에 연연해 권력과 금력에 끌려 다니며 내린 판결을 역사의 심판에 떠넘기기를 반복하지 않았는가?

팔십 노구를 이끌고 고인이 된 부친 죽산의 재심 재판장에 나와서 한 조호정 여사의 말을 귀담이 들어야 할 것이다.

"정적을 이렇게 없애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어야 한다."


태그:#죽산 조봉암, #사법살인, #진보당, #사필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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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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