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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주 강변의 원자력발전소

 

리스본 공항의 첫 인상은 파두처럼 그렇게 멜랑콜리하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다. 비행기에서 본 포르투갈의 산하만큼이나 싱그럽고 잘 정돈되어 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이건 더 환상적이다. 하늘이 파랗고 공항 앞 광장으로는 야자수 나무, 바나나, 사이플러스 나무가 하늘로 쭉쭉 뻗어있다. 한마디로 싱그러움의 극치다. 공항 한쪽으로는 한국 기업의 전광판도 보인다.

 

밖에는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가 나와 있었다. 우리는 그를 따라 버스로 갔다. 이 버스를 타고 10일 동안 포르투갈, 모로코, 에스파냐를 여행할 것이다. 차가 높고 유리창도 넓은 게 정말 좋다. 포르투갈에 있는 에스트레마두라 소속 관광버스다. 차에 타자 가이드가 자신을 마드리드에서 온 안혜영(37)이라고 소개한다. 지금부터 마드리드까지 7일 동안 우리와 함께 할 거란다.

 

오늘의 여행 코스는 파티마, 카보 다 로카, 벨렝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파티마(Fatima)는 리스본 북쪽 레이라 교구의 작은 도시다. 리스본 공항에서 테주강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는 A1(E80)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된다. 오른쪽으로 포르투갈의 젖줄인 테주강이 계속 이어진다. 산타렝 근방부터는 길이 내륙으로 들어가 레이라로 이어진다. 우리가 탄 버스는 레이라 전 파티마에서 고속도로를 빠져 나온다.

 

파티마 성지를 보기 위해서다. 공항에서 파티마 성지까지는 버스로 1시간 20분이 걸린다.

파티마 성지는 정확히 파티마 근교 코바 다 이리아(Cova da Iria)에 있고, 그 중심은 성모발현 성당이다. 성당으로 가면서 보니 작은 마을이 온통 성물 가게다. 우리는 성지 동쪽 공원 근처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에 오니 날씨가 다시 흐려진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도 날씨가 흐렸다 갰다를 반복했다.

 

기적을 체험한 아이들 이야기

 

 파티마 성지

 

우리 팀은 성지 가운데 광장 겸 운동장에 모여 안혜영 가이드로부터 파티마 성지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는 1시간 정도 성지를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아내와 나는 먼저 광장 한 켠에 있는 요한바오로 2세 동상과 예술적인 십자가상을 봤다. 요한 바오로 2세 동상이 여기 있는 것은 요한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1917년 7월13일 발현한 마리아 예언대로 "고통을 당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통이란 1981년 5월13일 요한바오로 2세가 권총에 피격당한 사건을 말한다. 요한바오로 2세는 여러 가지로 마리아의 예언과 관련이 있다. 그 첫째가 러시아 공산주의 정권의 등장과 이로 인한 종교 박해다. 두 번째가 전쟁과 순교다. 이들 두 가지 예언은 일찌감치 확인이 되었으며, 세 번째 예언이 1981년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 확인되면서 파티마의 기적은 더욱 신뢰를 받게 되었다.

 

 야신타와 루치아의 무덤

 프란치스코의 무덤

 

파티마의 성모발현 기적은 1917년 5월13일 코바 다 이리아에 살던 세 명의 목동에 의해 체험되었다. 형제·자매 관계인 루치아(Lucia, 10세), 야신타(Jacinta, 7세), 프란치스코(Francisco, 9세)는 평소와 같이 들판에서 양을 치면서 돌로 집짓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섬광이 나타나, 번개인줄 알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되돌아보니 참나무(현재 성모발현 소성당 자리에 있던) 위에 "태양보다 더 눈부신 여인이 하얀 묵주를 걸고" 서 있는 것이었다.

 

그 여인은 아이들에게 기도를 많이 할 것과 앞으로 5개월 동안 매월 13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로 와 줄 것을 부탁했다. 이들 어린이는 여인의 부탁에 따라 6월13일과 7월13일 그곳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8월13일에는 이들의 증언을 의심하는 오우렘(Ourem)시 관리로부터 심문을 받는 바람에 코바 다 이리아 들판에를 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여인은 이미 8월10일 아이들이 사는 알주스트렐에서 500m 떨어진 발린호스에 나타났다고 한다.

     

 매괴의 성모 마리아

아이들은 9월13일과 10월13일에도 현장을 찾았고, 여인은 약속대로 나타났다. 마지막 발현에는 7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현장을 지켜봤으며, 이 때 여인은 자신이 '매괴의 성모 마리아'라고 말하고 그곳에 성당을 지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7월과 9월의 발현에서 약속한 기적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기적이란 '태양의 춤'을 말하는데, 쟁반같은 태양이 마치 바퀴처럼 움직이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태양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1919년 4월4일 프란치스코가 부모 곁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주님을 위로하기 위해 기도하고 회개했다고 한다. 그리고  4월28일에는 성모발현 소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1920년 2월2일에는 야신타가 리스본의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세계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1921년 10월13일부터는 소성당에서의 미사가 허락되었고, 1922년 5월3일부터는 레이리아 주교가 파티마 행사를 인정하게 되었다. 1930년 10월13일에는 레이리아 주교가 '신성한 신의 섭리'라는 서한을 발표, 파티마의 성모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세 어린이 중 한 명인 루치아는 1925년 도로테아 수도원에 들어갔고, 다시 성모마리아를 만났다고 한다. 1947년에는 코임브라에 있는 성녀 테레사의 가르멜 수도원에 입교하여, '티없이 깨끗한 성모신심'의 마리아 루치아 수녀가 되었다. 루치아 수녀는 이후 파티마를 여러 번 방문해 증언하였으며, 2005년 2월13일 선종하였다. 이들 세 어린이의 시신은 현재 파티마 대성당에 묻혀 있다.

 

"파티마는 침묵의 장소입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여인 1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여인 2

아내와 나는 성모발현 현장을 보기 위해 광장을 건너 성모발현 소성당으로 갔다. 그런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소성당으로 가다 보니 독실한 신자들이 빗속에서도 무릎을 꿇은 채 기어가면서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대단한 신심이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많다. 소성당에는 다행히 지붕이 있어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성당에서 우리는 신부와 수녀들이 행하는 묵주기도를 잠시 살펴봤다. 그리고는 봉헌초를 사서 기도소에 꽂고 잠시 소망을 빌었다.

 

우리는 안내소에 가 잠깐 파티마성지 안내 팸플릿을 하나 얻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바로 1953년 10월7일에 축성된 대성당으로 갔다. 정면 제대 위에는 성모 마리아가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성당 앞 오른쪽에는 프란치스코의 무덤이 있고, 왼쪽에는 야신타와 루치아의 무덤이 있다. 그리고 무덤 옆에는 양을 안고 있는 어린 루치아 조소상이 있다.

 

 성모발현 소성당에서 기도를 드리는 수녀

 

성당은 일반적으로 조용히 기도하고 조용히 묵상해야 한다. 그런데 이곳 파티마에서는 그것을 더 강조하는 것 같다.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침묵을 지키고 묵상과 기도를 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기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우리는 조용히 대성당을 나와 광장 건너에 있는 교황 바오로6세 기념관으로 갔다.

 

그 때 비가 꽤나 강하게 내렸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 뛰어서 광장을 가로질렀다. 교황 바오로6세 기념관은 교황 바오로 6세가 1967년 5월13일 성모발현 50주년을 기념해 이곳 파티마를 방문했고, 그것을 기념해 세워졌다. 이곳 입구 좌우에는 동판이 각각 10개씩 붙어있다. 그림은 성경의 장면들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는데,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바오로6세 기념관 내부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니 긴 의자가 가득하고 앞의 제단에는 예수의 십자가상이 서 있다. 그 뒤로는 양이 한 마리 그려져 있고, 그 왼쪽으로는 성모마리아가 두 아이를 데리고 남녀 신도들을 이끌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남자 신도들이 뭔가를 바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황금빛이 돌아 신성한 느낌이 든다. 이곳을 나와 보니 나만 남았다. 이제 함께 점심 식사하러 가는 일만 남았다.

 

카보 다 로카에서 경인년 마지막 해를 떠나보내다.

 

 카보 다 로카

 

우리는 점심으로 포도주를 곁들여 포르투갈 전통요리인 바깔라우를 먹고 대서양의 서쪽 끝 카보 다 로카로 향했다. 카보 다 로카는 신트라 지방에 있다. 우리가 지나가게 될 신트라 역사지구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곳으로 포르투갈 왕의 여름별궁이 있는 곳이다. 이곳의 왕궁과 성당 수도원 등을 제대로 한 번 살펴보아야 하지만 시간이 없어 아쉬웠다.

 

신트라 역사지구를 벗어나 카보 다 로카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 돌고 도는 길이다. 해안이지만 깎아지른 절벽이라서 산길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카보 다 로카는 신트라 산맥의 서쪽 끝에 있다. 서경 9°30', 북위 38°47'에 위치하고 있고 해발은 140m이다. 그러므로 카보 다 로카에서 대서양을 내려다보면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파도가 밀려온다.

 

 카보 다 로카 표지석

 

현장에 도착하니 등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등대보다 절벽 끝에 있는 십자가 달린 표지석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가야 이곳이 육지의 끝임을 더욱 더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표지석은 1979년 신트라 시에서 세웠다. 그곳에는 포르투갈 최고의 시인 카몽이스(Luis de Camões: 1524-1580)의 시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ça...)"

 

서쪽 하늘에서는 해가 서서히 바다로 떨어지고 있다. 경인년을 마감하는 해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로카곶에 와서 2010년을 마감하다니 느끼는 감회가 남다르다. 저 멀리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는 선원들이 이곳 로카곶의 등대를 바라보며 육지가 가까웠음을 알았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졌다. 우리는 왜 바다에서, 등대에서 그리고 배에서 이처럼 이별과 한을 생각하게 되는 걸까?

 

로카곶은 또 바람이 많이 불어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것 같다. 주변이 온통 풀밭이었다. 겨울이지만 비가 많이 와 들꽃들이 여기저기에 피어 있다. 파란 들판에 흰색과 노란색꽃, 한겨울에 볼 수 있는 진기한 풍경이다. 구경을 마치고 관광안내소에 가니 이곳을 방문했다는 증명서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런데 가격이 5유로와 10유로다. 나는 그 돈으로 신트라를 소개하는 관광안내 자료를 하나 구입했다. 이제는 떠날 시간이다. 다음 행선지는 리스본 시내에 있는 벨렝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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