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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노총각들은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 중)
 이 세상 모든 노총각들은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 중)
ⓒ 나의 결혼 원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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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되면 혼자 살아도 괜찮아. 결혼 안 해도 돼!"
"빨리 결혼해라. 너 지금 결혼해 애 낳아도, 애가 대학 들어갈 때면 환갑 넘는다!"

결혼한 친구들이 내게 들려주는 말이다. 우스갯소리인지 진심 어린 충고인지 간혹 헷갈릴 때도 있지만, 경제와 육아 문제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고달픈 유부남(녀)들의 자기 위안 섞인 하소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결혼(결혼생활)'이라는 화두는 쉽지 않다.

1971년 돼지띠인 나는 2011년 새해 들어 만 40세가 되었다. 어느덧 '세상의 이치에 흔들리거나 현혹됨이 없다'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도달했건만, 나는 아직 '결혼을 고민하고 있는' 총각이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늙을 노(老)'자를 붙인.

감우성, 엄정하 주연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포스터.
 감우성, 엄정하 주연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포스터.
ⓒ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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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혼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했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어느 날 종례시간, 담임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 모두들 눈을 감고 생각해 봐라. 너희들이 결혼을 한다면 몇 살쯤 할 것 같은지."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25살, 26살… 31살, 32살…" 한 살 한 살 결혼할 나이를 부르셨다.  당시 선생님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결혼할 나이'를 물으셨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기억을 못해서였는지 아니면 아무런 설명 없이 질문만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짐작해 보건대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대학입시'가 지상 최대의 과제였던 우리들에게 좀 더 멀리 보고 꿈과 희망을 키우라는 의미에서 결혼을 주제로 삼으셨던 건 아니었을까. 아니, '결혼 잘하려면 좋은(?) 대학 들어가야 하니까 공부 열심히 해!'라고 거꾸로 대학입시에 대한 압박감을 미리부터 심어줬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대학교에 들어간 뒤 군대 갔다 와서 졸업해 사회에 진출하면 늦어도 27살 정도가 될 테니까 1년 정도 직장생활하고 결혼하면 되겠다는 아주 단순한 계산으로 28살에 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려던 20대 후반, 1997년 말에 터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는 1998년 우리나라의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젊은이들의 취업전선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물론 그 폭우를 뚫고 취업전선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젊은이들도 있었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폭우에 휩쓸려 허우적댔던 건 가슴 아픈 현실이었다.

그렇게 IMF 하에 몇 차례 취업 실패를 겪은 나는 1999년 친구들 몇몇과 용감무쌍하게 창업에 도전했다. 애초 삶의 계획에 없던 창업과 회사 운영은 나의 30대 시절을 그대로 관통하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결혼식 사회만 수십 번 봤는데 나는 아직도 총각

마음의 추위는...
 마음의 추위는...
ⓒ 8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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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친구의 결혼식이 처음 있고 나서 지난해 말까지 친구들의 결혼 행렬은 매년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나는 그때마다 함들이, 결혼식, 피로연으로 이어지는 친구들의 결혼과정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부러운 마음을 지닌 채 친구들 결혼식 사회를 수십 번 보기도 했다. 사실, 결혼식 사회는 아들을 낳은 유부남 친구가 보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지난해 겨울, 늦게나마 결혼을 하던 고등학교 때 친구는 나의 30대 마지막에 제대로 염장을 지르기도 했다.


"난 네가 친구들 중에서 제일 먼저 결혼할 줄 알았다. 근데 사업한다고 고생 고생하더니, 이렇게 내가 너보다 먼저 가는구나. 아무튼, 내 결혼식 사회 좀 봐 주라."

"뭐, 사회? 총각한테? 걱정은 말로 다 하고 염장질이냐? 못 해, 아니 안 해."

결국 나는 그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봤다. 이날은 사회를 보는 내내 가슴 한 켠이 몹시 아려왔다. 특히, 신랑 신부의 행진에 앞서 '신부 이름을 외치고 만세 삼창'을 시킬 때는 대개 신랑을 놀리느라 장난기가 발동하기 마련인데 그때는 여느 때와는 달리 서글펐다. 39살 총각이 신랑을 놀리고 있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이라니.

오래 전,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처음 보며 부러움이 가득했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함들이를 처음 하며 신부의 집 앞 골목길에서 신부의 친구들과 밀고 당기며 유쾌했던 기억 역시 새록새록 하다. 결혼한 친구의 집들이에서 친구들끼리 어울리며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던 기억도 생생하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결혼하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30대 중반이 지나면서부터는 내 한 몸 보살피기도 힘든데 애꿎은 여자 고생시켜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게다가 회사 운영도 제대로 못 하는데 결혼은 무슨 결혼이냐고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결혼을 생각하기에는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너무나 벅찼던 게 사실이었다.

수많은 함들이와 결혼식, 피로연, 집들이를 경험한 데 더해 친구들 아이의 돌잔치까지 숱하게 치른 지금 결혼은 더 이상 장밋빛 환상으로 남아 있지 않다. 많은 친구들에게서 결혼생활의 힘겨움을 그대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 안 한 네가 부럽다'고 진담 가득 섞인 하소연을 하거나 '능력 되면 혼자 살아도 된다'고 아예 대놓고 결혼을 반대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결혼한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서도 즐겁게 결혼생활을 하거나 아들과 딸을 네 명씩이나 낳고 든든해하거나 매년 여름휴가 때면 부부가 함께 해외 여행을 다녀오는 친구들을 볼 때면 결혼에 대한 동경이 일어나기도 한다.

결혼, 사랑과 효도를 함께 이룰 수 있을까

지난 13일 열린 2010년 다음 라이프 온 어워드 시상식에서 소녀시대가 2010년 올해의 뮤직상을 받았다. 이날 사회는 2011년 결혼하기를 소망한다는 방송인 김제동씨 사회로 진행됐다.
 지난 13일 열린 2010년 다음 라이프 온 어워드 시상식에서 소녀시대가 2010년 올해의 뮤직상을 받았다. 이날 사회는 2011년 결혼하기를 소망한다는 방송인 김제동씨 사회로 진행됐다.
ⓒ 유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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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나는 결혼에 대한 조건을 크게 따져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특히 남자의 입장에서는 적어도 한 여자는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이유로 매년 새해가 되면 습관처럼 결혼을 해야지 다짐하면서도 몇 년째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생활이 불편하거나 못 견디게 외롭지는 않다. 주변에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총각 친구를 만나 술을 한잔하거나, 텔레비전을 틀고 인터넷을 열어 '소녀시대'와 '카라'와 같은 '걸 그룹' 들의 노래를 듣는 재미는 '삼촌 팬'의 입장에서는 꽤 쏠쏠하다. 능력 되면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사랑을 하지 않아서 결혼을 못했던 것은 아니다. 10대 때 풋풋한 첫사랑 연인과는 너무 어렸기에 감히 결혼을 꿈꾸지 못했다. 20대 때 불꽃 같은 사랑의 연인과는 아직 학생이었기에 결혼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런데 30대 때 성숙한 사랑의 연인과도 결혼을 이루지 못했다. 뜨거운 가슴은 남아 있었지만, 그 뜨거움보다 경제적인 생활의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차가운 이성이 앞서나간 탓이었다.

그런데, '차가운 이성, 경제적인 여건' 등의 말을 하면 결혼에 찬성하는 친구들은 이렇게 질책하곤 한다.

"그래서 네가 결혼을 못하는 거야. 언제까지 뜨거운 가슴 타령할 거야. 결혼은 현실이야, 현실. 첫사랑처럼 한눈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랑을 또 할 수 있을 것 같아? 네 나이가 몇인데. 제발 정신 좀 차려."

결혼반지.
 결혼반지.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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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결혼은 현실일지라도 여전히 가슴 뭉클한 사랑을 꿈꾼다. 아니, 믿는다. 나 자신을 제대로 챙기고 한 여자를 올곧게 사랑할 수 있을 때, 그 사랑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뜨거워질 수 있을 때 한 남자로서 한 여자를 맞이하며 진지하게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결혼을 통해서 완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고 살아가는 것은 사랑을 완성해 가는 과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칠순을 넘기신 아버지와 올해 칠순이 되시는 어머니께 결혼해서 손자, 손녀를 안겨드리는 것도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지 않을까.

2011년 새해 나는 또다시 사랑과 효도를 함께 이룰 결혼을 여전히 생각으로만 계획하고 있다.


태그:#결혼, #노총각, #결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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