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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석탑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오층석탑
▲ 오층석탑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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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탑의 우아하고 선이 아름다운 점과, 신라탑의 장중하고 무게가 있는 이점만을 골라 탑을 조성하였다.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에 있는 고찰 무량사 오층석탑이다. 무량사는 통일신라 문성왕(서기 839~856) 때, 범일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무량사는 고려 초기에 대중창을 하여 30여 동의 요사와 12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모두 전소가 된 것을, 조선 인조(서기 1623~1649) 때 진묵대사가 중수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절이다. 무량사를 찾은 날은 절 경내에 하얀 눈이 꽤 많이 쌓여 있었다. 경내에는 사람들이 다닐만한 길만 치워 놓았을 정도이고, 탑 주변에도 눈이 하얗게 쌓여있었다.

상단 석탑의 상단부분. 처마끝이 날렵해 기억에 남는다
▲ 상단 석탑의 상단부분. 처마끝이 날렵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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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층 몸돌 몸돌에는 우주를 표현하였다.
▲ 일층 몸돌 몸돌에는 우주를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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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 기단부에는 우주와 탱주를 다른 석재를 이용해 표현하였다
▲ 기단 기단부에는 우주와 탱주를 다른 석재를 이용해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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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억에 남아있는 무량사

무량사는 인연이 깊은 절이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가 1993년이었으니, 올 해로 19년 째 이곳을 몇 번이고 찾아왔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명창이신 고 박동진 선생님과 동행을 했었다. 판소리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서 들린 곳이었기에, 남다른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때도 무량사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기억이 난다. 다만 김창진 명창이 10년 세월을 득음을 위해 독공을 했다는 삼성각 앞에, 또 한 채의 요사가 자리를 하고 있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무량사는 늘 정겨운 곳이다. 전국의 사찰을 문화재 답사를 위해 찾아 다니지만, 가끔은 너무나 많은 변화로 인해 당황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측면 측면에서 본 무량사 오층석탑. 균형이 잘 잡혀있다
▲ 측면 측면에서 본 무량사 오층석탑. 균형이 잘 잡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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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균형 잡힌 오층석탑   

무량사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보물인 석등과 오층석탑, 그리고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극락전이 일렬로 서 있다. 맨앞에는 보물 제233호인 석등이 서 있고, 그 뒤편에 보물 제185호인 오층석탑이 자리한다. 그 뒤편에는 중층으로 지어진 보물인 극락전의 웅장한 자태를 볼 수가 있다.

눈이 쌓인 한 겨울의 오층석탑. 이 무량사 오층석탑은 고려 전기에 조성한 탑이다. 이 탑은 백제탑의 아름다움과, 신라탑의 장중함을 이어받아 조성한 것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 기단은 잘 다듬은 석재를 이용을 했다. 기단부에 조성한 석재의 면을 둥글게 깎아내어,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상륜부 상륜부에는 복발 등이 남아있다
▲ 상륜부 상륜부에는 복발 등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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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개석 지붕돌인 옥개석은 여러 장으로 조성하였다
▲ 옥개석 지붕돌인 옥개석은 여러 장으로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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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오층석탑은 한마디로 균형이 잘 잡혀있다. 그런 점이 안정감이 보이기도 한다. 몸돌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덮개돌인 옥개석과 몸돌의 줄어드는 비례가 알맞아, 어디 하나 군더더기가 보이지를 않는다. 다만 옥개석의 넓이가 몸돌에 비해 넓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런 것이 이 탑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만큼 낮은 몸돌을 옥개석이 무게감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탑, 어디한 곳 흠잡을 데가 없어

무량사 오층석탑을 보고 있노라면, 백제와 신라의 문물이 합쳐 낸 문화의 극대화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두 고대국가의 서로 다른 문화가 이곳에서 만나, 석조문화의 정점을 이루었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무량사 오층석탑은 볼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만든다.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마저도 추운 줄을 모르니 말이다.

기단부 상단에는 우주와 탱주를 서로 다른 돌을 이용해 표현을 했다. 그리고 아래 지석과 위 덮개석의 면을 둥글게 깎아, 석재가 주는 딱딱함을 없앴다. 그 위에 몸돌은 층이 올라 갈수록 줄어들면서, 적당한 안정감을 주고 있다. 몸돌을 덮고 있는 덮개돌은 아랫면을 홈을 내어, 몸돌이 겉돌지 않게 조성을 하였다. 몇 장의 돌을 이용해 옥개석을 조성하였다는 것도 특이하다.

몸돌 몸돌보다 지붕을 덮고 있는 옥개석의 비례가 큰 것이 오히려 안정감이 있게 한다
▲ 몸돌 몸돌보다 지붕을 덮고 있는 옥개석의 비례가 큰 것이 오히려 안정감이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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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날렵하게 치켜진 처마의 선이 아름답다
▲ 처마 날렵하게 치켜진 처마의 선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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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오층석탑은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많이 닮았다. 몸돌이 이층부터 차츰 줄어든다거나, 받침돌의 면을 둥글게 조성한 것들이 그러하다. 아마도 이 오층석탑을 조성한 장인이 백제와 신라의 많은 탑을 돌아본 후, 이 탑을 조성한 듯싶다. 무량사 오층석탑의 아름다운 선의 정점은, 바로 옥개석의 처마 끝에서 보인다.

한 장의 돌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양편의 처마 끝이 날아오르 듯 위로 적당히 솟아있는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선을 표현할 수가 있었을까? 많이 치솟지도 않고, 그렇다고 처지지도 않게 솟아오른 처마 끝. 그저 석탑 하나에도 이렇게 아름다움을 표현 할 수 있었던 선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언제 이런 감탄이 끝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발길이 닿는 날까지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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