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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대리운전 기사인 박대리(가명, 50대)씨는 손님의 의뢰를 받고 어느 식당 골목으로 갔다. 그 골목은 폭이 5m 정도로 대로에서 들어오기만 하는 일방통행 길이었다. 곳곳에는 차량이 세워져 있었고 사람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차 열쇠를 건네 받고 먼저 나온 박씨는 차가 주차된 위치가 사람들 통행에 방해가 되고 있어서 차를 약간 옮겨야했다. 그는 변속기를 주차(P)에서 주행(D)로 바꾼 후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었다.

그 순간, 차는 일방통행 골목길을 역주행하면서 쏜살같이 달렸다. 그 와중에 승용차 1대를 들이받았고 행인들 여러 명을 치고 말았다. 차는 대로변에 세워진 또다른 차를 들이받고서야 멈춰섰다. 골목길에서 대로변까지 160m가 넘는 길을 단 몇 초만에 빠져나간 그는 공포에 휩싸였다.

박씨는 경찰과 검찰에서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했지만 믿어주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차량이 스스로 급가속되어 진행하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차량 조작 실수로 일어난 사고로 잠정 결론 내렸다. 박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업무상 과실)으로 기소됐다.

최근 급발진 사고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말(15일)에는 어느 외제차가 벽을 뚫고 나오는 장면이 방송돼 급발진 논란을 불러왔다. 몇 년 전에는 급발진 사고로 가족을 잃은 한 유명 연예인이 차량 결함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자동차 회사들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운전자의 실수일 뿐 구조적 결함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완강한 태도를 보여왔다. 법원의 판결은 어땠을까. 민사와 형사 사건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기자 주 : 급발진 사고 자체가 민감한 사안이라 글이 다소 길어지게 되었다.오해를 피하기 위해 판례에 나오는 표현도 문장을 나누거나 쉬운 말로 고친 것 외에는 원문을 최대한 살렸다.) 

형사재판 "통제불능의 불가항력적인 급발진 가능성" 인정

은행으로 돌진한 자동차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그랜저 TG승용차가 2010년 11월 10일 익산시 영등동 국민은행 점포로 돌진해 8명이 부상했다.
▲ 은행으로 돌진한 자동차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그랜저 TG승용차가 2010년 11월 10일 익산시 영등동 국민은행 점포로 돌진해 8명이 부상했다. (자료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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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례 1]에서 소개한 형사 판결부터 펼쳐보자. 당시 골목 상황은 여기저기 주차된 차와 행인들 때문에 차량 1대가 겨우 지나갈까 말까 할 정도였다. 그런데 목격자들은 한결같이 사고 차량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질주하였다고 진술하고 있고 차량 밑부분에서 불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법원은 현장 CCTV를 보다가 사고 차량에 브레이크등과 후진등이 켜져 있던 사실도 발견했다.

사고 직후 박씨는 음주, 약물 검사를 받았으나 모두 정상으로 판명되었다. 역주행으로 사고를 낼만한 이유도 없었다. 박씨는 법정에서 "내가 한 일이라곤 사람들이 걷는데 방해가 되어 차를 약간 옮기기 위해 시동을 건 일 밖에 없다. 운전경력 20년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하였다.   

법원은 "여러 사정에 비추어볼 때 박씨가 차량을 운전하여 의도적으로 역주행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법원은 오히려 "차량 자체에서 발생한, 박씨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의해 상상하기 어려운 속력의 역주행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며 "박씨에게 이 사고 방지를 기대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미리 방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박씨는 2008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무죄가 확정됨으로써 기나긴 재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법원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사고를 냈다고 판단했을 뿐 자동차의 결함 유무나 급발진 원인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민사사건에서는 어떨까. 최근 차량 결함을 주장하며 급발진 사고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형사사건은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밝히지 못하면 무죄가 된다. 이와 달리 민사사건은 소비자가 자동차의 결함과 제조사의 책임을 밝혀야 한다. 형사사건보다 더욱 엄격한 증거를 요구할 수 밖에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애초에 힘든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에 입증 책임있는 민사소송은 힘든 싸움

원래 물건에 하자(결함)가 있다는 사실은 주장하는 사람(자동차 구매자)이 밝히는 게 맞다. 이것을 입증책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반 소비자들은 첨단 기술과 부품을 사용하는 자동차의 하자를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아주 어려운 처지에 있다. 그렇다면 설사 자동차에 결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는 소송에서 아주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판례는 자동차처럼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제품에 대해 입증책임의 완화를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례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고도의 기술이 집약되어 대량 생산하는 제품의 생산과정은 전문가인 제조업자만이 알 수 있다. 일반 소비자가 제품에 어떤 결함이 있고, 이 때문에 어떤 손해가 발생했는지 과학적·기술적으로 입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그 제품을 정상 사용하는 상태에서 사고가 난 경우 소비자는 그 사고가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했다는 점과 과실 없이는 통상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정만 증명하도록 하자.

대신, 제조업자 측에서 제품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걸 입증하게 한다. 제조사가 입증 못하면 제품에 결함이 있고 그 결함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추정하여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입증책임을 완화했다고는 하나, 자동차 결함을 밝혀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자동차 자체가 완전무결한 제품이어서일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급발진 사고를 전부 운전자의 잘못으로 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다.

[사례 2] 주차왕(가명, 50대)씨는 건물의 주차관리원으로 입주자들의 차를 주차하거나 이동시키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는 D사 차량을 이동시키기 위해 시동을 켜고 자동변속기를 주차에서 전진으로 조작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차가 앞으로 나가면서 주차된 다른 차를 들이받고 벽까지 파손하였다.

주씨는 D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자동차의 제조․ 설계상의 결함을 주장했다. 전자파 간섭 등의 이유로 엔진제어장치가 작동불량이어서  급발진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법원은 주씨의 주장을 받아주지 않았다. '자동차가 급발진하려면 엔진 회전수 4천 정도에서 스로틀밸브가 완전히 열리고 브레이크 제동이 되지 않는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자동차 공학상 운전자의 뜻과 무관하게 가속 페달을 밟지 않은 상태에서 급발진이 일어나기는 어렵다.'

"급발진 사고 운전미숙이지, 차량 결함 아니다"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앞 해군 아파트 주차장은 평일 낮 시간인데도 차가 가득하다.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들. 급발진 사고 시 정말 자동차는 죄가 없을까? (자료 사진)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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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법원은 미국, 캐나다 등 다른 나라와 국내 연구조사(1998년 소비자보호원, 1999년 교통안전공단 조사)결과를 인용하며 운전자의 조작 잘못 없이는 급발진이 생길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주씨가 비정상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인(미루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주씨는 "오랜 운전경력에 처음 급발진 사고가 났으니 제조·설계 과정의 결함으로 추정되어야 한다"거나  "자동차 회사가 더 안전한 설계를 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페달 오조작 사고이므로 차량 결함을 인정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대법원도 "입증 책임 완화의 법리에 비추어보아도 자동차의 결함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더 나아가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점도 입증되지 않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2004년의 일이다.

'차량 급발진사고는 운전 미숙이나 페달을 잘못 조작한 것이 원인이지 차량 결함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법원과 자동차 회사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2009년 자동차의 결함을 인정하는 1심 판결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보통 급발진 사고는 주차 또는 출발시 기어를 변속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발생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주행중 발생하였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법원 "자동차 결함 급발진" 인정했지만 항소심 뒤집어

[사례 3] 천만금(가명, 70대)씨는 외제차 수입회사인 H사를 통해 6천만원대의 외제승용차를 구입했다. 차를 산 뒤 열흘 정도 지나 외출을 하게 되었다. 천씨는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운전하여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우회전을 하였다. 그 순간 차가 굉음을 내며 30m 가량 질주하여 화단을 타고 넘어 건물 외벽에 충돌한 뒤 멈췄다. 이 사고로 승용차 앞면 덮개와 엔진이 파손되었다. 천씨는 차량 결함을 주장하며 H사에게 새차를 주거나 돈을 물어달라고 소송을 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이례적으로 천씨의 손을 들어줬다. 근거는 이랬다.

▲ 천씨는 교통사고를 낸 적이 없고 당시 과속할 이유도 없었다 ▲ 보통 급발진 사고는 시동을 건 직후 발생하는데 이 사고는 주행중에 일어나서 과실이 발생할 여지가 적다 ▲ 승용차가 고속상태라고 굉음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 가속 페달을 최대로 밟아 벽으로 돌진했다는 건 건전한 상식에 맞지 않다.

이에 대해 H사는 "차의 시스템상 가속페달을 밟지 않는 이상 가속될 수 없고, 제어장치에 사고발생 징후가 전혀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운전자 과실이 명백하다"고 맞섰다. 법원은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전자제품의 경우 때때로 규명하기 어려운 원인으로 오작동이 발생하기도 한다"며 "승용차 하자로 생긴 사고로 추인함이 타당하다"고 결론내렸다.

자동차도 오류와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판결로 천씨는 새차를 받게 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항소심은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정말로 자동차는 아무런 결함이 없을까   

항소심(서울중앙지법)은 또다시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오인해서 생긴 사고'로 보았다.

작년 항소심 법원은 ▲ 전자제어장치의 오류를 인정할 증거가 없고 ▲ 차량 엔진이나 제동장치에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 자체 진단시스템에도 이상 징후 진단 코드가 저장되지 않은 사실을 들었다.

게다가 ▲ 엄청난 굉음이 통제불능의 과다한 엔진공회전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 차량을 인도받은 지 얼마 안되어 사고가 난 데다 천씨의 나이가 70대인 점을 감안하여 운전미숙에 무게를 두었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지금까지 차량 급발진 사고 재판을 보면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지 않는 한 차량 급발진은 없다"는 자동차 회사의 입장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정말로 자동차는 아무런 결함이 없을까. 급발진 사고는 전적으로 사람의 잘못일까.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까. 급발진 사고와 관련하여 전문가들의 정밀조사를 토대로 진실이 가려져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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