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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형방청 좌측날개채 앞으로는 툇마루를 놓아 사랑채와 같은 역할을 한다
▲ 홍산형방청 좌측날개채 앞으로는 툇마루를 놓아 사랑채와 같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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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방청'이란 조선시대 관아에서 치안업무를 담당하던 하급관리들이 묵던 곳이다. 충남 부여군 홍산면에 소재한 홍산현 동헌과 형방청은 조금 떨어져 있는 홍산객사와 더불어 2007년 7월 사적 제481호로 지정이 되었다. 홍산현은 백제시대에는 대산현이었다. 신라와 고려를 거치면서 여러 명칭으로 불리다가, 조선조 태종 때 홍산현이 되었다.

홍산현 관아를 찾아가 중층 누각으로 지은 정문을 살펴보니, 문이 열려있다. 원래 이 관아의 건물은 부소산성으로 옮겨 '영월루'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다. 관아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에 충남 유형문화재 제178호로 지정이 된 '홍산형방청'이 자리한다. 이 건물을 <이정우 가옥>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홍산형방청'으로 지정이 되어있다.

형방청 ㄷ 자형으로 꾸민 형방청은 현재 충남 유형문화재 제178호이다
▲ 형방청 ㄷ 자형으로 꾸민 형방청은 현재 충남 유형문화재 제178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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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채와 날개채 몸채를 바라보고 우측 날개채와 몸채 앞으로 좁은 툇마루를 놓았다
▲ 몸채와 날개채 몸채를 바라보고 우측 날개채와 몸채 앞으로 좁은 툇마루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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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가옥을 몰라?

현재 홍산형방청이 왜 이정우 가옥이라고 불리는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아마도 한때 이 집에서 이정우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부여군의 문화재 안내에는 이정우가옥인 형방청이 <충남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183-1>에 소재하고 있다고 나와있다.

이 형방청의 관아건물 말고, 또 다른 가옥이 있는 것인지 홍산면에 들려 북촌리를 향했다. 이정우 가옥이 있다는 곳을 찾아 아무리 둘러보고,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그런 집은 모른다는 대답이다. 한 시간 이상을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장님 댁을 찾아 물어도 그런 집은 모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답답한 일도 있다. 할 수 없이 집을 찾는 것을 포기를 하고 홍산 동헌으로 발길을 돌렸다.

홍산 동헌이 있는 곳은 <충남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 187번지>이다. 그런데 이곳에 가니, 관아 앞에 안내판이 있고, 관아 건물 한 편에 이정우 가옥이라는 집이 보인다. 어떻게 한 관아 안에 있는 건물이 남촌과 북촌으로 갈라질 수가 있을까? 막상 그렇게 찾으려고 돌아다닌 집을 찾고 보니 허탈감이 든다.

툇마루 좌측 날개채 앞에는 넓은 툇마루를 놓았다
▲ 툇마루 좌측 날개채 앞에는 넓은 툇마루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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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문 부엌에서 됫마루로 나가 방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동선을 구성했다
▲ 쪽문 부엌에서 됫마루로 나가 방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동선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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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을 담당하는 관리들이 묵던 형방청            

이정우 가옥은 조선시대 홍산현의 관아 건물 중의 하나인 '형방청(刑房廳)'이다. 현재는 홍산형방청이라고 부른다. 이 건물은 고종 8년인 1871년 고쳐 지은 민가풍의 목조건물이다. 당시의 현액명은 '비홍추청'이라고 불렀단다. 10칸 크기의 ㄷ자형 동향집으로, 중앙 대청과 남쪽 날개채는 마루를 깔았었다. 북쪽 안채에는 한 칸짜리 온돌방 2개를 들였다.

형방청은 자연석 주춧돌에 몸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구성하였고, 좌우 날개채는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꾸몄다. 몸채의 지붕 용마루를 좌우 날개채보다 높게 놓았다. 몸채의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꾸미고, 측면에는 부엌을 두었다. 좌, 우측의 날개채에는 현재는 각각 2개의 방을 들였다.

부엌 날개채 끝에 부엌을 두었다. 좁은 면적이지만 쓰임새 있게 지은 집이다
▲ 부엌 날개채 끝에 부엌을 두었다. 좁은 면적이지만 쓰임새 있게 지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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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문 부엌엣거 몸채로 출입할 수 있도록 낸 문
▲ 부엌 문 부엌엣거 몸채로 출입할 수 있도록 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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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방청은 팔작지붕으로 처마는 부연이 없는 홑처마이다. 조선시대 관아건물 중 형방청은 그 예가 희소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많은 관아 건물 중 이렇게 보존이 잘 되어 있었던 것도, 사람이 기거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형방청은 건물연대, 중수기록, 형태 등이 온전히 남아있어, 조선시대 관아건물의 일면을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ㄷ 자 건물 한 동에 다양한 쓰임새가 돋보여

이정우 가옥이라고 불렀던 홍산형방청은 단 한 동의 건물이지만,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몸채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좌측에 딸린 날개채는 밖으로 툇마루를 길게 놓았다. 그리고 그 끝에는 부엌이 딸려있다. 아마도 이 좌측 날개채를 사랑의 용도로 사용하였던 것 같다. 몸채 우측의 날개채는 두 칸을 방으로 들였으며, 끝 방의 밖으로는 다락이 돌출되어 있다.

몸채와 우측 날개채의 앞으로는 좁은 툇마루를 놓았다. 좌측 날개채의 툇마루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곳은 문을 내어, 출입이 편리하도록 하였다. 부엌문은 양편으로 내어 환기를 돕고, 몸채로 출입하기에 편리하게 하였다. 한 동의 건물을 이렇게 용도가 다양하게 꾸민 집은 보기가 힘들다. 아마도 이곳에서 생활을 하던 관리들의 편의를 생각해서인지.

집뒤 집 뒤편에는 낮은 굴뚝이 있다. 평범한 민가형태의 집이다
▲ 집뒤 집 뒤편에는 낮은 굴뚝이 있다. 평범한 민가형태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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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택을 돌아보았지만, 홍산형방청과 같은 구조라면, 이 집 한 채만 갖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가 있을 것만 같다. 어렵게 찾아다닌 때문인지, 형방청의 이모저모가 눈에 들어온다. 좁지만 용도가 다양한 홍산형방청. 보존상태도 양호하기에 더욱 돌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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