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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시내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잤다. 다음날 칭다오에 가기 전 자금성에 잠시 들리기로 했다. 잠시라고 했지만 자금성을 휙 둘러보는 데만 족히 두세 시간은 걸린다는 것을 예전의 방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천안문광장에 내리지 않고 차로 계속 이동했다. 옛 북경성 내성의 남문이었던 정양문이 차창 밖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천안문광장이 이어진다. 지금은 성벽도 없이 문루만 남아 있다. 천안문광장 좌우로 인민대회당 등의 국가기관 건물들이 보인다.

 

 

일행은 천안문을 통하지 않고 자금성 동문인 동화문으로 걸어갔다. 자금성 성벽을 따라 깊게 파인 해자인 '호성하'를 따라 오문으로 향했다. 10m나 되는 높은 성벽을 따라 폭이 50여 미터에 달하는 호성하가 고궁을 둘러싸고 있다. 그 자체로 호수인 셈이다.

 

자금성의 네 모퉁이에는 각루가 있다. 각루는 웅장하지만 삭막한 자금성에서 그나마 아름다운 건물이다. 천안문을 뒤로하고 오문 앞에 섰다. 이곳에 두 번 섰으면서도 숨 막힐 듯한 웅장함에 거듭 놀라게 된다.

 

 

자금성을 출입하는 문은 모두 4개가 있다. 동쪽의 동화문, 서쪽의 서화문, 남쪽의 오문, 북쪽의 신무문이 그것이다. 흔히들 알고 있는 천안문은 고궁을 둘러싼 황성의 남문에 해당하고 고궁 자체의 정문은 '오문'이다.

 

 

오문은 남문이므로 12지 가운데 오(午) 자를 썼다. 자금성에 들어가기 전에 이곳에서 입장권을 끊어야 한다. 공안원들이 수시로 오가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 변함이 없다.

 

 

정문인 오문의 높이는 약 37m에 이른다. 자색의 높은 성벽 위에 다섯 개의 누각이 있어 흔히 '오봉루'라고 한다. 오봉루는 '요凹'자의 위아래가 뒤집힌 형상이다. 예전에는 큰 기러기가 날개를 펴고 나는 형상이라고 하여 '안시루(雁翅樓)'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가운데 문루전은 그 길이만 해도 60여 미터에 달하는 9칸의 구조이고 옆면이 5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자의 자리를 말하는 '구오지존(九五之尊)'으로 황제의 궁궐을 나타낸다. 동서 양쪽으로는 13칸의 건물인 낭무가 뻗어 있어 오문의 웅장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오문은 우리의 경복궁과 비교하면 흥례문과 흡사하다. 궁궐 배치에 따르면 천안문은 광화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경복궁에 근정문과 정전인 근정전이 있는 것처럼 자금성에도 태화문과 중심건물인 태화전이 있다.

 

오문에서는 역서를 반포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군대가 개선할 때에 황체가 친히 오문에 나와 포로헌납의 예를 받았다. 지금은 이곳에서 입장권만 구입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예전에는 사신들이 오문 밖에서 조회하였다.

 

오문에는 5개의 문이 있다. 앞에서 보면 3개의 문만 보이지만 뒤에서 보면 5개의 문이 보인다. 정중앙의 문은 오로지 황제만 출입할 수 있었다. 황제 이외에 이 문을 출입할 수 있는 특수한 경우가 있는데, 황후가 결혼하기 위해 황궁에 들어올 때 한 번 이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혹은 과거시험의 마지막 단계인 전시에서 1등인 장원, 2등인 방안, 3등인 탐화에 합격한 사람들이 궁을 나갈 때 이 문으로 나갈 수 있었다.

 

 

중앙문 좌우의 문도 그 용도가 확연히 구분되어 있다. 동쪽문은 평상시 문무백관들이 조회를 위하여 출입하였고, 서쪽문은 황실의 왕공이 출입하였다. 오문의 좌우 날개 부분에 있는 측문은 평상시에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궁중 조회를 치룰 때 사용하였는데 동측문은 문관이, 서측문은 무관이 이용하였다. 혹은 황제가 과거인 전시를 거행할 때 과거 응시자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배열하여 홀수는 동측문으로, 짝수는 서측문으로 출입하게 하였다.

 

 

오문을 통과하면 금수교를 건너 태화문을 지나 자금성의 중심 건물인 태화전에 이르게 된다. 오문 앞에 서니 인간적인 매력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어떤 위압감을 느끼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자금성을 둘러보기 전 오문에서 신만이 산다는 자금성의 비인간적인 면을 예단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금성, #오문, #천안문, #정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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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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