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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니 '삼국통일'이니 하는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지만,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무심코 사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국내성의 위치. 별표로 표시된 부분이 국내성이다. 그림은 4세기 때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고등학교 <국사>에 수록되어 있다.
 고구려, 부여, 신라, 백제, 가야의 모습
ⓒ 교육인적자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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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대 왕국들의 성립 및 멸망 시점을 따져보면, '삼국'이란 용어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것은 김부식이 제시한 고구려·백제·신라의 건국 연도가 맞든 안 맞든 간에 마찬가지다.

먼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제시한 고구려·백제·신라의 건국 연도가 진실하다는 가정 하에 '삼국'이란 용어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해보자.

 김부식의 주장이 진실이라 해도, '삼국시대'는 98년간에 지나지 않는다.
 김부식의 주장이 진실이라 해도, '삼국시대'는 98년간에 지나지 않는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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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공존했던 기간 452년

그래프 1>은 '신라는 기원전 57년,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었다는 김부식의 주장을 근거로 작성했다. 이 표는 고조선 이후의 고대왕국들 중에서 상당 규모의 영토를 보유했던 주요 국가들의 존속기간을 보여주고 있다. 김부식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다 하더라도, '삼국'이란 용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를 가리키는 5개의 막대에서 공통적인 부분은 A-B 구간이다. 이 기간은 가야가 건국된 때(서기 42년)로부터 부여가 멸망된 때(494년)까지다. 무려 452년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그래프에서 나타나듯이, 이 시기는 '오국시대'라고 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이 시기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삼국'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한데도, 많은 교과서나 연구서·논문 등에서는 여전히 '삼국'을 사용하고 있다.

부여가 멸망한 때부터 가야가 멸망한 때(562년)까지의 63년간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존속한 기간이다. 그래프의 B-C 구간이다. 이 시기를 굳이 명명하자면, '사국시대'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이때까지도 '삼국'이라 할 만한 현상은 전혀 출현하지 않았다.

'삼국'이란 표현을 써도 무방한 기간은 C-D 구간뿐이다. 가야가 멸망한 때부터 백제가 멸망한 때(660년)까지다. 이 시기에는 고구려·백제·신라만 존재했다. 명실상부한 삼국시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간은 98년에 불과하다.

452년간인 A-B 구간(오국시대)과 비교할 때에, 98년간인 C-D 구간(삼국시대)은 턱없이 짧다. 그런데도 많은 서적에서는 신라 건국 때부터 고구려 멸망 때까지를 '삼국시대'라고 부르고 있으니, 완전히 엉터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시대'란 용어만 부적절한 게 아니라 '삼국통일'이란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오국시대나 사국시대를 종결시킨 정치적 사건을 어떻게 '삼국통일'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신라가 멸망시킨 대상이 백제·고구려이므로, 삼국통일이라 부른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라가 멸망시킨 대상은 가야·백제·고구려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기준으로 말한다면 '삼국통일'이 아니라 '사국통일'이라 해야 한다.

다음으로, '신라는 기원전 57년,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었다는 김부식의 주장이 허위라는 전제 하에 주요 국가들의 존속기간을 재검토해보자. <그래프 2>는 이러한 전제 하에 작성된 것이다. 

 김부식의 주장이 맞든 안 맞든 간에, '삼국시대'는 98년간에 불과하다.
 김부식의 주장이 맞든 안 맞든 간에, '삼국시대'는 98년간에 불과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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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삼국통일', 적절한 표현 맞나?

문헌들을 근거로 할 때, 고구려는 최소 기원전 233년 이전에 건국되었다. 고조선 멸망 당시에 이미 고구려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한서> '지리지', 고구려가 기원전 37년으로부터 최소 150년 이전에 건국되었음을 추론케 하는 '광개토대왕비문', 서기 668년에 당나라 고종과 가언충이 '올해가 고구려 건국 900주년'이라는 내용의 대화를 했다는 사실이 기록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 편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한편, 북한 학계에서는 고고학적 유물을 근거로 고구려 성립 연도를 기원전 277년으로 파악하고 있다(참고: 2010년 11월 8일 자 기사 '백제의 건국연대는 조작되었다...한 200년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따르면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부여는 기원전 233년 이전의 어느 시점부터 존재했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서는 소서노·비류·온조가 고구려 시조 고주몽과의 반목 때문에 고구려를 버리고 백제를 세웠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백제는 고구려보다 '약간 늦게' 생긴 나라다. 가야의 경우에는, 이 나라가 서기 42년에 건국되었다는 <가락국기>의 내용을 뒤집을 만한 별다른 사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들을 토대로 <그래프 2>를 작성했다.

A 시점 이후만 놓고 보면, <그래프 2>는 <그래프 1>과 똑같다. 이 경우에도 진정한 의미의 '삼국'을 말할 수 있는 기간은 가야 멸망 이후부터 백제 멸망 이전까지의 98년간이다. 그래서 <그래프 1>과 마찬가지로 <그래프 2>를 통해서도, '삼국시대'니 '삼국통일'이니 하는 표현들이 부적합함을 알 수 있다.

육안상으로 나타나듯이, <그래프 2>가 <그래프 1>과 다른 부분은 'A 이전 구간'이다. 고구려·백제의 건국 연도가 상향 조정되다 보니, <그래프 1>에 비해 A 이전 구간이 크게 변했다. 하지만 A 이전 구간에서도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란 표현을 사용할 만한 여지는 전혀 없다.

이와 같이 어느 경우를 보더라도 '삼국'을 말할 수 있는 기간은 98년간에 지나지 않는데도,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근 1000년의 역사를 '삼국'이라는 틀로 설명했다. 김부식만 욕할 게 아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삼국사기>의 오류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무심코 '삼국'이란 표현을 쓸 때가 많다. 국사 교과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역사는 우리의 과거다. 과거를 정밀하게 인식해야만, 현재와 미래 역시 정밀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를 정밀하게 인식하는 일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보다 정밀하게 구축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다닌 초등학교가 '삼국 초등학교'인지 '사국 초등학교'인지 '오국 초등학교'인지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런 바보 같은 '놈'이 어디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현재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우리 자신의 이런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고대사의 허술한 부분들을 가차없이 도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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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