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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신년회에 지친 이들이여! 오늘은 가까운 시장에 나가 값싼 겨울냉이를 사서 냉이버섯된장국을 끓여 드시라
▲ 냉이버섯된장국 송년회, 신년회에 지친 이들이여! 오늘은 가까운 시장에 나가 값싼 겨울냉이를 사서 냉이버섯된장국을 끓여 드시라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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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 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

냉이, 하면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는 계절이 봄이다. 봄, 하면 절로 흥얼거려지는 노래는 김태오가 노랫말을 짓고, 작곡가 박태현이 곡을 붙인 '봄맞이 가자' 1절이다. 징글징글하게 춥고, 징글징글하게 눈이 많이 내리는 이 땡겨울, '갑자기 웬 냉이와 봄 타령을 하냐구?'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질을 하는 분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분은 고향이 남녘이 아니어서 겨울냉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봄이 되어야 냉이를 떠올리는 까닭은 냉이가 그 어느 계절보다 봄에 싱싱하게 자라나 눈에 흔히 띠기 때문이다. 냉이는 겨울을 나는 두해살이 풀이다. 그 이름도 생김새에 따라 참냉이, 다닥냉이, 황새냉이, 꽃다지 등으로 불린다.

남녘냉이는 늦봄에 꽃을 피운 뒤 여름에 그 열매를 맺어 씨앗을 떨군다. 그 씨앗 가운데 성질 급한 몇몇은 가을에 싹을 틔워 마구 웃자라 꽃을 피우기도 한다. 남녘에서는 겨울이 꽤 따뜻하기 때문에 그만큼 겨울을 나는 냉이가 많다는 그 말이다. 남녘에 흔한 겨울냉이는 배추밭이나 무밭 등지에서 땅에 사는 불가사리처럼 납작 엎드려 추위를 견딘다.

이 때문에 혀를 한껏 희롱하는 냉이 맛을 제대로 아는 남녘사람들은 봄냉이보다 가을냉이나 겨울냉이를 찾는다. 고향이 한반도 남녘 끝자락에 있는 경남 창원인 나도 그러하다. 누군가 나에게 가을냉이와 겨울냉이 가운데 하나를 뽑으라면 겨울냉이다. 된장국을 끓이거나 나물을 조물조물 무쳐 먹으면 봄냉이는 풋내가 조금 배어있고, 가을냉이는 좀 드세다. 내 입맛에 그렇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남녘에서는 겨울이 꽤 따뜻하기 때문에 그만큼 겨울을 나는 냉이가 많다
▲ 겨울냉이 남녘에서는 겨울이 꽤 따뜻하기 때문에 그만큼 겨울을 나는 냉이가 많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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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는 겨울을 나는 두해살이 풀이다
▲ 겨울냉이 냉이는 겨울을 나는 두해살이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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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냉이 그기 보약 아이가"

"도랑에 얼음이 꽁꽁 얼어 추버(추워) 죽것는데, 소쿠리에 부엌칼을 담아가꼬 또 오데(어디)로 나가노?"
"겨울냉이 캐러예. 아무리 날이 추버도(추워도) 토까이(토끼) 밥을 굶기모 되겠습니꺼?"
"니 에미한테도 토까이한테 바치는 정성 반만 해봐라."
"그기 무슨 말입니꺼?"
"겨울냉이 그거 캐 오모 토까이한테만 다 주지 말고 니 에미한테도 쪼매 주라 이 말이다. 겨울냉이 가꼬 오랜만에 된장국이나 끼리(끓여) 묵자(먹자). 겨울냉이 그기 보약 아이가."

내가 태어난 자란 곳은 경남 창원이다. 창원은 겨울에도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참 따뜻한 남녘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가을. 매달 4자와 9자가 붙은 날마다 서는 상남장에 갔다가 정말 귀엽고 예쁜 토끼새끼를 팔고 있는 낯선 아주머니를 보았다. 나는 세로로 쭈욱 찢어진 입을 오송송거리고 있는 그 토끼새끼가 너무 앙증스러워 눈과 발을 떼지 못했다.

"아지메! 토까이새끼 한 마리 얼마에 팝니꺼?"
"돈도 없는 쪼맨(조그만) 니가 그걸 알아가꼬 뭐할라꼬?"
"이 토까이새끼 이기 자꾸만 저만 쳐다보고 있다 아입니꺼."
"그 토까이새끼 그기 그리 마음에 드나?"
"야아(예)~"
"인자 날도 점점 추불 낀데(추울 건데) 잘 키울 수 있것나?"

그날, 그렇게 마음씨 좋은 그 아주머니에게서 토끼새끼 한 마리를 공짜로 얻었다. 토끼새끼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내 입도 토끼새끼 입처럼 세로로 쭈욱 찢어지는 듯했다. 나는 그때부터 학교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달려와 토끼새끼가 좋아하는 풀이란 풀은 모두 뜯어와 토끼에게 먹였다.    
 
그때 우리 마을 논둑과 밭, 밭둑 곳곳에는 냉이가 참 많았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 되어도 땅에 바짝 붙은 냉이는 얼어붙지 않아 토끼먹이를 구하기가 쉬웠다. 어머니께서는 땡겨울에 내가 토끼먹이로 겨울냉이를 캐오면 조금 덜어내 향긋하고도 구수한 냉이된장국을 끓여 밥상 위에 올리곤 했다. 어떤 날은 냉이나물을 조물조물 무쳐 김치와 무말랭이, 시래기 국이 놓인 밥상을 향기롭게 만들었다.   

“냉이로 국을 끓여 먹으면 피를 끌어다 간에 들어가게 하고, 눈을 맑게 해준다”
▲ 겨울냉이 “냉이로 국을 끓여 먹으면 피를 끌어다 간에 들어가게 하고, 눈을 맑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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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송송 썬 양파와 대파, 매운고추, 붉은고추, 빻은 마늘, 된장, 고추장, 집간장 등을 마련한다
▲ 냉이버섯된장국 재료 버섯, 송송 썬 양파와 대파, 매운고추, 붉은고추, 빻은 마늘, 된장, 고추장, 집간장 등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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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에 좋은 냉이, 술자리 잦은 사람들 속풀이에 으뜸

"어? 겨울냉이가 여기 있었네. 아주머니! 겨울냉이 이거 한 봉지 얼마씩 해요?"
"어머! 아저씨가 이 겨울냉이 맛을 제대로 아는가 보네. 아까까지 2천 원에 팔았는데, 5백 원 깎아 천5백 원만 줘요."
"한 봉지는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이거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살짝 데치면 얼마 안 돼요."

새해 들어 둘째 날인 2일(일) 저녁 7시. 내가 살고 있는 중랑구 면목동 달셋방 바로 옆에 있는 사가정시장에 나갔다가 겨울냉이 한 봉지를 샀다. 지난해 연말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졌던 송년회에 가서 술을 계속 마신 탓인지 입맛이 별로 없던 그때, 정말 우연찮게 눈에 띤 겨울냉이가 어릴 때 추억과 입맛을 한꺼번에 되돌려놓았기 때문이었다. 

된장국으로 끓여먹으면 속풀이에도 아주 좋고 입맛과 건강까지 챙겨주는 겨울냉이. 조선 허리춤께 명의 허준(1539~1615)이 지은 <동의보감>에도 나오는 냉이. <동의보감>에는 "냉이로 국을 끓여 먹으면 피를 끌어다 간에 들어가게 하고, 눈을 맑게 해준다"고 적혀 있다. 냉이가 그만큼 우리 건강을 알뜰살뜰 지켜주는 보약 같은 채소라는 것이다. 

'아하 이 맛!'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김화성 기자는 "냉이는 간에 좋다. 술꾼들 속 푸는 데 안성맞춤"이라고 썼다. 그는 "냉이는 된장과 궁합이 맞는다. 된장국에 냉이 몇 뿌리만 넣어도 온 집안에 봄 냄새가 가득하다"며 "냉이는 칼슘과 비타민C가 무궁무진하다. 쑥이나 달래보다도 많다. 살짝 데친 뒤 소금과 들기름으로 무쳐 먹어도 맛있다"고 적었다.

냉이뿌리와 잎줄기는 동맥경화 예방에도 좋다. 어디 그뿐이랴. 만성간염과 위궤양, 빈혈, 변비, 당뇨병, 고혈압, 각종 출혈성 질환, 눈 충혈, 이뇨, 감기해열 등에도 좋다고 하니, 어찌 냉이를 멀리할 수 있겠는가. 건강에 자신 없는 사람들은 냉이를 말려 가루로 빻아 새알처럼 빚어 하루에 두세 알씩 먹는 것도 오래 사는 지름길이다.

냉이뿌리와 잎줄기는 동맥경화 예방에도 좋다
▲ 냉이버섯된장국 냉이뿌리와 잎줄기는 동맥경화 예방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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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냉이버섯된장국 먹으며 새로운 희망 품자

"아빠! 이게 무슨 풀이야? 이상하게 생긴 이 풀을 왜 사왔어?"
"응~ 이게 냉이라는 거야. 푸름이 너 '봄맞이 가자'는 동요 알지? 그 노래 가사에 달래 냉이 씀바귀~ 할 때 나오는 그 냉이야. 아빤 요즘 송년회 땜에 술을 쉬지 않고 마셔 속이 많이 쓰려. 그래서 냉이버섯된장국 끓여 속 좀 풀려고 하는 거야"
"아빠! 냉이는 봄에 나는 나물이잖아?"
"그래. 네 말도 맞아. 하지만 냉이는 두 해 살이 풀이기 때문에 겨울을 나. 이게 그 겨울을 나고 있는 겨울냉이라는 거야. 겨울냉이 이게 가장 맛이 좋고 건강에도 좋아."

그날, 사가정시장에서 겨울냉이 한 봉지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냉이를 꺼내 찬물로 깨끗하게 씻었다. 채소를 사오면 늘 그렇게 하듯이 깨끗하게 씻은 그 냉이도 찬물을 받아 막걸리 식초를 서너 방울 떨어뜨린 뒤 30분쯤 담가두었다. 혹 채소에 묻어있을지 모르는 농약이나 미생물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다.   

냉이버섯된장국 끓이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먼저 냄비에 국물멸치와 양파, 다시마, 대파, 매운고추, 마른새우를 넣고 찬물을 부은 뒤 1시간쯤 중간불에 끓여 맛국물을 낸다. 맛국물이 우러나는 동안 찬물에 깨끗이 씻은 냉이와 버섯, 송송 썬 양파와 대파, 매운고추, 붉은고추, 빻은 마늘, 된장, 고추장, 집간장 등을 마련한다.

맛국물이 우러나면 건더기를 모두 건져낸 뒤 된장(3)과 고추장(1)을 풀고, 냉이와 마늘을 올려 센불에서 한소끔 끓여낸다. 냉이버섯된장국이 팔팔 끓으면 버섯과 준비한 모든 재료를 얹어 중간불에서 다시 한번 끓여내 집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끝. 버섯은 입맛에 따라 마련하면 된다. 나는 사가정시장에서 값이 몹시 싼 팽이버섯(3송이 1천 원)과 맛타리버섯(6송이 1천 원)을 넣었다.

"아빠! 어디서 이렇게 향긋하고 구수한 내음이 나?"
"한 그릇 줄까?"
"응. 향기가 너무 좋아 입에 침이 절로 돌아다녀."
"자! 여기 있어."
"......"
"맛이 어때?"
"아빠! 정말 음식 잘 만든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향긋하고 구수해. 시원하기도 하고 뒷맛은 또 아주 깔끔해. 이거 몇 숟가락 떠먹고 있으니까 추위와 감기가 싹 달아나고 금세 봄이 다가오는 것 같애."

신묘년 토끼해 땡겨울. 건강을 지켜주고 입맛까지 사로잡는 겨울냉이. 여기에 면역력을 높이고 혈압을 내리는 것은 물론 항암, 향균작용까지 뛰어나다는 버섯이 포옹했으니 땡겨울 보약이 어찌 따로 있겠는가. 송년회, 신년회에 지친 이들이여! 오늘은 가까운 시장에 나가 값싼 겨울냉이를 사서 냉이버섯된장국을 끓여 드시라. 해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왔듯이, 냉이버섯된장국 한 그릇이 우리 몸과 마음에 남은 묵은 시름을 털어내고 새로운 희망을 꿈틀거리게 도울 것이리라.


태그:#냉이버섯된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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