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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남탕에 들어가면 무슨 죄일까? 방화죄. 이유는 남자의 가슴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란다(미안하다. 새해 벽두부터 오래되고 썰렁한 농담 해서).

이번엔 진담이다. 만일 남자가 여자의 몸을 훔쳐볼 목적으로 여탕에 들어갔다면 무슨 죄일까. 정답은 주거침입죄다. 주거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이런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 조항 중 하나가 주거침입죄다.

작년 연말 서울남부지법에서는 아주 재밌는(?) 판결 하나가 나왔다.

[사례 1] 새벽 2시경 동네를 지나가던 ㄱ(남, 40대)씨. 주택가에서 샤워하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인근 빌라 열린 창문에서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빌라 1층 주차장 쪽으로 들어갔다. 주위 눈치를 살피던 그는 야외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를 밟고 올라가 창문을 통해 20대 여성인 ㄴ씨가 샤워하는 장면을 훔쳐보았다. 깜짝 놀란 ㄴ씨의 비명소리에 주위는 시끄러워졌고 ㄱ씨는 붙잡히고 말았다. 

ㄱ씨는 무슨 죄일까. 검사는 주거침입죄로 기소했지만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왜 일까? (판결은 기사 후반부에 소개하기로 한다. 1심 판결이기 때문에 상급심에서 뒤집어질 가능성도 있으니 모방범죄는 하지 마시길) 일단 주거침입죄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자. 

남자가 여탕에 들어가면 무슨 죄?

먼저 객관식 문제, 다음 중에서 주거침입죄에 해당하는 것을 모두 골라보라.

① A씨는 친구 대신 국가고시를 치르기 위해 감독관의 허락을 받고 시험장에 들어가서 대리시험을 보았다. 
② B씨는 내연관계에 있는 유부녀의 부름을 받고 남편이 출근하고 없는 그녀의 집에 가서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③ C씨는 야간에 다른 사람의 집 창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밀고 쳐다보았다. 
④ D씨는 여자 화장실에 노크하여 여성이 남편인 줄 알고 문을 열어주자 안으로 들어갔다.

정답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우선 주거침입죄가 뭔지 정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형법 319조
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조항을 보니 주거침입죄에서 말하는 주거란 건조물, 선박, 항공기, 점유하는 방실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주거는 집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으면 별장이나 천막, 임시 거주지도 해당된다. 관리하는 건조물은 공장, 청사 등 건물을 일컬으며, 점유하는 방실이란 건물 중 지배·관리하는 부분 즉 가게, 사무실, 호텔방, 연구실 따위를 말한다.

또한 주거의 범위에는 정원, 주차장과 같은 부속물까지 포함한다. 최근 판례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공용계단과 복도도 주거에 해당하고 성폭행, 절도 등 범죄를 위해 들어왔다면 주거침입이 된다고 본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계단도 범죄자에겐 '주거' 침입

그 다음에 주목할 단어는 '침입'이다. 주거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주거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신체의 어디까지가 들어가야 인정되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판례는 신체의 일부가 들어갔더라도 주거의 평온을 해쳤다면 침입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 정도만 알아도 큰 무리가 없다. 이러한 기본 지식을 토대로 지문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①번. 주거침입죄는 주인이나 관리자 승낙 없이 또는 추정된 의사에 반하여 들어간 경우에 성립한다. A씨는 감독관의 허락을 받고 들어갔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원은 "부정행위를 할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승낙이나 허락을 얻어 들어갔다 하여도 불법행위를 목적으로 들어간 때에는 관리인의 의사에 반하여 들어간 것"이라고 판시했다. A씨는 주거침입죄 말고도 대리응시한 행위 때문에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도 처벌을 받았다.

②번의 B씨처럼 내연녀의 동의를 얻어 집에 들어간 경우도 주거침입일까. 여기서는 2명 이상이 사는 집에서 한 사람에게만 동의를 얻어도 되는지가 문제가 된다. 법원은 거주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여럿이 살 때는 다른 주거권자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바람 피우려고 유부녀 집에 들어갔다면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사회통념상 간통의 목적으로 주거에 들어오는 것은 남편의 의사에 반한다고 보여지므로 처의 승낙이 있었다 하더라도 남편의 주거상 평온이 깨졌다"며 주거침입죄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친구의 집에 놀러가더라도 친구 가족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법하다. 동의는 꼭 명시적일 필요는 없고 묵시적 동의나 추정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친구의 방문은 다른 가족들이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③번. 몸의 일부가 주거로 들어가는 경우에도 주거침입이 된다는 점은 앞서 얘기했다. 주거침입이 주거의 평온을 지키기 위해 만든 죄라는 점을 기억하면 된다. 판례는 "신체의 일부만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거주자가 누리는 사실상의 주거의 평온을 해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면 죄가 된다"고 했다. 야간에 다른 집 창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미는 행위를 한 C씨도 주거를 침입했다.

마지막 ④번. 여자 화장실 침입 사건이다. D씨는 흑심(?)을 품고 문을 두드렸는데 안에 있던 여성은 남편인 줄 알고 문을 열어줬다. 이것을 승낙이나 동의로 볼 수 있을까. D씨가 성폭행할 의도로 들어간 것이라면 피해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승낙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은 강도, 절도, 성폭행 등 범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주거에 들어가는 것은 일단 주거권자의 동의가 없는 것으로 해석해왔다. 역시 주거침입이다.

결국 4가지 모두 법원이 주거침입죄로 인정하였다. 

주거침입죄에서 중요한 개념 몇 가지를 정리해본다. 주거는 집만이 아니고 사람이 관리하는 대부분의 공간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몸의 일부만 들어가도 주거의 평온을 해쳤다면 주거침입이고, 주거권자의 제지를 받지 않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주거에 들어간 때에는 동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죄가 된다.

샤워하는 장면 훔쳐본 남자 무죄 받은 사연

다시 첫 부분에 소개한 무죄 판결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토대로 본다면 주차장도 주거의 부속물로 주거에 포함되고 창문을 통해 훔쳐본 것은 주거의 평온을 침해하여 주거침입죄로 인정해야 한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법원이 무죄로 삼은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요약 정리하자면 이렇다.

'주차장도 주거가 될 수 있지만 외부와의 경계에 담이 설치되어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이 주차장은 출입통제 장치나 경계가 없어서 주거로 인정하기 힘들다. 또한 열려있는 화장실 창문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본 점만으로는 주택에 침입하였다고 볼 수 없다.'

상급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유지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 판결을 역으로 보면 또 한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차장에 담이나 경계가 설정되어 있었는데도 들어갔다거나, 혹은 직접 창문을 열고 화장실을 들여다보았다면 주거침입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해부터 본의 아니게 범죄 이야기를 하게 됐다. 딴 사람 사생활 몰래 엿보지 말란 뜻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새해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선남 선녀들에게 덕담 한마디. 결혼 전에 주거의 평온과 사생활의 자유를 맘껏 누리시길.


태그:#주거침입, #화장실,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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