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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들어 안보정세, 특히 남북관계 전망이 갈수록 힘들다. 가급적 밝고 희망찬 전망을 하고 싶지만 적중률이 낮다.

 

2010년 벽두 화두는 남북정상회담이었다. 필자가 만난 정보관계 인사는 성사가 문제가 아니고 얼마나 차별화된 정상회담이냐가 초점이라 했다. 그만큼 자신 있어 했다. 클린턴 국무장관 표현대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가 북한에 가해지고 있었고, 북한이 먼저 정상회담 의향을 비췄으며, 11월 대청해전에서 본때를 보여주었다는 게 작용했다. 그러나 2010년에서 2011년으로 넘어가는 이즈음 정상회담은커녕 전쟁이라는 단어가 주변에 넘쳐나고 있다.

 

2011년 한반도 정세, 어디로 갈 것인가? 몇 가지 핵심변수를 짚어보면 희망보다는 위기관리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 필자가 보는 세 가지 핵심변수는 첫째, 미중 관계의 회복 여부, 그리고 그것이 한반도 긴장완화와 6자 회담으로 재진입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둘째, 2010년 12월 21일 남한의 포사격 훈련에 북한이 맞대응하지 않은 배경에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의 방북이 있었는데, 그 기회를 미국과 한국이 살릴 것인지 여부, 셋째, 남북 양측이 지난 3년간 첨예하게 대치해 온 관계를 재설정할 용의가 있는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불안한 정세가 기조를 이루는 가운데 남북 양자간, 그리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을 향한 간헐적인 대화의 계기가 조성될 것이다. 그러나 2011년 한 해 동안 가시적 성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그것조차 미국 오바마 정권이 대화 분위기 조성에 적극적 의지가 있을 때 얘기이다. 그래야 비로소 일 년 후 "남북 양측간 군사적 충돌이 없었다"는 점에서 2009년, 2010년과는 달랐다는 정도의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2010년의 군사 충돌은 한낱 예고편에 불과할 수 있다.

 

제한적인 미중 관계 개선, 그 함의는?

 

미중 관계는 이제 오늘의 국제정세 향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2010년 미국과 중국은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패권국가 간 질서 재편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달리 말하면 각 분야에서 신경전과 옆구리 찌르기, 기선 잡기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2011년 이제 서로 어떻게 해야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지 타협을 모색할 것이다. 6자 회담과 미-북 관계에서도 간헐적인 대화의 계기가 마련된다. 미중 관계가 부분적으로 개선되어 남북 양측간 긴장이 그 범위 안에서 관리될 여지가 높아진다. 이 맥락에서  2011년 1월 중순 미중 정상회담은 올해 정세에서 가장 주목할 사건이다.

 

이번 후 주석의 미국 방문은 자신의 시대를 마무리하는 측면보다는 시진핑 체제가 큰 부담 없이 출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이미 중국은 미국의 환율조정 요구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였다. 2010년 8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매월 약 1%씩 총 5%가량 위안화 절상을 시켜오고 있다. 금리 인상도 마찬가지로 환율전쟁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동원하고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처한 상황도 별 차이가 없다. 2010년 경제회복은 더디고, 중간선거패배의 아픔은 너무도 크다.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한다면 굳이 2010년 같은 갈등이 자신의 재선 가도에 딱히 유리하지만은 않다. 경제회복을 위해 달러가치를 떨어뜨리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을 너무 밀어붙일 필요는 없다.

 

중국은 미국의 경제에 직접 타격을 줄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 양국은 자국의 위안화와 루블화를 미국의 달러결제를 통하지 않고 직접 교환하도록 하자고 합의한 상태에서 중국이 자체 경제정책과 미 재무증권(treasury bond)의 대량 매각 등을 동원하여 반발하도록 몰아가서 좋을 게 없다. 그 경우 중국경제도 상당히 타격을 입겠지만 미국 경제는 아예 회복의 기미를 찾지 못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맞이할 수도 있다. 누가 뭐래도 중국은 상승기류를, 미국은 하강곡선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미국과 중국은 각각 2012년 오바마의 재선과 시진핑의 등장에 대비하여 2011년은 안정 속에 실적 쌓기로 가지 않을 수 없다. 서로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는 한반도 정세에 다소 긍정적이다. 굳이 자신들의 처지 때문에 남한과 북한이 갈등하는 상황을 조장하거나 방조해야 할 수요가 낮아진다.

 

그러나 남북한이 과거 3년과 달리 전면적인 화해의 길로 들어서는 것도 미국과 중국은 원하지 않는다. G20 서울정상회의가 끝나면 남북 관계에 큰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청와대 고위당국자의 발언에 워싱턴이 민감하게 반응했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어야 6자 회담이 열리게 될 것이라는, 천안함 사건 이후 기본 입장에 변화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6자 회담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남북 양측간 급격한 관계진전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거다. 중국 역시 늘 북한의 돌출행동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이 미국과 한국의 제재와 압력으로 인해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걸 싫어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상에서 설명한 것처럼 아무리 미중 관계가 해빙기를 맞이한다 해도 구조적 추세, 즉 유일 초강국 미국의 지위가 하락하고 새로운 강국 중국이 미국과의 국력격차를 지속적으로 줄여가는 헤게모니 국가 간 역학 관계 변화는 막을 수 없다. 따라서 표면적인 미중 관계 해빙에도 근본적인 권력 재분배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과 긴장이 미중 관계의 기저를 이루고 그것은 한반도에 그대로 투영된다. 전쟁은 피해야 하지만 적절한 긴장과 갈등 유지가 이롭다. 미국과 중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북한이 자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황이 최선이다. 따라서 미중간 제한적 관계개선보다 남북 관계의 개선의 폭은 더욱더 좁다.   

 

리처드슨 방북 결과, 오바마가 어떻게 활용할까

 

미중 관계 회복은 하나의 환경에 해당한다. 따라서 좀 더 직접적인 대화의 동력은 미국 오바마 정부가 빌 리처드슨 주지사 팀이 들고 온 보따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2011년 초부터 대화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정권 내부의 복잡한 정치적 역학관계 때문에 주어진 기회조차 활용하지 못하는 불임 정권이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리처드슨 방북팀의 활동 전말을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12월 18~21일 한국 정부의 포사격 훈련 당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와 함께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남궁 박사와 전화 및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남궁 박사는 김구 선생님을 모시고 활동하던 한국의 최초 신학자 남궁혁 박사님의 손자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냉전체제 극복을 위해 평생을 일해왔다).

 

2010년 초 북한 외무성의 초청을 받고 방북을 준비했을 때만 해도 북한의 6자 회담 복귀가 주목적이었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한미 양국 정부는 방북을 늦춰달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몇 달이 지나고 연평도 사건이 터졌으며, 미국 정부는 '사적 용무(private mission)'라는 전제하에 방북에 동의했다. 한국 정부는 반대하진 않았지만 귀환 시 서울에 들러도 만나줄 한국 관리가 없다며 냉담했다. 주된 방북 목적도 6자 회담 복귀가 아닌 전쟁일보 직전의 상태에서 충돌 회피로 바뀌었다.

 

12월 20일까지만 해도 리처드슨 방북단 전원은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겠다는 절망적 확신이 들었다. 자신들이 타고 나갈 고려항공의 일정이 취소되어 있었고, 평양에서 중국 접경지역까지 몰고 갈 트럭을 빌려둬야만 했다. 그만큼 상황이 긴박했다. 모든 외교관들과 국방 당국자들은 모두 이번 대응은 훨씬 더 강하게 진행될 것이며 훨씬 더 많은 사상자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20일부터 상황이 조금씩 누그러뜨려 졌다.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혹시 미국 정부에서 직접 북한에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우선 리처드슨 주지사가 온 힘을 다해 맞대응 자제를 호소했으며, 외무성 고위관리들이 군부를 설득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미국 정부 측도 남한 정부의 포사격 훈련은 일상적인 수준이며 새로울 게 없으니 대응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이들은 워싱턴과 전화로 교신하였다).

 

북측과 대화를 통해 합의한 사항은 영변지역에 IAEA 사찰단 초청, 미사용 연료봉과 우라늄 활동 산출물을 6자 회담 당사국 가운데 한 곳에 매각, 그리고 남북 군사 핫라인 재개통 및 주한미군 당국과 교신 채널 확보 등이다. 평화협정에 대해선 "민감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 여전히 아직 공개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답변으로 대신했다.

 

리처드슨 주지사는 미국에 돌아와 국무부의 고위급(very high official) 인사에게 방북 결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과 제퍼리 베이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이른 시일 내에 동북아 순방길에 오를 것이라는 <뉴욕타임스> 보도가 뒤따랐다. 두 사람 모두 민주당 내 경선과 대통령 선거기간 중 오바마 후보의 안보를 담당한 핵심인사들이다.

 

만약 오바마 대통령이 이 두 사람을 한국과 중국에 보내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문제를 동시에 논의하는 6자 회담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통보하면서 남북 양측도 대화를 위해 노력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상황은 크게 호전될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만난 뉴욕의 한반도 전문가는 국무장관 수락시 재량권을 보장받았다고 믿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오바마-리차드슨 드라이브에 심기가 무척 불편하다고 한다. 국무부 대변인과 워싱턴 한반도 전문가들이 리차드슨의 방북 결과에 냉소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다. 만약 오바마 측근인 스타인버그가 아닌 힐러리 클린턴 계열인 커트 캠벨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를 보낸다면 대화 재개의 동력은 그만큼 약해질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미중 관계 복원의 효과도, 2011년 벽두 한반도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도 그만큼 제한될 것이다.   

 

"북측 관계자들, '2013년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남북 어느 쪽도 군사적으로 끝장을 봐야겠다는 노선을 추구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미 북한의 김정일·김정은 체제와 남한의 이명박 정권은 너무도 깊은 상처를 주고 받았다. 도저히 웃고 싶어도 웃어줄 수 없는 관계다.

 

2010년 대통령의 마지막 주례연설에서도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선무방송이 계속되고 있고, 국방부는 북한정권과 군을 적으로 규정하였으며, 통일부도 북한의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는 정책 방향을 2011년도 업무계획으로 제출하였다. 

 

남북장관급 회담은 지난 3년 동안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현인택 장관이 현직에 있는 한 남북 공히 장관급 회담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즉, 앞으로도 남북장관급 회담은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북측 역시 매한가지이다. 남궁 박사에 의하면 지난 수년간 세 차례 방북에서 만났던 북측 관계자들은 "남쪽 정권이 2000년 6.15공동선언과 2007년 10.4정상선언을 수용하지 않는 한 2013년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결국 남북미중 4개국 모두 핑퐁게임만 하고 말 것이다.

 

남북 양측은 미국과 중국에 '우리가 이 정도 하는 것도 많이 참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6자 회담으로 북한을 끌어들이기 위해 최고위급에서 외교적 에너지를 쏟을 만큼 쏟았다. 이제라도 미국은 6자회담 틀 내에서 북한과 한자리에 앉는 걸 회피하지 말라'고 반복한다. 미국은 '남북 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되면 6자 회담에 들어갈 수 있다'며 남북 양측에 공을 넘긴다.

 

한국은 '북한이 연평도 문제를 사과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미국에 요청한다. 북한은 '이미 미국 정부에 상당한 양보안을 내놓았다. 더 이상 굴복할 순 없다'고 나온다. 이 순환논리를 깨고 들어가 생산적인 대화 복원을 이끌어낼 주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남는 문제는 2011년 군사충돌이 재발하느냐인데 안타깝게도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니 모종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본질적으로 위기를 재생산하는 체제이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 대치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욕구를 버려야 한다. 그러나 양 정권의 특질이 바뀔 것 같지 않다. 2011년 정세가 밝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 박선원씨는 현재 미국 브루킹스 초빙연구원(한국미래발전연구원 연구실장)으로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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