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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께로 싸게 들어오씨오! 대바구리 짜는 게 뭐 볼 거 있다고 요런 촌구석까지 찾아오까이..."

반갑게 맞아주시는 할머니 등 뒤를 따라 들어가 보니 마룻바닥엔 잘게 쪼갠 대나무 줄기가 수북했다. 두 양반이 마주 앉아 쉬엄쉬엄, 주문자가 원하는 대로 대바구니를 짜주신 다는데 그야말로 55년 경력 '환상의 복식조'답게 손발이 척척 맞아 5일 정도면 대·중·소 한과 바구니 세트를 13벌에서 14벌은 거뜬히 만들어 내신단다.

마침 작업중이신 할아버지, 할머니. 대나무를 쪼개고 계신다.
 마침 작업중이신 할아버지, 할머니. 대나무를 쪼개고 계신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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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대바구니를 짜는 할아버지 댁을 찾은 사연은 이러했다. 명색이 대나무 고장 담양 군민인데도 대바구니 만드는 과정을 한 번도 구경해 보질 못했다. 그저 손님이 오면 대나무밭이나 대나무 박물관, 죽물공예품을 파는 상회 구경을 시켜주는 정도랄까. 사실 담양에서 파는 죽공예품 대부분이 중국산이라는 소문 때문에 죽물에도 별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한과공장을 하는 후배한테 전화가 왔다. 생협회원 만을 대상으로 순전히 우리 농산물 그것도 완전 무농약 곡물로만 한과를 만드는 후배는 포장용품으로도 담양 한과바구니만 썼다고 한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나무 고장 담양... 대나무 공예 장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대바구니를 공급하는 업자 말에 의하면 가격도 문제지만 대바구니를 만드는 노인들이 점점 노쇠해져 이제는 만드는 이가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고 조만간 돈을 주고도 못 살 그런 형편이 될 판이라는 것이다. 후배는 지자체는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흥분했다. 대나무의 고장, 죽물공예의 본거지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지자체가 죽물공예 장인들이 도태되는 데도 후계자 하나 양성 할 생각을 안 하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는 것이다.

"말석, 석작, 바구리 등 별 거 다 해요. 60년 동안 만들었지. 나는 인자 어른들이 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걸 만들었어요. 그 시절엔 좋았제. 동네 사람들이 모다 죽물을 만들어 이고지고 죽물장에 내다 팔았는데 요걸로 돈도 무지무지 많이 벌었제. 근디 모타진 게 없제. 교육비로 다 써번지고. 하하하"

대나무 피지와 속지를 가르는데 여념이 없는 할아버지
 대나무 피지와 속지를 가르는데 여념이 없는 할아버지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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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손
 할아버지 손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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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손가락을 헝겊으로 칭칭 동여매고 쪼갠 대를 다듬는 남상보 할아버지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당신 손끝으로 벌어드린 돈으로 6남매 모두 훌륭히 키운데다 석·박사까지 배출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귀가 약간 어두워 보청기 신세를 지기는 했지만 78살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해 보이셨는데 쪼갠 대를 이리저리 맞춰 바구니를 엮어가는 손길도 젊은이 못잖게 빠르고 섬세해 보였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머리부터 빗고 계시는 할머니
 카메라를 들이대니 머리부터 빗고 계시는 할머니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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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가 만드시는 작은 석작. 김밥 담는 도시락으로 쓰인단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만드시는 작은 석작. 김밥 담는 도시락으로 쓰인단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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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7학년 5반이요. 시집와서부터 시집 어른들이 모다 이것을 헝께 그때부터 헌 것이 55년째요. 우리 시어머니가 선보러 와서 신랑이 책상머리나 앉아서 공부한다더니 온께 이것을 헙디다. 아저씨가 이것을 헌께 따라 해야제. 친정이 순창인디 거개선 이런 죽물 만드는 걸 보덜 못했어. 시집 와서 따라 한 것이 이젠 선수 됐당께."

50년 전만 하더라도 대밭이 있는 사람은 부자로 대접 받았단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대나무로 만든 생활용품이 가정의 필수품이라 만드는 족족 팔렸고 죽물을 만드는 집은 현금이 도는 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 대부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죽물을 만들 줄 알았다.

그러던 것이 플라스틱 때문에 쇠락했다. 대나무 소쿠리며 음식 담는 석작 심지어 대로 만든 찬합, 도시락, 목기까지. 그 다양한 용도의 생활도구들이 플라스틱제로 대체됐다. 싸고, 가볍고, 썩지 않는 플라스틱. 사람들은 새로운 발명품에 환호했다. 그 덕분에 그렇게 귀하게 대접받던 죽물도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졌고 찾는 이 없으니 만드는 이 또한 점점 사라지게 돼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남상보 할아버지 마을만 하더라도 예전에는 60호 가구 중 40호가 죽물을 만들어 팔았단다. 그런데 이제는 늙고, 병들어 돌아가시고 고작 3~4호 가구만 명맥을 유지한단다.

"모다 하던 솜씨들이라 시키면 앉아서 하제. 그런데 지금은 만들지 안 해. 주문을 받아야 만들제? 상회에 팔수가 없으니까 만들지를 못해. 글고 인자 모두 나이 들고, 힘이 들고 인자 치아도 좋지 않고 할 수가 없제. 치아가 좋아야 이것을 해요. 우리 아자씨는 안즉도 짱짱해. 원체 솜씨가 좋아요. 바구리 중에서도 말석보다는 진석이 에럽거든. 근디 우리 아자씨는 진석을 잘 맹글기로 소문났당께요."

"말석이 뭐고, 진석이 뭐예요?"

"말석은 정사각형. 한과바구리를 말석이라 하고 진석은 긴 거. 직사각형, 진석을 석작이라고 해요. 근디 우리는 말석을 안 맹글어. 주문이 없거든. 한과바구리라는 게 한 번 쓰고 버리잖아. 긍께 전부 싼 박스로 하고 2~3천 원 하는 중국 바구리를 쓰니께 우리 해를 덜 가져가. 만들어 놓은 것을 상회에서도 안 찾으니까 만들 수가 없제. 판로가 없응께."

"플라스틱 쓰고, 중국산 오니 판로가 없응께"

대바구니를 만드는 어른들이 점점 돌아가시면 나중엔 정말로 중국산 아니면 구경도 못 하겠다는 내 말에 할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셨다. 바구리 만들 줄 아는 늙은이가 몽땅 사라진다 해도 이것을 이어받겠다는 젊은이가 없으니 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자석들만 하여도 모다 외지에 나가 살지 안하요. 요것이, 시골에 가서 젊은이들이 요것을 이어받고 싶어도 경제성이 없어요. 아, 요새 사람들 노가다판에 나가서 일하고는 하루에 십만 원, 팔만 원씩 버는디 이것 하는 사람은 죽것다고, 다른 사람은 야달 시간 일허는디 하루 15시간씩 죽것다고 히야. 하루 4만 원 벌인데 어뜨께 이어받는다요."

할아버지 집 바로 위에 있는 대나무밭. 4천 평 넓이란다.
 할아버지 집 바로 위에 있는 대나무밭. 4천 평 넓이란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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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대나무를 잘게 쪼개 석작 재료를 만들어 놓고.
 벤 대나무를 잘게 쪼개 석작 재료를 만들어 놓고.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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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죽물을 만드려면 재료부터 신경써야 한다. 대나무 중에서도 2년에서 5년생 사이 대나무를 써야 되는데 어린 것은 너무 연하고 습이 많아 적당치 않고 늙은 것은 시간이 가면 물러지기 때문에 적당치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를 베는 계절도 신경써야 하는 것이 3월 이후 대나무는 습이 많아 자칫하면 죽물에 곰팡이 피기 쉽기 때문에 절대 피해야 된단다. 그렇기 때문에 죽물에 쓰는 대나무는 보통 추석 이후부터 초 봄까지 벤 것을 사용한다.

그렇게 준비한 대나무를 잘게 쪼개고, 자르는 작업에서부터 엮어서 완성하기까지 공정이 죽 이어져야 하는데 그러자면 아침에도 일하고, 저녁에도 일하고 거의 하루 15시간을 매달려야 하는 고된 일이 된다. 그런데 5일 일 한 값이 20만 원 정도 나오니 어떤 젊은이가 이것을 이어받을 수 있겠냐는 소리였다.

당신들은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고 또 나이 들어서 할 것이 없으니까 소일 삼아 용돈이라도 벌려고 하시지만 시골에서 젊은이들이 자식들 가르치고 먹고 살려면 하우스 농사라면 모를까 죽물은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쓰고 버리는 바구리 만드는 사람까지 기르겠다고 정부에서 돈을 댈 턱이 있겠소? 인자 우리덜 죽어번지면 끝이제. 벌써부터 갑시 싼 수입품들 천지 아니요? 담양 읍내 상점에 나가 보랑께. 죄다 수입산이여. 가뭄에 콩나듯 담양 죽물이 섞여있고... 시대가 그란께 헐 수 없제..."

배웅을 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배웅을 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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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기력이 있으니까 부탁만 하면 언제든지 만들어 주실 수 있다시며 할아버지가 주문을 부탁하셨다. '께끔허니' 잘 만들기로 소문 난 사람이 당신 영감님이라고 다시 한 번 홍보를 잊지 않는 발그레한 할머니 볼이 소녀처럼 어여뻤다.

저런 어른들 돌아가시기 전에 죽물공예를 배워둬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되지 않고 크게 쓸모없는 대바구니 만드는 일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동안 우리의 전통공예는 사라져 가고 있다. 대밭만 있고 중국산, 동남아산 죽물공예만 판치는 대나무 고장. 담양 읍내는 지금 거품이 끼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담양, #대나무, #죽물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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