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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 일부.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 일부.
ⓒ 구글 위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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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땅 즉 경상도 땅을 떼어 일본에 갖다 붙인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친일매국노들은 아니다. 그들은 고대 한국인들의 역동성을 증명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시로는 미개척지인 고대 일본의 개척에 참여한 자랑스러운 해외 이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요즘으로 치면, 그들은 KBS1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의 코멘트에 등장하는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내일의 희망 속에 열심히 살아가시는 해외 우리 동포 여러분들, 해외 근로인 여러분들, 또 해외 자원봉사원 여러분들, 오늘도 태극기 휘날리며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외항선원 여러분들, 모든 인류의 날개가 되어서 창공을 가르는 모든 항공인 여러분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신라 땅을 떼어 일본에 갖다 붙인, 이 역동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일본에 전해지고 있다. 서기 713년, 일본 원명천황 즉 겐메이천황은 지방 풍토기(風土記)의 편찬을 명령했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733년, 출운국(이즈모)이란 지방의 자연과 문화를 정리한 <출운국 풍토기>가 원명천황의 다음다음 후임자인 성무천황 즉 쇼무천황에게 바쳐졌다.

참고로, 출운국 즉 이즈모는 한반도와 마주보고 있는 해안가에 위치한 지역으로, 해마다 2월이면 독도와 관련하여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시마네현에 속한 곳이다.

<출운국 풍토기>에는 대대로 이즈모 지방에 전해지던 민간 신화들도 수록되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국토 끌어당기기 신화'(国引き神話)였다. 이 신화는 712년에 완성된 <고사기>나 720년경에 완성된 <일본서기> 같은 관찬 역사서에는 나오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만큼 가치가 높은 신화라 할 수 있다.

 시마네현 이즈모시의 위치. 위에 있는 별표에는 '이즈모', 아래에 있는 별표는 '시마네;라고 쓰여 있다.
 시마네현 이즈모시의 위치. 위에 있는 별표에는 '이즈모', 아래에 있는 별표는 '시마네;라고 쓰여 있다.
ⓒ 구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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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끌어당기기 신화는 이즈모 지역의 형성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러 나라나 지역의 남는 땅을 끌어다가 이즈모 땅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일을 주도한 것은 야쓰카미즈오미쓰노미고토(八束水臣津野命)라는 거인이었다.

이름이 너무 길어서 그냥 '거인'이라 부르는 게 편한 이 거인이 그런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즈모가 너무 좁기 때문이었다. 비좁은 이즈모 땅을 넓히기 위해 그는 여기저기서 남는 땅을 끌어 모으기로 결심했다.

거인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땅이 남는 나라나 지역이 어디인지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가 주목한 곳은 시라기·사키국·누나미국·쓰쓰라는 곳이었다. 그는 흙을 파헤칠 때에 쓰는 도구인 가래를 들어 시라기·사키국·누나미국·쓰쓰의 남는 땅에 쿡 찔렀다. 마치 포크로 스테이크를 쿡 찌르는 식이었다.

고기에 포크를 찍은 다음에는 그것을 입으로 가져온다. 마찬가지로, 거인은 가래에 걸린 땅을 떼어낸 다음에 땅 조각을 밧줄에 걸어서 천천히 끌어당겼다. 그러면서 그는 "땅이여, 오너라! 땅이여, 오너라!"라고 외쳤다. 이렇게 해서 시라기가 가장 먼저 이즈모 땅의 일부가 되고 뒤이어 사키국·누나미국·쓰쓰가 합류했다는 것이 이 신화의 결론이다.

신라 땅을 떼어내 일본 서해안에 갖다 붙였다?

여기서 이즈모 땅에 가장 먼저 합류한 시라기(志羅紀)라는 지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라기의 정체에 관한 한·일 학계의 의견은 통일되어 있다. 시라기가 신라를 지칭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는 것이다.

신라를 떼어내어 이즈모에 갖다 붙였다는 것이, 문자 그대로 신라 땅을 실제로 떼어내어 일본 서해안에 갖다 붙였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신화는 언뜻 보면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사실'이 담겨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문자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특정 사실에 관한 지식을 공유·전달하고자 할 때에 신화만큼 편리한 수단도 없을 것이다. 국토 끌어당기기 신화 속에도, 고대 이즈모인들이 공유·전달하고자 했던 사실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신화학자 김화경은, 이 신화는 신라인들이 고대 이즈모의 건설에 참여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해석했다. 이 신화가 고대 한국인들의 일본 개척사를 반영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화 속의 '신라 땅'은 '신라 출신 이민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또 "이즈모 땅이 비좁다"는 거인의 말은 '이즈모를 개척할 사람들이 적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김화경은 이 신화를 만들어낸 것도 신라 출신 이민자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일본의 신화>란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동해안 일대에서 일본의 이즈모 지방으로 진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에 대한 지식을 동원하여 국토 끌어당기기 신화를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추정해도 크게 지장은 없지 않을까 한다."

시라기 출신 외에 사키국·누나미국·쓰쓰 출신도 이즈모 건설에 참여했지만, 이들 중에서 시라기 출신들이 주도권을 잡았으며 그들이 신화를 남겼을 것이라고 보아도 별다른 무리가 없다. 왜냐하면, 신화 속에서 가장 먼저 이즈모에 합류한 것이 시라기였기 때문이다.

신화학자 전호천 역시, 이 신화가 한반도 동해안과 이즈모 지방의 교류를 증명한다고 해석했다. 더 나아가, 그는 사키국·누나미국도 한반도 동해안의 지명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사키국·누나미국이 한반도일 것이라는 견해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로서는 시라기가 신라를 의미한다는 것만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신라인들의 모습.
 신라인들의 모습.
ⓒ 사계절 발행 <한국생활사박물관>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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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신라와 이즈모의 교류를 반영하다

그럼, 일본 학자들은 이 신화를 어떻게 해석할까? 시라기가 신라를 의미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본 학자들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 신화가 신라와 이즈모의 교류를 반영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시하타 다다시란 학자는 이 신화가 두 지역의 교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민족주의적 감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신라와 이즈모 사이에 아무런 교류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 같은 신화가 나올 수 있었을까? 이시하타 다다시의 견해는 이런 의문에 대해 만족할 만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국토 끌어당기기 신화는 신라와 이즈모 사이에 교류가 있었으며 그런 교류를 배경으로 당시로써는 미개척지였던 이즈모의 건설에 신라인들이 참여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는 이 신화를 이해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만약 신라인들이 이즈모를 건설했다는 내용이 신화가 아닌 역사기록을 통해 전달되었다면, 그런 내용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기록해두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런 기록은 일본의 정치권력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는 전설·설화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대중의 뇌리에 기록된다.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대나무·나무·종이에 기록되는 역사와 달리, 신화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고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보존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기록'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보관'될 수 있는 것이다.

신화가 역사보다 '유통기한'이 더 길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의 경우에는 정치권력의 입김이 상대적으로 적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신화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정치권력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지만, 역사기록의 경우에 비하면 그런 가능성이 훨씬 적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신화가 역사보다 '유통기한'이 더 길고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조용한 공간에서 두 사람이 단둘이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계약 체결을 구두로 인정하는 편이 훨씬 더 안전한 것과 마찬가지다. 수많은 대중을 증인으로 세우는 편이 문서 1장을 남기는 것보다 더 안전할 수 있듯이, 역사기록을 남기는 것보다는 신화를 남기는 편이 더 안전한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처럼 신화가 역사보다 더 안전하기에, <일본서기>나 <고사기>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신라인들의 이즈모 건설 이야기를 신화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정치권력은 역사를 왜곡해도 일본의 민간 대중은 그렇지 않기에, 그들의 머릿속에 신라인들의 일본 개척사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역사기록이나 유물을 통해 흔히 접한 것은 고구려·백제·가야 사람들의 일본 진출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라인들의 일본 진출에 관해서는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국토 끌어당기기 신화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신라인들도 고구려·백제·가야인들 못지않게 일본 진출에 적극성을 갖고 있었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인들을 포함한 고대 한국인들은 대륙에만 매달리지 않고 해양에서도 삶의 돌파구를 적극 모색하는 역동적인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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