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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로운 자본주의와 한국경제의 미래' 초청강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로운 자본주의와 한국경제의 미래' 초청강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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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등인 학생이 1등 학생들이 있는 반에 가면, 공부 제대로 못 하고 기만 죽는다. 아직 미국이나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은 시기상조다."(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의 제품)은 과연 북미와 유럽시장에 가서 선진국 제품과 경쟁했을 때 도태될 수준이 아니다.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일류 선진국가로 올라설 수 있다."(백성운 한나라당 의원)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장하준 교수와 한나라당 의원들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장 교수는 이날 한나라당이 초청한 '새로운 자본주의와 한국경제의 미래' 강연회에서 "한나라당이 (복지 문제 등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역할을 하기 바란다"면서 한나라당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미FTA 등 선진국과의 FTA를 반대한다", "무조건 세금 깎아준다고 투자가 되고 성장 촉진이 되지 않는다",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며 한나라당의 주요 정책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은 강연이 끝난 후 질의응답에서 "전제와 논리가 잘못됐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등의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장하준 "한미FTA 시기상조" - 한나라당 의원 "전제와 논리가 잘못됐다"

장하준 교수는 자신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인용하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 등 양국 간 FTA는 진정한 자유무역이 아니다, 미국산 자동차와 쇠고기를 무관세로 수입한다고 하면 일본 차와 호주산 쇠고기에 대해서는 차별하는 것"이라며 "다 같이 협상하자고 세계무역기구(WTO)를 만들었는데, 왜 우리나라가 앞장서서 깨고 다니느냐"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수준 차이가 나는 나라들끼리 FTA를 하면 단기간에는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뒤떨어진 나라가 앞선 나라를 따라잡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며 "1960년대 FTA를 했다면 지금의 현대자동차·삼성전자·포스코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가발을 만들고 있었을 것"이라며 말했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나 생산성은 미국이나 스위스 등의 50%에 불과하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4만 달러 나라가 되기 위해 고급산업을 미국이나 유럽연합과 동등하게 경쟁하면서 개발할 수 있겠느냐. 5등짜리 학생이 1등 반에 들어가면 자극이 돼 생산성 증대효과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 실력이 아니다. 시기상조다. 또한 금융규제 완화로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강연이 끝난 후, 많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장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내수시장이 한계에 봉착해 있는 상황에서, FTA를 통해 경쟁력 있는 부문에서 시장을 개척해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장 교수는 "한미FTA의 경제적 효과는 추정 방법에 따라 다르고 불확실하다"며 "기업들이 더 연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어 투자율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정부가 미국처럼 더 많은 돈을 연구개발비로 지원하는 등의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맞받았다.

백성운 한나라당 의원은 "(장 교수의) 전제와 논리가 잘못됐다"며 "한국은 선진국과 경쟁에서 일류 선진국으로 올라올 수 있는 수준에 와있다"며 "FTA를 한다고 해서 금융규제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출의존도가 90%인 국가에서 FTA는 큰 틀에서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장 교수는 "금융규제 완화와 한미FTA와는 큰 관련이 있다, 한미FTA에서는 파생상품과 관련해 명시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팔 수가 있다, 우리나라가 2008년 금융위기를 다른 나라보다 잘 넘긴 것은 파생상품 규제를 많이 해서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닫혀 있어 문제가 아니라, 너무 열려 있어서 문제"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들 "무상급식은 선별적으로" - 장하준 "더 큰 보편적 복지해야"

감세와 복지 문제도 큰 논쟁거리였다. 장 교수는 "감세를 해주면 투자가 잘되고 경제성장이 잘 된 예가 없다"며 "미국에서도 1960~70년대 2.6%였던 성장률이 레이건 노믹스 이후인 90년대에 1.6%로 낮아졌다, 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것보다 세금을 걷어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느냐를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최근 논란이 되는 복지국가 논란과 관련, "복지국가는 부자한테 돈을 뺏어서 가난한 사람한테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세금을 내고 광범위한 복지 혜택을 주는 복지국가야말로, 사회와 경제의 역동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는 국민에게 기본적인 교육·의료·주거·노후에 대한 보장을 해주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실업보험·재교육 지원 등을 통해 재기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며 "스웨덴과 같은 복지국가는 자유무역에 반대할 것 같은데 미국보다 반대가 적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그러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후 질의응답에서 무상급식을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졌다. 장 교수는 "무상급식은 보편적 복지로 해야 한다"며 "돈을 낼 수 있는 집의 아이까지 무상급식을 해주는 것은 문제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낙인효과를 생각하면 무상급식을 하는 게 옳다"고 하자, 강명순·김금래 한나라당 의원이 "(장 교수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발끈했다.

강 의원은 "아이들에 대한 복지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상급식에 재정을 쓰면 아이들이 더 힘들어진다"며 "무상급식은 선별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금래 의원은 "저소득층 아이들한테 지자체에서 돈을 넣어주기 때문에 낙인효과가 없다, 낙인효과 때문에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장하준 교수는 "그런 방법이라면 낙인효과가 덜할 수 있겠다"면서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에게 더 진정한 기회 균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 부모의 삶을 최소한으로 보장하는, 더 큰 틀에서의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고 맞받았다.

"경제가 좋아져서 주가가 오른 것 아니다"

이날 장하준 교수는 지난해 4월 첫 번째 한나라당 초청 특강(관련 기사 : "진짜 보수라면 복지국가 만들고 사회통합 해야")에 이어 이번 강연에서도 금융 규제 완화와 '금융허브국가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장 교수는 "폴 보커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은 '수십 년간 금융에서 혁신을 이룬 것은 현금자동인출기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며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금융은 실물경제와 유리된 것으로 실물경제를 망쳤다, 아직도 금융허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주가가 오른 것은 경제가 좋아져서가 아니다, 선진국들이 이자를 낮췄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그곳에서 돈을 빼서 이자율이 높은 우리나라 등으로 몰려온 것이다, 현재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 등에 막대한 거품이 끼었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다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돈이 빠져나가 큰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더욱 강도 높은 자본유출입 규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신자유주의, #금융규제,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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