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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헬렌 켈러는 설리반 선생과 더불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맹인에 농아였던 헬렌 켈러가 설리반 선생의 헌신적 도움 속에 글자를 익히고 말을 배우게 되는 과정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애를 극복하고 성장한 헬렌 켈러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한국인들은 물론이고 미국인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왜 그럴까. 장애를 극복하고 사람들과 소통한 삶이 지극히 평범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이리하여 켈러는 사회계급이 삶의 기회를 지배할 뿐 아니라 심지어 시력까지도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켈러의 연구는 단지 책에서 배운 게 아니었다. "나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공장과 열악한 빈민가를 가보았다. 비록 볼 수는 없었으나 냄새는 느낄 수 있었다.(책 속에서)

 

헬렌 켈러는 대학을 졸업한 후 장애 문제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계급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깨닫고 급진적 사회주의자가 되어 사회운동에 앞장섰다. 사회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고 선거 유세에 동참했다. 여성운동, 정치, 경제에 관한 다양한 글도 썼다.

 

1920년대 백인으로서는 파격적 행동을 보여주었던 헬렌 켈러의 삶은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예전에는 장애를 극복한 삶에 찬사를 보내던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지향한 이후에는 맹인이고 농아인 점을 부각시키면서 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헬렌 켈러의 삶은 미국의 교과서나 각종 매체에서 외면 받아 서서히 잊혀졌다.

 

3․1운동의 배경을 설명할 때 자주 거론되는 미국인이 있다. 윌슨 대통령이다. 그가 주창했던 민족자결주의는 우리나라 3․1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한다. 식민지 지배를 받는 민족이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민족자결주의는 약소국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얘기임에 틀림없었다. 이런 근거를 내세워 미국 교과서들은 윌슨을 세계 평화에 앞장선 인물로 부각시킨다.

 

실제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윌슨 재임 시절 인종차별 정책이 확대되었다. 반공주의를 구실로 흑인 신문, 단체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감시하고 탄압했다. 윌슨의 두 번째 재임 시절에는 반공주의와 반노동조합의 마녀사냥이 휩쓸고 지나갔다. 약소국들에게 냉혹한 제국주의 정책이 서슴없이 실행되었다.

 

윌슨 재임기에 일어났던 이런 사실들은 공식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청소년들은 윌슨이 세계 평화에 앞장선 위대한 인물로 이해하고 학교 교문을 나서게 된다. 교과서가 보여주는 역사는 애국심을 심어주기 위한 것, 진실을 낙관적으로 전해주는 것, 실패에 관해서는 도덕적 교훈으로서의 가치만 강조하고 주로 성공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정된다. 그 이외의 사실들은 세탁되어 사라진다.

 

미국 교과서의 잘못된 역사 서술 문제를 비판한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포장하거나 세탁 과정을 거쳐 삭제해버리는 사례는 많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 중국의 동북공정, 한국의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을 둘러싼 갈등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교과서가 잘못되었을 경우, 교과서 그대로 가르친다는 것은 거짓말을 가르친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르친 거짓말>이란 책 제목이 교사들에게 채찍처럼 아프게 날아와 감긴다.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까. 책을 읽으며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미국 교과서에 등장하는 미국 역사 인물들의 실상과 허상을 폭로하고 인종주의 반공주의 등의 국내외 문제의 진실을 파헤친 제임스 W. 코웬이 번역판 서문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전해준 말 또한 곰곰 되새겨볼만한 가치가 있다.

 

미국은 물론 한국도 국수주의자가 아닌 애국자가 필요하다. 애국자를 배출하는 최선의 방책은 학생들이 역사 교과서의 독단적 가르침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내가 <선생님이 쓴 거짓말>을 쓴 이유도 그와 똑같다. 아무쪼록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미국인이 저지른 잘못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이 책을 어느 나라에서나 유용하게 따를 수 있는 비판적 역사 서술의 본보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속에서)

 

덧붙이는 글 | 제임스 W. 로웬/남경태 옮김/휴머니스트/2010.10/28,000원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미국사의 진실, 개정판

제임스 W. 로웬 지음, 남경태 옮김, 휴머니스트(2010)


태그:#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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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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