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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수)

어디선가 밤새 닭울음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그새 아침이 되었나 해서 시계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한밤중이다. 그런 식으로 밤새 몇 번이나 잠에서 깨어 일어났는지 모른다. 그냥 알람 시간에 맞춰서 일어나면 되지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게 그렇지 않다. 핸드폰 알람이 오전 6시에 맞춰져 있다. 동이 터오는 시간은 아침 7시 무렵이다.

만약에 닭 우는 소리가 동이 터오는 시간과 동일하다면,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자고 있는 셈이 된다. 그러니 자연히 눈이 떠지지 않을 수 없다. 몸은 피곤해 죽을 맛인데, 닭울음 소리에 자꾸 눈을 뜨게 되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이제 여행도 다 끝나 가는데 마음을 편하게 먹자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닭울음 소리와 연동돼 자꾸 눈을 뜨게 만든다. 내 무의식 속에 여행을 가능한 한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놈의 닭이 너무 자주 울어 젖히는 바람에 너무 자주, 그것도 너무 일찍 눈을 뜨고 있다. 피곤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놈의 닭을 입을 막아서라도 새벽이 오지 않게 만들고 싶다. 하지만 닭이야 울든 말든, 여행객이 그 소리에 잠을 설치든 말든 새벽은 오고 해는 또 뜨기 마련이다.

 바닷가 절벽 위를 지나가는 해안도로
 바닷가 절벽 위를 지나가는 해안도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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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오징어를 먹기 시작했다... 너무 무섭다

숙면을 취하지 못한 탓인지, 오늘 아침 온몸이 찌뿌듯하다. 이런 날일수록 먼저 근육을 적당히 풀어주고 나서 자전거에 올라타야 하는데, 오늘도 역시나 자전거를 보자마자 바로 올라타 페달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아침저녁으로 간단하게나마 체조를 하던 때가 언제 적이었는지 이제는 아주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내 몸 여기저기서 근육통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게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길이 좋아서 다행이다. 길마저 곱지 않았으면, 동해안 여행도 그리 유쾌하다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축산항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 가는 해안도로가 내 몸과 마음을 더없이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경치가 아름다운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역시 동해안이다.

 오징어 말리기
 오징어 말리기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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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길가에 오징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기대했던 대로다. 허연 몸을 드러낸 오징어들이 길가 공터를 뒤덮고 있다. 반건조 오징어, '피데기'가 될 오징어들이다. 바다에서 잡아올린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무척 싱싱하다. 때깔이 참 곱다. 이 오징어들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구우면, 입안에 단맛이 돌 정도로 맛있다. 아, 상상만 하고 있는데도 입안에 군침이 고인다.

도로 주변에 공터를 찾아보기 힘들다. 빈 공간이 있으면 모두 지지대를 세워 오징어를 널어 말리고 있다. 도로가 온통 오징어 덕장으로 변해 있는 셈이다. 한쪽에서 마을 주민들 여럿이 밤새 널어 말린 오징어를 거둬들이느라 바쁘다. 이 오징어들을 한 축에 20마리씩 묶어 바로 유통업체에 넘긴다.

오징어를 말려서 피데기로 만드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그 기간이 생각 밖으로 짧다. 요즘 같이 볕이 좋을 때는 하루 정도만 말려도 된다고 한다. 단 하루다. 하루 만에 생물 오징어가 반건조 오징어가 돼서 구이용으로 팔려나간다. 참 놀라운 일이다.

요즘 오징어 값이 배춧값 못지않게 가격이 오르고 있다. 생산량이 예전만 못하기도 하지만, 소비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게 주원인이다. 최근에 중국 사람들이 오징어를 먹기 시작하면서 물량이 달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13억 중국 인구가 오징어 맛을 알게 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 이건 상상만 해도 무서운 일이다.

피데기 같은 경우, 요즘 거리에 내놓기 바쁘게 팔려나간다고 한다. 내 상상이 현실이 되고 있는 걸까? 이 많은 오징어들이 덕장을 떠나기 무섭게 팔려나간다니, 오징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게 이처럼 무시무시한 말도 없다.

 대진해수욕장, 갯바위 위에 앉아 돌김을 뜯는 할머니와 할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갈매기
 대진해수욕장, 갯바위 위에 앉아 돌김을 뜯는 할머니와 할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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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불해수욕장
 고래불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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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김 값으로는 도저히 따질 수 없는 할머니표 돌김

대진해수욕장 한쪽 백사장 끝에서 갯바위 위에 걸터앉아 계속 무언가를 잡아 뜯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을 발견한다. 잔뜩 굽은 등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왜소한 몸이 소꿉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만큼이나 작아 보인다. 이 추운 날, 칼날 같은 바람을 맞으며 바닷물에 젖어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위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바위 위에 갓난아이 머리털 같은 해초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녹색 빛이 감돈다. 돌김이란다. 길어야 채 2cm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나마 바닷물에 젖어 바위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그런 돌김을 손끝으로 잡아 뜯는데, 바위 위에 돌김이 뜯겨나간 흔적이 남지 않는다. 돌김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게 해서 얼마나 많은 돌김을 뜯을 수 있을지, 갑갑하다.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린다. 돌김을 뜯는 할머니의 손이 바위와 흡사한 빛을 띠고 있다. 몸피에 비해 굵은 손마디가 옹이가 진 나무토막처럼 딱딱해 보인다. 평생 바닷물에 절어 있다가 세월이 덧쌓이면서 마침내 돌처럼 굳어진 손이다.

안쓰러운 마음에 '그렇게 해서 얼마나 뜯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아주 적다'며 '나이가 들어 이제는 이런 일밖에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김발에 널어 말리면 몇 장 되지도 않는' 돌김을 마치 보석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집어올리고 있다. 나같이 성질이 급한 놈은 도무지 감질이 나서 할 수 없는 일이다. 할머니가 만드는 김은 시장 가치로는 따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가치를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대진해수욕장에서 바라다보는 백사장이 끝 간데없이 길다. 대진해수욕장에서 고래불대교를 넘으면 덕천해수욕장과 고래불영동해수욕장이 연달아 나온다. 대진에서 보면 이 3개의 해수욕장이 하나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 길이를 짐작하기가 어렵다.

사실 이 해수욕장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대진에서 고래불까지 백사장이 무려 6개 마을을 지나가는데 그 길이만 8km, 20리다. 입이 쩍 벌어지는 길이다. 백사장 길이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이곳을 능가할 백사장은 또 없을 것 같다.

 후포항에서 열린 2010 울진대게축제
 후포항에서 열린 2010 울진대게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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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포항. 배에서 대게를 내리는 사람들
 후포항. 배에서 대게를 내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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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에서 잡히면 울진대게, 영덕에서 잡히면 영덕대게

고래불해수욕장에서 얼마 가지 않아서 울진군으로 넘어간다. 울진군으로 들어서면 바로 후포항이 나온다. 영덕을 지나오면서 길거리에서 수없이 많은 '대게'들과 눈 맞춤을 해야 했는데, 후포항에서도 대게가 가장 먼저 얼굴을 내밀고 나온다. 대게 간판이 영덕만큼이나 많다. 울진은 영덕과 함께 대게 주산지로 알려진 곳이다.

후포항에서는 지금 한창 대게축제(11월 19일~21일)를 준비 중이다. 축제 준비를 갖추기 위해 부둣가에 엄청난 양의 대게가 쌓이고 있다. 대게가 너무 많아 아예 짐짝 취급을 받고 있다. 그 바람에 몸통에서 떨어져 나가는 다리가 한둘이 아니다. 부두에 대게의 대나무같이 길고 곧은 다리가 아무렇게나 돌아다닌다.

기성망양해수욕장을 지나면 바닷가에 울진대게 내력을 밝히는 대게 동상이 하나 나온다. 그곳의 울진대게 유래비에 울진대게가 '14세기 초엽인 고려시대부터 울진의 특산물로 자리 잡아' 왔다고 적혀 있다. 울진에서 오래전부터 대게를 잡아 왔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울진이 명실공히 대게의 고장임을 역설하는 내용이다. 거기에는 영덕에 대게의 명성을 넘겨준 아쉬움도 배어 있다.

사실 울진대게든 영덕대게든 알고 보면, 그냥 다 한 다리 건너다. 굳이 지역을 나눌 필요가 없다. 영덕 대게가 영덕에만 사는 것도 아니고 울진대게가 울진에만 사는 것도 아닌데, 영덕이니 울진이니를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소비자들은 그저 살이 실하고 맛있는 대게가 있으면 그곳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울진대게상
 울진대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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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진 해안도로 풍경
 울진 해안도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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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기 전에 죽변항에 도착한다. 그런데 죽변항 근처, 숙박을 하게 된 모텔의 주인이 자칭 이 지역 홍보대사다. 내가 서울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더니, 키를 들고 방 안까지 쫓아 들어온다. 그러더니 울진이 얼마나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장인지를 설명하고 나서는, 이 지역에 온 이상 반드시 보고 가야 할 여행지를 줄줄이 엮어 내린다.

그곳들을 들러보지 않고 가면 울진을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데, 당장에라도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갈 태세다. 내가 오늘은 너무 늦었고 내일 그중에 한두 군데는 반드시 들러보고 가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겨우 방문을 닫아주고 나간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 정도면 자칭이 아니라, 타칭 홍보대사라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86km, 총누적거리는 4444km다.

 울진 해안도로 풍경
 울진 해안도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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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진 해안도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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