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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화)


포항송도해수욕장 앞을 지나가는 산책로 겸 자전거도로.
 포항송도해수욕장 앞을 지나가는 산책로 겸 자전거도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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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하자면, 포항은 자전거도로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잘 갖춰 놓은 곳이다. 도로 갓길을 차선과 분리해 자전거도로 표시를 해 놓거나, 갓길을 확보하기 힘든 경우에는 인도 위에 자전거도로 표시를 해놓은 걸 볼 수 있다. 시 전역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지만, 큰길가에는 대체로 어떤 형태로든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말하면 포항이 자전거 타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자전거도로가 많다고 해서 무작정 자전거타기 좋은 곳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 포항철강공업단지와 같이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 있는 지역은 자전거도로가 있다고 해도 공단 내 공장을 오가는 대형 차량들을 피해 다니기 힘든 상황이 계속 발생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포스코 앞처럼 교통이 복잡한 지역에는 자전거도로가 대부분 인도 위로 올라가 있다. 이런 길을 달릴 때는 특히 공장 정문 앞이나 교차로를 지나갈 때 주의를 해야 한다. 인도가 끊어지는 곳에서 갑자기 자동차들이 우글거리는 도로와 마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도 위에서는 또한 도로 위의 표지판이나 신호등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여러 가지다.

이처럼 대규모 공업단지가 있는 지역에서는, 설사 자전거도로를 달린다고 해도 여전히 위험한 요소들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특히 포항 시내와 같이 복잡한 도시를 여행하는 데 익숙지 않은 여행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사고에 휘말릴 수 있으므로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포항시 외곽. 갓길을 도로와 분리한 자전거도로.
 포항시 외곽. 갓길을 도로와 분리한 자전거도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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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놔두고 왜 도로로 내려왔어?"

아침 일찍 포항 시내로 들어선다. 살짝 긴장이 된다. 약전리에서 포항 송도해수욕장을 향해 가는데, 그러려면 반드시 공업단지 안쪽의 도로를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길이 부산의 컨테이너터미널 앞길을 지나가는 것처럼 복잡하고 위험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출발은 좋았다. 도로는 넓고 차량은 많지 않다. 자전거 타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포스코 정문 앞을 지나가는 길로 접어들면서 갑자기 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마침 출퇴근 시간과 맞물린 탓이다. 그때 도로 위로 줄지어 밀려드는 자동차들을 보고는 잠깐 인도 위로 올라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이 길은 공단 앞을 지나가는 데다 갓길마저 없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에는 꽤 위험하다.

하지만 나는 곧 냉정을 되찾는다. 이럴 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바로 인도 위로 올라가 버리면, 그것을 본 사람들 사이에 자전거는 그냥 인도로만 다녀야 한다는 인식이 더 강해진다. 그래서 나는 비록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심각한 위협이 느껴지지 않는 한 가급적 도로 주행을 고집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오늘은 포항을 여행하면서 자동차들이 꽉 들어차 있는 도로 위에서 호되게 곤욕을 치른다. 자동차 사이에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불안한 상황이다. 그 와중에 공단으로 직원들을 출퇴근시키는 것으로 보이는 고속버스 한 대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차 문을 열고는 이렇게 소리친다. "인도 놔두고 왜 도로로 내려왔어?" 그러고는 휙 지나간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솥뚜껑 놔두고 왜 차 몰고 나왔어?' 하는 말과 유사하다. 참 이기적인 말 아닌가? 처음에는 그게 무슨 소린지 몰라 그냥 흘려듣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나더러 인도로 올라가라는 얘기다. 도로가 복잡하니까 인도로 올라가는 게 좋겠다고 걱정해 주는 마음이야 고맙긴 한데, 글쎄 그게 그렇게 달가운 소리로 들리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인도를 달리는 것은 불법이다. 그런데도 자동차 운전자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 사람의 머릿속에 자전거는 인도를 달려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도 위에 자전거도로가 있으니 그 길을 이용하라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결코 바람직한 조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포항은 자전거도로 하나만은 남부럽지 않게 잘 만들어진 도시다. 그런데도 그곳의 자전거도로 위에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광경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지자체 등에서 시행 중인 자전거도로 정책이 실제는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그 이야기는 뒤에 가서 좀 더 해보기로 하자.

강구항 방파제 등대.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촬영지로 유명한 곳.
 강구항 방파제 등대.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촬영지로 유명한 곳.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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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는 있는데 도로에는 없는 길, '황당'

포항은 바다가 부산 못지않게 아름다운 곳이다. 포항 송도해수욕장은 이름도 이름이지만 넓은 백사장과 주변 시설들이 그대로 부산의 송도해수욕장을 연상시킨다. 주변 환경이나 시설물들이 부산에서 보고 온 것만큼이나 넓고 쾌적한 느낌이다. 마침 날이 맑아, 바다와 하늘 모두 눈이 시리게 푸른빛을 띠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런 풍경을 단지 포항의 송도해수욕장에서만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포항 지역을 지나가는 동해안이 대체로 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포항에서의 여행은 상당히 유쾌했다. 즐거웠다. 단, 포항철강공업단지를 지나면서 도로 위에서 조금 식은땀을 흘린 것과, 도시를 벗어나는 동안에 몇 군데 공사 구간에서 길을 헤맨 걸 제외하면 말이다.

포항은 현재, 시내는 물론이고 시 외곽에서도 공사 중인 구간이 많아 자전거여행이 그다지 녹록한 편이 아니다. 무엇보다 공사 지역을 우회하는 길에서 자꾸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된다. 지도 위에 있는 길이 도로 위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처럼 황당한 일도 없다. 그 길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양덕삼거리에서 칠포 방향으로 길을 잡아 올라타야 하는데 그 길을 갑자기 장량지구라고 이름이 붙은 주택단지 건설 현장이 가로막는다. 참 생뚱맞다. 할 수 없다. 거기서 다시 우회를 한다고 하는데, 가는 길이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그러다 자동차전용도로를 만나는 바람에 농로로 들어선다. 농로에서 길을 찾는다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인 줄 알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농로를 헤맨 끝에 겨우 좁은 2차선 도로를 만나서는 다시 30분가량을 더 달린다. 그리고 그 도로 끝에서 마침내 바닷가 길을 찾아 들어가는데, 그 길이 알고 보니 바로 앞서 지나온 주택 단지 건설 현장의 뒷길이다. 공사장만 아니었다면 20분도 안 돼서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무려 1시간이 넘게 돌아서 온 것이다.

포항송도해수욕장
 포항송도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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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리 해안 풍경. 왼쪽에 보이는 바위가 아기공룡 둘리를 닮았다.
 칠포리 해안 풍경. 왼쪽에 보이는 바위가 아기공룡 둘리를 닮았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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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길은 헤맸어도 '역시 동해는 동해'

이런 곳에서 만약에 '동해'마저 마주할 수 없었다면, 그 일 모두 내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다시 상쾌한 바닷가 길을 따라 달리는데, '역시 동해는 동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멋진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감탄사가 튀어나오지 않을 수 없는 풍경들이다.

영덕을 향해 가는 길에 칠포, 월포, 화진 등의 해수욕장을 지나간다. 이곳의 해안도로에서 바라다보는 바다와 하늘이 굳이 다른 배경이나 장식물을 보탤 필요 없이 완벽하게 아름답다. 모자람이 없다. 그 상태 그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매료시키고도 남는다. 경치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이곳에서 접하는 해산물들은 그 이상의 감동을 맛보게 해준다.

화진해수욕장을 지나면, 그곳에서부터는 바로 영덕이다. 영덕 하면 '대게'다. 아니나 다를까, 영덕으로 들어서면서부터 거리 곳곳에서 대게 조형물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음식점 앞은 물론이고, 도로 주변 길가에도 대게를 형상화한 조각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강구항으로 넘어가는 강구교를 건너면서, 대게가 머리 위 철제 구조물 위로 양쪽 집게발을 벌린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해맞이공원에서 대게의 집게발이 등대 모양을 하고 서 있는 걸 보게 되면 더 이상 할 말을 잃게 된다.

대게로 장식할 수 있는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짐작하기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무래도 영덕에서는 대게를 대충 보아 넘기기가 힘들다. 가는 곳마다 대게고, 먹는 것마다 대게다. 대게철은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다. 요즘이 제철이다. 지금 영덕의 강구항이나 축산항에 가면, 대게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강구항 못 미쳐 강구교 위의 대게 형상.
 강구항 못 미쳐 강구교 위의 대게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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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무렵의 해맞이공원. 창포말 등대.
 해가 질 무렵의 해맞이공원. 창포말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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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영덕해맞이공원에서 '대게'와 작별을 한 뒤로는 축산항까지 전력을 다해 달린다. 그 무렵, 해맞이공원을 거닐다가 서쪽 하늘로 급하게 넘어가는 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맞이공원에서 축산항까지 가는 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길다. 그렇다고 중간에 어디 아무 데서나 멈춰 설 수도 없다.

이렇게 해서 오늘 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긴 거리를 달리는 기록을 세운다. 그러고 나서는 마침내 축산항에서 숨 가쁜 저녁, 어두운 밤을 맞는다. 육체적으로 힘은 들지만, 가슴은 무언가 뿌듯한 기운으로 충만한 하루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104㎞, 총누적거리는 4358㎞다.

인도 위 자전거도로 반대, 그 이유는...

내가 인도 겸용 자전거도로를 부정적으로 보고 도로 주행을 고집하는 데는 무엇보다 자전거는 자동차들과 함께 도로로 달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게 '법'이기도 하거니와, 자전거가 도로 이용이 불가피한 교통수단 중의 하나임을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인도 위에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것에도 반대한다. 인도는 어디까지나 보행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 위로 자전거들이 지나다니면 보행자들이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겸용'이라고 해도 인도 위를 달리는 자전거를 좋게 봐줄 보행자는 별로 없다.

그렇다고 이런 겸용 자전거도로가 자전거에게 마냥 유익한 것도 아니다. 우선 법적 책임이 가장 큰 문제다. 인도 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자전거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곳이 자전거도로로 지정이 되어 있다고 해서 결코 면죄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듯이 우리나라의 법 역시 자전거를 '차'로 규정하고 있다. 자전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전거를 자동차와 관련한 법률로 처벌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이게 현실이다.

포항, 영일만을 향해 흐르는 형산강 강변 산책로.
 포항, 영일만을 향해 흐르는 형산강 강변 산책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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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자전거와 함께 쓰도록 만드는 정책은 자전거와 자동차 사이의 갈등을 자전거와 보행자 사이의 갈등으로 떠넘기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점차 자전거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에는 자전거 활성화 정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사실은 자전거 억제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전거 이용 인구 역시 답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때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게 바로 자동차 운전자들의 인식이다. 인도 겸용 자전거도로가 늘면, 자전거가 도로로 내려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늘게 마련이다. 자전거는 인도 위를 달려야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자전거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걸 보면, 아주 당연한 것처럼 인도 위로 올라갈 것을 요구한다. 결국에는 자전거와 자동차 사이의 갈등 역시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포항이 이런 상황을 맞고 있다고 본다. 사실은 포항뿐만이 아니다.

도로 위에서 일어나는 자전거사고가 걱정이라면 그 문제를 인도 위로 가져갈 것이 아니라, 바로 자전거사고가 발생하는 도로 위에서 해결해야 한다. 결국 도로를 자전거와 함께 사용하거나 도로 일부를 자전거에게 양보하지 않는 한,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는 일은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포항북부해수욕장
 포항북부해수욕장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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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포항, #영덕, #포항송도해수욕장, #자전거도로, #강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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