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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학교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학교장이 특성화 사업으로 추진하려던 일에 대해 전체 교직원을 대상으로 찬반 설문지를 돌렸는데, 교무부장과 연구부장을 제외하고 모두가 반대라고 적어냈다고 한다. 이에 학교장은 교사들이 익명이라는 그늘에 숨어 무턱대고 반대로 적어낸 것이라고 판단하고, 실명을 적은 같은 내용의 설문지를 다시 받도록 했단다.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장이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려던 사업을 교사들이 '태클' 걸었다는 걸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전체 교직원들의 의사를 사전에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 붙인 학교장의 무모함을 꼬집으려는 것 또한 아니다. 단지 다른 교사들의 뜻과는 달리 꿋꿋하게 찬성표를 던진 두 사람의 '미친 존재감'을 말하려는 것이다.

왜 2명은 꿋꿋하게 찬성표를 던졌을까

 수업중인 초등학교 교실
 수업중인 초등학교 교실. (기사 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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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승진을 코앞에 두고 있다.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다음에야 승진은 '떼논 당상'이다. 비록 많은 교사들과 뜻을 달리해야만 하는 부담감이 적지 않지만, 승진 가도에 생채기가 날 경우 겪게 될 고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것이기에 찬성표가 그들에게 그닥 어려운 선택은 아니다.

기실 익명이든 실명이든 괘념치 않고 반대표를 던진 교사들 중 그들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를 이해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아가 오로지 외길 삼아 십수 년 동안 쌓아놓은 공든 탑을 어떻게 허물어뜨리겠냐며 그들을 나무랄 수 없다고 적극 두둔하는 교사들조차 분명 존재한다.

담임 역할도, 보직 교사 업무도, 연구수업 실적도, 심지어 연수시간조차도 승진을 위한 점수로 환산되고, 근무평정이 학교장에 의해 매겨지는 현실에서, 교사들에게 승진이란 일반 기업체의 그것보다, 수험생들의 수능점수 경쟁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소수점 단위로 따져가며 순위를 다퉈야 할 무한 경쟁의 장이 돼버렸다.

적잖은 교사들이 승진에 목매다는 이유는 뭘까. 그것이 흔히들 생각하는 대로 남에게 건네는 명함에 교감이나 교장이라는 직함 하나 넣고 싶어 하는, 이른바 '벼슬 욕심' 때문일까. 하긴 평교사로 정년을 맞게 된 경우, 퇴임식 자리에서나마 보란 듯 감사패에 교감이라고 적어 추켜 세워주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을 보면 승진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교사가 공감하듯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교감 자리 하나만 꿰차도 누리게 되는 권리에 비해 해야 하는 업무의 양이 턱없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경험 상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권한만 행사하려는 교장, 교감들을 무수히 봐왔기 때문에, 바늘구멍만큼이나 비좁다는 걸 잘 알지만 충분히 '올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학교장은 말할 것도 없고, 일단 교감만 돼도 '지긋지긋한' 수업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다. 정년이 수 년 남았는데도 명예퇴직 신청을 한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왁자지껄한 교실에서 수업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승진이 가져다주는 가장 중요한 축복인 셈이다. 거칠게 말해서, 학교장이든 교감이든 아이들 눈에는 하나같은 교사인데, 승진을 사이에 두고 수업을 하는 교사와 하지 않는 교사로 나뉘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른바 학교 관리자로서 다들 행정적인 업무가 유능한 것도 아니다. 이는 관리자, 나아가 교육자로서의 품성과 자질에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급변하는 학교 운영 시스템과 관련되는 것이다. 모든 교육 관련 업무가 인터넷 상에서 구현되고 조작되는 현실에서 여전히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분들이 너무 많다.

더욱이 IT 강국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새로운 시스템이 학교에 마구 도입되는 최근의 환경은 그들을 더욱 소외시키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든 교무업무시스템,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교육정보화시스템, 에듀파인, 정보공시시스템, 독서활동기록상황시스템, 창의적체험활동시스템, 업무관리시스템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업그레이드되는 교육 환경의 변화는 신세대 교사들조차 버거워할 지경이니, 그들은 오죽할까.

수업에서 해방된 채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위치이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시스템을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승진에 목매단 '차기 주자'들에게 맡기면 되기 때문이다. 명절 때마다 인사치레를 다녀야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일진대, 아무리 일이 버겁다 해도 인사에 관한 한 생사여탈권을 가진 관리자의 요구를 거절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학교는 승진에 목매단 교사들과 승진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승진 경쟁에서 밀려난 교사들로 분화돼버렸다. 더욱 안타까운 건, 보직교사를 두루 거친 후 교무부장과 교감으로 이어지는 '승진 코스'가 전가의 보도처럼 굳어지면서 학교 업무가 불균등하게 배분되는 관행이 뿌리내렸다는 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학교마다 보직교사, 특히 교무부장의 업무량은 다른 평교사의 그것에 서너 배는 족히 된다. 방학 때 출근하는 건 물론이고, 정신없이 바쁜 학년 초나 학년 말이면 퇴근 시간이 밤 9시를 넘기기 일쑤다. 그런데도 보직교사를 바란다는 건 승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과 동의어이고, 승진할 사람이니 일을 더 하는 건 당연하다는 인식이 교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승진 제도, 학교 운영에 갈등과 분란만 일으킨다

이쯤 되면 승진 제도가 학교 운영에 활력을 주기는커녕 교사들 사이에 갈등과 분란을 일으키는 불쏘시개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실 학교는 방식의 실효성과 기준의 공정성 여부를 떠나 평교사, 교감, 학교장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승진 제도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곳일지도 모른다. 교사가 일단 승진에 중독되면 아이들 얼굴이 지워진다는 말, 괜히 생겨난 얘기가 아니다.

학부모나 교사들 사이에서나 평교사니, 교감이니, 학교장이니 구분하며 '높낮이'를 가리지, 교육의 중심인 아이들의 눈에는 모두가 '선생님'일 뿐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교감과 학교장의 승진 과정에서 검증된 '능력'이란 게 정작 수업 등 아이들의 교육과 직접적 관련성이 많지 않은 마당에, 기실 '서열'이 무슨 교육적 효과가 있을까. 교사들 사이의 평판은 그만두고라도 아이들에게 진정한 사표로서 존경 받는 학교장과 교감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명색이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스승일진대, 승진을 위해 청춘을 바쳤다는 얘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는 교사도 적잖이 보았고, 학교 안팎에서 평생 평교사로 썩을 거냐며 승진 준비는 이를수록 좋다거나 장학사 시험을 쳐서 교감이 되는 코스가 가장 빠르다는 등의 이야기가 난무하고 있다.

과연 수업하는 게 싫다면, 평교사로 나이 먹어가는 게 창피하다면, 아이들과 직접 얼굴 부대끼며 대화하고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이 꺼려진다면, 그래서 학교장이나 교감이 되어야겠다면 그게 어디 교육자인가. 만약 그렇다면, 거칠게 말해서, 교육이 싫어 승진해야겠다는 말 아닌가.

과문한 탓인지 지금껏 선배나 동료 교사의 승진을 마음에서 우러나 축하해주고, 자신의 역할 모델로 삼아 그의 철학과 열정을 본받으려는 교사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그저 일찌감치 준비해 점수 잘 챙기더니 결국 승진했다며 미지근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되레 줄 잘 서서, 연줄이 좋아서, 어른들 잘 모셔서 꿰찬 자리라며 비방하거나 조롱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승진을 축하하기는커녕 조롱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는데다 승진에서 밀려났다고 멀쩡한 교사가 목숨까지 버리는 안타까운 사건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이 이미 만신창이가 된 학교 내 승진 제도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모색해 볼 적기다. 거듭 강조하건대, 승진 대상자 선정 방식의 실효성과 기준의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학교 내 승진 제도 자체의 존폐 문제조차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미 학교장 내부 공모제 운영과 학교장, 교감, 보직교사 등의 순환 보직제 등이 몇 해 전부터 승진 제도의 대안으로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 않나. 이미 만신창이가 된 기존의 승진 제도를 보완할 방식과 기준을 머리 싸매고 고민하기보다 버릴 건 과감히 버리고 차라리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고, 또한 쉬운 일이 아닐는지.

덧붙이는 글 | 미래 지향적인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위해 현장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계신 학교장과 교감 선생님들 또한 적지 않음을 우린 잘 알고 있다. 비록 소수일지언정 그런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 교육에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이곳을 빌어 존경의 마음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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