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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일, 올해의 마지막 달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한다. 일찌감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겨 버스에 몸을 실었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맞은편의 레닌동상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맞은편의 레닌동상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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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첫 일정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점인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역사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하차를 하니 바로 앞에 레닌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 동상은 원래 기차역 광장 중앙에 세워져 있었으나, 1970년 레닌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맞춰 언덕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곳에서 블라디보스토크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하니 아마도 그곳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일 뿐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향하는 모스크바쪽을 가리키고 있다는 설도 있는데 오히려 이것이 더 신빙성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의 외관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의 외관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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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더니...

길을 건너니 고풍스러운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건물은 1912년 지어진 것으로 변형없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겉에 페인트칠만 새로한 것이다. 100년의 세월을 담은 이 곳에 얼마나 많은 러시아인들과 여행자들이 발자국을 남겼을지 그 수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대합실로 들어가려는데 버스에서 내리기 전 가이드의 당부가 자꾸 거슬린다. 이곳도 서울의 기차역들과 마찬가지로 노숙자들이 많다는것. 아침시간이라 더 심할테니 가능한 빨리 둘러보고 빠져나오는 게 좋다던…. 경계태세를 갖추고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선다. 괜히 코를 킁킁거리게 되고 주위를 빠르게 살피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이게 웬걸? 생각보다 한적하고 깨끗하다. 내 눈엔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다. 긴장이 풀리고 마음껏 대합실을 둘러보고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진다. 온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옆을 휙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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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뭐라는 거지?'

나의 알 수 없는 표정을 읽었는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더니 카메라를 가리킨다. 천장의 그림을 찍으라는 거였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일단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역시나  사진은 흔들흔들. 아무 생각 없이 찍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나중에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횡단열차의 시발점인 블라디보스토크 역과 종착점인 모스크바 역을 양쪽으로 그려놓은 그림으로 꽤 유명하다고 한다. 괜히 친절을 의심한 듯해서 그 러시아인에게 미안해졌다.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못된 습성 언제 버리지?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길게 늘어선 횡단열차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길게 늘어선 횡단열차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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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횡단열차, 이렇습니다

대합실을 지나 플랫폼으로 내려간다. 표를 끊지 않아도 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플랫폼에는 길게 늘어선 열차가 탑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열차가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는 그 열차. 작년인가?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겠다던 꿈에 부풀어 떠났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열차 안에서 나쁜 사람을 만나 모든 소지품을 도난당하고 빈 몸으로 귀국해야 했던 친구가 떠올라 마음이 살짝 불편해진다. 그 친구는 다시 여행을 준비중이다. 이번 여행길에는 좋은 사람과 아름다운 추억만이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나도 언젠가 경험하고 싶은 그 꿈을 꼭 먼저 이루기를….

여기서 잠깐! 횡단열차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쿠페가 일반적이다. 700불 정도의 가격에 이용할 수 있으며 4인 1실의 침대칸을 사용하게 된다. 2인 1실을 사용하는 룩소 등급도 있다. 물론, 쿠페 등급보다는 약간의 비용이 더 든다.

비용절감을 원한다면 쁘라치까르따나 시드 등급을 이용하면 된다. 쁘라치까르따는 6인 1실이며 시드은 지정좌석이 없다. 150불에서 200불 정도의 요금으로 저렴하지만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7박 8일을 여행하는 걸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여행길에 몸이 불편하다면 그 여행을 망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장거리 여행시에는 쿠페 이상의 등급을 이용하는 것을 권한다.

돈이 남아돌아서 쓸 데가 없다면 황금독수리 등급을 이용할 수도 있다. 티켓이 우리나라 돈으로 800만 원 이상이 되는 엄청난 가격이며 현지에 사는 가이드도 실제로 보지 못했을 정도로 쥐도 새도 모르게 출발을 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돈이 신기루처럼 없어지는 신기루같은 열차라고 생각했는데 기사를 검색해보니 5월부터 9월까지 한달에 한번만 운영되는 열차라고 한다. 5성급 호텔에 버금가는 시설과 음식들을 갖추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철길 위에서 초호화 여행을 즐길 수 있겠지? 난 꿈도 못 꿀 이야기. 그다지 욕심이 나지도 않는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영화 '태풍'에서 이정재와 장동건이 조우했던 곳
 영화 '태풍'에서 이정재와 장동건이 조우했던 곳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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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이 플랫폼에서 서성거리는 사이 그 중 한 명이 열심히 육교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를 따라 육교로 올라갔는데 이런! 현지인을 우리 일행으로 착각하고 따라 올라간 것이다.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어릴 적부터 그렇게 당부를 했건만 큰일날 뻔.  이 육교는 영화 '태풍'에서 장동건과 이정재가 마주하던 곳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이곳에서 촬영이 이뤄졌다니 왠지 특별한 의미를 두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되었던 증기기관차(좌)와 시베리아 횡단열차 기념비(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되었던 증기기관차(좌)와 시베리아 횡단열차 기념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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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육교 아래로 내려가 일행과 합류. 플랫폼의 한쪽에는 세계 2차 세계대전 당시 철길을 달렸던 증기기관차가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왠지 메텔과 철이를 싣고 은하철도를 달릴 것 같은 포스에 씨익 한 번 웃어본다.

기관차의 앞쪽으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기념탑이 세워져있다. 기념탑에 적힌 숫자 9288은 이곳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 대략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20배나 되는 거리다. 이 나라 도대체 면적이 얼마나 되는거야?

 블라디보스토크의 대우버스
 블라디보스토크의 대우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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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로 올라 기차역을 나온다. 기차역 광장은 아침시간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지역과 문화는 달라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그런지 서울의 아침풍경과 비슷하다. 늘어서 있는 노점상들, 연이어 도착하거나 출발하는 버스들, 출근길 사람들로 붐비는 만원버스, 가판대를 차려놓고 이것저것 팔고 있는 노쇠한 할머니까지는 그렇다 치고 버스가 대우버스라니. 글씨만 한글이었다면 우리나라 버스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달려온 줄 알겠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고 한다. 한민족이 살던 연해주 지방인 것도 있겠지만 KT나 현대 같은 한국 기업이 대거 진출해 경제 활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후원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서 뿌듯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기업의 국위선양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http://dandyjihye.blog.me/140119957415 개인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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