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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장을 보니 배가 제법 불록하다. 거실 한 쪽 벽에는 기다랗게 물의 흔적이 새겨져있었다. 누수다.
▲ 천장을 보니... 천장을 보니 배가 제법 불록하다. 거실 한 쪽 벽에는 기다랗게 물의 흔적이 새겨져있었다. 누수다.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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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초쯤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동호인들과 달리기 훈련을 하는 마라톤광이 오늘은 왠지 늑장이다. 저녁 준비를 하러 주방으로 가려는데, 거실에 물 몇 방울이 떨어져있다. 천장을 보니 배가 제법 불룩하다. 거실 한 쪽 벽에는 기다랗게 물 흔적이 새겨져있었다. 누수다.

"느낌이 좀 이상하여 훈련을 불참하고 집을 지켰는데, 집에서 약수가 나올 줄이야... 필요하신 분 연락주시면 무료로 공급해 드립니다. 수량이 부족하여 아무래도 곧 동날듯..."

굳이 약수통을 들고 집을 나서지 않아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약수를 그냥 놔둘 순 없었던지 마라톤광이 동호인들에게 무료(?)로 공급한단다.

천장이 일반벽지가 아닌 실크벽지라 그나마 물이 쏟아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었다. 학교 숙제를 하고 있던 아이들은 다른 방으로 피신시켰다. 물이 떨어질 만한 위치에 있는 물건들도 대충 치웠다. 창고를 뒤져서 빨간 통을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김치 담글 때나 나오는 통이다.

천장의 벽지가 한꺼번에 쏟아져 물바다가 되는 건 아닌지 겁이 났다. 거실을 자세히 둘러보니 한 군데가 더 있었다. 각종 통이 거실 여기저기에 놓여지기 시작했다. 약수통, 쓰레기통... 가늘게 세어나오는 약수를 기다리는 수고를 덜기위해 천장의 벽지를 조금 찢었다. 큰 약수통으로 두어 통이다.

목욕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가고...

가늘게 세어나오는 약수를 기다리는 수고를 덜기위해 천장의 벽지를 조금 찢었다. 큰 약수통으로 두어 통이다.
▲ 큰 약수통으로 두어 통이다. 가늘게 세어나오는 약수를 기다리는 수고를 덜기위해 천장의 벽지를 조금 찢었다. 큰 약수통으로 두어 통이다.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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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어느 정도 빼고서야 윗집에 인터폰을 눌렀으나 아이들밖에 없다. 일단 어른이 오면 누수가 된다고 알리라고 했다. 그날 밤, 윗집은 목욕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가고 보일러도 틀지 못하고 잤다. 리모델링을 한 지 얼마되지 않은 윗집에서는 약수의 발원지를 찾느라 며칠을 소요했다. 그러는 동안 각종 통은 우리 거실 두어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누수를 잡았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물이 새지 않은 어느 날 새벽. 이상한 기운에 일어나니 또 약수다. 윗집에 전화를 거니 두 번 울리자마자 바로 받는다. 약수의 발원지를 찾기 위해 보일러도 틀고 물을 좀 사용했다고 했다. 다음 날 누수를 찾기 위해 누수탐지기가 재등장했다. 원인은 밣혀졌다. 베란다쪽 화장실에서 가늘게 물이 새어나온 거라고 했다.

리모델링을 한지 얼마되지 않은 윗집에서는 약수의 발원지를 찾느라 며칠이 소요되었다. 그러는 동안 각종 통은 거실 두어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 각종 통은 거실 두어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리모델링을 한지 얼마되지 않은 윗집에서는 약수의 발원지를 찾느라 며칠이 소요되었다. 그러는 동안 각종 통은 거실 두어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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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지만, 거실의 천장은 구멍이 뚫린 채 축쳐졌고, 얼룩이 남았다. 윗집에서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라 뭐라 말을 못하고 있었다. 10년 정도 살았던 아파트라 이참에 이사를 갈까, 아니면 돈을 들여 도배를 할까 고민에 휩싸였다. 걱정 말고 고치라는 윗집의 말을 그냥 흘려들었는데, 보험이 된다며 얼른 고치고 영수증만 달라고 했다.

윗집 누수로 아래층에 있는 집에 문제가 발생시 윗집이 가입한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에서 아랫집의 수리비를 보상할 수 있다고 했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분들이라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비를 잘 하셨던 것 같다. 미안함을 떨쳐버리고 60만 원 정도 드는 거실 도배를 공짜로 했다. 아파트에서 좀처럼 나오기 힘들다는 약수를 핑계삼아 말이다. 덕분에 아이들의 낙서로 지저분했던 거실이 깨끗해졌다.

덧붙이는 글 | '2010, 나만의 특종'



태그:#약수, #일상배상책임보험, #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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