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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4년 전만 해도 가끔씩 <오마이뉴스>를 통해 일상의 삶의 모습들을 기고하면서 사람들과의 소통의 공간으로 나름의 잔재미를 느끼면서 생활했었다. 때로는 이야기의 소재들로 인하여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기도 하고 출판사를 통해서 원고요청을 받기도 했다.

 

소재가 가족과 친구, 주변사람들 사이에서 보여지는 사소한 삶의 모습들이 투영되다 보니 아들들 이야기는 단골메뉴가 되기가 일쑤였다. 혹시나 탈날까봐 알리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알아차리고 하소연을 할 때면 염치없는 웃음으로 위기를 넘기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공군사관학교에 입교한 아들은 학교 다니는 동안에 지켜줘야 할 몇 가지 부탁을 해왔다. 부탁이라는 표현보다는 경고에 가까웠으며 요지는 이러했다. 자신의 사진을 인터넷상에 올리지 말 것. 학교생활관련 내용을 올리지 말 것, 우리가족의 이야기를 올리지 말 것으로, 자신의 학교생활을 위해 인터넷 기고를 중단해 달라는 통첩이었다.  

 

삼수를 해서 공군사관학교를 합격했다고 까발리고 자신과 관련한 이런 저런 사연들이 못 마땅했던 모양이었다. 옛말에 시집살이 잘하려면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귀먹어리 3년이란 말이 있듯이, 관심 끄는 일보다는 조용하게 학교생활하고 싶다는 의지인 듯싶었다. 

 

그 일 이후, 민감하게 속내를 내보인 아들 녀석이 조금은 얄밉기도 하였지만 어느 땐가는 서로를 편안한 마음으로 이해하면서 지난날들을 추억 할 때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들의 부탁을 받고 침묵의 시간은 흘러갔다.

 

아들도 주어진 과제들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잘 지탱해 주었다. 어릴적 상대가 되지 않았던 아들과의 팔씨름은 두 팔을 붙잡고 바등거릴 정도로 단단해졌고 다리근육은 무쇠처럼  되어있었다. 어느덧 정복의 어깨 견장에는 네 개의 줄이 붙여졌다.

 

한 줄 한 줄마다  많은 애환들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노스님의 법문에 사람이 하루를 살아가려면 만생만사(萬生萬死)를 겪어야 한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났다. 변화무상한 생활 속에서 좌절하고 극복하기를 얼마나 했을까.   

 

 종착점이 다가오면서 졸업을 준비한다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작은 선물꾸러미 하나를 내놓았다. "엄마, 아빠! 사관생도 아들,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면서.

 

사실, 생도시절에는 특별히 용돈을 많이 달라거나 큰돈이 들어가질 않아서 가정경제에도 도움을 준 샘이었었다. 힘든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마음 한구석을 자리하면서 응원을 하였을 뿐이었다. 

 

아들이 내놓은 선물상자에는 사관생도들의 반지를 조금 작게 만든 반지가 들어 있었다. 반지포장 겉면에는 피앙새반지(미래를 약속한 여자 친구에게 주는 커플반지)라고 씌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야 할 반지를 부모에게 보은의 선물로 준 것이다. 잘 버텨온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선물이라니, 코끝이 찡해왔다. 

 

"줄만한 여자 친구가 없었니?"

"친구는 있지만 결혼을 약속한 친구는 아니니까 줄 수는 없지요."

 

아내와 나는 아들이 준 반지를 며칠 동안 자랑스럽게 차고 다녔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내의 손가락에서 반지가 보이지 않았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장롱 속에 보관 하는 중이라고 했다. 피앙새 반지의 뜻을 알고 난 후, 아들의 짝꿍에게 물려줄 생각이 먼저 났던 모양이다.

 

"나는 남자이니까 자네가 차고 다녀."

"아빠가 노심초사했으니까 차고 다니셔. 난 보관했다가 물려줘야지."

 

그날 이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장롱 속에 함께 보관하게 되었다. 언제일지 모를 후일을 기약하면서 또 하나의 기다림으로 아들이 준 선물을 넘겨 줄 인연을 상상해 보았다.

 

2010년 3월 20일 졸업식을 다녀왔다. 아들의 어께에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지나온 세월,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는 평범한 속담이 마음속 깊이 다가왔다. 감개무량하고 참으로 감사했다.

 

졸업과 함께 아들이 부탁했던 금기사항도 해제되었다. 4년간의 족쇄가 풀린 셈이다. 답답한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약속도 지키고 아들에게 선물도 받고 행복한 한해였다. 졸업과 함께 아들은 전투조종사의 꿈을 안고 비행훈련에 들어갔다.대한민국의 영공을 책임지겠다면서. 

덧붙이는 글 | 2010년 나만의 특종 


태그:#보은의 선물, #공군사관학교졸업, # 사관생도반지, #피앙새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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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에서 8년, 예술작업공간을 만들고, 버려진폐기물로 작업을하는 철조각가.별것아닌것에서 별것을 찾아보려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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