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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아무 일도 안 일어났네! "

 

1999년 12월 31일 밤 12시. 시 정부의 Y2K 비상 근무 상황실과 애틀랜타 공항을 오가며 단 한 건의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앵커의 뉴스를 전해 들으며 왠지 허탈했던 밤. 꼭 10년 전 이맘때를 기억합니다.

 

밀레니엄과 Y2K 버그 얘기를 지겹게 듣는 터라 가끔씩 보는 징그럽게 큰 미국 바퀴벌레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때였고 무릎보다 가느다란 허벅지를 드러낸 수단의 해골들과 코소보에서 갓난아이들을 안고 온 여자들의 사진으로 연일 가슴이 무너지고 있던 바로 그 무렵. 미국에서 유독 심했던 Y2K 신드롬의 결과를 보기 위해 십 년 전 그 날의 뉴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로부터 다시10년이 지나고 미국은 지나온 10년을 되짚어 보며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초부터 단추를 잘못 끼우는 듯 말썽을 빚은 고어와 부시의 대통령 선거. 봉해진 채 창고에 쌓여있는 투표용지 박스들은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없는 불확실한 선거 결과로 지금도 그 자리에 놓여있습니다.

 

선명하지 못했던 정치에서부터 출발한 미국의 21세기는 하늘을 찌르던 110층 짜리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어둔 밤 달려오는 차 바퀴에 깔려 온통 해체된 내장을 토해내고 아스팔트 도로 위에 형체도 없이 널브러진 고양이 한 마리만도 못한 모습으로 붕괴된 9/11,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 카트리나, 월 스트리트의 횡포와 미국 경제의 붕괴, 노동시장 회복 저조로 이어지며 어둡고 우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부시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 중 전쟁과 관련 국민들을 기만했던 사실을 공개 사과할 것을 주장하고 또 어떤 이들은 처참해진 오늘의 미국이 있게 한 원인과 결과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그 교훈으로 변하고 있는 세계 속의 위치를 재정립해가며 나아갈 길을 찾기에 부산한 모습입니다.

 

오늘 걷고 있는 길은 어제의 길에서 비롯된 것이니 바른 내일을 열기 위해 오늘의 길에서 어제를 되돌아 보는 일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놓고 무언가를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무려 10 년 동안 무너진 자리를 청소하고 다시 짓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보면서 깨닫습니다.

 

곧 다시 우리 앞에 문을 열게 될 새로운 10 년을 놓고 미래학자들과 과학자들과 점성술사들은 또다시 수많은 예견들을 쏟아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견은 예견일 뿐이어서 아무리 정확한 과학자나 전문가라고 해도 절반의 확률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Y2K가 빗나갔고 작게는 빌 게이츠가 2004년 세계 경제 포럼에서 2년 안에 스팸으로인한 골칫거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 것이 빗나갔고 근간 저명한 경제전문가들의 예측이 빗나갔던 것처럼.

 

미래를 위해 앞날을 예견하고 기술적으로 무언가를 준비하고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바른 성품과 온화한 인격을 기르는 것이라는 어떻게 보면 진부하기 그지없는 원론적인 내용으로 맥이 가 닿습니다. 결국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정치와 경제가 사회를 어지럽히고 생활을 힘들게 만드니까요.

 

몰두해야 하는 일이 생겨 한 달 넘게 쓰던 글을 쉬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저의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향후 10년엔 어느 쪽 문을 열어야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나뭇잎들이 물들어 떨어지고 서서히 검은 가지들을 드러내는 모습을 간간히 바라보았습니다.

 

찬란하게 채색된 가을 잎들 보다 떨어져 대지 속으로 자신의 몸을 밀어 넣는 낙엽들이 아름다웠습니다. 숲의 뼈를 이루는 의연하고 믿음직스러운 검은 가지들의 예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떨어진 낙엽들이 숨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에 기대보는 마음엔 벌써 초록 물이 들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중앙일보 애틀랜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예견,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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