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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자로 꾸며진 사랑은 팔작지붕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 사랑 T 자로 꾸며진 사랑은 팔작지붕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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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에 유명한 집을 들라고 하면 당연히 운조루일 것이다. 운조루는 이 집의 사랑채에 붙어 있던 현판이었는데, 그 이름을 따서 운조루란 명칭으로 부른다. 이 운조루를 다녀 온 것은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나가는 도로 좌측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운조루는, 중요민속자료 제8호이며 토지면 오미리에 해당한다.

고택 기행을 하면서 많은 집들을 찾아다녔지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것은 처음인 듯하다. 물론 일인당 1000원을 받기는 하지만, 그 집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일 테고. 할머니 한 분이 지키고 계시는 운조루는, 한 때는 우리나라의 최고 명당에 자리한 집으로 유명했다. 남한 3대 길지 중 한곳이라는 운조루. 금환낙지의 명당에 자리하고 있는 이 집은, 조선조 영조 52년인 1776년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지은 집이다.

중문에서 바라다본 대문채. 18칸이나 된다
▲ 대문 중문에서 바라다본 대문채. 18칸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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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는 대문채만 보아도 이 집의 대단함을 알 수가 있다
▲ 대문채 운조루는 대문채만 보아도 이 집의 대단함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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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집


운조루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집이다. 처음 질 때와는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18칸이나 되는 문간채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가운데 솟을대문을 둔 운조루는 좌우로 - 자형으로 길게 대문채와 행랑채가 자리를 한다. 이 대문을 들어서면 T자형으로 마련한 사랑채가 있다. 중문을 들어서면서 좌측이 큰사랑이고, 우측이 작은사랑이 된다.

운조루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집이란 생각이다. 이집을 둘러보면 참으로 사람이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가 있다. 작은 사랑에서 중문을 들어서려면 길이 비탈이 져있다. 혹여 그런 비탈에 사람이라도 다칠까봐, 널빤지를 이용해 비탈을 바로 잡았다. 중문 안을 들어서면 나무로 만든 통이 있다. 통 밑에는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기관을 장치했는데, 이 나무독이 바로 그 유명한 '타인능해'이다.

비탈진 길을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널판으로 평형을 잡았다
▲ 널판 비탈진 길을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널판으로 평형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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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랑의 마루와 밑에 각을 지게 만든 괴임돌
▲ 큰사랑 마루 큰사랑의 마루와 밑에 각을 지게 만든 괴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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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두가마가 들어가는 나무독. 없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
▲ 타인능해 쌀 두가마가 들어가는 나무독. 없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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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능해는 쌀 두가마가 들어간다고 한다. 이곳에 쌀을 넣어놓고 양식이 없는 사람들이 와서 쌀을 가져가도록 만든 것이다. 나눔의 미학을 이루는 곳 운조루. 민도리집으로 지은 이집은 사랑채와 안채의 지붕이 연이어져 있다.

대문 위에 걸린 호랑이 뼈

운조루의 솟을대문 위에는 호랑이 뼈를 걸어놓았다. 아마 집의 용맹함을 알리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집안에서 태어나는 남자들이 호랑이와 같은 용맹을 떨치기를 바라서 였거나. 큰사랑채는 앞에 놓인 툇마루가 이집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듯, 나무마루를 두텁게 놓고, 마루를 받치고 있는 고임돌도 각이 진 것을 사용하였다. 사랑채 끝에는 개방을 한 누정을 만들어 멋을 더했다.

대문 위편에 걸려있는 호랑이 뼈. 액을 막고 집안 사람들을 용맹하게 키운다고
▲ 호랑이 뼈 대문 위편에 걸려있는 호랑이 뼈. 액을 막고 집안 사람들을 용맹하게 키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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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안채는 ㄷ 자형이다, 들어서면서 좌측으로는 광이 있고, 방과 대청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안채의 부엌 쪽은 이층으로 꾸며놓아 멋을 더했다. 수많은 한옥을 찾아다녔지만, 운조루 만큼 멋을 보이는 집은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다락방의 형태로 꾸며진 부엌의 위에도, 난간을 둘러놓아 밋밋함을 피해 멋을 부렸다.

집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운조루의 건축기법이 색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명당에 집을 지었다고 해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 명당도 퇴색이 되는 것일까? 집안의 내력을 들어보면 아픔이 있는 집이다. 큰사랑 뒤편에 있었다는 별당은 사라지고, 이제는 연세가 많은 노마님이 집을 지키고 있다.

ㄷ자형의 안채는 한편에 대청을 놓았다
▲ 안채 ㄷ자형의 안채는 한편에 대청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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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을 들어서면 광채가 있다. 광채도 이층으로 꾸며졌다
▲ 광채 중문을 들어서면 광채가 있다. 광채도 이층으로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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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에 있는 부엌 위를 이층으로 꾸미고 난간을 둘렀다. 운조루만의 멋이다.
▲ 부엌 안채에 있는 부엌 위를 이층으로 꾸미고 난간을 둘렀다. 운조루만의 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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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사랑 누정에서 긴 장죽을 물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노심초사했을 이 운조루의 주인은, 이야기로만 남아 전해질 뿐이다. 그러나 이곳을 들리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갈 것이니, 아직도 운조루의 명성은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구례 운조루는 지난 달에 다녀왔습니다.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운조루, #구례, #중요민속자료, #타인능해,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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