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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이 과연 뭘까? 남보다 빠른 기사? 그렇다면 나는 올 한 해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특종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특종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기로 했다. 바로 예정된 상황이 아닌 경우 발생한 것은 모두 특종의 범주에 넣기로 한 것이다.

별일이 없다는 것은 좋으면서도 나쁜 것이다. 비슷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평온하다는 의미도 되지만 재미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진다는 뜻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일이 없는 사람은 별일이 발생하길 바라지만, 막상 별일이 생기면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람을 조금 피곤하게 만든다. 하물며 여행을 다녀와도 하루는 쉬어야 되니까.

나의 2010년엔 예정된 큰일이 하나 있다. 바로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하는 것이다. 2010년 6월 30일을 끝으로 모든 학생 신분에서 벗어났다. 대학 등록금 내느라 통장이 비는 일도 이젠 없을 것이다. 남편의 대학원 등록금이 있긴 하지만 두 사람 등록금 낼 때보단 그래도 여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종합시험도 재수 끝에 통과해서 이제 논문만 쓰면 된다. 사실 '논문만'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다. 석사 논문을 쓸 때에도 논문만 마치면 뭔가 다른 세상, 아니면 좀 더 새롭고 편한 세상이 펼쳐지리라 생각했지만 뭔가 허전했고 심심해졌다. 하지만 박사 논문은 생각 이상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언젠가 써야 할 것이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만의 특종, 2010년에 발생한 예정되지 않았던 일,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일어난 일에는 무엇이 있나?

[나만의 특종 ①] 어머님께서 나를 '교수'라 자랑하다

첫 번째, 어머님께서 나를 교수라고 자랑하게 된 것이다. 박사 논문도 안 썼는데 교수는 무슨 교수? 그렇다. 대학 시간강사다. 그래도 밖에서 보면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니 교수라고 해도 시비 걸 사람은 없다. 실제로 누가 나를 '교수'라고 부르면 손발이 오글거리는 증상이 나타난다. 바로 '선생님'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나에게 오글거림을 준다.

대학교 시간강사가 된 데에는 지도 교수님의 배려가 크게 작용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아이들 양육비를 위해서 내가 경제 활동을 꼭 해야 하는데 시간강사 수입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염치 불고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내 지도 교수님인 윤평현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다. 강의할 생각하지 말고 논문 얼른 쓰라고 하시면서도 나를 추천해 주셔서 강의를 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자기들을 가르치는 많은 선생님들 중에서 내 수업이 가장 재미있다고 한다. 가장 정확하게 가르쳐 준다고 한다. 많이 배웠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보면 기분이 정말 좋다. 나는 교수가 아니라 시간강사이지만 내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이 내 딸이, 내 며느리가 교수라고 자랑하시면서 어깨 으쓱하실 수 있으니 이 또한 효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굳이 교수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학교 교수라고 말하는 어머님 옆에서 미소만 지으면서 난 거짓말 아닌 거짓말에 동참을 한다.

[나만의 특종 ②] <한겨레>를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다시 <한겨레>를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시골살이는 평온하면서 심심하다. 극장만 빼고 다 있다고 큰소리치지만 사실 없는 것이 많다. 그래도 불편함은 없지만 조금 심심한 것은 사실이다.

시위를 할 수도 없다. 시위라 함은 세력을 보이는 것인데 그것을 볼 사람이 없으니 맥 빠진 시위가 되어 버린다. 또 하나는 나는 모르는데 지역 주민은 내가 누구인지 다 안다는 것이다. 저 사람이 누구 며느리더라, 누구 집사람이더라, 누구 올케라고 한다 한 마디만 전해 들으면 나에 대한 정보는 손쉽게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시골 동네다. 그래서 절대 사소한 시빗거리로도 싸움을 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니 조용히 살아야 한다.

그러다가 안 되겠기에 <한겨레 21>을 구독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바뀌고 난 뒤부터 대한민국은 정말 살기 힘든 곳이 되어가고 있는데,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했다. 알아야 비판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신문 구독은 사실 불가능하므로 주간지로 눈을 돌렸다.

내 갑갑증과 시사에 대한 무지함을 <한겨레>가 일깨워 주리라 믿는다. 나는 어떤 사건의 이면에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은 다소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누가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겨레>를 구독한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소설 쓰는 신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말이다.

[나만의 특종 ③]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좋은기사 원고료'

세 번째는 <오마이뉴스> 기사에 보내주신 생각하지 못한 원고료이다. 그저 사는이야기를 끄적거리는 나한테 후원 원고료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것도 적은 금액이 아닌 큰 액수로 말이다. 기획 기사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만한 기사에 주는 것으로 생각했지 사는이야기에, 그것도 바로 내 기사에 그런 원고료를 주실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왜 주셨을까?'를 생각했다. 스스로 내린 결론은 '응원'이라고 내렸다. 농촌에서 사는 모든 생명 지킴이에 대한 응원, 그러면서도 팍팍하게 살아가는 그들에 대한 응원말이다.

내 사는 주변 사람들의 삶을 하나씩 생각해 보건대 팍팍하지 않은 삶이 거의 없다. 꽃 농장을 하는 생수씨도 어렵고, 필리핀 아내가 떠나버린 데다가 양파모까지 도둑맞은 상봉씨도 팍팍하고,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편 친구도 안타깝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힘겨움을 벗어나기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원고료를 주신 분들은 그런 팍팍함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알고 계신 분들이 응원을 해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

한 가지 죄송한 것은 내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사는 마치 내가 농사일을 전업으로 하는 것인 양 보일 수 있는데 나는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으면서 집안일을 담당한다. 그래서 더욱 이 원고료가 죄송스럽다. 마치 대국민 거짓말을 한 것 같다.

스스로 변명거리를 만들어 주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전해 주는 역할도 중요한 것이라면서 스스로 사이비 농사꾼의 자리를 주기로 했다. 농사꾼은 낮의 농사일로 일찍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이렇게 대외적으로 뭔가 알리는 일을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른다. 남편을 봐도 오후 9시부터 졸리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사이비 농사꾼의 탈을 쓰고 마치 진짜 열혈 농사꾼인 양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자신에게 정당성을 주고자 해도 왠지 속인 것 같은 불편함은 가시지 않는다.

이렇게 세 가지가 2010년 , 내게 일어날 것이라고 예정되지 않았는데 일어난, 좋거나 미안한 일들이다.

별일 없기를 바라면서도 별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이루어지는 일도 있고 특종도 있으리라. 이제 내년이면 아홉수. 내년에도 잘 살자.

덧붙이는 글 | '2010, 나만의 특종' 응모 기사입니다.



태그:#나만의 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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