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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모 대학교의 청소을 담당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식사시간. 그녀들은 식사 할 공간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화장실 맨 끝 구석칸에 쭈그리고 앉아서 밥을 먹는다. 옆 칸에서 학생이 용변을 보게 되면 혹시라도 자신들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김치 한 입, 깍두기 한 쪽도 소리나지 않게 씹어 먹어야 했다"라는 얘기를 전해 들은 하종강 소장의 말에 강연장 내부는 숙연해졌다.

 

11월 22일 월요일 저녁 서울대학교 법대 100주년 기념관에서는 인문사회과학전문 서점인 그날이오면[대표 유정희]에서 주최했던 서평대회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로 4번째 열린 서평대회는 총 43편이 응모하여 그 중 13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새내기 부문에서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로 '정의를 규명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하여'를 쓴 서울대 인문계열 어정윤씨가 1등상을 수상했다. 일반 서평 부문에선 역시 동명의 책으로 서울대 철학과 석사과정의 서원주씨가 '정의로운 사회에 접근하는 가장 훌륭한 관점은 무엇인가?'란 주제로 1등의 영예를 안았다.

 

공교롭게 두 부문에서 1위 서평을 작성케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뽑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공정한 사회를 천명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하여 이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정의''공정' 등에 대한 대학가의 관심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또한 <리영희 프리즘>, <전태일 평전> 등으로 쓴 서평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2부 순서에서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의 '우리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란 주제로 강연회가 열렸다. 박정희 군부독재의 가장 치열한 시기인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화영식과 함께 산화한 전태일 열사. 그의 분신 40주기를 맞아 이와 같은 주제로 이어진 하소장의 강연은 군사독재 시절의 망령이 떠오를 만큼 심각하게 위축된 지금의 노동현장의 모습처럼 무거웠지만 하소장의 강연은 담담하게 이어졌다.

 

하종강 소장은 다양한 자료와 영상을 통해 지나온 노동운동의 역사를 나열하면서 노동운동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며 또한 미래엔 더욱 더 강한 운동으로 성장해야 이 사회 모두가 상호 보완되어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모태가 된다고 역설했다.

 

하소장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용어인 '바캉스' 유래를 설명하면서 혹자들은 이것이 산업경제의 발달에 따른 자연현상이라고 보는 이들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라 했다. 그는 노동현장에서 지속적이고 강력한 투쟁의 결과가 프랑스 수도 파리 시내를 텅 비워 고요의 도시로 만든 모두가 함께 쉬는 휴가 '바캉스'를 탄생케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재 80%를 상회하는 비정규직의 높은 비율을 걱정하면서 OECD 그 어떤 국가도 상상하기 어려운 이 수치가 유독 이 땅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학생들이 비록 대한민국 1%에 속하더라도 미래에 비정규직 대열에 끼이지 않으리란 보장은 결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이제는 블루칼라의 노동운동에서 화이트칼라의 노동운동이 본격화 되는 시점이라 말했다. 얼마전 대덕연구단지에서 쫓겨난 7~80여명의 연구원들도 모두가 석·박사 학위 소지자였음을 분명히 기억하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외국의 초중고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운동에 대한 교과 과정을 설명하면서 한국에서는 대학에 들어와서도 일부만이 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는데 이는 너무나 늦은 학습시기라 평가했다. 선진국에선 초등학생도 뻔히 알고 있고 실습을 통해 노사협상을 충분히 훈련받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교육의 부재로 노동운동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하소장은 노동운동의 핵심가치를 말하면서 사회문제를 전체적인 구조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그 해결의 실마리를 근본적으로 풀어 낼 수 있는 단초라 했다. 미국의 작가 그룹이 파업 때 동참한 스타급 배우들의 노동의식, 그리고 "나도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싶다"는 발언을 한 독일의 장관을 예로 들면서 이제는 누구나가 노동자이고 그 스스로의 권리는 노조를 통한 노동운동 만이 지켜낼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하자고 강조했다.

 

유럽 등지에서 자동차 과속 범칙금으로 수억원을 내야 하는 이유와 당위성을 얘기하면서 이 땅에서는 재벌 2세의 주차 딱지에도 4만 원, 일용직 노동자 딱지도 같은 4만 원을 내야 하는 구조는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부에 따른 적절하고도 공정한 세율을 감안하여 세금도, 벌금도 부과하는 것이 모두가 함께 평등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설명했다.

 

끝으로 하소장은 노동운동의 역사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과거의 쓰라린 경험들이 하나하나 쌓이고 축적되어 비로소 현재, 눈에 보이는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책 제목인 '아직 희망은 버릴 때가 아니다'란 얘기로 강연회를 끝맺음 했다.

 

하종강 소장의 열강에도 불구하고 강연장인 서울대 법대 100주년 기념관의 많은 빈자리를 지켜봤던 기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일류를 꿈꾸며 오고가는 미래의 비정규직 청춘들의 당당한 모습들이 강연장의 빈자리와 함께 기자의 발길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덧붙이는 글 | 김이구 기자는 현재 건강한도림천을만드는주민모임의 자원 활동가로 있습니다.


태그:#하종강, #전태일, #노동운동, #그날이오면, #서평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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