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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여관방을 구했다 할지라도, 아침에 바다에서 해 뜨는 광경을 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인데도, 서울에서 정동 쪽에 위치해 있다는 '정동진'에서는 그렇다.

 

11월 중순의 늦가을쯤에는 정동진역이 있는 인근의 여관방에서는 아무리 바다가 잘 보여도 결코 일출을 볼 수 없다. 정동진의 아침 해는 남쪽의 바다에서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봄 여름철에는 해가 북쪽의 바다에서 떠오른다. 정동진역 주변의 여관이 일출 광경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된다.

 

동해의 일출을 못 본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안인해안도로를 달린다. 정동진역에서 약 3km 지난 지점에 '등명 낙가사'라는 절을 만난다. 폐사된 옛 이름이 '등명(燈明)'(절의 위치가 어두운 방 가운데 있는 등불과 같은 곳)이라서 1956년에 절을 다시 세우면서 등명 낙가사로 바꾸었다.

 

절의 모든 건물이 동해를 바라보고 있다. 어느 건물 앞에 서서 바라보아도 확 트인 동해의 푸른 바다가 보인다. 날마다 아침 해의 정기를 온몸으로 느낄 사부대중은 해처럼 해탈할 것 같다.

 

이 절이 조선 중기에 폐사된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서울의 정동 쪽에 있어 궁중에서 받아야 할 일출을 늘 먼저 받아, 정동쪽 등불을 끄면 조선에서 불교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주장에 따라 폐사시켰다고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을 잘 들어낸 설화이다.

 

안인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식당주인이 어디서 오셨냐고 묻는다. 부산서 왔다고 하니까, 멀리서 오셨다면서 "우리 집에서 올해 호박농사를 잘 지었는데 호박 하나 가져 가셔요"하면서 큰 호박 한 덩이를 건네준다.

 

늙은 부부가 노년에 둘이서 차를 몰고 여행 다니는 것이  좋아보였을까? 아니면 식당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고마웠을까? '늙은 것이 좋은 것은 호박밖에 없다'는 말처럼 늙어서 좋은 것 하나도 없지만, 호박처럼 늙어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동진과 안인 사이에 강릉통일공원이 있다. 산중턱에는 십여 대의 퇴역한 공군기가 전시되어 있고 해변에는 해군 퇴역 전함(전북함)을 실물로 공개 전시하고 있다. 1996년 북한 잠수함의 침투지역인 이곳을 강릉시가 국민안보의식을 고취하기위해 2001년 위령탑과 함께 통일안보전시관을 세웠다.

 

통일보다는 적개심을 강조하는 듯한 전시행태는 비단 이곳만은 아니지만 어쩐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변의 아름다운 해안이 온통 날카로운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현실이 슬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강릉 시내로 들어가기 전 남대천을 따라 동쪽으로 나아가면 해안에 닿는다. 해안선을 따라 남항진해수욕장, 안목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 강문해수욕장, 경포해수욕장 등 백사장이 이어져 있다. 경포해수욕장과 마주 보는 곳에 경포호(석호)가 있고 그 주변에 자리잡은 강원도립공원인 경포대를 찾아간다. 늦가을의 단풍잎 아래 사임당 신씨의 좌상의 모습이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하다. 내려다보이는 경포호에도 짙은 가을색이 묻어난다.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이 걸려있는 대(臺)에 올라 경포호를 내려다 본다. 햋빛에 반짝이는 물결이 눈부시다. 오늘같이 청명한 날에 보름달이라도 뜬다면 경포호수의 밤경치는 어떠할까? 5개의 달이 뜬다는 시인의 심정을 느낄 수 있을는지. 문득 경포호가 없는 경포대를 상상해 본다. 경포대는 보잘 것 없는 하나의 조그마한 언덕으로 남고, 또한 경포대 없는 경포호도 그저 밋밋한 보통의 호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경포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새긴 시비를 모아놓은 곳이 이채롭고, 한국 전통의 문창살을 재현하여 설치한 것은 작품과 장소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도 그것대로 모처럼 찾아오는 외국인에게는 좋은 눈요깃감은 될 것 같다.

 

경포해수욕장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사근진해변, 순긋해변, 순포해변, 사천해변으로 이어진다. 해안을 따라 개설된 자전거길은 소나무숲 속으로 뻗어 있고, 해안도로(자동차) 소나무숲길(강원도수산자원연구소)은 피로에 지친 여행객을 감탄하게 한다.

 

 

높이 20여m의 키 큰 소나무가 울창하게 도열해 있는 길이 짧게 끝나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부에서는 4대강에 자전거길을 새로 낸다고 하는데 그 예산으로 기존의 자전거도로를 연장하거나 보수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태그:#동해안여행, #경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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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어난 해: 1942년. 2. 최종학력: 교육대학원 교육심리 전공[교육학 석사]. 3. 최종이력: 고등학교 교감 명퇴. 4. 현재 하는 일: '온천세상' blog.naver.com/uje3 (온천사이트) 운영. 5. 저서: 1권[노을 속의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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