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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총리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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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한시대의 역사가 사마천은 극한의 수치와 굴욕 속에서 역작 <사기(史記)>를 집필했고, 그의 굴하지 않는 비판 정신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역사가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그런 사마천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그저 무릎 꿇을 리 없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로 하루아침에 회사를 뺏긴 김종익 전 NS한마음 대표가 그런 사람이다.

10일 오전 자택에서 만난 김종익씨는 "내 삶을 <사기>를 읽기 전과 후로 구분하고 싶다"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사마천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고, 다시 <사기>를 뒤적거리고 글들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알려진 뒤 일부 누리꾼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씨가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물타기를 시도했다. 그들이 맞았다. 그의 서재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손때 묻은 역사·철학서들은 김씨가 밟으면 밟히는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듯했다.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망라된 각종 서적과 논문에서 김씨가 역사에 대해 가진 열정과 연구의 깊이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강의를 도왔고, 석·박사 과정 연구자들과 함께 19세기 한반도 역사자료에 대한 강독을 진행했다. 또 매천 황현 선생의 동학농민전쟁 관련 저술들을 번역한 연구자기도 하다.

그는 지난 10월 4일 총리실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한나라당 의원들로부터 색깔공세를 당했다. MBC 'PD수첩' 인터뷰에서 배경으로 촬영된 서재에 이른바 '이념서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역사는 당대의 권력에 부화뇌동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하는 교훈을 주고 있지 않느냐"고 해당 의원들을 동정했다.

오는 15일에는 불법사찰을 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실무자들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린다. 김씨는 이와는 별개로 자신을 '참여정부 실세들의 돈줄'로 매도하고 회사 지분 취득에 특혜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할 계획이다. 또 자신의 회사 지분 이전이 국가의 불법 행위로 인한 것인 만큼 이를 되찾는 법적인 절차도 진행할 예정이다.

김씨에게 자신이 당한 일은 더 이상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한국 사회의 민주적 역량이나 공동체의 정의에 대한 열정을 재볼 수 있는 척도가 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좌절하면 정의를 향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굉장한 실망을 주게 되지 않을까"라며 "정말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역사적인 의미를 갖게 됐기 때문에 끝까지 견디고 앞으로 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다음은 김종익씨 인터뷰 전문이다.

"사찰 받은 뒤 지인들이 전화도 안 받아... 정말 힘든 건 자기 검열"

총리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총리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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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할 곳이 없는데, 요즘 일상은 어떤지.
"내 일상은 아주 단조롭다. '역사문제연구소'에 나가 지인들과 소통하고,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자료 정리를 돕고 책을 읽기도 하고 연구 공동체인 '수유+너머'에서 하는 일본 잡지 읽기 세미나에서 자료 번역을 하면서 생활 리듬을 유지하고 있다."

- 갑자기 일터를 잃는 경우 병을 앓는 경우를 많이 봤다. 건강은 어떤지.
"사건 초기에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알고 지내는 의사가 '공황장애 증상이 보이면 전문가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땐 많이 우울했고, 심해지면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런 저에 대해 주변에서 꽤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체중도 10kg 이상 줄고 식욕도 잃어서 가족들이 많이 걱정했다. 다행히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정신적 형평도 많이 회복했다. 주변에서 걷기를 많이 권해 요즘도 하루 한 시간 정도 걸으면서 육체적 건강도 회복하고 있다."

- 지난달 4일 총리실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온종일 혼자였던 것을 봤다. 일상생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아무런 권력을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은 권력의 사찰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평소 알고 지낸 한 분은, 연 매출액 30억 정도의 중소기업 경영자이신데, 지난 20년 동안 회사의 사소한 문제까지 다 내 의견을 구하고 집안 대소사까지 상의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사건 이후에는 내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회관계가 파탄이 났다.

그러나 날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자기 검열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들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찾아가서 뵙고 싶은데, 내가 가는 것이 어떻게 해석될까 이런 생각 때문에 갈 수 없게 되는 일들이 있다.

그렇지만 지하철 같은 곳에서 처음 보는 내게 '힘내라', '잘 견디라'고 격려를 해주시는 분들도 심심찮게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런 분들의 말 한마디가 정말 도움이 된다. 얼마 전에 역사문제연구소의 주변 분들이 나를 위해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는 작은 음악회'를 열어주셔서 목이 메었던 적도 있다. 전혀 모르는 분들이지만 어떤 한의사 분은 약을 지어서 보냈고, 어떤 분은 귀농한 뒤 처음 농사지은 사과를 보내시기도 하고, 감을 보낸 분들도 있다.

불법사찰을 당한 나를 두려워하고 기피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내 고통과 상처를 나누고 위로하려고 하는 분들도 있어서 인생이 그렇게 삭막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일본에서 주고받은 이메일, 총리실에 다 보고돼"

- 오는 15일 불법사찰 실무자들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다. 검찰에 기소된 이인규씨 등은 공판에서 '국민은행이 공직윤리실의 내사를 이야기하면서 김종익 대표 사임과 지분 정리를 강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을 폈는데, 국민은행이 그들의 주장대로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이인규씨측 변호인의 전략의 초점은 총리실 사찰 행위자들의 강요에 의해 대표직 사임이나 지분 이전이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은행이나, 나 대신 회사의 새로운 대표를 맡은 A씨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임하라고 협박했다고 주장하는 게 이인규씨측 변론 요지다. 재판에서 다투고 있는 내용이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만 봐도 그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국민은행에서 나에게 사임을 강요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새롭게 회사 대표를 맡은 A씨는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지분 이전을 빨리 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계속 보냈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사용한 이메일 계정이 일본인 지인의 부인이 쓰는 이메일이었는데, 사건 초기에는 소송을 건다든지 하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 부인이 내가 보내고 받은 이메일을 무심코 지워버렸다. 소송을 진행하려고 하니 이 이메일이 매우 중요한 자료인데, 자료가 없어져 안타까웠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보니, 나 대신 대표가 된 A씨가 내게 보낸 메일과 내가 A씨에게 보낸 메일들이 다 자료로 제출돼 있어서 놀랐다. 한 가지 더 놀라운 것을 알게 됐는데, A씨에게 보냈던 이메일과 A씨가 내게 보냈던 이메일이 모두 총리실에 보고돼 왔다는 사실이다.

A씨가 지분 이전 얘길 계속한 것에 대해 A씨가 나하고 워낙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번 1심 재판에서 이인규씨측 변호사가 A씨에게 나(김종익)하고 적대적 관계인지 물었다. A씨는 '일이 있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정도로 잘 지냈는데 동작경찰서에서 (김종익씨가) 1차 조사를 받고 혐의 없음으로 나오고 나서 김종익씨가 회사로 돌아온다고 얘길 한 이후론 전화도 않고 연락도 않고 지내고 있다'고 진술했다. 이 얘길 듣고 많은 의혹이 풀렸다. 경찰서에서 조사 받는 과정에서나 'PD수첩'이 취재하는 과정에서 제가 회사 쪽에 자료 요청을 했는데 전혀 협조가 안 됐다. 직원들이 전화도 못 받게 하고. 왜 이럴까 하고 힘들어 했는데, 법정에서 그 얘길 듣고 나니 의혹이 풀리고 제가 회사로 복귀한다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굉장히 위협적이고 자기가 회사를 뺏긴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 민간인 불법사찰 실무자의 수첩에서 'BH(청와대) 하명사건'이라는 메모가 나오고 대포폰이 언급되는 등 청와대의 '윗선 개입' 관련 증거가 나오고 있지만, 검찰은 애써 무시하고 있는 듯하다.
"요즘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 내가 해석하고 의견을 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정치적 해석이 필요한 문제에 의견을 낼 경우, 자칫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지닌 본질에 정치색이 덧칠돼 이전투구 형태로 변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인 내 입장에선 국가권력이 평범한 한 시민의 삶에 가한 폭력의 실체를 규명하고, 그 과정에서 불법이 있으면 법 절차에 따라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이 너무나 상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고, 이런 상식을 믿기 때문에 국민들은 국가에 대해 국방이나 조세와 같은 의무들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 당연한 것이다.

지금 이런 상식적 절차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제기되고 있는 여러 의혹들은 결국 한국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거나 민주적 역량이 부족하거나 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간인 불법사찰은 개인을 넘어 정의와 민주주의의 지표가 되는 사건"

총리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총리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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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익씨를 상대로 근거 없는 비방을 한 의원들을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고소의 범위는 어디까지 생각하는지.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을 공론의 장으로 갖고 오면서 가장 경계한 게 이 사건이 정치적 공방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내가 참여정부 시절에 유력한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줬다고 여당 의원이 얘길하면 그대로 언론이 보도하고, 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내 주변에 있는 분들도 그게 사실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사실무근의 말을 해서 어떤 한 사람의 인격에 모욕을 가했다면 명예훼손 소송을 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 아니겠는가. 그런데 정치인을 상대로 소송을 하면 이것이 마치 그런 정치인과 대립하는 것으로 변질돼서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돼 논점이 흐려지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들은 자제해왔다.

이제는 불법사찰이 내 개인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정의와 민주적 지표를 나타내는 그런 사건이 돼 버린 것 같다. 이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대응할 수만은 없는 그런 입장이 돼 버렸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해결할 바람직한 방법은 그분들이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것인데 지금으로선 참 난망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벌어질 수도 있고, 하나의 전례처럼 여겨질 수 있어서 변호사와 상의해서 적절하게 대처하려고 한다. 누구를 고소하고 안 하고는 내게 어떤 법률적 전문성이 없어 변호사가 판단을 해주면, 정치인과 대립하는 것이 아닌 상식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적절히 대응하고자 한다."

-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 같은 경우는 총리실의 대응책에 따라서 기자회견을 한 것이 아니라, 제보를 받고 한 것이라고 했다.
"조전혁 의원의 기자회견 얘길 들었을 때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주식 취득에 특혜 같은 것이 있었다면 총리실의 자체 조사, 동작경찰서 조사,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왜 문제가 안 됐겠는가. 그런 특혜·비리 이런 것은 사찰하는 쪽에서 가장 바라는 그런 문제일 텐데 그런 것이 있다면 왜 문제를 삼지 않고 왔겠는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조전혁 의원에게 정보를 제공했다는 사람의 이름을 듣고 심장이 멈춰버리는 줄 알았다. 그 사람이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내가 (국민은행 퇴직 직후) 퇴직금을 갖고 있을 때 그 사람이 날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고, 나는 3000만원을 투자 형태로 빌려줬다. 그런 사람이 날 향해 칼질을 해대니 얼마나 황당하고 놀랐겠는가. 조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기 이틀 전에 이 사람이 내게 전화를 해 '하고 있는 일이 잘돼서 채무를 변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지금 경제적 사정이 워낙 힘드니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다음날에 다시 전화가 왔는데 '별일 없냐'고 하면서 나를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당시 나는 한참 사건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만날 수 없다고 얘길 했다. 그 사람이 평소 유력 인사가 자신의 친인척이라고 말을 하고 다닌 사람이긴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언젠가 진실 드러내는 역사의 관성 믿어"

- 현경병 한나라당 의원은 NS한마음이 연 매출이 200억이 넘는 회사였다는 이유로 '일반 서민'이 아니라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경영했던 회사의 매출과 민간인 사찰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일반 서민'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지, 연 매출이 200억이 넘는 회사의 경영자에 대해서는 불법사찰을 해도 괜찮다는 얘기인지 황당하기 짝이 없다.

국정감사장에서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논점 흐리기식의 질의를 바라보면서 저 사람들이 불법사찰을 이런 것으로 덮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좀 우울했다. 역사는 당대의 권력에 부화뇌동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하는 교훈을 주고 있지 않은가. 나는 언젠가는 진실을 드러내는 역사의 관성을 믿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무시무시한 권력 앞에 보잘것없는 내가 어떻게 이 사건을 공론의 장으로 갖고 올 수 있었겠는가. 또 그 회사를 경영한 것은 3년이 좀 넘는 기간이고 그 이전에는 은행원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큰 회사를 경영한 것처럼 물타기를 해서 '사찰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 MBC 'PD수첩' 방송 당시 배경으로 나온 서재에 북한 관련 서적이 있다고 지적한 누리꾼이 있었고, 지난달 4일 국회 정무위의 총리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일부 한나라당 의원이 '김종익 사상검증'에 나선 바 있다. 서재에 있던 <조선로동당 연구>와 <아리랑>을 문제 삼기도 했는데.
"<조선로동당 연구>는 연구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한 것이다. 북한이 어떻게 해서 세습이 가능한 전제국가가 됐는지를 실증한 연구서다. 이 책을 마치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불온서적처럼 몰아가는 데에는 좀 어이가 없었다. 국민의 주권을 대리하는 입법기관의 의원이 이런 말을 해서 당시 좀 분노했던 것 같다.

이런 일에 대해선 정말 대꾸할 가치도 없다. 개인이 무슨 책을 읽고 또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검증받아야 하는 사회는 인간의 사회가 아닌 야만의 사회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국민들의 사상의 자유가 침해받지 않는지를 가장 예민하게 살펴야 할 국회의원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슬프고 울화가 치미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를 국민이 아닌 것처럼 대하는 정부, 제대로 된 정치라면 이럴 수 없다"

- 불법사찰을 정당화하려는 논리들을 보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대한민국 국민'에서 특정 이념을 가진 사람을 배제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주 오래전에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재상이었던 이사(李斯)가 진시황을 향해 '태산은 한 덩어리의 흙도 버리지 않아 그 높이를 이뤘고, 큰 강과 바다는 작은 실개천의 물도 사양하지 않아서 그 깊이를 이뤘다'고 얘기했다. 정치의 본질은 이사가 말했던, 산이 높이를 이루고 강과 바다가 깊이를 이루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 이념'이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삶을 해석하는 다양한 생각이 있을 뿐 신념으로 신봉하는 사상이 있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사상이 아니라 종교일 것이다.

나는 정치가 현실을 사는 고단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은 그런 고단한 사람들이 가서 기대고 하소연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한다. 이런 정치에 대한 내 생각과 현재의 통치세력이 하는 정치가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권력에 의해 한순간에 삶이 파탄 난 나를 마치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것처럼 대하는 정부의 처사는, 제대로 된 정치라면 이렇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총리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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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 올린 동영상은 김종익씨가 만든 것도 아니고, 조회수도 얼마 되지 않는다. 조사를 한 결과 김종익씨가 참여정부 세력의 돈줄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현 정권에 위협이 되는 사람도 아니고, 각종 조사와 수사에서도 아무런 비위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집요하게 회사를 뺏으려 한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혹시 이인규 전 지원관 등 현 정부 인사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억측까지 드는 상황이다.
"이인규씨(공직윤리지원관)나 김충곤씨(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장)는 재판정에서 처음 봤고 원충연씨(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 사무관)는 검찰의 대질조사에서 한 번 봤다. 모두 생전 처음 본 얼굴이었는데 무슨 원한이나 그런 일이 있겠나. 그분들이 재판과 수사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나 원망이 아닌 연민 같은 것을 느꼈다. 그분들도 누구에게 애틋한 자식이고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데, 앞으로 이런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분들도 잘못된 권력 구조와 권력 행사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이분들도 권력의 일부분, 조직의 일부분이 아니고 온전한 개인으로서 자기를 되찾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줄서기 같은 게 아닐까? 조직 속에서는 충성하는 것이 사회적 상식보다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다. 정말 인생에서 독립된 자기 개인으로서 자기를 생각하고 그런 차원에서 진술들을 해줬으면 한다. 인간에게 내재한 선한 의지 같은 것이 있기에 진실이 가려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문경관 이근안씨 같은 경우도 얼마나 불행한가. 당시에는 나름대로의 사명감에 충만해서 고문도 하고 그랬지 않겠나. 세월이 흐르고 나니 자기 모습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인간이 그래야지 희망이 있지 않겠나."

- 정부의 불법사찰로 인해 부당하게 회사 주식을 헐값에 이전했는데, 이를 회복할 수 있는지.
"국가권력의 불법사찰로 순식간에 생계수단을 뺏긴 것이다. 이걸 회복하는 절차는 한없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정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통해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사건 전에는 한국 사회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이 지켜지는 민주사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가가 국가권력으로부터 피해를 본 나를 위로하기보다는 적대적인 존재인 것처럼 모욕하거나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것처럼 하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견디고 겪어야 할 일들이 너무도 힘들고 간단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법적 절차 이외의 다른 방도도 없어서 대한민국에 사는 것 자체가 비애처럼 느껴진다. 다만, 현재 저와 가족들이 겪는 너무나 지독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인간의 자유와 정의를 향한 역사적 징표로 남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면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2년 이상 살다보니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이 든다. 주변의 배려로 견디고 있지만 얼마나 더 견딜지. 국가 권력의 불법에 의해 생계수단을 뺏겼는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정부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이게 국가인가. 나는 국가는 평범한 삶의 안정을 보장해주는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도리어 국가가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서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누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무를 다하려고 하겠나. 나처럼 조세의 의무나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이면에는 국가에 의해 내 삶이 안정적으로 지켜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인데, 국가가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존재라면 누가 그런 국가를 위해 충성하려고 하겠는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서운했던 것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이런 일에 대해 아무런 발언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도 정치세력 간에 갈등구조가 형성될 때는 크게 보도하다가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한다. 언론이 민간인에 대한 사찰이 이뤄지는 것이 정상적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하지 않는가. 미국의 예를 보면 워터게이트 같은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됐고 불법 행위자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피해자들에 대해선 어떻게 보상했는지 등에 대한 상세한 보도가 있었다. 그렇게 해야 불법사찰의 유혹을 받는 권력자들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엔 정치권에서만 크게 문제가 됐지, 한국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에 대해 서운함을 느낀다. 진보언론의 기명 칼럼니스트 중에서조차 민간인 사찰의 근본적인 문제, 민주주의의 본질을 해치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향후 사건 처리 방안 등에 대해 발언한 분이 없었다. 

이념 공세가 있을 때, 개인의 이념을 검증받아야 하는 사회라면 인간의 사회가 아니고 야만의 사회다. 그런 것에 대해서도 지식인들이 침묵하는 것이 놀랍다. 민주화 운동의 많은 희생의 결과가 이런 것인가."

총리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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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좌절하면 사람들에게 실망 주는 일, 끝까지 견디겠다"

- 명예와 재산권 등의 회복을 위한 법적인 절차도 3심까지 이어진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것이다. 
"나는 이번 일이 이제 개인의 문제를 떠나 한국 사회의 민주적 역량이나 공동체의 정의에 대한 열정을 재볼 수 있는 척도 역할을 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고 생각한다. 국가권력에 의해 삶이 파괴된 사람들의 경우 법원에서 재심 청구에 의해 새로운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 내가 좌절하면 정의를 향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굉장한 실망을 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말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의미를 갖게 됐기 때문에 끝까지 견디고 겪어 나갈 것이다. "

- 회사를 뺏기고 나서 사건을 공론화하기까지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까지 오면서 여러 가지로 힘이 많이 들었는데 날 견디게 해준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가족들의 힘, 주변의 지인들이 보내준 성원, 또 중요한 건 이전에 내가 살아왔던 삶의 이력이 나에게 견디는 힘을 주는 것 같다. 사마천의 <사기> 본기, 세가, 열전을 1980년대 초반에 공부했는데, 내 삶을 사마천의 <사기>를 읽기 전과 후로 구분하고 싶다. 사마천이라는 한 인간이 인류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가. 참담하고 도저히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인류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이다. 내가 사마천만큼은 못하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마천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고, 다시 <사기>를 뒤적거리면서 글들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향 같은 것을 설정했다. 힘든 현실을 견디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태그:#김종익, #민간인 불법사찰, #공직윤리지원관, #사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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