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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밀어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입학을 하면서부터 특수학급 설치를 요구했고, 교육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도 받았는데 어떤 것도 제대로 시행된 것 없이 벌써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은 병이 될 지경이다."

강북구에 위치한, 사학의 명문이라 자랑하는 S고등학교가 있다. 야구명문으로 한때 이름을 날리고, 올해부터는 자율형 사립학교(일명 자사고)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중이다. 이 학교에는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3년 전만해도 장애학생 7~8명이 재학하고 있었지만 상급생들이 졸업을 하고 신입생을 받지 않아 지금은 3명의 장애학생들이 학교에 남아 있다.

특수학급 설치 권고까지 받았는데...감감 무소식

특수학급 설치를 결정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문
▲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권고문 특수학급 설치를 결정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문
ⓒ 최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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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명)의 부모는 하나의 중학교 졸업 즈음인 지난 2007년 하반기부터 2008년 3월까지 집 근처에 위치한 S고등학교에 입학신청을 하면서 특수학급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을 했다. 하지만 학교는 이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학교는 학급 설치 공간이 없다며 다른 학교로 진학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의 부모는 지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는 장애학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할 경우, 딱히 갈 곳이 없기도 한 지역이 강북인지라 S고등학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또 발달장애의 특성상 구(區)를 넘어다니는 통학은 상당한 부담감이 있는데, 인지나 판단능력이 부족한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하나의 경우 자칫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국 학급 설치와 관련한 민원을 제기하기로 하고 입학을 하기로 했다.

하나의 부모는 '특수교육법'을 근거로 장애를 가진 학생의 경우 근거리 배치를 원칙으로 하는 조항을 들어 적극적으로 S고등학교에 학급 설치를 요구했다. 또 입학 후인 2008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도 냈다. 그 결과는 특수학급 설치를 권고하는 것으로 나왔으나 학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인권위 권고안은 말 그대로 권고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하나는 특수학급이 없는 상태로 통합반에서 교육을 받았다. 하나의 부모는 '장애인등에 대한 특수교육법'과 '장애인차별 금지법'에 공통으로 나와 있는 것이 '개별화교육'의 지원인데, 이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 차별에 해당한다는 항목을 들어서 계속 민원을 제기했다. 그 결과 교육청과 학교와 부모가 만나 해법을 찾았다.

같은 해 5월, '학교는 개별화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공간을 제공하고, 교육청은 순회교사를 파견해 개별화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며, 야외학습과 교육지원을 위한 재정지원을 한다'는 내용으로 장애학생의 교육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

하지만 이 약속은 졸업을 앞 둔 지금 2010년 11월 현재까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의 부모에 따르면, 3년간 학교생활을 하면서 지원이 이루어진 것은 2학년 들어 사회복지사가 파견된 정도. 그마저도 '인턴교사'를 활용한다는 이유로 사라졌다.

"매일매일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 등 떠민 게 3년"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아이 등을 떠밀어 보내는 것도 미안한 일이었고, 적응을 못해 이상한 행동을 보일 때는 내 욕심만 앞세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차피 성인이 되면 지역사회에서 살아야 하니 통합교육을 통해 소통하는 방법이나 어울리는 방법들을 배우고 익히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특수학교에 보내는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학교나 교육청에서 약속한 것들이 지켜진다면 나아질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거짓말로 드러났고, 민원을 제기하면 그것만 무마하기 위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더 화가 나는 것이다."

하나 엄마 김아무개씨는 기회만 되면 교육청에 문제해결을 요구했지만 늘 듣는 대답은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시간만 흘러 지금은 3학년 졸업반이다. 3년간 가방을 메고 시간을 허비한 꼴이 됐다.

"이제 화병이 날 정도다. 소송이라도 해서 지난 3년간 학교와 교육청이 아이의 시간을 허비한 것에 대한 물질적, 정신적인 보상을 받아야 속이 시원하겠다."

교육감이 바뀌면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도 사라지고 졸업을 앞둔 지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김씨. 부모로서 해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이 깊어진다는 김씨는 "이제 법에 호소하는 것 말고는 없을 것 같다"며 관련 단체들을 찾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제 졸업을 앞둔 마당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동안 아이가 받은 정신적인 피해나, 내가 받은 정신적인 피해를 어떻게든 보상받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교육청이나 학교가 아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며 절차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이게 현재 장애인교육의(고등학교) 현실이다. 사립학교에 장애학생을 위한 공간은 줄 수 없으며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나 '장애인 차별 금지법'은 법 취급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수학급이 없을 경우, 개별화 교육을 통해 교육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해주고, 개별화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바로 학교의 몫이다. 순회교사를 파견하고, 교육의 내용을 채워가는 것은 교육청의 몫이며 그러한 지원은 의지의 문제이지 환경이나 재정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 교육, 의지 문제지 재정 문제 아냐

장애가 특권은 아니다. 하지만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배제와 소외, 제한된 생활을 지속해 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직업훈련과 일상생활훈련 등 성인기를 준비하며 자립생활을 위해 습득해야 할 것이 많은 아이를 3년간 방치해 둔 것에 대해서 누구도 책임 있는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장애 학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하나 엄마 김씨는 현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함께 소송 가능 여부를 확인 중이다.

결국 장애학생의 고등학교 문제는 정책적으로 풀어가는 방안을 마련하든, 아니면 법을 앞세워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든 해야 해소가 가능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손 놓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절대 자발적으로 풀리지 않을 문제라고 본다.

장애가 있는 아이나, 그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교육청에서는 S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사례가 다른 학교에서도 있을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피해를 막는 길은 그것뿐이다.

덧붙이는 글 | 특수학급 설치를 권고한 인권위원회의 결정에도 학급설치를 하지 않은 S학교의 버티기로 장애학생이 감당해야 할 부담과 고통은 말로 하기에 부족할 정도다. 장애학생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할 학교와 교육청의 무관심은 피해를 가중하고 있다



태그:#고등학교, #장애학생, #특수학급, #인권위원회, #인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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