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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13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현병철 위원장님, 아니 현 교수님, 공개적으로 이런 말씀드리려 하니 참으로 곤혹스럽습니다.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지만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군요. 한 지붕 밑에서 함께 지냈던 동료 교수이자, 학창 시절 이후 이런저런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이 이런 매몰찬 고언을 한다는 것 얼마나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저는 사적인 인연을 접고 오로지 대의를 쫓기로 했습니다. 어렵게 만들어 오늘에 이른 인권위에 대한 저의 최소한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권을 가르치며 내일의 인권변호사를 키워내려는 한 연구자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현 교수님, 이제는 사퇴해야겠습니다. 그 자리를 내려 오셔야겠습니다."

 

당신은 인권과 관계없는 분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오전 현병철 신임 국가위원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작년 7월 현 교수님이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참으로 어리둥절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적어도 제가 만난 학교의 동료 교수들은 현 교수님께 축하를 해주어야 할지 말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왜인지 잘 아시겠죠.

 

'이상한 인사'라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인권과는 관계가 없으신 분을 어떻게 한 나라의 인권기구 대표로 임명을 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동료교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설마 현 교수님이 그런 임명을 수락하시겠느냐"고요.

 

그런데 그것이 곧 현실화되더군요. 인권위법을 보면 위원장을 포함하여 인권위원은 인권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제가 아는 한 현 교수님은 그것과는 관계없는 인생을 사신 분 아닙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진짜 인권전문가를 제가 몰라보고 있었던 것인가요. 당시 현 교수님이 임명 전에 제게 한 번이라도 그 자리가 가서 일할 만한 곳인가라고 물어만 주셨더라면, 정말 이 한 마디는 꼭 했을 것입니다. "그곳은 현 교수님이 가실 곳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현 교수님, 기억하시는가요. 인권위원장이 되시고 나서 제가 한 번 뵌 적이 있지요. 그때 저는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격 없는 분을 임명하였다고 염려한다. 그런데 간혹 그런 분들 중에서도 훗날 좋은 평가를 받는 분도 있다. 미국에서 민권시대를 연 얼 워렌 대법원장은 임명 초기에 아주 보수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힌 인물이었다. 인권과는 관계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미국의 가장 진보적인 민권시대를 연 대법원장이 되었다. 임명권자가 자기를 배신했다고 노여워했다고 한다. 현 교수님도 한국의 얼 워렌이 되시라."

 

하지만 현 교수님은 안타깝게도 저의 고언이 무엇인지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저의 고언은 그저 하나마나한 마이동풍격의 에피소드가 되었을 뿐이니까요.

 

한 번이라도 인권단체와 의미 있는 대화 해보셨나요

 

 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 촉구 시민인권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현 위원장의 독단적인 인권위 운영에 항의하며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현 교수님이 인권위원장이 되시고 나서 인권위에 불어닥친 문제는 위원장 자격과 대부분 관련이 있습니다. 인권단체가 현 교수님을 위원장으로 인정하지 않지 않습니까. 이제는 아시겠지만 인권위와 인권단체의 관계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권단체의 지지 없는 인권위는 그 존립근거를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권위법은 곳곳에 인권단체와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권단체가 현 교수님을 무자격자라고 하면서 허구한 날 물러나라고 요구합니다.

 

임명 이후 단 한 번이라도 인권단체와 의미 있는 대화를 해 보신 적이 있는지요. 저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급기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인권위 건물 내에서 사퇴를 요구하면서 농성에 돌입했다고 하지요.

 

인권단체뿐입니까.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인권향상을 위해 고민해야 할 동료 인권위원들도 상당수가 위원장의 리더십을 사실상 인정하지 안잖습니까. 3명 상임위원 중 2명이 임기 중에 위원장의 독선을 참을 수 없다고 하면서 인권위를 떠났습니다. 인권위 설립 이후 초유의 일입니다. 이제는 전직 인권위원장과 인권위원들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서 위원장 사퇴를 요구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인권위에 관심을 갖고 있는 변호사들과 법학자들도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면서 성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래도 믿을 것은 인권위 직원뿐인데 그들은 어떻습니까. 위원장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하는 직원들도 이미 위원장에 대해서는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며칠 전 발표한 성명서를 보십시오. 아마도 공무원 사회에서 자신의 감독자인 기관장에 대하여 그런 식으로 성명을 발표한 것은 초유의 사태가 아닌가요. 아무리 위원장에게 인사권이 있다 한들 인권에 대한 정열과 경륜을 보여주지 못하는 위원장이 직원들을 끌고 갈 수 없는 일입니다.

 

이건 인권위 초유의 사태입니다

 

현 교수님, 동양철학의 진수인 주역에는 '득위(得位)'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리를 잘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일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자리를 감당하지 못할 때 그 자리에 가면 필시 화가 미칩니다. 이것이 주역이 말하는 우주의 근본원칙입니다.

 

현 교수님과 인권위원장, 그것은 정위치가 아닙니다. 사람이 제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바로 그것을 정리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처신입니다. 이것이 처세술 중 제1의 처세술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면 현 교수님은 명색이 교수님이잖습니까. 교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존심을 먹고 사는 직업 아닌가요. 교수 사회에서 제일 듣기 싫은 욕은 무능한 사람, 전문성이 없다는 평가가 아닌가요. 교수가 국가기관의 장이 되었는데 사람들이 그를 줄곧 전문성이 없다고 하면서 그 자격을 문제 삼는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일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보수적 인권위원장, 충분히 올 수 있습니다. 진보적인 인권단체가 그것을 반대한다고 해도 그것은 현제도 하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라도 인권위원장은 보수적인 인권을 나름의 논리로 설파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보수든 진보든 인권위원장을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권단체나 인권전문가들이 현 교수님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그들과 현 교수님이 코드가 다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수로서는 치욕스런, 전문성과 경험이 없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니 현 교수님이 그런 공격을 스스로 방어할 수 없다면 자리를 물러나는 것이 순리입니다.

 

현 교수님, 이제는 사퇴하셔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연연해하신다면 너무 추합니다. 현 교수님을 알아 온 많은 사람들이 현 교수님의 처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부디 이 나라의 인권을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봉사하실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즉각적인 사퇴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는 2005년 2월부터 인권위 정책국장으로 일했고, 2006년부터 한양대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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