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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3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2차 양적 완화를 결정했다(1차 양적 완화는 2008년 12월부터 2010년 3월까지 1조7000억 달러 규모의 자산 매입). 2011년 2분기 말까지 매월 750억 달러어치씩 총 6000억 달러어치의 국채를 매입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추가 양적 완화 규모가 5000억 달러에서 최대 2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었다. 규모만을 놓고 보면 매입규모가 너무 커도, 너무 적어도 안 된다는 판단 아래 전문가들의 전망치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1조 달러 이상의 커다란 충격이 예상되는 정책은 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지속되는 달러 약세와 환율 갈등

하지만 6000억 달러 규모 역시 여전히 막대한 양이며 양적 완화 돌입 자체만으로도 달러 약세는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공급된 달러 자금은 미국 내 소비와 투자를 늘리는 데 활용되기보다는 신흥국들로 흘러들어가 신흥국들의 통화가치를 더욱 끌어올리고 자산 거품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환율 갈등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달러 가치가 급락했다.
 최근 달러 가치가 급락했다.
ⓒ stockcha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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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현지시간)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가 있은 후 달러 가치는 급락세를 보였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지수는 4일(현지시간) 0.78% 하락한  75.88을 기록했다. 2010년 들어와 최저치다. 

다른 국가들의 통화 가치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 이후 유로화 가치는 상승세를 보이며 9개월여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달러/유로 환율은 5일 달러당 1.4214유로를 기록하며 1.4유로선을 넘어선 상태다.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 역시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태국 바트화는 5일 1달러당 29.68바트까지 떨어지며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5일 1달러당 8910.0루피아로 떨어지며 3년 5개월여 만에 통화 가치가 최고치를 기록했다(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뉴욕 외환시장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는 달러에 대해 2% 올랐고, 폴란드 즐로티화는 6개월 최고, 콜롬비아 페소화는 10주 최고로 각각 치솟았다(<이데일리>, 2010.11.5).

고조되는 각국의 불만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에 따라 여타 국가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브라질은 미국의 양적 완화에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시아빈 중국 인민은행 통화정책 위원은 연준의 2차 양적 완화 조치는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위험요인이라고 평가하며 자본 통제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쿠이 티안카이 중국 외교부 차관은 많은 나라들이 자국 경제에 끼칠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이 이번 양적 완화 조치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웰베르 바랄 브라질 통산산업개발부 차관은 미국의 양적 완화는 주변 국가들을 빈곤하게 만드는 정책이라고 평가하며 보복 조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귀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 역시 달러를 뿌리는 것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다며 미국의 수출 경쟁력만 높이는 정책이라고 비난했고,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환율 문제를 강력히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국은 미국의 2차 양적 완화 조치로 달러 자금의 신흥국 시장 유입이 예상됨에 따라 이웃국가들과 공동 대응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콘 차티카와닛 태국 재무장관은 중앙은행 총재가 이웃 중앙은행 총재들과 관련 논의를 했다며 투기자금의 아시아 유입을 막는 데 필요할 경우 공동 조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이상 <이데일리> 참조).

라이너 브뤼델 독일 경제장관은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와 관련해 글로벌 자산 가격을 상승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가 이번으로 끝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월가에서는 벌써부터 3차 양적 완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2차 양적 완화를 통해 경제가 뚜렷하게 좋아지지 않는다면 미국은 3차, 4차 국채 매입에 나설 수밖에 없다. 6000억 달러 규모의 이번 양적 완화 조치로는 10%에 달하고 있는 미국 실업률을 끌어내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폴 볼커 미국 대통령 경제회복위원회 위원장은 이번의 추가 양적 완화 조치에 대해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2차 양적 완화가 경기 부양에 실패하면 3차, 4차 양적 완화가 잇따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경기 부양을 위해 양적 완화 정책을 펴려고 하는 미국과 자국 통화를 방어하려는 신흥국들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미국 경제가 확연한 회복세로 돌아서지 않는 한 환율 전쟁이 쉽사리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에 대응한 방어전선도 형성되고 있다. 단기 투기자본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에 미리 대응해 버블을 방지하고 물가 상승 압력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2일 호주 중앙은행(RBA)은 기준금리를 7개월 만에 4.5%에서 4.75%로 0.25%포인트 올렸고, 인도 중앙은행(RBI)도 기준금리인 재할인금리를 6%에서 6.25%로 0.25%포인트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여타 신흥국들도 자본 규제를 고려 중이다. 미국의 경기 부양에 대해 긴축 정책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캐나다 G20 회의에서도 확인된 바 있지만 '경기 부양, 출구 전략' 공조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원화 강세 흐름과 물가 부담 

한국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우선 다른 신흥국들의 통화와 마찬가지로 원화는 여전히 강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추가 양적 완화 발표가 있기 전 3일 1달러당 1110.20원을 기록하던 원화는 양적 완화 발표 이후 강세를 지속해 5일 원/달러 환율은 1107.30원으로 하락했다. 1100원선 아래로 떨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1100원 선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한국 경제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10월 들어 1200원선을 중심으로 등락을 거듭하던 원/달러 환율은 미국의 추가 양적 완화 조치가 가시화되면서 하락세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이로 인해 한국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 추이(2010년 8월~11월 5일)
 원/달러 환율 추이(2010년 8월~11월 5일)
ⓒ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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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미국이 찍어낸 달러들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물가 상승과 자산 거품이라는 후폭풍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소비자물가는 4%대로 급등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4.1%를 기록해 1년8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 범위인 3.0±1%를 넘어선 것이다. 밥상 물가의 잣대인 신선식품지수는 1990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인 49.4% 급등해 서민들의 체감물가 수준이 극도로 나빠졌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이상기온으로 인해 농수산물 가격이 급등한 데 따른 일시적 요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달러 약세로 인한 원자재값 상승과 달러 유입에 따른 국내 유동성을 고려해 본다면 물가 상승 우려는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대인플레이션율이 상승하고 있다. 10월 26일 한국은행의 '10월 소비자동향지수'에 따르면 10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연 평균 3.4%로 전월 대비 0.2%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소비자들이 1년간 물가가 3.4%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이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줘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은 현재나 과거의 물가상승률보다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을 근거로 임금 인상을 요구함으로써 미래의 실질임금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유통업자가 상품의 구입 원가에 이윤을 붙여 판매 가격을 설정할 때에도 기대인플레이션이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기대인플레이션율의 상승은 실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높아져 임금이 상승하면 이는 또다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커지면 물건을 파는 사람은 돈을 더 받고 팔려고 할 것이고, 사람들이 통화보다는 실물자산을 가지려고 해 수요가 늘어나면서 실제 물가 상승을 유발하게 된다.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는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상승시켜 물가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여 치솟는 물가에 불을 지필 수 있다.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지수(파란선)와 기대인플레이션율(붉은선).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지수(파란선)와 기대인플레이션율(붉은선).
ⓒ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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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만 보고 달리다 한국 경제 놓칠라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의 추가 양적 완화 조치로 환율 갈등은 더욱 고조되고, 미국이 찍어낸 달러가 국내로 유입되면서 물가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적절한 환율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고환율 정책이 타당한지 등의 논의는 잠시 접어둔다면 환율 역시 정부와 수출 대기업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경제효과가 30조가 넘는다며 G20 성공 개최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적절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과내기식의 합의 도출에만 집착해 물가 불안, 자산 거품 등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G20 개최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정부에서도 급격한 투기자본의 유입에 대응해 자본 규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합의 도출을 위해 금융을 주도적 산업으로 삼고 있는 미국 등의 국가들을 의식하다 적절한 대응을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정쩡한 합의 도출은 세계 경제에도 이득이 되지 못한다. 나중엔 결국 더 큰 문제로 불거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각국 간의 신뢰는 더 크게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정부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지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6.2지방선거, G20회담 등의 정치적 일정 때문에 외형적인 성장률 유지를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억제해 왔다. 특히 한국은행은 지난 두 달간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주면서도 동결을 결정해 한은에 대한 실망감이 엄청나게 커진 상태다.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리지 못함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정책적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다. 10월 금융통화위원회 당시 한국은행은 물가와 환율 사이에서 고민하다 환율을 택하며 금리를 동결했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 물가 문제와 환율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넘어서며 물가 부담은 더욱 커졌다. 한은이 금리 동결의 이유로 내세웠던 환율 역시 더 하락한 상태다. 10월 금통위가 열리기 하루 전인 13일 원/달러 환율은 1120.7원이었지만 현재 환율은 더 떨어져 11월 5일 1107.30원을 기록했다.

당장 16일에 있을 기준금리 결정에서 한은은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만일 선제적으로 정부와 한은이 물가 문제 등에 대응했다면 지금과 같은 시기에 선택의 폭이 훨씬 넓었을 것이다. G20 등 정치적 일정에 매몰되어 현 경제 현황에 대한 대응과 정책적 결정의 시기를 놓치는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10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 본사 외벽에서 한 관계자가 오는 11월 11일 개막하는 G20 서울 정상회의를 알리기 위해 대형 현수막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10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 본사 외벽에서 한 관계자가 오는 11월 11일 개막하는 G20 서울 정상회의를 알리기 위해 대형 현수막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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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민권연구소'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환율전쟁, #G20, #물가, #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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