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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범죄에 이용되는 대포폰.
 주로 범죄에 이용되는 대포폰.
11월 첫째주 인기검색어는?

난 주저없이 '대포폰'을 꼽겠다. 뭔가 구린 데 있는 사람들이 쓰는 물건인 줄로만 알았던 대포폰이 양지로 나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높으신' 분들까지 아주 가끔은 사용하고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주변에서 공무를 위해 대포폰 쓴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아니, 아주 가끔 보기는 한다. 형사 재판 기록 안에서! 오늘은 대포폰 범죄를 한 번 파헤쳐 보자.

형사재판 기록에서 발견한 '대포폰'

[사례 1] A씨는 서울 중심가 경찰서에서 성인오락실 등 풍속업소 단속 업무를 맡고 있었다. 관내 오락실 업주인 B씨는 몇차례 단속을 맞은 후 A씨 등 단속 경찰들에게 접근하였다. B씨는 먼저, A씨를 만나 봉투를 건네주면서 '거래'를 시도했다.

"형사님, 제가 어려운 부탁 안 합니다. 우리 오락실에 112 신고 들어오거나, 단속 나오게 되면 미리 전화나 한통 해주시지요. 저도 먹고 살게 도와주십시오. 이건 용돈이나 하시고, 또 필요하시면……."

A씨처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부적절한 '용돈'을 받은 경찰은 5명이나 되었다. A씨 등은 112 신고가 들어오거나 단속이 있을 때 B씨에게 알려주고 말았다. 단속정보가 새고 있다는 것을 경찰이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는데, A씨 등이 정보를 알려준 수단이 대포폰인 까닭이었다.

뇌물수수, 공무상 비밀누설죄가 적용된 A씨는 징역형을, 나머지 경찰들은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아 경찰직을 박탈 당하고 말았다.

최근 뉴스를 보면 '공무수행'을 위해 불가피하게 대포폰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분들이 있다는데, 정말 미스터리하다. 공적이건 사적이건 대포폰이 좋은 일에 쓰일 일이 있기나 할까.

공무수행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사례 2] 모 금융기관의 지점에 근무하던 C씨는 대출업무 책임자였다. 그는 판교지구내 토지 담보대출 절차가 서류심사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D씨에게 대포폰과 인근 땅 주인 명단을 넘겨받아 대출신청서를 위조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속이기 위해 대포폰을 사용하였으며, 결국 9명의 명의로 대출을 받은 돈 약 31억 원을 횡령하였다. C씨는 지난 9월 징역형을 선고받아 아직도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다.

지금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대포폰을 사고 파는 곳을 찾을 수 있다. 대포폰은 왜 수요가 많을까. 첫째 신분을 속일 수 있다는 점, 둘째 (걸리지만 않는다면) 아무리 써도 요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A씨와 C씨가 전자의 '장점'을 범죄에 이용하려 했다면 아래에 소개하는 F씨는 후자로 재미를 보려다 덜미를 잡혔다.

[사례 3] 돈이 궁했던 E씨는 사채 업자를 찾아갔다가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자기가 아는 F씨에게 가면 돈을 그냥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E씨가 찾아가자 F씨는 휴대폰을 개통해오면 1개당 10만원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E씨는 여러 대리점을 돌아다니면서 10대를 개통하여 1백만원을 챙겼다. F씨는 건네받은 휴대폰을 자기가 사용하거나 대포폰으로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렸다. F씨는 이런 방식으로 수천만 원의 부당한 이익을 보았다.

F씨는 사기죄 등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역설적이게도 범죄의 피해자였던 E씨 역시 대포폰 모집책이 되어 F씨와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맡긴 대포폰이 '요금폭탄'되기도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국무총리실 산하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정치인 불법사찰에 대해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을 공개하며 질의하고 있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국무총리실 산하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정치인 불법사찰에 대해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을 공개하며 질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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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자들은 돈을 빌려주면서 여러대의 휴대폰을 담보로 맡기거나 이자조로 요금을 대신 납부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출을 받으면서 사채업자에게 휴대폰을 맡겼다가는 요금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사례 4] G씨는 대출광고를 보고 업체를 찾았다. 이 업체는 휴대폰을 담보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이자조로 요금만 대신 내주면 된다고 했다. 그는 급한 마음에 조건을 수락하여 110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런데 이 업체는 대포폰 업자에게 G씨의 휴대폰을 넘겨버렸고, 업자는 휴대폰을 물건 결제 등에 사용하여 무려 1천2백만원의 요금이 나오게 하였다.

G씨는 사채업자와 대포폰업자를 고소하여 형사처벌을 받게 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돈이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요금폭탄은 고스란히 G씨의 몫이 되고 말았다.

만일 휴대폰 요금을 낼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명의로 휴대폰을 만들어주어 대포폰으로 쓰게 했다면 어떻게 될까. 정답은, 명의자와 대여자 둘다 처벌받는다. 

[사례5] H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I씨가 재산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I씨는 "내 이름으로는 전화 개통이 안 되니 당신 이름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H씨는 기꺼이 휴대폰을 개통해주었다. 그것도 5대씩이나!

전화요금은 계속 연체되어 3백여만에 이르렀다. H씨는 I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버텼지만 법원은 두 사람이 함께 사기를 친 것으로 판단하였다.  

법원은 H씨에게 사기방조죄를 적용, 벌금 1백만원형을 선고했다. 요금을 납부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I씨가 금전적 이득을 취하도록 H씨가 도왔다는 말이다.

범죄 사용목적 알고도 대포폰 쓰게 했다면

대포폰은 다른 사람의 명의로 된 전화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명의의 전화를 사용하게 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는 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범죄 등 부정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대포폰을 쓰게 하거나 묵인하였다면 명의자에게 책임을 물을 소지가 충분하다.

이번 '대포폰' 파문이 해프닝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전에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야 한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헌법 7조)라는 공무원이 뭔가 떳떳하지 못한 것마냥 대포폰을 사용해서 일한 게 밝혀진다면 그 자체로 불명예 아닌가.


태그:#대포폰, #범죄, #공무원, #아는만큼보이는법,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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