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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 기자는 제주도 '365일의원'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다. 얼마 전 두 아들과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다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을 크게 다쳐 수술을 받아야 했다. 십 년 넘게 전문의로 살아온 그가 의사가운 대신 볼품없는 환자복을 입고 체험한 한국 의료의 풍경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전문의가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병상에서 쓴 이 글은 어쩌면 한국 의료에 대한 가장 생생한 르포일지 모른다. 그동안 몸이 아파 찾은 병원에서 마음의 병을 안고 돌아왔을 많은 독자들과 함께 한국 의료의 난제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제주 '365일 의원' 고병수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의 모습. 현재 수술을 마친 뒤 입원 치료 중이다.
 제주 '365일 의원' 고병수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의 모습. 현재 수술을 마친 뒤 입원 치료 중이다.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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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타고 506호라고 씌어 있는 병실에 들어섰다. 5인실인데, 아무래도 장기 입원이 될 것 같아 다인실로 선택했지만 들어서는 순간 약간 후회가 됐다. 편하게 있도록 1인실이나 2인실로 할 걸 그랬나? 병실 입구에서 오른쪽 두 번째 내 침상으로 가면서 주변을 흘끗 보니 다들 쳐다보는 게 민망하다.

그러니까 어제, 아이들과 서귀포까지 자전거 하이킹을 하려고 자전거를 점검하고 집으로 오다가 넘어지면서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손과 무릎에 찰과상을 입은 것 말고는 외상은 없는데, 오른쪽 무릎에 힘이 없는 것이 느낌이 안 좋았다. 밤새 퉁퉁 붓고, 통증이 심해 다음날 아침에는 병원으로 가야만 했다. 진찰을 받고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예상대로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문제였다. 경골 상부 골절과 십자인대 파열. 십자인대는 사진에 나오지 않았지만 경골 상부 끄트머리뼈가 떨어져나간 것이 눈에 보였다. 짐작은 했으면서도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만감이 교차한다.

우울한 마음에다 좀 심하게 아픈 환자라는 것을 내보이려고 나는 아픈 티를 내면서 침대에 오르고는 누워서 주변을 둘러봤다. 새로 환자가 들어와서인지 병실 안은 여전히 서먹서먹한 분위기였다.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침대에 붙어 있는 확인표를 둘러본다. 첫 번째 침대에 있는 사람은 척추골절 및 다발성 골절, 내가 두 번째 침상이고, 세 번째는 오른쪽 어깨 인대 파열, 네 번째는 양쪽 팔 골절, 다섯 번째 환자는 척추 골절. 병명들을 보니 안심이랄까, 위로랄까 내 상태를 비관할 상황이 아님을 금방 깨달았다.

이후 며칠을 지내면서 파악한 환자들의 내력.

1침상: 43세인데 서울에서 살다가 제주도로 잠시 내려왔단다. 임시로 펜션을 빌려서 지내는데 어느 날, 발코니에서 의자에 올라 빨래를 널다가 넘어지면서 5층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방충망에 손을 짚었는데, 밖에는 안전쇠틀이 없어서 그냥 떨어졌죠, 뭐." 기절해서 깨보니 응급실이고, 일사천리로 수술을 받았는데도 하반신 마비가 되어 있었다.

3침상: 46세로 나와 동갑인데, 공사장에서 쇠붙이가 떨어져서 오른쪽 어깨를 다쳤다.

4침상: 역시 동갑내기로 2층에서 떨어졌는데 양 손으로 짚어서 다른 데는 괜찮은데 양쪽 팔이 부러졌다.

5침상: 어디서 다쳤는지는 물어보지 못했지만, 어디선가 떨어지면서 척추를 다쳤는데 다행히 수술하지 않고 뼈가 붙도록 자세교정만 하고 있다.

불친절한 병원, 의료진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1침상 친구는 하반신 마비가 되어서 통증이 심한 것도 문제지만 누워만 있다보니 변의를 못 느끼는 데다가 변비가 심했다. 진통제는 필요한 만큼 맞을 수 있는 것 같은데 그 외 변비라든지, 가려운 것과 같은 불편한 것들은 빨리 해결해 주지 못했다. 부인이 있어서 하루 종일 지키기는 하지만 변비 같은 것은 보호자가 어쩔 수 없다. 간호사에게 말하면 알았다고 하고 가기는 하는데 함흥차사다. 얼굴이 구겨지도록 힘들어 하는 수준이 되어야 겨우 관장을 해준다든지, 해결 방법을 들고 온다.

나도 임시 부목을 대고 탄력붕대를 감았는데, 둘째 날부터는 발등 부위 통증이 있어서 뭔가 검사를 원한다고 해도 결국 엑스레이를 찍기까지 이틀이 걸렸다. 신경이 눌렸는지, 아니면 미처 발견 못한 이상이 있던 건지 몰라서 답답한 심정이었는데, 담당의사에게 말한다고만 하고 해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많은 문제들이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다. 물론 간호사들은 부지런히 오가며, 상태를 묻고, 주사도 주고 하지만 세세하면서도 마음 편한 돌봄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병실에 있는 환자들의 불만은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의사를 만나서 치료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오직 아침 회진 시간에 들어와서는 몇 마디 해주고는 황급히 다른 병실로 가버리면, 무언가 물어보려고 해도 틈이 전혀 없다. 어떤 경우에는 환자가 아침 식사 후 양치질하려고 잠시 화장실 다녀왔는데 담당의사가 들렀다가 가버리면 다음날에야 의사 얼굴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실들을 보면 의사인 나는 얼굴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교역수준 12, 13위를 왔다 갔다 하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것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 병실에 있는 환자들이 푸념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의사들이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일 줄 모르고 불친절하기로 작심했거나, 우리나라 간호사들이 능력 없고 게을러서가 결코 아니다.

의사·간호사 수 선진국의 절반... MRI 고가장비는 세계최고

선진국들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의사나 간호사 수가 절반 정도다. 그러나 입원 병상이나 MRI 등 고가장비 수준은 세계 최고다. 2009년 OECD 통계를 봐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1.74명(한의사 포함)으로 터키가 꼴찌고 그 다음이 한국이다. 물론 OECD 평균은 3.1명으로 우리의 두 배 수준이다.

인구 1000명당 활동 간호사 수는 2.08명으로 OECD 평균의 31%에 불과하다(활동 간호사란 환자를 돌보면서 실제로 일을 하고 있는 간호 인력을 가리킴). 간호사 자격증을 따고 등록되어 있는 수는 많은데, 절반 넘는 인원이 그만둔다. 하지만 외국의 간호사들은 나이가 들 때까지 거의 현장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래서 활동 간호사 수가 스위스 14.9명, 독일 10.7명, 영국 9.5명, 일본 9.5명인데 반해 대한민국은 2.08명에 지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 어찌 다른 나라들과 같은 의료 서비스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의사들은 그나마 높은 수입이라도 어느 정도 보장 받지만 우리나라 간호 인력들은 낮은 임금과 고강도의 병원 일을 해내고 있어서 안타깝다. 우리나라 의료법 시행규칙 제38조에는 간호 인력은 하루 평균 2.5명의 입원환자, 30명의 외래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되어 있다. 어느 전문가의 의견을 빌리면 2015년에는 7만9000여 명, 2030년에는 10만8000명 이상의 임상간호사가 부족하다고 한다.

누가 봐도 단순하지 않은가? 할 일은 많은데 일할 사람은 적다. 병실은 두 배인데 의사나 간호사는 선진 외국의 절반도 안 된다. 산수로 계산해도 그들은 선진국의 4배의 강도로 환자를 돌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암 치료 생존율을 비롯한 의료기술은 나라별 비교에서도 높고, 평균 수명도 월등히 높다. 상상해 보면 우리나라 의료 인력들은 4배가 아닌, 8배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력 늘릴 수 없는 저수가... 삼성의료원 만족도가 높은 이유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하면 내게 돌을 던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이제는 얘기가 되어야 한다. 의료 서비스가 좋은 선진 외국은 국민소득이 4만 불이 넘고, 우리나라는 잘 쳐줘도 2만 불이 안 된다. 숫자에서도 나타나듯이 두 배다. 그럼 우리는 1/2 정도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텐데 실상은 그보다도 훨씬 못한 수준인 1/4 혹은 1/8 정도인 것은 바로 의료 인력을 늘릴 수 없게 되어 있는 의료수가 때문이다. 그 수가로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간병인 등을 늘릴 수 있는데 부적절하게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 또 오해를 할까봐 언급하는데 수가를 올리는 것과 의사, 간호사 월급 올라가는 것은 그다지 관계가 없다. 많은 부분 인력 보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병원 운영의 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문제들도 지적되어야 하겠지만 저수가 문제는 모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삼성의료원의 환자 만족도가 최고로 나오는 것은 투여되는 돈의 위력이다. 그렇다고 걱정하지는 말자. 수가를 올려도 보험료가 무리하게 올라가지 않도록 국가의 보건의료 재정을 정상적으로 확보하면 되기 때문이다.

자, 이런 상황을 보고도 우리 국민들은 친절과 환한 웃음의, 하얀 옷의 의사나 간호사들을 기대하려는가? 정말 그런 기대를 한다면 여러분들은 이기심으로 가득한 '식코(Sicko)'다. 그렇다고 우리가 60년대, 70년대에 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 대해 요구 수준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치료 기술뿐 아니라 친절을 베풀거나 설명 잘 해주기를 바라는 것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살펴보듯이 불가능하다.

밤 11시를 넘은 이 시간에도 병동 간호사실에는 당직 간호사들이 처방과 치료 항목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고, 복도에는 간호사들이 병실을 또 바쁘게 오가고 있다. 수술이 모레로 잡혔는데 MRI 찍을 날짜를 좀 당길 수 없느냐고 간호사에게 자꾸 보채며 묻는 것도 참기로 했다. 검사가 늦어지고, 수술이 늦어진다고 해도 병원 시간표대로 기다리면 되니까 말이다.

(다음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고병수 기자는 제주도 '365일의원'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입니다. 이기사는 새사연(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의료, #병원,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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