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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반도 북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3대 권력 세습 시도를 두고 전 세계에서 비아냥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 남쪽에서도 평생 동안 수장을 하고, 친인척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는 세습이 일어나는 곳이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태광그룹 같은 경제계의 재벌기업과 교육계의 족벌사학이 그 주인공들이다.

서울외고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이 대를 이어 이사장과 교장을 하면서 학교돈 100억을 횡령하여 물러났다. 경기도 평택 H고는 어머니 이사장, 아버지 교장, 딸 교감, 아들 교사, 사위가 기획실장으로 있다.

부부-부자-형제-숙질-4촌 등이 승인 없이 이사장 교장 나눠먹기

MB 정부는 집권 초기 법치를 강조하다가 최근 '공정한 사회'를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졌다. 그런데 사립학교, 특히 족벌사학들에게는 MB정부의 양대 통치철학인 법치주의도, 공정한 사회도 모두 헛구호에 불과한 것 같다.

서울 주요 족벌사학의 친인척 학교장 현황. 이사장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 교장들이 승인도 없이 교장을 하고 있고, 방계 친인척까지 포함하면 40개 학교에 이른다.
 서울 주요 족벌사학의 친인척 학교장 현황. 이사장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 교장들이 승인도 없이 교장을 하고 있고, 방계 친인척까지 포함하면 40개 학교에 이른다.
ⓒ 원자료 안민석 의원실, 편집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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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과 입학 비리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족벌사학을 규제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에 따라 지난 2005년 사학법이 개정되면서 이사장 직계존비속,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존비속인 친인척(이하 '친인척'이라 함)은 학교장을 할 수 없도록 하였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보수적인 기독교계 등의 조직적 반발로 다시 지난 2007년 이사 정수 2/3 찬성과 관할청의 승인을 받은 경우, 예외적으로 인정하도록 재개정되었다. 족벌사학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를 두자는 것에 대한 타협이자 후퇴의 산물이었다.

2008년 법제처는 학교장이 먼저 임명되고 친인척이 나중에 이사장으로 취임하더라도 이 절차를 똑같이 밟아야 한다고 유권해석했다. 서울교육청의 국회 교육상임위원회 민주당 안민석 의원 제출 자료에 의하면, 올해 8월 현재 이사장의 친인척 학교장으로 승인받은 학교는 서울공연예술고(구 은일여정산고), 상명고, 서서울생활과학고 등 3개밖에 안 된다.

그런데 안 의원실에서 서울 소재 사학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사장의 직계존비속과 배우자가 학교장으로 근무하는 곳이 20여 곳에 이르고, 방계 친족까지 포함하면 40개에 이른다. 서울 소재 족벌사학의 대부분이 모두 불법으로 학교장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사장과 학교장의 친인척 관계도 다양하다. 동명여고(동명여정산고), 서울여상, 광영고, 상명고, 서서울생활과학고, 동일여고, 금성초, 리라초 등은 부부(夫婦)이다. 문영여중, 창문여고, 동일초, 동일여고, 덕일전자공고, 목동고, 한가람고, 강동고, 서울외고, 정의여고, 배문고, 서울디자인고, 염광여자메디텍고, 대진디자인고 등에서는 부모와 자녀이다.

이중 창문여고와 동일여고는 이사장의 남편이 교장을 하다가 최근 아들로 바뀐 경우인데, 특히 동일학원은 또 다른 동광초 교장도 그의 아들로 형제가 교장을 하고 있다. 문영학원 산하 서울여상 교장은 이사장 남편이며, 문영여중 교장은 아들로 아내와 남편, 아들이 이사장과 교장을 하고 있다. 영신여고는 이사장의 사위, 서울공연예술고에서는 이사장의 손자사위가 교장을 하고 있다. 이들 친인척 학교장 대부분이 관할청 승인을 받지 않고 교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5년 법 개정 당시에 법의 사각지대로 남은 것 중 하나가 형제와 삼촌 같은 방계 친인척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은 점이다. 직계가 아니기 때문에 현행법상 승인 대상은 아니지만 방계 친인척 학교장들도 상당수 있었다.

숭문고와 명덕고, 선일여고, 용화여고, 매원초 등에서는 이사장과 교장이 형제(兄弟) 지간이다. 광영여고는 이사장의 4촌, 한서고는 처조카, 배명고는 조카, 서울디지텍고는 이사장과 교장이 처남 매부 지간이다. 서울디지텍고는, 2009년까지는 어머니 교장, 아들 이사장, 딸 행정실장으로 승인 대상이었는데, 승인을 받지 않고 있다가 어머니 사망 후 이사장 아들이 교장이 되고, 처남이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외에도 현재 이사장은 아니지만 학교장들끼리 또는 이사와 학교장이 친인척인 학교도 많았다. 송곡학원은 설립자인 송곡여정산고의 왕모 교장의 딸이 송곡여고, 아들이 송곡고 교장이다. 강서고와 영등포공고, 영도중을 운영하는 영도의숙은 이사장이었던 부모가 사망 후 이사장은 바뀌었지만 현재에도 이 3개교 교장들은 모두 형제들이다. 최근 영등포공고의 교장이 동생으로 바뀌면서 4형제가 같은 재단 학교의 교장을 한 셈이고, 그의 아들은 교감이다.

성산학원에서 2006년 분리된 배문학원 역시 성산학원 이사장이자 배문학원 이사인 이모씨의 아들이 배문고 교장을 하고 있으며, 예일학원은 딸이 평이사로 있으면서 그의 아버지가 예일디자인고 교장을 하고 있다. 

80대 교장에 50년 동안 교장 그리고 4형제 교장

최근 교사 폭행으로 문제가 되었던 경기도 평택 H고 교장은 40세에 시작하여 82세가 된 현재까지 무려 41년간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1년 동안 8천만원이 넘는 임금을 혈세로 받고 있어 논란이 일었다. 대한민국 어떤 공무원도 정년이 지나 80살이 넘어서까지 국민 혈세로 봉급을 받아가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문제는 이런 일이 이 교장에게만 특별히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족벌사학 교장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상위법의 근거도 없이 정년이 지난 족벌사학 교장들에게 나랏돈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사립초 제외). 국공립학교 교원은 교육공무원법에 정년이 62세로 정해져 있지만 사립학교는 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사립학교 정관으로 알아서 정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장은 이것마저 예외 규정으로 두어 아예 정년 자체가 없는 학교들이 많다. 이들 족벌사학의 상당수가 만년 교장인데, 자신이 하다하다 못하게 되면 친인척에게 물려주는 게 현실이다.

서울의 주요 친인척 교장의 정년 초과 현황. 정년을 한참 넘겨서 80이 넘어서, 40년이 넘게 교장을 하고 있는데, 8천만원에 이르는 이들의 임금을 대부분 국민의 혈세로 지급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서울의 주요 친인척 교장의 정년 초과 현황. 정년을 한참 넘겨서 80이 넘어서, 40년이 넘게 교장을 하고 있는데, 8천만원에 이르는 이들의 임금을 대부분 국민의 혈세로 지급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 원자료 안민석 의원실, 편집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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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예일디자인고(구 예일여실) 김모 교장은 1965년에 처음 예일여상의 교장으로 취임한 이후 예일여고 등을 거쳐 46년째 교장을 하고 있는데 나이가 86세이다. 중학교 시절까지 포함하면 무려 52년째 교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와 딸, 아들이 모두 교장을 하고 있는 송곡여정산고 왕모 교장은 1970년에 처음 이 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고, 중학교까지 포함하면 88세인 현재 45년째 교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4형제 교장으로 잘 알려진 영도의숙 강서고의 최모 교장은 1973년 처음 중학교 교장으로 취임한 이후 70세인 현재까지 28년째 교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서서울생활과학고의 조모 이사장도 1972년에 교장이 되어 2006년 76세에 물러났다. 뒤를 이은 아내 황모 교장 역시 현재 71세이다. 동명여고와 동명여정산고의 정모 교장도 1987년 이후 64세가 된 현재 23년째 교장이다. 1994년 취임하여 16년째 교장을 하고 있는 덕일전자공고 김모 교장도 현재 74세이다.

이사장의 두 아들이 교장을 하고 있는 동일학원 김모 전 교장도 68년 학교 설립 때 교장으로 취임 후 지난 8월에 87세로 사망하기까지 43년간 교장으로 재직했다. 현 광영고 손모 교장은 광영여고 교장이었다가 학교만 바꾸어 교장을 계속하고 있는데 현재 74세이다. 1974년에 교장으로 취임하여 무려 37년째인 서울여상 한모 교장도 74세이며, 현재는 그의 아들까지 같은 재단 문영여중 교장이다.

이사장의 누나인 정화여상 김모 교장은 11년째 교장을 하고 있으며, 현재 정년을 10년이나 넘긴 73세이다. 금성초 이사장의 남편인 윤모 교장은 1996년부터 15년째 교장이며 75세이며, 리라초 설립자인 권모 교장은 1965년 설립 때부터 80세인 지금까지 35년째 교장을 하고 있으며, 정의여고 윤모 교장도 1999년부터 11년째 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현재 63세이다. 이외에도 숭문고 서모 교장과 송곡여고 왕모 교장 역시 정년을 넘긴 친인척 교장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임기 제한도, 연임 제한도 없이 만년 교장이다. 국공립학교에서는 교장들이 비리를 저지르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임기 중에 물러나기도 하고, 임기를 채우더라도 연임 대상에서 제외되며, 혹시 연임하더라도 2회를 넘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족벌 사학에서는 이사장의 친인척 교장 임명 승인과 연임 허용 등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조차 없다. 이렇게 '그들만의 리그'가 계속되고 있다.

족벌사학 수장들이 대한민국 사학계의 큰 손?

이들 족벌사학의 교장들은 당해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학 전체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4형제 교장 중 하나인 강서고 최모 교장은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이며, 동시에 한국초중등사학법인협의회 이사이다.

강서고 최모 교장을 비롯하여 동일여고 김모 전교장(8월 사망), 금성초 윤모 교장, 서울여상 한모 교장, 강서고 최모 교장 등은 한국초중등사학법인협의회 이사들이었고, 정의여고 윤모 교장은 이 협의회 감사이다. 이들은 사학법인협의회뿐아니라 사립교장단 모임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전국 1600여명 사립교장의 모임인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이 바로 강서고 최모 교장이고, 서울회장이 정의여고 윤모 교장이다.

사학법인연합회와 사학교장회는 사학법 개정을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던 집단 중의 하나였다. 지난 9월 30일 사립중고등학교장회는 근무 시간 중에 집단으로 출장 내지 연가를 내고 전주대에서 총회를 열어 사실상 사학법을 폐지하고 '사립학교 진흥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는데 그 회장이 바로 강서고 최 교장이다. 그리고 지난 9월 서울 곽노현 교육감의 체벌 금지 강연 도중 "사학의 건학이념에 따라 체벌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항의하고 집단 퇴장한 그 교장이 바로 서울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인 정의여고 윤모 교장이다.

이렇게 사학을 둘러싼 중요한 계기마다 이들 족벌사학 수장들이 그 중심에 있었는데, 이들이 사실상 한국 사학계의 큰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족벌사학에는 '법치주의'도, '공정 사회'도 달나라 얘기?

족벌사학들이 최소한의 법 절차도 무시하면서 만년교장으로, 대를 이어 교장을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사립학교법 제54조의2에 의해 시정 명령을 내리고 최소 학교장 해임을 요구할 수 있고, 불응 시 법 제20조의2에 의해 이사 승인 취소까지 할 수 있다. 나아가 사학법 제53조의2에 따라 학교장 취임 자체가 무효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친인척 학교장 승인 신청을 한 번도 거부한 적이 없고, 승인 여부 결정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도 없는 상태에서 이것이 현실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곽노현 교육감이 사학비리 척결 의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주무부서인 사학지원계의 입장이 친인척 학교장 승인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라 쉽지 않아 보인다.

친인척들이 사학을 족벌로 운영하면서 임기도, 정년도 없이 이렇게 한 해 8천만 원에 이르는 혈세로 임금을 받으면서 만년 교장을 하고 있는 것이 2010년 대한민국 족벌사학의 현주소다.

법적 근거도 없는 "설립자 예우차원의 관행"이란다. 최소한의 법적 절차도 지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니 '법치'와도 너무 거리가 멀다. 만년 교장이 더 이상 할 수 없으면 다시 대물림하는 현실은 '공정사회'와도 엄청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MB 정부의 두 가지 통치원리라는 '법치주의, 공정사회'와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족벌사학들인 것 같다. 이런 모순이 없다. 사학의 양대 핵심 기구인 이사회의 이사장과 학교의 교장을 모두 친인척이 재임하고 있는 족벌사학이 이렇게 만연해 있다. 3대가 아니라 10대 세습도 가능한 현재의 대한민국 족벌사학들에게 법치도, 공정사회도 요원해 보인다.


태그:#족벌사학, #만년교장, #친인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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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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