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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8일(금)

송도(솔섬)에서 늦은 아침을 맞는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지 않고 이곳에서 하루를 더 묵을 예정이다. 쉬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온몸에 피로가 누적돼 있다. 무릎이나 엄지손가락 같이 계속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하는 관절에서 약하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진다.

무릎 통증은 처음 통증이 생겼던 때에서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페달을 밟는 발바닥 볼이 나도 모르는 새 자꾸 앞으로 나가 있었던 게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더 이상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오른쪽 엄지손가락 관절이다. 엄지손가락은 기어 변속 레버를 누를 때마다 반복해서 힘을 줘야 하는 문제가 있다. 언덕을 오르내릴 때마다 높은 기어비에서 낮은 기어비로, 다시 낮은 기어비에서 높은 기어비로, 엄지손가락으로 수도 없이 변속 레버를 눌러 기어비를 바꾸어야 한다.

평지를 달릴 때라고 놀고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속도에 변화를 줘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변속 레버를 눌러야 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 그러니 엄지손가락을 반복해서, 집중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다 엄지손가락을 더 이상 사용하기 힘든 상황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단단했던 근육이 물렁물렁하고 축 늘어졌다

예전에 엄지손가락 통증 때문에 한 차례 여행을 포기한 적이 있다. 어이가 없었다. 다른 부분도 아니고, 단지 엄지손가락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여행을 포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 여행에서도 엄지손가락 통증이 거슬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자전거를 타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다리 근육과 엉덩이 근육은 이미 오래 전부터 탄력을 잃은 상태다. 팽팽하고 단단했던 느낌이 지금은 물렁물렁하고 축 늘어진 느낌이다. 근육이 피로를 회복하는 속도가 엄청 느려졌다. 제 힘을 다 발휘하기가 힘들다.

기껏 하루 쉬고 일어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 싶다. 하여튼 잘 먹고 잘 쉬어야 할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런데 송도는 숙박 시설은 있어도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이 없다. 횟집이 있기는 한데 혼자서 식사를 할 만한 메뉴는 없다. 식사를 하려면 지도까지 나갔다 돌아와야 한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다시 자전거에 올라탄다. 그나마 먼 거리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10월 09일(토)

하루 잘 쉬고 일어난다. 오늘은 사옥도를 돌고 나와 다시 지도를 마저 다 돌아본 다음 해제반도를 빠져나갈 계획이다. 송도에서 사옥도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다. 사옥도는 비록 송도보다 큰 섬이기는 하지만, 지도와 비교하면 내세우기 힘들 정도로 작은 섬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 바퀴 휙 돌면 된다. 그러면 오늘은 해제반도를 벗어나 운남반도의 조금나루해수욕장까지 가거나, 잘 하면 신월선창까지도 갈 수 있다.

느긋한 아침이다. 그렇게 송도를 떠날 때만 해도, 오늘 일정에 다른 변수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지도대교를 넘어 사옥도의 북쪽 해안을 슬쩍 돌아다보고 내려올 때다. 앞에 커다란 녹색 교통 표지판에 '증도대교'라고 쓰인 글씨가 보인다.

증도대교 진입로. 멀리 대교가 보인다.
 증도대교 진입로. 멀리 대교가 보인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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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대교? 내 머리 속에 없던 다리 이름이다. 지도는 물론이고, 내 머리 속에도 증도를 연결하는 다리는 여전히 공사 중인 걸로 그려져 있다. 언젠가는 사옥도와 다리로 연결이 될 섬, 그러니까 지금은 여전히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섬으로 남아 있다. 당연히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는 여행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증도대교라는 표지판이 내 앞에 당당히 서 있는 이유는 뭐지? 대교가 건설됐다면 오늘 일정은 또 어떻게 되는 거지? 일이 이상하게 꼬인다고 생각했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고, 그때까지만 해도 증도대교 완공을 얼마 앞두고 미리 만들어 놓은 표지판일 수도 있으니까 앞서 혼란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증도야, 나중에 다시 오면 안 될까?

증도대교 표지판을 지나친 지 얼마 안 돼, 이번 여행에서 두 번째 펑크가 났다. 징조가 나쁘다. 아주 작고 예리한 유리 파편이 타이어를 뚫고 들어왔다. 갈색 빛깔이 도는 유리다. 아마도 누군가 강장제나 비타민류가 들어 있는 음료수를 마신 뒤, 그 힘으로 빈 병을 도로 위로 내던진 게 아닌가 싶다. 그 힘을 좀 더 인간적인 일에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전거여행을 할 때마다 겪는 일이다. 자전거로 유리 파편을 밟고 넘어갈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도로 위의 유리 파편을 피하려다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적도 있다. 도로에 유리가 얼마나 많은지, 유리가 없는 깨끗한 도로를 찾아보기 힘들다. 길바닥에 마치 지뢰를 깔아논 격이다. 그렇게 펑크로 한 차례 곤욕을 치른 다음에 갑자기 증도대교와 마주쳤다. 막막했다.

증도 해안가 풍경
 증도 해안가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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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 해안가 풍경
 증도 해안가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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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는 자전거 타기 좋은 섬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언젠가 꼭 한 번 그 섬에 들러보고 싶었다. 그런데 전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예상조차 못하고 있는 사이에 느닷없이 증도를 방문하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증도대교는 올해 3월에 완공됐다. 마음 같아선 모른 척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 놓은 다리를 앞에 두고서는 나 몰라라 돌아설 수는 없다. 예정에 없는 일이라고, 나중에 약속하고 다시 올게 손을 흔들 수는 없는 일이다.

증도대교는 사옥대교와 마차가지로 배불뚝이 다리다. 배가 볼록 위로 솟아서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는 것과 같다. 높이는 또 왜 그렇게 높은지 가운데 정상 부근에 서 있으면 몸이 흔들릴 정도로 어지럽다. 증도대교는 특히 난간이 낮아 더 불안해 보인다.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짱뚱어'

증도 짱뚱어다리
 증도 짱뚱어다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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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는 슬로시티다. 지난 2007년 청산도 등과 함께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선정됐다. 슬로시티와 자전거는 환상적인 궁합이다. 증도에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꽤 많다. 내 생각엔 섬 전체가 자전거 여행지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해안을 따라서 도로가 나 있다. 관광지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인데도 생각보다 차량이 많지 않다. 여유 있게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 중엔 산을 넘어가는 임도도 있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갔다면 큰 어려움 없이 도전해 볼 수도 있는 코스다. 물론 길이 거친 건 미리 각오해야 한다.

꼭 돌아봐야 할 곳으로는 짱둥어다리와 태평염전을 꼽을 수 있다. 짱둥어다리가 특히 인기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다. 다리 위에 서서 다리 아래 갯벌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갯벌에 짱뚱어들이 그렇게 많이 사는지는 처음 알았다. 짱뚱어들이 탐방객들의 시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갯벌을 이리저리 쏘다니며 먹이를 주워 먹는데 바쁘다. 생긴 건 또 왜 그렇게 귀여운지 보면 볼수록 정이 간다. 짱뚱어는 '말뚝망둥어'를 부르는 이 지역 사투리다. 꽤 정겨운 이름이다.

소금 박물관. 박물관 건물이 국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석조 소금창고로 근대문화유산 중에 하나.
 소금 박물관. 박물관 건물이 국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석조 소금창고로 근대문화유산 중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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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염전의 염생식물원
 태평염전의 염생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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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염전에서는 염생식물원에 가볼 만하다. 갯벌을 캔버스 삼아 수채화 물감을 뿌려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이곳에서는 천일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부하고 나서 직접 소금을 채취하는 체험을 해볼 수도 있다. 바다와 갯벌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인지,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인지를 두 눈과 한 마음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다.

증도는 스치듯 자나가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다. 증도대교가 완공된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이 지역에서의 전체 일정을 증도에 맞춰 변경할 수도 있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더 찾아올 여지를 남기고 증도를 떠난다.

민박집서 얻어 먹는 공짜밥에, 가슴이 뭉클

증도 한반도 해송숲. 숲이 한반도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붙인 이름.
 증도 한반도 해송숲. 숲이 한반도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붙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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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 바닷가
 증도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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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염전 소금창고. 태평염전은 국내 최대 규모로, 여의도 면적의 2배다.
 태평염전 소금창고. 태평염전은 국내 최대 규모로, 여의도 면적의 2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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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를 나와서는 사옥도의 남쪽 해안을 마저 돌아 다시 지도로 들어간다. 지도로 들어서서는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지난 7일, 지도로 들어서면서 미처 돌아보지 못한 곳이 북쪽이기 때문이다. 지도 역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남은 힘을 모두 쏟아 부어, 정말이지 정신없이 오르내린다.

지도. 도로 위에서 조껍질을 걸러내는 주민들.
 지도. 도로 위에서 조껍질을 걸러내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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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는 주민들이 도로에 나와 올해 수확한 조를 터느라 부산하다. 조 껍질이 도로를 뒤덮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방에서 조 껍질이 날아든다. 한쪽에서는 조 껍질을 털어내고, 또 한쪽에서는 털어낸 조 껍질을 한데 쓸어 모아 태우느라 부산하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다.

지도를 나와서는 무안군의 해제면을 지나 현경면의 홀통유원지까지 달려간다. 낮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이제 6시 30분이면 해가 진다. 홀통유원지에 도착했을 땐 더 이상 달리기 힘든 지경이 되고 만다. 한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도로 위를 자동차들이 대낮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내달리고 있다. 그 사람들 눈에 자전거가 보이기는 했을까 의심스럽다.

증도에서 화도로 들어가는 바닷길. 밀물 때라 길이 물 속에 잠겨 있다.
 증도에서 화도로 들어가는 바닷길. 밀물 때라 길이 물 속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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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 버지선착장
 증도 버지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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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통유원지 입구에 있는 한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횟집을 겸하고 있는 집이어서 혹시 혼자서 먹을 만한 음식이 있는지 물었다. 없단다. 그러면서 그냥 집에서 먹는 대로 상을 차려주겠다고 한다. 메뉴에 없는 식사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 때는 증도에서 서너 군데 식당에 들렀다가 그냥 되돌아 나온 뒤였다.

한 군데는 물을 닫았고, 한 군데는 혼자서 식사를 할 만한 메뉴가 없다고 했고, 또 다른 한 군데에서는 밥이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곳에서는 식사 손님을 가늠하기 어려워 밥이 떨어지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조금 야박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 바람에 오늘, 하루 종일 식사를 거른 상태였다.

홀통유원지에 도착했을 때는 허리가 끊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집에서 먹는 밥이라도 상을 차려주겠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두 끼를 거른 뒤라 그 밥을 참 달게 먹었다. 밥값을 충분히 지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밥값을 받지 않겠단다. 살다 살다 민박집에서 공짜로 밥을 먹어보는 것도 처음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고맙다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오늘 달린 거리는 98km, 총 누적 거리는 1713km이다. 하루 종일 오렌지주스 같은 음료수로 버티면서 꽤 긴 거리를 달렸다.


태그:#증도, #홀통유원지, #사옥도, #짱뚱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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