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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홍석천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플레이'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자라나는 게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바램을 말했다.
 배우 홍석천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플레이'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자라나는 게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바램을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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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동성연애자 아니고, 동성애자예요. 가감 없이 써주시고, 제목 뽑는 것 잘 좀 부탁드려요."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호모발언파문' '20대 사업가와 열애설' '동성연애 경험'. 커밍아웃 이후 첫 기자회견에 나선 배우 홍석천(당시 30)씨는 2000년 10월 14일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당부했다. 황당무계한 융단폭격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있다면 그건 오로지 납작 엎드려 간청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어보였다. 그는 이단아였고, 대국민 왕따였다. 이성애 지배사회에서 동성애라니, 희대의 별종이었다.   

# 장면 2.
"드라마 보고 게이가 된다니. 동성애는 전염병이 아니란 얘기다. 이 무식한 인간들아!"

지난 9월 29일 <조선일보>에 '참교육 어머니 전국 모임'과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 연합'이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 광고를 싣자, 홍석천(40)씨가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분개했다. 몰상식에 기염을 토한 것이다.

벌써 10년이다. 10년 전 나는, 그가 커밍아웃 기자회견을 하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뜨문뜨문 질문에 답할 때마다 나는 어쩌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살던 연예인이 그 모진 욕설과 학대, 편견과 차별을 견뎌낼 수 있을까. 적이 우려됐다.

"아우! 안녕! 방가방가… 오랜만 ^.^ 내가 너~무 바빠 가지고. 큭큭. 그래요, 또 봐!"

기자회견 뒤 쑥 숨어버릴 줄 알았는데, 그는 '소수자 인권'을 논하는 자리마다 나타났다. 시민단체 기자회견에도 빠지지 않았다. 2001년 어느 여름날 구슬땀을 흘리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지하계단을 통해 미국대사관 쪽으로 올라와 NGO회견에 참석하던 그를 잊지 못한다. 인권영화제, 성 소수자 특강, 동성애 인권, 무엇이든 그가 필요한 자리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계속 짓밟히고 무시 당했지만, 그는 잡초처럼 살아났다. 그것도 입을 활짝 열고 웃으며, 아주 씩씩하게.

여전한 애연가이자 패셔니스타인 배우 홍석천

배우 홍석천.
 배우 홍석천.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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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승부.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그는 동성애라는 화두를 던지고 온몸으로 싸울 작정을 한 듯 보였다. 버텨내야 할 무슨 마지노선처럼 그는 행동했다. 지루하지 않고 아주 유쾌하고 즐거운 방법으로.

"나 일본 아줌마들한테 인기 무척 많다! 한류스타는 너무 바빠 볼 시간 없지만 나 같은 '생활연예인'은 가까이에서 볼 수 있잖아. 사진 찍고, 같이 수다 떨고. 얼마나 생활적이야. 큭큭. 일본과자, 모찌, 선물도 많이 받아요."

10년간 너스레가 더 늘었다. 원래 '구라'가 성한 편이지만 더 재밌어졌다. 지난 4일 오후 그가 새로 문을 연 홍대 인근 레스토랑에서 만났는데, 가만 얼굴을 뜯어보니, 10년새 난 많이 늙었고 그는 여전한 것 같아 살짝 질투가 돋았다.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느덧 십년지기가 된 홍석천. 여전한 애연가였고, 패셔니스타답게 멋스럽게 차려입고 나타났다.

그의 말대로 '생활연예인'이라 그런지 오래 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했다. 수다 떨듯 인터뷰 했다. 우린 성공한 CEO로서 사업 이야기, 10년 전 그날 커밍아웃 이야기 그리고 생활인으로 사는 40대 그리고 4년 뒤 용산구청장 도전, 늙어서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을지까지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 돈 얘기할 땐 꼭 '남자 또순이' 보는 것 같았다. 

연예인이었지만 그도 나처럼 동대문 새벽시장을 즐겼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디자인 서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죽이 잘 맞아 1시간30분만 하려던 인터뷰가 '따블'이 됐다.

낄낄 대며 수다 떨다가도 코끝이 찡해지도록 가슴을 흔드는 이 남자. 진정성 있고 재밌는 엔터테이너 홍석천. 보고 있으면 연신 웃음보가 터지는 그를 우린 왜 10년이 지나도록 지상파TV에서 자주 못 만난 걸까. 10년 전엔 '실력 좋다!' 평가받던 그가 커밍아웃 이후엔 왜 '연기 별로' 취급을 받는 걸까. 홍석천 그 이름 앞에 붙는 '동성애' 멍에를 떼낼 수 없는 걸까.

'생활연예인'과 나눈 수다의 기록

배우 홍석천.
 배우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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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많이 치지 않고 가급적 다 살렸다. 편안한 '수다의 기록'이다. 내가 느낀 만큼 독자들도 홍석천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같이 판단해보자, 아직도 지상파에서 걸러져야만 할 기피대상인가를. <무릎팍 도사>에서 '한풀이 인터뷰'… 안 될까? 실감나는 '게이 연기'를 제대로 해낸 김갑수, 주진모는 돼도, '진짜 게이' 홍석천은 안 되는 건가.

다음은 그와 나눈 수다의 기록이다.

- 가게가 참 예쁘네요. 벌써 서울에만 레스토랑이 여럿 되는데, 장사는 잘 돼요?
"홍대 앞 가게(플레이)는 지난 5월말에 열었어요. 이제 마~악 소문이 나려는데, 채솟값이 훌렁 뛰어버렸네. 차~암. 직장인을 대상으로 점심뷔페를 했었는데 도저히(고개를 절레절레)… 채솟값이 너무 뛰어서 1명에게 점심 팔면 3천 원이 손해야. 그러니 이걸 당해낼 재간이 있어야죠. 버티다, 버티다 못 하겠더라고요. 그냥 포기했어요. 채솟값은 언제나 진정되는 거야? 너무 비싸." 

- 요즘 홍석천 하면, 성공한 요식업계의 CEO로 통해요. 사업규모와 매출이 얼마나 돼요. 
"이 가겐 나 혼자 하는 게 아니고 탤런트 이승연씨랑 같이 해요. 언론에 70억 매출이라고 나왔는데 그거 사실과 달라요. 최근 이승연씨가 홈쇼핑에 새로 화장품을 런칭했는데 그게 70억 매출이래요. 그걸 기자가 잘못 듣고 쓴 거예요. 물론 나도 수십 억은 팔지, 그런데 70억은 아니야. 벌써 장사한 지 8년이에요. 8년간 수십 억인데 뭘."

- 어릴 적 사고로 후각을 잃었다면서요. 냄새 못 맡는데, 음식장사 어렵지 않아요?
"고등학교 때 비염, 축농증이 너무 심했어요. 그래서 코에 고름주머니를 싹 드러냈어요. 그 뒤론 냄샐 전혀 못 맡아요. 음식 장사하는데 냄새 못 맡으니 지장 있죠. 냄새장애인인데. 좋은 향, 맛있는 냄새, 일절 못 맡아. 누가 방귀 뀌면 아우 냄새 하는데, 난 몰라. 하하."

- 애인이 너무 좋아하겠다, 그렇죠? 나쁜 냄새 못 맡아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하하. 글쎄. 내가 냄새를 못 맡는 대신 상대에게 항상 물어요. 좋은 향수 고르는 법, 여름에 좋은 향, 겨울에 괜찮은 향, 양도 얼마나 뿌려야 역겹지 않은 건지. 늘 묻고 다니죠. 청국장집 가면 사람들이 모두 아우 냄새 하잖아요. 난 그냥 고소하네~ 정도예요. 꾸리꾸리한 향을 잘 모르니까. 이태원 태국음식점도 늘 향 리서치를 하고 다녀요."

짠돌이 홍석천, 평생 식보시 팔자

배우 홍석천.
 배우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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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이 사업을 하면 성공이 드물고 잘 망하잖아요. 대박 사업가가 된 비결이 뭐예요?
"대박까진 뭐. 여하튼, 공부하고 발로 뛰는 것, 잠 안 자고 연구하는 것, 가라오케에 가서 술 마시고 놀 시간에 시장 돌고 가게에서 손님 맞이하는 것? 음… 가게에서 난 연예인이 아니에요. 급하면 접시 나르고, 설거지도 하고, 멀티플레이어가 되죠. 내가 제일 못하는 건 계산이에요. 아직도 손님들에게 돈 받는 게 쑥스러워요."

- 노동의 대가인데 돈 받는 게 왜 쑥스러워요?
"뭐랄까, 사람들에게 그냥 배우이고 싶은 마음인 거죠. 잘 보이고 싶은 맘? 여전히 난 사람들에게 그 작품 참 재밌게 봤어요, 토크쇼 너무 좋았어요, 이런 말 들을 때 제일 행복해요. 돈 많이 버셨다면서요? 이건 별로예요."

- 짠돌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저 완전 짠돌이에요. 특히 나한테 정말 돈을 잘 안 써요. 일단 면허증이 없으니 차 욕심이 없어요. 서울시내 운전하는 것도 싫고, 운전하면서 싸우고 소리 지르는 것도 싫어요. 운전에 온 신경 다 써야하니 그 시간에 딴 거 할 수도 없잖아요. 누가 대신 운전해주면 인터넷이든 책 보든 할 텐데. 또, 길 막혀도 당장 내려 지하철로 갈아탈 수 없잖아요. 그리고 나는 근본적으로 서울시내에서 차를 끌고 다니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며 비경제적이라고 생각해요. 급하면 택시 타면 되잖아. 아마 택시 타는 게 차량유지비용보다 쌀 걸요? 또 차는 일단 사면 중고야. 재테크 개념으로도 차는 별로 좋은 수단이 아니에요."

- 그럼 연예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단 말이에요? 대부분 벤 타고 다니잖아요.
"일단 내 이름으로 된 차가 없어요. 버스는 4자리로 번호 바뀐 뒤로는 헷갈려서 안타요. 대신 지하철과 택시 많이 타지요. 매니저가 여기저기 데려다 주긴 해요. 또, 전 옷을 많이 안사요. 비싼 거? 잘 안사요. 주로 동대문 새벽시장 가요. 명품? 외국여행 중에 70% 이상 폭탄세일 할 때 아니면 잘 안 사요. 세일 기다리죠. 빈티지 좋아하고.

이승연씨, 왁스, 나 이렇게 셋이 '동대문 새벽시장 클럽'인데, 가기 전 꼭 약속을 해요. 우리 오늘 꼭 20만 원만 쓰자! 이래놓곤 50만 원씩 쓰고. 뭐 그러긴 해도 아주 재밌어요. 왁스가 충동구맬 잘 해서 주로 제가 타박해요. 야! 너 오늘 20만 원만 쓴다더니 또 사냐? 그러면 '예쁜데 어째?'해요. 그러면 제가 그러죠, 너 그러니까 돈을 못 모아! 하하. 한 달에 한번? 일요일 밤 동대문에 쇼핑 가요. 배우들이 가니까, 상인들도 싸게 주고, 디스카운트도 해주고, 가끔 면T 같은 것도 끼워주고. 완전 땡큐지 뭐."

- 돈 많이 버는데, 왜 자기한테 인색하게 굴어요?
"이승연씨가 늘 하는 잔소리가 있어요. 이제 너한테도 좀 투자해라, 피부 관리도 좀 받아야 할 나이고, 옷도 좋은 것도 사 입고, 차도 좀 좋은 거 타고 다녀도 되지 않느냐고. 그런데, 왜 이런 스타일 있잖아요, 남 사줄 땐 스테이크, 나 먹을 땐 김치찌개. 내가 좀 그래요.

내가 골프를 너무 좋아해요. 형들 따라 몇 번 골프장에도 갔었는데 이젠 안 가요. 왜 안 가냐, 이유가 있지요. 골프장 가면 하루를 거의 소비해요. 돈도 만만치 않게 들어요. 하루를 꼬박 다 쓰고 몇 십 만 원 주고 운동? 이게 과연 나한테 맞나? 아니더라고. 좋은 사람 만나 좋은 시간 보내는 건 좋은데, 나처럼 바쁘고 할 일 많은 사람에겐 안 어울리는 운동인 것 같아요. 그냥 골프채널 밤새 보는 게 나아."

- 사주를 보면 물장사, 밥장사로 남에게 '식보시' 하는 팔자라면서요.
"맞아요.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아야 할 사주래요. 밥 주고, 물 주고, 그래야 업을 씻는 거야. 벌써 밥 팔고 물 파는 가게가 7개예요. 계속 누구에게 뭘 먹여야 할 팔자인가봐. 하하."

"나라면 올누드로 하겠다"

배우 홍석천
 배우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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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석천씨 레스토랑엔 다 'MY'가 붙잖아요. 프렌차이즈 때문이에요?
"아니오. 책임감 때문이에요. 나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갖자, 이런 생각이에요. 혹시 그 자리에 내가 없어도, 홍석천이 하는 가게에 가면 가격 대비 만족도가 괜찮다, 이런 걸 느꼈으면 해서요. 썩 훌륭하지는 않지만, 가격대비 분위기 맛 서비스가 괜찮다, 이게 내 레스토랑의 컨셉이에요.

내가 아주 기가 막히게 훌륭한 레스토랑의 사업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1등? 절대 아니죠. 음식의 질이 너무너무 훌륭해? 그것도 아니에요. 그저 둘이서 한 끼에 3~4만 원? 이게 제 콘셉트입니다. 제가 시골출신이에요. 시골사람이라 솔직히 밥 한 끼에 3~4만 원이면 '굉장한 사치'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도시민들에겐 누구나 스페셜 한 한 끼의 즐거움을 만끽하는데 3~4만 원 정도면 OK! 이런 거 있잖아요. 

그래, 이 정도의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과 맛난 음식 먹고 이 정도 돈을 지불했다면 나 오늘 행복했어! 뭐 이러면 된다고 생각해요. 거기 맞추고 있는 거죠. 그런 행복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싶어요. 아주 훌륭한 음식을 먹으려면 에드워드 권 찾아가야지. 후훗."

- 최근엔 트위터로 컨설팅도 하시던데, 묻는 이들이 많은 가봐요?
"정말 요즘엔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얼마 전엔 KT&G에서도 찾아왔어요. 컨설팅을 해달라고 온 거예요. 3~4천원짜리 시가 느낌이 나는 담배가 새로 나오는데 그 마케팅을 도와달라는 거예요. 내 이름, 우리 가게를 갖고 마케팅을 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 역발상을 좀 하시라고. 왜 남들 하는 걸 똑같이 따라가려고 하느냐고. 일단 신제품이면 화제를 몰고와야 하지 않겠냐고 했어. 나라면, 누드로 가겠다고 했죠. 일본에는 여성을 타깃으로 한 핑크담배가 있어요. 궐련의 빛깔이 핑크인 거예요.

새로 나오는 시가 스타일 담배 궐련 색이 뭐냐 물었어요. 그랬더니 갈색 비슷한 시가 느낌이래요. 아, 그럼 기존 담배와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지, 안 그래요? 케이스로 다 가려버리면 뭐야? 30개 담배들이 있는데, 새로 나온 건 누드야. 그럼 사람들이 호기심에도 사보겠죠. 안 그래요? 만일 궐련이 형광이라봐. 클럽에서 춤추며 피운다? 간지 작렬이지.

난 그래요. 나의 실험정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더라 말이지. 나쁘지 않아? OK! 가는 거야. 기존에 있던 걸 조금씩 파괴하는, 기본은 잃지 않는, 기본적인 것들을 잃지 않는 가운데 뭔가 새로움을 찾는, 이게 날 지켜주는 자산인 것 같아요. 큭큭큭"

내가 살아온 10년 보면, 욕하고 싶어도 못하지 않을까

- 성공한 CEO가 된 건 10년 전 사건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커밍아웃이 없었다면 배우로 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2000년 8월 '야!한밤에' 출연 이후 스포츠신문에 그 기사가 난 거죠? 동성애자라고.
"그 전에 <여성중앙>과 독점 인터뷰를 한 건대, 그걸 <일간스포츠>에 다니던 친한 후배가 눈치 채고 미리 써버린 거죠. 내가 시드니올림픽 간 사이에. 그 기자는 너무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1년 있다가 그만뒀어요. 요즘 기자 안 해.

사실 동성애자 커밍아웃,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어요. 누군가가 물어보면, 내 나이 서른이 되면 해야지, 했어요. 나에게 서른살은 큰 의미가 있었어요. 2000년 뉴밀레니엄과 함께 내 나이도 서른을 맞았으니 이제 나의 삶을 살아야지 했지요.

나의 이십대는 오로지 배우로서 성공만을 위해 달려왔던 10년이었어요. 나이 서른엔, 과분한 행운을 넘어 마흔까진 나를 찾는 시간이 됐으면 했어요. 내걸 포기하고 오로지 성공을 위해 뛰었는데 30대엔 그러지 말아야지 했던 거예요.

이십대 후반 MBC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이 너무 잘돼서 참 좋았지만, 첫 네덜란드 남자친구 때문에 큰 영향을 받았어요. 서른 넘어서까지 날 못 찾으면 나중에 포기도 못할 것 같았고. 인기나 돈이 너무 많으면 나중에 놓을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인간이 그렇잖아요, 너무 많이 갖고 있으면 선뜻 놓는다는 게… 주변에 걸리는 것도 얼마나 많겠어.

덜 가졌을 때 버리자 했어요. 마침 김한선씨가 <야!한밤에> 녹화하는데 묻더라고. 그 코너가 진실토크였거든. 그래서 말했지. 난 솔직히 남자가 좋다. 그런데 그게 편집됐어요. 아, 역시 대한민국에선 어렵구나, 힘들겠구나. 그런데 나중에 <여성중앙> 기자분이 소문을 듣고 찾아온 거예요. 그래서 얘길 한 거예요."

- 커밍아웃 이후 너무 많이 시달렸잖아요.
"후훗. 1개월 정도 집에서 안 나왔어요. 그때 담배 제대로 배웠지. 하루에 세갑? 하하."

- 올해 '홍석천 커밍아웃 10년'을 비교하는 기사가 쏟아졌어요. 뭐가 달라졌어요?
"우선 홍석천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것 같아요. 10년 전 홍석천 앞엔 동성애자뿐이었어요. 지금은 내 이름 앞에 많은 수식어가 붙어 있어요. 사업 잘하는 CEO, 배우, 동성애자 등. 죄질은 나쁘지만 사람은 밉지 않은? 물론 내가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하하.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정해야 할 것 같은, 동성애자라면 모두 싸잡아 욕하고 싶은 사람도, 내가 살아온 10년을 보면, 욕할 수 없는, 개욕해서 죽이고 싶었던 사람이지만 꿈틀꿈틀 잡초처럼 살아 있는, 그런 사람 아닌가….

도저히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존재지만, 아무리 밟고 밟아도 살아서 입을 날름날름 거리는, 아! 동성애자라고 해서 무조건 욕만 해서는 안 되겠구나, 나름 열심히 살고 있고, 가족도 있으며, 굳이 나한테 큰 피해 주지 않으면 뭐 같이 살아도 되는 존재구나, 조금 더 나아간다면 동성애자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한번 알아볼까, 같이 이웃해 살아도 나쁘진 않네! 뭐 이런….

변화는 있지요. 제가 커밍아웃 이후 <뽀뽀뽀>에서 잘렸잖아요. 아이들 근처에서 날 몰아낸 거죠. 호모XX라고. 그런데, 요즘엔 길거리나 가게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이 꼭 아이들한테 절 소개시켜줘요. 이 아저씨 훌륭한 사람이야, 내가 그 아이를 안아도 좋아하고, 사인도 받아가요. 그 순간순간이 내게 얼마나 의미 있고, 행복한지… 모르실 거예요."

"너 같은 호모XX가 아시아 영웅이야?"

배우 홍석천.
 배우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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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언론도 뜨거웠던 것 같아요. 2003년 LA타임스는 '한국 스타, 커밍아웃 뒤 인기 추락'이라는 기사를 썼고, 타임은 2004년에 '아시아의 젊은 영웅' 20인으로 홍석천씨를 선정했어요. 2004년부터 평가가 달라진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커밍아웃을 한 건 2000년이지만, 해외언론이 절 주목한 건 2003년부터예요. 2003년 <뉴욕타임스> <LA타임스> <르몽드> 영국의 <더 타임스> 독일 언론들이 절 다루기 시작했어요. 커밍아웃의 의미,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개된 거죠. 그리고 제가 커밍아웃 뒤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 계속 인권활동을 했어요.

전국의 대학을 다니면서 '동성애와 소수자 인권'을 얘기했어요. 벌써 10년째네요. 한국사회에 동성애라는 화두를 던지고 도망가지 않고 끊임없이 한국에서 활동한 점에 대해 외국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무시무시한 편견에 맞서 버티고 있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큰 의미를 부여해줬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어요. 그리고 그 결과로 2004년 상을 준 거죠."

- '아시아의 젊은 영웅'으로 선정된 뒤엔 편견과 차별에서 좀 자유롭게 되신 건가요? 예컨대, 국내에선 절대 인정을 안 해주다가도 해외에서 상 받아오면 오, 그래 잘 했구나 인정해주는 것처럼, 그렇게 한국사회의 태도가 바뀌진 않았나요?
"아하, 무슨 말씀을! 그 정반대였어요. 무엇보다 제가 2004년 <타임>이 꼽은 '아시아의 젊은 영웅'에 선정됐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왜냐? 국내언론이 집중적으로 보도해주지 않았거든요. 그냥 단신. 무엇보다 당시 <타임>이 선정한 젊은 영웅이 각국에 한명씩인데 유독 우리만 셋이었어요. 저와 박세리, 김미현. 한국의 여자프로골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예요. 경제위기에 희망을 던져준 거라 높이 평가받았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접하곤 제게 욕을 하더군요. 어디 감히 너 같은 게 박세리-김미현과 동급이냐. 네가 영웅이야? 미래를 짊어져? 니 까짓 게? 인터넷에서 더 야단 맞았어요. 너 같은 호모XX가 영웅이라는 게 밥맛없다 뭐 이랬죠. 사실 그 상을 내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 상을 받고 더 욕을 먹게 됐어요. 참 억울했습니다. 더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더 힘들어졌죠. 상처 많이 받았어요. 괜히 상은 줘가지고 남 힘들게 하나, 속으로 끌탕도 했습니다. 하하."

- 지난 6월 주한미대사관과 GLIFAA(미 대사관내 동성애자 모임)가 함께 주는 '2010 가장 용기 있는 사람' 상을 받았잖아요. 또 욕설이 난무했나요?
"미국대사관이 제게 이 상을 주기 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6월을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의 달'로 정하고 이들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라고 당부했어요. 사실 미국도 동성애자 자체로는 인정을 해도 그 파트너의 인권까지 배려해주진 않았거든요. 사회의 혜택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그런 돌파구를 형성해준 거죠. 그 일 때문에 한국에 있는 미 대사관 모임이 제게 그런 상을 준 거예요. 나라도 없었다면 대한민국에서 동성애자 인권은 완전 바닥이었겠구나, 이런 인정 같은 거였어요."

대중은 스마트폰, 관료는 막대 모토롤라폰

드라마 시청자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갖고 있을 때 지난 2003년 동성애를 다룬 김수현 작가의 '완전한 사랑'에 출연해 작가와 인연을 맺은 홍석천씨가 김 작가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전해줄 선물을 들어보이고 있다.
 드라마 시청자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갖고 있을 때 지난 2003년 동성애를 다룬 김수현 작가의 '완전한 사랑'에 출연해 작가와 인연을 맺은 홍석천씨가 김 작가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전해줄 선물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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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다룬 게 많지 않은데, <완전한 사랑>이 대중적으로는 첫 작품 아닌가 싶어요. 이 드라마에 동성애자로 출연했었잖아요.
"<완전한 사랑> 이전에도 90년대 말인가 단막극이 있었어요. 김갑수-주진모 주연의 <슬픈 유혹>이라고. 그렇지만 주말드라마로는 처음이었어요. 김수현 선생님께서 홍승조라는 캐릭터를 만들어주셔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커밍아웃 하는 게이 캐릭터였는데, 연기는 평범하게 해달라고 당부하셨어요. 아직 한국에는 동성애에 대한 선입견이 있고, 너무 여성스럽거나 웃기면… 김 선생님께선 그저 동성애자도 같이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그리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똑같은 사회구성원인데 성정체성이 좀 다른 것으로만 하자, 그러셨지요. 평범한 연기를 원하셨어요.

6~7회 분량에서 승조가 지나(이승연 분)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이불 뒤집어쓰고 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원래는 부모님에게 해야 할 커밍아웃을 절친인 지나에게 대신 하고 우는 장면이었던 거예요. 그게 7년 전인데, 이번 <인생은 아름다워>에선 바로 부모님에게 커밍아웃 하는 장면이 들어간 거예요. 7년 전 내 커밍아웃의 파트너는 친한 여자친구였지만, 이번 <인생은 아름다워>에선 동성애자의 사랑, 삶의 고민까지 영역이 확장된 거라고 봐요."

- 그렇지만 여전히 동성애에는 넘지 못할 벽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지난해 게이 청년들 간의 로맨스를 그린 한국 영화 <친구사이>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에서 '유해성 있음'으로 판정받기도 했지요.
"음… 나는 15세가 정도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18세 등급 받아도 뭐 괜찮다고 봐요. 다만 말하고 싶은 건, 우리 사회가 한국 청소년들을 너무 얕잡아본다는 거예요. 너무 생각이 없는 애들로 평가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어떤 정보를 던져줘도 판단할 아이들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성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자꾸 감추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썩는 거고, 이런 겁니다. 요건 조심하세요, 알려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한 건대, 대한민국은 늘 숨기고 차단하고 못하게 막고 그래요. 성에 대해 판단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제일 큰 병폐 같아요. 보수적 마인드, 옛날의 그 잣대 그대로. 못 마땅해요, 전.

대중은 모두 스마트폰 쓰고 있는데, 높은 관직에 계신 분들만 막대 모토롤라폰 갖고 다닌다고 해야 할까. 정책을 주도하는 관료들이 세상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봐요. 선도해야 할 분들이 뒤쳐져 있다고 해야 할까. 뒷북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아."

"위장자의 90%를 갈아치워야 한다"

- 얼마 전 <조선일보>에 실린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란 의견광고 보고 격분해서 트위터에 글을 올렸던데.
"솔직히…, '미친 거 아니야? <조선일보> 광고 할 돈 있으면 좋은 데 쓰셔야지, 참교육 하신다면서, 학용품 없는 애들 좀 사주시든가', 그랬어요. 무엇보다 광고문구 자체가 틀린 말이고, 잘못 됐어요. 따져보자고요.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 된 아들? 그 드라마를 보고 게이 된 게 아니라, 걘 이미 게이였던 거고, 그 드라마 속에서 부모님이 이해해주는 장면이 나오니 우리 부모님도 그럴지 모른다는 기대로 커밍아웃을 한 거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를 보고 게이 됐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럼 네티즌 말마따나 조폭영화 보면 조폭 되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보면 다 구미호 되나?

또, 에이즈 걸려 죽으면? 동성애자는 무조건 에이즈 걸리나? 아니거든요. 에이즈는 섹스를 통해 전염되기도 하지만 이미 당뇨처럼 관리병이에요. 관리만 잘 하면 수명 연장시킬 수 있는 질환이라는 게(알려진 게) 벌써 몇 년 전인데. 그리고 에이즈 환자들의 인권은 또 어떻게 할 거예요? 정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너무 한 거죠. 많은 돈 들여 광고할 시간 있으면 1만 원짜리 동성애 관련 책을 읽고 공격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시라, 말하고 싶은 거예요."

- 그쪽 단체에서 항의전화는 없었나요?
"조용하던데요? 본인들이 생각해도 웃긴 멘트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요? 내가 트위터를 매일 들여다봐요. 혹여 날 공격하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없더구만요."

- 외국에선 에이즈 환자 돕기 행사도 많이 하는데 우린 그런 게 별로 없어요. 경계하고 죄인 취급하고 배타시 하고, 왜 그런 문화라고 생각해요?
"의식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외국에서는 개인의 삶을 인정하잖아요. 개인주의. 그런데 우린 집단주의예요. 집단에서 벗어나면 이단아의 얼굴을 들이밀죠. 우리 집단에 네가 끼려면 네가 변해야지, 우린 변할 수 없어. 군대문화, 직장문화, 공무원 복지부동. 모두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야! 그냥 조용히 있어, 편하게 묻어가자', 뭐 이런 게 만연돼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튀는 행동을 하면 즉각 죽이려고 하고. 너 왜 이렇게 튀니? 튀는 개성을 못 견뎌하는 거죠. 그런데, 참 웃긴 게 있어요. 그러면서도 사회적 소수자, 장애인이 능력을 발휘하면 포장을 하고 난리를 치고 일약 영웅으로 만든다는 거예요. 한탕주의. 한동안 팍 집중시켜놓고 책임 안 지는, 산골소녀 영자(아버지와 단둘이 산골에서 살아가던 영자의 모습이 TV를 통해 알려지면서, 영자는 CF를 찍는 등 경제적 도움을 받았지만, 이후 집에 강도가 들어 아버지를 잃었다)가 그런 케이스 아니에요?

나는 위정자의 90%를 갈아치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10%는 괜찮은데 나머진 모두 재교육기관에 보내 다시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40년 전 대학교육을 끝으로 그 어떤 교육도 받은 적 없는 분들일 것 같은데, 이런 분들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 왜 없어요? 가만보면 우리나라는 상담기관, 교육기관, 재교육기관이 별로 없어요. 무슨 고민이 있어도 이걸 상담할 기관이 없네? 창업 준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기관도 필요한데 말이죠. 그러니까 모두 명퇴하고 사업하다 쫄딱 망하고 그러는 거예요."

- 민노당 성소수자위원회 활동도 했는데, 소수자 인권을 위해 정치할 생각은 없으세요? 
"작년인가 올초 민노당은 탈퇴했어요. 민노당 안에도 반대하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하고, 한때 시류에 섞여 성소수자위원회도 조직한 것 같고. 계속 네트워크를 갖고 활동해온 것도 아니어서 매월 내던 당비 1만 원을 내지 않기로 했지요."

"4년 뒤 용산구청장 도전할 거예요"

- 동성애자 인권을 위한 정치를 할 생각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올해 고민이 좀 생겼어요. 나이 마흔이 되니까 스물 넘어 서른 왔고, 서른 넘어 마흔 왔으니, 마흔 넘어 쉰 갈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요. 올봄 지방선거 치르는 걸 가만 보고 있으니 답답해지더라고요. 뽑힌 뒤 그들은 무엇을 할까, 알 길이 없더군요. 내가 만일 정치나 행정을 한다면 좀 독특한 시각으로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음 선거에서 용산구청장 어떨까? 고민중이에요. 국회의원은 너무 정치적이고, 구청장은 행정이니 한번 해볼만하지 않을까, 생각 중이죠.

내가 골목정치, 풀뿌리정치에 관심이 많아요. 골목문화 자체를 너무 사랑하고. 죽어있던 뒷골목이 살아나는 걸 보면 뿌듯해요. 누군가는 나서서 골목문화를 깔끔하게 바꿔줘야 하는데 나란 사람이 이태원에서만 15년이니 용산구청장 어때? 생각하게 된 거죠. 주변에 물어보니, 거 재밌겠다! 하더군요. 하하. 공무원들도 아이디어 많고 변화에 목마른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들과 내가 합심한다면? 썩 괜찮은 동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용산구청장이 된다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하고 싶으세요?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부터 용산구청 사이에 아주 오래 된 옛날 동네가 하나 있어요. 거의 매일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데, 내용은 서울시와 용산구는 주민들을 몰살하느냐? 뭐 이런 거예요. 그 동네 주민들은 못 나가겠다 버티는 거고, 용산구와 서울시는 나가라, 그래야 빨리 개발된다 뭐 이렇게 옥신각신 하는 분위기예요.

그런데 이 동네, 정말 옛날 냄새 너무 잘 살아 있는 동네예요. 딱 한 블록인데, 도대체 그걸 다 뜯어 뭘 개발할지 정말 궁금해요. 만일 나라면, 내가 용산구청장이라면, 그 동넬 문화의 거리로 만들겠어요.

일본 동경에 '다이칸 야마'라고 문화의 거리가 있어요. 기찻길 옆에. 아주 예쁘기로 더 말할 나위가 없어요. 공덕역부터 용산역까지 철도따라 공원도 만들고 먹거리와 즐길 거리, 아이들 장난감도 팔고 볼 수 있는 공간 만들면 어때요? 무조건 다 뜯어 없앨 게 아니라 특화된 상권의 아이디어를 현지 주민과 얘기해서 바꿀 건 바꾸고 고칠 건 좀 고치고 그럼 되지 않을까요? 낡았으니 다 부수고 새로 지어! 난 이건 아니라고 봐요.

오세훈 시장이 '디자인 서울' 운운하는데, 디자인의 출발은 기존의 있는 것을 보존하면서 발전시키는 게 기본이에요. 동대문 구장을 왜 없애냐고? 그 역사성을 다 어떻게 할 건대? 일본이 지어서 치욕이라고? 아니 그럼 터키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은? 거긴 기독교, 이슬람 틈나는대로 쳐들어와 변형했는데, 결국 이 성당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어요.

치욕의 역사라면 그 역사대로 보고 반성하고 후대가 느끼도록 해줘야지, 무조건 없애? 그건 아니죠. 얼마 전 '이태원 관광특구 위원회'에서 이태원을 개발하겠다면서 절 불렀어요. 교수님들이 이태원을 거의 새로 지으셨더구만요. 네덜란드 거리, 스페인 거리 등등 조감도를 다 그려놓으셨더라고요.

왜 우리가 네덜란드, 스페인 흉내를 내야 하느냐고 물었죠. 답을 못 하시더군요. 이태원은 이태원에서 장사하는 토박이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어놓은 거리예요. 정부가 관광객을 끌어들였냐고요? (정부 등은)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문화의 소중함을 너무 생각 안 해요.

이태원 관광특구에 뭐가 중요한지 몰라요. 네덜란드, 스페인 거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도 말이에요. 거 주차장이나 제대로 만들라, 이거예요. 관광차 오면 다들 불법점유 해가지고 어디 사람 다닐 수가 없어!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 같은 문어대가리가 우리의 아이콘이라니"

배우 홍석천.
 배우 홍석천.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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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만 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하셨던데, 앞으로 어떤 연기하고 싶으세요?
"지난 10년간 일부러 동성애자 연기를 안 했어요. 제작자도 피했고, 나도 조심했고. 오히려 아주 평범한 연기를 했지요. 그런데 이젠 <남자셋, 여자셋>에서 했던 뿌아종 같은 역할, 하고 싶어요. 유쾌한 동성애자의 모습을 담고 싶어요.

솔직히 10년간 그렇게 재밌는 캐릭터를 안 했다는 것도 웃기는 거 아니에요? 더 원숙한, 더 재밌는, 이제는 좀 맘 편하게 동성애 코믹캐릭터 같은 역할 해보고 싶어요. 남의 옷 빌려입은 것 같은 느낌 버리고, 내 옷 제대로 입고 하는 연기 하고 싶어요. 그, 런, 데... 기회를 안 주네? 하하하."

- 추석 즈음, 트위터에 가끔은 연예인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여러 선입견이 부담스럽다고 올렸던데요. 홍석천의 심연에선 무엇과 씨름하는 중인가요?
"첫째도 마지막도 외로움이에요. 외로움이라는 게 너무 사람을 힘들게 해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인 거죠. 후훗.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상대가 채워줘야 하는 건대, 요즘엔 아주 구하기가 더 힘들어. 하하하.

커밍아웃 전에는 몰래몰래 만나기가 더 쉬웠는데, 이젠 알려지니까 내 상대가 너무 부담스러워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잖아요. 나만 용감한 게 아니라, 나를 만나는 상대로 투사의 마음이어야 하는 거죠. 하하. 내 옆에 있으면, 쟨 누군데, 항상? 이러지 않겠어요? 그런 게이들이 없는 거지. 그리고 한국 동성애자들이 날 별로 안 좋아해요. 외모적으로 그들이 바라는 탑 스타가 아니고… 또, 이런 욕도 많이 먹었어요. 너 같은 문어대가리가 우리의 아이콘이 되다니…."

- 결혼제도에는 왜 반대해요?
"남들이 하는 건 OK, 그러나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거예요.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 주장하는 분들도 계신데 나는 거기까지는 아니라는 거죠. 나는 그냥 사랑주의자예요. 사랑의 유통기간이 떨어지면 쿨 하게 친구처럼 잘 지내는, 그런 주의라는 얘기예요."

- 이제 마흔이지만, 쉰 되고 예순 되면 등이라도 긁어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 또래에 맞는 게이들이 있겠죠? 등이야 친구들이 긁어줘도 뭐 괜찮지 않을까요? 내 삶을 어디에 구속하는 게 싫어요. 내가 사랑해서 같이 몇 년 동거하는 건 OK. 그러나 결혼으로 얽매이는 건 별로…."

- 예전에 홍콩영화 <해피투게더> 같은 거 한번 찍고 싶다고 했는데 요즘도 그래요? 꿈이 뭐예요?
"난 꿈이 없어요. 그런데 기자들이 하도 질문해서 생각해봤어요. 내 꿈은 뭔가. 이뤄지면 좋겠지만 이뤄지지 않아도 뭐 괜찮은 꿈. 그게 하나 있긴 하더군요. 연말 시상식이나 영화제에서 상 받는 것. 날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을 위해서. 학교 다닐 때 난 늘 상을 많이 받는 아이였는데 커밍아웃 이후 상이라는 게 없네? 요즘엔 분야별로 시트콤상 이런 게 있는데 10년 전엔 그런 게 없었어요. 운도 지지리도 없지.

여하튼, 상을 한번 타보고 싶어요. 커밍아웃 이후 인권 이런 상은 받았지만 내 직업으론 상을 못 받았어요. 직장인들이 10년 근속상 받듯 나도 내가 일하는 분야, 내 직장에서 상을 타보고 싶어요. 상 한번 타보고 죽는 게 꿈이라면 꿈인데, 내 작은 소망이 이뤄질 날 있을까? 하하."

- 10년 전엔 한국인의 왕따였는데, 일종의 사회적 복권이랄까 많이 회복된 것 같아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평범한 삶에서 시작해도 쉽지 않은데 난 완전 바닥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온몸에 상채기 투성인 채로 살았어요. 저어~ 바닥에 짓밟혀 있던 애가 꿈틀꿈틀 기어코 살아내는 모습이랄까. 난 실수 하면 안 되고, 남에게 피해줘도 안 되고, 그렇지만 자라나는 게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책임감이 있어요. 내가 잘 살아야, 잘 살 수 있어야, 한국에 정의가 살아있는 것 아닐까요? 요즘 정의가 대세니까. 키득키득.

어젯밤 <딥 임펙트>란 영화를 다시 봤는데, 지구의 종말이라는 게 언제 될진 모르겠지만 여하간 우린 오늘에 충실하며 살아야 하잖아요. 어쨌든 난, 어느 한적한 바다를 바라보면서, 옛 추억에 젖어, 여태껏 내가 살아낸 내 삶이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이었구나, 그렇게 느끼고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 거예요."


태그:#홍석천, #소셜테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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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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