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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은 한의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신경언어병리학을 전공했습니다. 학부 졸업 후 동 대학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마쳤으며 현재는 브라질에 체류 중입니다. 마또 그로수 연방대학병원의 열대의학연구소에서 열대 감염성 질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알게 된 브라질의 공공의료체계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단, 글의 모든 내용은 마또 그로수 주 기준임을 밝혀둡니다. [편집자말]
사립병원 SUS환자는 못 들어가는 사립병원입니다. 하루 중환자실 입원비가 200만원이 넘습니다.
▲ 사립병원 SUS환자는 못 들어가는 사립병원입니다. 하루 중환자실 입원비가 200만원이 넘습니다.
ⓒ Hospital Amec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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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글에 언급했듯, 일면 이상적으로 보이는 무상공공의료(SUS) 뒤에 있는 민영의료보험의 영향력은 모든 영역에 미칩니다.

모든 의료기관이 SUS환자를 받아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우리나라처럼 당연지정제가 아니므로), 의료기관마다 각각 어떤 곳은 SUS만, 어떤 곳은 SUS와 민영의료보험환자 양쪽 모두를, 어떤 곳은 민영의료보험 환자만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환자가 만약 SUS기관에서 할 수 없는 검사를 해야 하는 경우라면, SUS환자도 받아주는 몇 개 안 되는 사립검사소에 예약을 해야 하고, 검사소에서는 민영의료보험환자나, 혹은 본인 부담으로 검사하는 환자 우선으로 날짜를 잡게 됩니다. 먼저 예약한 SUS 환자들 앞에 이런 환자들을 끼워넣어, 새치기를 시켜주는 겁니다.

전체 국민의 80% 남짓 되는 SUS 환자들 검사를 순서대로 해주자면, 돈 있는 환자들이 아주 많이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러니, 검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SUS 환자는 정부 대신 본인이 비용을 낼 경제 능력이 되는 사람들에게 계속 계속 새치기를 당하게 되는 셈입니다.

(물론, 검사 후 지급되는 수가도 항목별로 약간 다릅니다. 일반적인 엑스레이의 경우, 사보험에서는 1회 10.60헤알, SUS에서는 9헤알 가량을 지급합니다. 대개의 간단한 일반 검사들의 경우 의료보험회사에서 병원 등에 지불하는 수가가 SUS에 비해 약간 높은 편입니다. 때문에, 사립검사소에서는 거의 SUS환자는 받지 않습니다. 단, 항암치료나 장기이식 등에 있어서는 SUS가 병원에 지불하는 수가가 꽤 좋은 편이라 의사들이 이런 환자받는 걸 꺼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X-레이 검사에 두 달, 복부초음파 찍는데 네 달 걸린 이유

진료실 내부 두 달 넘게 걸려 찍은 필름이 걸려 있습니다.
▲ 진료실 내부 두 달 넘게 걸려 찍은 필름이 걸려 있습니다.
ⓒ 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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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세 할머니가 감염내과 외래에 찾아왔습니다. 환자가 처음 진료를 받으러 온 날짜는 7월 15일입니다. 할머니는 이 지역에 흔한 샤가스(Chagas disease)라는 병으로 진단받았습니다. 이 병은 심내막염이나, 식도가 정상보다 넓게 확장되거나, 대장이 정상보다 넓게 확장되는 등의 증상을 보이는데 급성의 경우, 치료를 받지 못하면 심장의 부정맥으로 인해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환자는 확진을 위한 피검사, 식도 조영, 대장 조영 등의 검사 처방전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다시 환자가 검사 결과를 들고 외래에 찾아온 날짜는 9월 23일. 별 대단할 것도 없는 방사선 촬영을 하는데 무려 두 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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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할머니가 검사하러 간 날, 연방대 병원의 기계가 고장났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시내에 있는 사립 검사소에 의사의 검사처방전을 들고 갔다고 합니다. 예약한 날짜가 되어 가보니, 날짜가 다시 뒤로 밀려 있었습니다. 그 후에 다시 예약한 날짜가 되어 찾아가니 또 다시 날짜가 뒤로 밀려 있었습니다.

본인부담 환자나 의료보험 환자의 경우 예약한 날짜 하루 전에 검사소 직원이 검사일정을 다시 확인하는 전화를 각각 걸어주지만, SUS 환자인 할머니는 아무에게도 전화를 받지 못하고 두 번이나 헛걸음을 했습니다. 결국 할머니는 두 번의 헛걸음 끝에 대장 조영에 290헤알(약 20만원), 식도 조영에150헤알(약 10만원) 총 30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야 신속히(?) 검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  정작 할머니는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원래 그런 거라며 웃습니다. (환자의 동의하에 촬영했습니다)
▲ 할머니 정작 할머니는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원래 그런 거라며 웃습니다. (환자의 동의하에 촬영했습니다)
ⓒ 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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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예는 외래 진료실에 반나절만 앉아있어도 수두룩합니다. 복부 초음파 찍는데 4개월 걸린 환자, MRI 찍는데 한 달 넘게 걸린 환자 등등. 굳이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없는 의료보험회사는 굳이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의 일상에도 이렇게 개입합니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이 내가 기다리고 있는 줄에 '합법적인' 새치기를 하면서, 그래서 정작 나는 이 무료로 제공되는 '차별없는 진료'를 받기 위해 이러한 진짜 '차별'을 감내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일상처럼 반복되다 보면, 돈 있는 '그들'이 어떠한 새치기 특권을 누리더라도 그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고, 내가 두 달이든, 세 달이든 기다리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이상이 아름다운 SUS가 존재하더라도, 의료기관들 모두가 SUS환자를 받을 의무가 없는 한, 그리고 더 돈이 되는 민영의료보험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는 한 '너 의료보험이 있어?'라는 질문이 '너 돈 좀 있냐?'라는 질문과 같은 의미가 되어 버립니다.

그나마 브라질의 보험없는 환자들의 위안이 되는 사실 중 하나는, 어제 사립병원에서 비싼 진료비를 내야만 만날 수 있었던 의사에게, 오늘 SUS 의료기관에서 공짜로 진료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 병원에서 일하는 브라질 의사들, 그나마 위안?

응급센터 한밤중에 가더라도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응급센터 한밤중에 가더라도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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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는 달리, 브라질의 의사들은 여러 개의 의료기관에서 일을 하는 것이 몹시 일반적입니다. 한 달에 최소한 2~3개의 병원, 많게는 6~7개의 병원에 날짜를 나눠가며 일을 합니다. 월요일은 대학병원, 화요일은 응급센터에서 일하고 주중 며칠은 사립병원 클리닉에서 진료를 보는 식으로 의사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시간에 비해 SUS에서 의사들에게 지불하는 임금이 그리 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인 클리닉을 개설한 경우는 다르지만, 병원의 당직 의사나 회진 의사(브라질 의사들은 날마다 차트쓰고, 회진을 도는 회진 의사와 하루 12시간 당직을 서는 당직 의사로 크게 나누어 집니다)로 고용된 경우 SUS 의료기관과 사립병원의 임금은 동일합니다.

때문에, 사립병원 진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SUS 의료기관에 가면, '많이 기다린다', '시설이 후지다' 등등의 불평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의료진이 사립병원보다 수준이 떨어진다는 불평은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사립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오늘은 여기 응급센터에서 진료를 하니까요. 한밤중에 응급센터에 당직을 서는 의사들도 레지던트나 인턴이 아니라, 다른 날에는 사립병원에서 만날 수 있는 전문의들입니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은, 그나마 돈없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덜어줍니다(물론 이런 고용방식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똑같은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다면 어떨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에 만약 어마어마한 자본이 세운 영리법인 병원이 생긴다면, 아마 가장 유능한 의료진이 그 안에 포진할 겁니다.

브라질과는 달리 대개 한 의료기관에 고용되어 일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나를 진료하는 이 의사와, 돈 많은 사람들을 진료하는 저 의사의 수준이 엄청나게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상대적 박탈감이 엄청나지 않을까요. 게다가, 돈 좀 있는 사람들은 합법적인 새치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결국 아무리 좋은 이념의 공공의료체계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집행되는 예산에 있어 재정적인 평등이 전제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저번 글에 언급), 그것이 '자본'과 일대일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결국은 현재의 브라질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 전국민 건강보험이 있는 우리나라는 브라질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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