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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3월 중순 북중 접경지역 취재의 첫 방문지였던 선양(심양)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7, 8개 정도 된다는 북한 식당 중 한 곳에 갔더니, 동행한 사진기자의 평범하지 않은 카메라 가방을 보고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리를 함께하게 됐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일제 때 조부가 평안도에서 중국으로 넘어왔고, 자신은 헤이룽장(흑룡강)성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선양에서 무역업을 한다고 했다.

 

그는 남한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미국의 꽁무니에 바짝 붙어살다가 졸부가 되자 같은 민족인 북한을 완전히 거지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거품을 물었고,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일성·김정일 칭찬하던 재중동포 "3대 세습, 그 방법밖에 없는 건가"

 

반면 김일성 주석에 대해선 깍듯하게 표현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도 국력 차이가 큰 데도 제국주의 미국을 잘 요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자신을 장씨라고만 소개할 뿐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고, 북한도 자주 오가는 눈치였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다는 게 진짜냐"고 물어왔다. "더 잘 아실 것 아니냐"고 반문하자, "남조선은 물론이고 중국 언론에서도 그렇게 나오던데 맞는 건지 모르겠다. 미국과 남조선의 모략인지…"라면서 "사업차 지난겨울에 평양에 갔을 때 그래도 높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전혀 그런 얘기가 없었다"고 받았다.

 

"남한에서는 대체적으로 그렇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하자,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세습을) 한 번 했는데 두 번은 못하겠느냐"고 했더니 "그런 방법밖에 없는 것이냐"며 처음으로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남한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중국에서 사업기반을 닦아 북한을 돕고 싶다는 한 사업가에게서도 비슷한 고민을 들었다. 미국의 봉쇄라는 강력한 외부조건이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인정하지만, 세습만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김 위원장도 세습을 했지만 이미 오래됐고 미국에 맞서 나름의 역량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그런가보다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까지 그 아들이 후계자가 된다면 굉장한 충격일 것이라고 했다. 믿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북한은 세습 외에는 다른 돌파구가 없는 것일까.

 

북한의 '후계자론'은 필연적으로 핏줄세습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후계자론은 제1원칙으로 '인물 본위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뒤를 이은 것도 그가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이 말하는 '백두혈통'이나 '만경대혈통'도 본래는 생물학적 핏줄이 아니라 혁명혈통과 같은 사회적 의미의 혈통을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의 후계자론은 김 위원장의 후계 정당화를 위해 사후적으로 정립된 논리다. 이 때문에 김정은 후계과정에서 새로운 후계자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북한, '가산국가' 돼가고 있다"

 

김일성종합대 교수 출신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명철 박사는 북한의 후계문제에 대해 "후계자의 요건으로 수령에 대한 충성심, 영도력, 고매한 공산주의적 덕성, 업적과 능력 등을 내세우는데, 일반인들이 일찍부터 제왕학을 공부하는 김일성 집안 자식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주변에서 대단하게 보일 수밖에 없고, 이런 점들이 지도력으로 포장된다"고 말한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은 민주적인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김일성 가계가 정통성이나 정치적 훈련에 가장 유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혈통 승계와 비혈통 승계가 모두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은 '가산국가'(家産國家, 국가가 군주의 세습재산으로 간주되는 국가)의 형태를 띠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의 다음 대는 어떻게 될까. 북한의 3대 세습은 단둥에서 만난 장씨처럼 북한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도울 생각이 충만한 이들까지도 고개를 돌리게 만들고 있다. 


태그:#김정은, #3대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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