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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은 한의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신경언어병리학을 전공했습니다. 학부 졸업 후 동 대학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마쳤으며 현재는 브라질에 체류 중입니다. 마또 그로수 연방대학병원의 열대의학연구소에서 열대 감염성 질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알게 된 브라질의 공공의료체계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단, 글의 모든 내용은 마또 그로수 주 기준임을 밝혀둡니다. [편집자말]
얼핏 보면 이상적인 의료복지가 이루어지는 나라가 브라질 같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브라질의 의료복지는 일종의 정부 의료보장체계인 SUS(공공의료보건체계)를 중심으로 한 '이데아'의 세계와 민영의료보험을 중심으로 한 '현실'의 세계로 나뉘어집니다.

물론 아직 다 쓰지는 못했지만, SUS가 추구하는 이상과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의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면에는 군부독재시절 일부의 국민에게 제한되던 의료서비스를, 전국민에게 '차별없는 진료'로 확대하여 민주주의 정권의 성과로 만들고 싶어했던 정치적 배경도 숨어 있습니다. 즉 SUS가 이루고 싶어하는 꿈은 브라질 민주주의의 이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현실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민영의료보험을 통해 볼 수 있는 자본의 힘입니다.

브라질 의료체계의 그림자, 민영의료보험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의료보험 회사 중 하나입니다. 온라인으로 견적도 뽑아볼 수 있습니다.
▲ UNIMED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의료보험 회사 중 하나입니다. 온라인으로 견적도 뽑아볼 수 있습니다.
ⓒ unimed.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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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의료보험은 말 그대로 SUS와는 상관없는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보험입니다. 전체 국민의 80% 정도가 빈민층, 그 중의 1/4이 넘는 사람들이 최저빈곤층으로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보이는 브라질의 경제구조상, 상위 20%에 들지 못하는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비싼 의료보험입니다. 대략 특별히 아픈 데 없는 건강한 40대 이하의 가입자 한 명당 책정되는 보험료가 한 달 125헤알(약 8만~9만 원) 정도에서 시작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받는 월급이 많을수록 내야 하는 보험료도 많아지지만, 떼이는 보험료와 상관없이 보험혜택은 공평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월급 500만 원 받는 사람은 100만 원 받는 사람보다 보험료를 더 많이 내지만, 같은 병원에서 동일한 질의 진료를 받고, 환자 본인 부담액도 같습니다. 그래서 건강보험 자체가 어느 정도 부의 재분배를 통한 공평한 의료혜택을 목적으로 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브라질은 따로 의료 목적 조세(준조세의 성격을 띄는 우리나라의 전국민 건강보험처럼) 항목이 없고 간접세, 직접세 등의 전체 국가 수입에서 SUS 예산을 책정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우리와는 다른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이 경우, 전체 국가 예산에서 부자들이 내는 직접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경우에는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의 재분배를 통한 공평한 의료복지라는 이상과는 계속 멀어지게 됩니다. 실제로 브라질에서 최상위 10%는 전체의 46.1%의 소득을 가져가지만 전체 직접세 중 45%를 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자들이 내야 하는 세금의 비중을 약간씩 다른 계층에게 전가하고, 생필품이나 공산품, 전기세 등에 붙는 간접세의 비중을 높이게 되면서 실제로는 브라질 정부의 의료 복지가 재정적인 불평등을 토대로 운영되는 셈이라고 합니다(An Analysis of Equity in Brazilian Health System Financing; Health Affair Vol. 26, No. 4).

아무튼 이러한 배경에서 그래도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 가입하는 이 의료보험료는 나이가 많을수록, 위험부담이 클수록, 가족 중 가입자가 많을수록 비싸집니다. 또 원하는 서비스(입원실이 특실이나 일반병실이냐 등)에 따라서도 보험료가 달라지는 철저한 돈의 논리에 따라 결정되므로, 결국 돈이 많은 사람이 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이 당연한 보험입니다.

건강한 49세의 엄마와 18살의 아들, 2인 가족의 민영의료보험의 경우 한 달에 400헤알(우리 돈으로 28만 원 가량) 정도 지불하면 됩니다만 가족 중 노인이 있거나 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아프면 죽을수도 없고... 한달 월급 고스란히 보험료로

지젤이 일하는 병원입니다. Hospital Universitario Julio Muller.
▲ HUJM 지젤이 일하는 병원입니다. Hospital Universitario Julio Muller.
ⓒ HU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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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마또 그로수 주 대학병원에서 일한 지 25년째인 간호사 지젤은 한 달 일한 월급 전부를 가족의 보험료로 내고 있습니다. 78세의 할아버지와 50대 부부, 그리고 20대의 자녀 3명 등 총 6명인 이 가정의 경우, 할아버지 한 사람의 한 달 보험료만 약 900헤알(약 63만 원 가량), 가족 전체의 보험료는 총 2300헤알(약 160만 원 가량)입니다. 이 보험료는 지젤이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특별히 보험회사에서 30% 할인을 해 준 저렴한(?) 가격입니다. 물론 치과 진료는 이 의료보험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치료의료보험은 따로 들어야 합니다. 보험료 액수를 듣고 깜짝 놀라자 지젤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럼 아프면 어떡해? 아프면 그냥 죽을까?"

"......."

응급상황에서 모든 것이 무료로 제공되는 SUS가 있는데도 이런 말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족이 다 죽게 생겨 다급하게 중환자실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 무상으로 제공되는 SUS는 응급센터, 각 대학병원, 암병원(암병원 역시 SUS로 운영됩니다)의 중환자실 병상에 자리가 남을 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300만 마또 그로수 주민에게 무료로 개방되는 SUS의 성인 중환자실 병상수는 이 4개의 의료기관을 다 합해서 50병상 정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의료기관은 건강보험공단 의료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으나(당연지정제), 브라질은 모든 의료기관이 SUS 환자를 받아야 할 의무가 없는 나라이므로, 민간 자본으로 운영되는 기타 병원들은 SUS환자는 접수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따라서, 의료보험이 없는데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SUS의 중환자실에 자리가 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냥 이 기회에 콱 죽어 버리자는 마음이 아니라면, 울며 겨자먹기로 사립병원에 100% 본인 부담으로 입원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중환자실 하루 입원비가 210만원, 허걱



'세계 최고의 건강보장기관' 이라는 큰 글씨가 보입니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정말 세계 최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건강보험공단 '세계 최고의 건강보장기관' 이라는 큰 글씨가 보입니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정말 세계 최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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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경우 꾸이아바 기준으로 중환자실 하루 입원비는 대략 3000헤알(약 210만 원) 안팎이니, 한 달 월급이 중환자실 하루 입원비의 절반도 안 되는 대개의 브라질 사람들의 경우 이런 병원비를 감당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럴 바에야 그냥 병원 가지 말고 죽는 게 낫다는 말이 그냥 농담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돈이 없는 환자가 치료만 받고 도망칠 경우를 대비해, 각 사립병원들은 입원하기 전 보증금으로 약 3만~5만 헤알(2100만~3500만 원 가량. 입원하게 되는 병의 종류에 따라 금액이 달라짐)을 먼저 내야만 입원 수속을 밟아주니, 당장 현금으로 몇 천만 원을 들고 있지 않은 바에야 사립병원 문턱도 넘어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민영의료보험없이 SUS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위와 같은 경우들 때문에, 브라질의 GDP 대비 보건비용 지출은 9% 가량으로 OECD 국가 수준이면서도, 이 중 정부 부담 비용은 41.6%에 불과하고(OECD 국가 수준 80%, 우리나라 54.9%. 2007년 기준), 민영의료보험 부담 비중 24%, 환자 본인 부담금이 34% 정도인 비효율적인 구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차별없는 진료'라는 아름다운 이상을 가진 무상 공공의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 민영의료보험의 영향력은 의료에 관한 모든 영역에 깊게 개입합니다. 하다 못해 단순한 엑스레이를 찍는 데에두요.

(다음 글 이어집니다)


태그:#브라질 , #건강보험 , #민영의료보험, #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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