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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으로 다가온 추석. 예년 같았으면 명절 특수로 가격이 오르기 전에 미리 추석김치도 담그고 조기와 코다리, 말린 나물거리를 사러 다닌다며 부산을 떨었겠지만, 올해는 추석이 임박할 때까지 장 볼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제수에 사용될 농수산물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뉴스에 겁을 먹었기 때문이지요.

혹시나 추석이 다가오면 정부에서 수급안정을 위해 가격 조정에 나서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가격은 점점 더 오르고 대책은 없는 듯 보입니다. 더 있다가는 울며 겨자먹기로 가장 비싼 값에 차례상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추석을 닷새 앞둔 지난 17일 차례 상에 올릴 제수를 마련하기 위해 장보기에 나섰습니다.

대책 기다렸다, 대책없이 나선 추석 장보기
백화점에 놓인 제수용 프리미엄 과일들.
 백화점에 놓인 제수용 프리미엄 과일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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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알뜰 주부는 못 되지만 제수 장만에 앞서 시장조사는 기본이죠. 먼저 눈요기도 할 겸, 최고급 추석상품만 판매된다는 집근처 백화점을 찾았습니다. 역시나 백화점은 달랐습니다. 이른 감이 있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알도 굵고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과일들이 저마다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일 앞에 달린 가격표를 보고 '급' 좌절하고 맙니다. 신고 배 개당 1만4천원, 홍로사과 개당 1만2천원. 반건시 개당 1만원. 차례상에 올리기에 적당해 보이는 크기와 모양이라고 생각되는 과일들의 엄청난 가격에 그만 입이 다물어 지지 않습니다.

'저게 얼마야. 저걸로 차례를 지내면 사과, 배, 곶감을 세 개씩만 올린다고 해도…. 과일값만 10만원이 넘네. 차라리 돈을 씹어 먹지. 말도 안되.'

백화점에 진열 된 과일 선물 세트. 8과에서 10과짜치 선물세트가 15만원에서 20만원선에 판매되고 있다.
 백화점에 진열 된 과일 선물 세트. 8과에서 10과짜치 선물세트가 15만원에서 20만원선에 판매되고 있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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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 아닙니다. 차례상에 올릴 김치와 배추전, 탕국을 만들려면 배추와 무, 대파가 필수인데 배추는 한통에 9800원, 무 하나에 5500원, 파 한 단(단도 작고 초라한 것이)에 3800원입니다. 그나마 물량도 적고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싱싱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탕국과 산적에 필요한 한우 역시 100그램당 6천원~7천원선. 탕거리로 600그램, 산적거리 등으로 1킬로그램 구입하면 역시 십만원을 넘어서는데, 잡채용과 불고기감까지 추가하면 고기값만도 20만원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과일 세 가지와 배추, 무. 탕거리와 산적거리 가격만 계산해도 이 정도니 백화점에서 차례상을 준비하려면 50만원이 훌쩍 넘을 것은 뻔한 일. 결국 처음 생각대로 백화점에서는 눈요기만 하고 대형마트를 잠깐 들러 마지막 재래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가격이 너무 올랐어, 수입산 사... 조상님도 이해하실 거야"
재래시장의 경우 백화점 대비 40% 정도 저렴하게 추석 장보기가 가능하다.
 재래시장의 경우 백화점 대비 40% 정도 저렴하게 추석 장보기가 가능하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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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대목 밑이라 북적거릴 것으로 예상했던 재래시장은 의외로 평소와 비슷한 정도로 한산합니다. 드믄드믄 추석장을 보는 손님들이 있을 뿐 예년처럼 시장골목이 미어질듯 왁자한 대목분위기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장사하기 힘들어. 뭐 물건이 있어야 갖다 팔지. 추석이 너무 이른 데다가 태풍도 있고…. 산지에서 올라오지를 않아. 올라와도 가격이 너무 비싸서 우리도 팔기 힘들어. 손님들이 가격만 물어보고 그냥 간다니까. 대목보고 장사한다고 하는데 올 대목은 대목이 아니라 소목이야."

수급이 좋지 않아 가격이 높아진 제수용품. 재래시장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파는 상인이나 구입하는 소비자나 대목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지요.

"사과랑 배랑 개당 4천원이구요. 곶감은 열 개짜리 한 팩에 7천원이에요. 미리 말씀드리는데 곶감은 중국산입니다. 알고 사세요. 국산도 있지만 우리 같이 작은 가게에서는 너무 비싸서 가져다 놓을 수가 없어요."

"배추는 한통에 5천원, 상등품은 세 통 한망에 2만원이구. 무는 큰 거 3천원, 대파 한단에 5천원. 시금치 한 단에 5천원. 채소장사 이렇게 해도 올해처럼 비싼 해는 처음이라니까. 추석 지나면 가격이 조금 떨어질테니 당장 차례 지낼 것만 사 가든지…."

"도라지하고 고사리? 국산은 한 근에 8천원 9천원이야. 비싸지? 그럼 중국산으로 해. 중국산은 반값이야. 제수흥정이 어지간해야지. 돈 벌이는 시원치 않은데 물가는 하늘 꼭데기까지 오르고. 어지간하면 수입산으로 해. 부자동네 사모님들도 죄다 수입산만 사가드만. 조상님도 이해하실 거야. 암만. 이해하시고 말고."

"조기도 그렇고 동태포도 그렇고 코다리도 그렇고 시장에 아예 국산이 없어.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잡히지도 않고 잡힌다고 해도 값이 너무 비싸서 팔아먹을 수도 없다니까. 어차피 다 수입산 먹는다고 생각하면 편하지 뭐. 생선 장사하는 우리도 수입산으로 차례도 지내고 제사도 지내고 다 해."
재래시장의 경우 원산지 표시를 미비하게 하는 경우가 있어 구입전 확인이 필요하다.
 재래시장의 경우 원산지 표시를 미비하게 하는 경우가 있어 구입전 확인이 필요하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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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의 말을 듣고 보니 솔깃한 것이 수입산 제수용품에 절로 눈길이 갑니다. 수산물의 경우 연근해에서 잡히지를 않으니 수입산을 구입할 수밖에 없고, 나물류나 곶감, 대추, 밤 등 견과류 역시 올해 작황이 좋지 않아 국내산이 수입산에 비해 월등 가격이 높습니다.

제수음식 중 가장 가격부담이 큰 소고기 역시 육우라고 해도 국내산과 수입산의 가격이 3배까지 차이가 나니 얇아진 주머니 생각을 할 때 수입산의 유혹을 뿌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요.

발품 아무리 팔아도 '글로벌화된' 차례상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한 번씩 돌고 나니 재래시장의 재수용품 가격이 백화점 대비 40% 마트 대비 20%이상 저렴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재래시장의 경우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비해 수입산 농수산물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서 동등한 조건에서의 가격비교가 아니라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발품을 팔고 돌아다닌 끝에 구입한 저의 제수음식은 이렇습니다. 산적과 국거리, 잡채 등에 들어갈 소고기는 호주산 육우로, 고사리와 도라지, 곶감, 대추, 밤은 중국산으로, 동태포와 코다리는 러시아산으로. 과일과 술을 빼면 대부분의 차례 음식이 수입산 재료입니다. 글로벌화 글로벌화 하더니, 이제는 차례음식도 글로벌화를 이룬 것이죠.

이렇게 된 사정에는 계절적으로 추석이 너무 이른 때문도 있고, 태풍 곤파스의 영향도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마음 편히 국내산을 장바구니에 담지 못할 만큼 얇아진 지갑 탓도 있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부모님과 조카들 용돈에 그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지인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할 작은 추석선물이라도 마련하려면, 차례상차림 비용만으로 30~4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이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거든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해마다 차례상 위에 수입산 제수용품들이 하나씩 늘어가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신토는 불이라, 우리 몸엔 우리 것이 좋은 것인 줄 잘 알고 있고, 품질 좋고 맛도 좋은 우리 것으로 차례상을 차려내고 싶은 심정도 간절하지만 형편상 우리 땅, 우리바다에서 나는 재료만 가지고는 차례상를 차려내는 것이 쉽지 않기에 조상님께 감히 양해를 구합니다.

"조상님. 죄송합니다. 수입산 재료로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정성만큼은 최고로 들어간 상차림이니 원산지는 잠시 잊어 주시고 정성으로 예쁘게 받아주세요."


태그:#추석, #추석물가, #재래시장, #차례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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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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